조직을 변화시키는 방법은 사람변화, 구조변화, 절차변화 3가지로 집약된다. 이 중 가장 편한 방법이 절차이며 가장 어려운 것이 사람이다. 사람을 변화시키기 위해 인재육성을 시도한다. 절차를 변화시키기 위해 명문화된 규정집을 개선시킨다. 구조를 개선시키기 위해 조직도를 변경한다. 이것이 우리가 주로 하는 소위 조직문화의 변화 방법이라는 것들이다.그런데 이러한 조직문화 변화에 있어서 리더의 몫은 없다. 인재육성이 되어야 할 대상은 리더가 아니라 구성원들이다. 조직도가 변경되어도 리더의 역할과 권한은 그대로이다. 구성원들 사이에서의 변동
기업의 목적은 이윤의 추구이며 자본주의의 작동기제는 인간의 이기주의이다. 하지만 오늘날 사회에서는 기업의 목적을 이윤과 함께 사회적 책임도 요구한다. 사회복지시설의 목적은 사회복지사업법 2조의 ‘사회의 복지’이며 작동기제는 이타주의이다. 하지만 법의 목적을 달성한다고 해서 사회가 부여한 책임을 다한다고 할 수 있을까? 시대의 변화 속에서 사회가 기업에게 새로운 책임을 요구하듯이 사회복지시설 역시도 그러하다. 과연 사회복지시설은 국가와 지역사회로부터 ‘사회의 복지’ 뿐만이 아니라 어떠한 ‘새로운 책임’을 요구받고 있을까?사회복지시설은
평가를 하면 서비스수준을 높일 수 있다는 맹신은 버려져야 한다. 평가를 하면 학생들의 학업수준이, 조직 구성원들의 성과가 높아질 것이라는 기대가 있지만, 사실 높아지는 것은 평가에 대한 적응력이다. 굳이 평가가 없어도 동기부여가 된 학생이나 구성원들은 기대에 부응한다. 오히려 평가가 동기부여를 훼손하는 경우도 비일비재한데 그것은 평가가 통제의 수단으로 작용할 경우이다.보건복지부 사회복지시설 평가는 현재 6개 영역의 시설환경, 재정관리, 인적자원, 서비스, 인권, 지역사회연계로 되어 있다. 이는 평가 원년인 1999년부터 줄곧 시행되
사회복지사 1급, 경력 15년, 동종경력 10년이면 전문적인 리더일까?3년마다 묻는 평가지표에서 리더의 전문성을 이렇게 측정하고 있다.리더의 전문성 지표가 이렇게 만들어진 이유는 퇴직공무원, 법인의 친인척 등 소위 낙하산을 방지하기 위함이다. 또한 사회복지사 외에 다른 자격직종의 인력유입을 막기 위함이다. 이 지표를 주장하는 집단은 리더의 과업수행 능력을 들어 정당성을 주장한다. 자격이 상이하거나 경력이 미천한 사람이 리더가 되면 과업수행에 어려움이 있고 이는 고스란히 조직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나아가서는 이런 사람들에 의해
“진정한 위기는 자원의 부족이 아니라 상상력의 부족이다”-파울로 루가리(P. Lugari), 가비오따쓰(Gaviotas) 설립자보건복지부 사회복지시설 평가지표 중, 인적자원관리 영역의 지표에는 복무규정여부, 휴가제도의 준수, 병가 및 휴직제도의 시행, 정기적 포상제도, 직원 자치단체, 시간외 수당지급 규정, 직원 상해보험, 고충처리 8가지를 직원복지라고 설정해 놓았다. 이 중 복무규정과 휴가제도의 준수를 포함하여 지표에서 정한 갯수를 인정받으면 ‘우수’를 받을 수 있다.직원의 복지라는 것을 지표의 8개로 규정할 수 있을까? 휴가제도
1999년 평가제도가 도입될 무렵, 복지부의 가장 큰 고민은 평가에 대한 저항이었다. 부족한 인력과 예산 속에서 이를 준비하는 데에는 당연한 저항이 있기 마련이었다. 이것을 해결하고자 도입한 것인 인센티브제도이다. 문제는 인센티브제도는 복지부의 대안이기도 하였지만 현장에서도 요구하였다는 것이다. 정작 평가를 준비하는 직원들에게 동기요인이 필요하였기 때문이다. 즉, 당시의 리더들이 현장의 저항에 대한 대안을 복지부에 요구한 것이다.인센티브를 통해 동기가 유발된 것은 사실이지만, 금전적 보상은 오히려 자발적 동기를 떨어뜨린다는 수많은
25대의 영국함대와 33대의 프랑스와 스페인의 연합함대가 유럽의 운명을 두고 겨룬 트라팔가르 해전(Battle of Trafalgar, 1805년)은 역사상 큰 전환점을 주었다. 당시의 해전은 양측의 함대가 횡렬로 전열을 만들고 승부가 날 때 까지 함포사격을 하는 형태였다. 이 해전을 승리를 이끈 영국의 넬슨제독(Horatio Nelson)은 당시의 해전 형태와는 달리, 자신의 전함 빅토리호(HMS VICTORY)를 타고 연함함대의 전열 가운데 들어가 함포사격을 하였고, 이로 인해 전열이 흐트러진 프랑스와 스페인의 연합함대는 손도
장애인 활동보조사의 휴게시간 논란, 아이돌보미의 근로자성 인정 문제 등 사회복지계의 노동이슈가 뜨겁다. 활동보조사의 경우 근로기준법 개정으로 인해 2018년 7월부터 사회복지사업이 근로·휴게시간 특례업종에서 제외되었다. 그로인해 4시간 노동 시에 30분의 휴게시간을 가져야 하지만 최중증장애인을 케어하면서 휴게시간을 가질 수는 없다. 설령 휴게시간을 가진다고 하더라도 엄밀히 말하면 대기시간이나 다름없다.아이돌보미의 경우에는 이전까지는 특수직 고용직으로 분류되었다. 하지만 지난 6월 25일 광주지방법원은 아이돌보미를 현행 노동법상의 노
사회서비스원과 관련해 여러 이슈화되고 있는 논란들이 있지만, ‘사회서비스원의 정보독점’에 대한 논의가 필요하다. 조직에서의 정보는 물처럼 자연스럽게 흘러야 한다. 공통의 목표를 달성하고자 하는 조직에 있어서 정보 편중과 격차는 목표달성의 불균형을 초래한다. 힘의 균형을 잃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보가 자연스럽게 공유되고 정보의 접근권이 구성원에게 동등하게 주어질수록 조직의 경쟁력은 향상된다. 정보는 하나의 권력이기 때문이다. ‘어떻게 분배되느냐?’ 에 따라 독재 또는 공유의 문화가 주어지고 그 문화의 차이에 따라 성과에 영향을 주기
사회서비스원의 우선적 역할은 사회서비스의 공공성과 투명성, 그리고 전문성의 확보에 있다. 막대한 재정을 투입하여 사회서비스를 공급하고는 있지만 국민들의 체감이 높지 않을뿐더러, 각종 비리와 인권유린이 발생되고 게다가 노동자들의 처우도 좋지 않다는 것에 국가의 고민이 있었다. 이 고민을 해결하기 위해 지도점검과 사회복지시설 평가를 시행하고 있지만 이 방법이 잘 통하지 않는다. 그에 대한 대안이 사회서비스원인 것이다. 그렇다면 사회서비스원에 의해 사회서비스가 제공되면 공공성과 투명성, 전문성이 확보될 수 있을까? 물론 가능성은 있다.그
1999년에 시작된 보건복지부 사회복지시설 평가는 시설의 문제점을 개선하고 이용자들에 대한 서비스의 질을 제고하는 목적으로 실시되었다.평가제도의 지난 20년간의 성과라고 본다면 사회복지시설의 서비스 수준 향상이다. 반면 거론되는 문제는 평가지표 적절성, 평가위원 전문성, 인센티브제도, 평가의 주체 등 너무나 다양하고 1차년도 부터 제기되어 온 해묵은 과제들이다.왜, 해결되지 못하고 있는 것일까? 그것은 평가제도를 통해 얻고자 하는 목적이 평가주체, 운영기관, 사회복지시설 등 이해관계자들의 입장에 따라 다르다는 것이다.사회복지시설이
太上下知有之(태상하지유지, 노자의 도덕경 中) 최고의 리더는 있다는 존재만 느끼게 하는 리더라고 한다. 하지만 대개의 많은 리더들은 자신의 존재감을 들어 내려하는 속성이 있다. 그것이 리더의 덕목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들어내기 위해 많은 시도를 하게 되는데 이때 주로 손대는 것이 ‘관리와 통제’이다. 형식적 업무들은 주로 관리와 통제 속에 가장 많이 포진해 있다.계획서, 보고서, 평가서 등은 관리와 통제에 가장 많이 사용되는 도구들이다. 그리고 이 도구들은 주로 기획팀의 주요 업무가 된다. 기획팀은 이를 근거로 조직에서 영향력을 발
직무구조의 재설계 방법 중에 집단을 대상으로 하여 수직적으로 직무를 확대하는 제도를 ‘자율적 작업집단’ 이라 한다. 이 제도는 구성원들에게 지시와 통제보다는 자율과 선택을 부여한다. 그럼으로써 구성원의 사회적 욕구와 성장욕구를 충족시켜 문제해결을 촉진시키고 성과를 향상시킨다.제도의 시초는 1940년대 영국의 광산에서 시작된 자율경영조직(Empowered Team, Self-managing Work Team)을 들 수 있다. 당시 영국의 석탄광부들은 상부의 지시 없이 지하갱도 안에서 독자적으로 결정을 내리며 생산활동을 수행하였다. 기
“너희들 나 덕분에 먹고 살잖아?”간혹이지만, 우리가 접하는 고객들에게 듣는 말이다. 틀리지 않은 말이다. 사회적 약자가 존재하기 때문에 사회복지노동자들이 있는 것이다. 그러나 현대 사회에는 소비하는 고객이 있어야 노동이 존재하는 일이 대부분이다. 특히 서비스 노동에서는 말이다. 학생이 있어야 교사가 있고, 아픈 사람이 있어야 의료인이 있다. 세상은 관계로 얽혀있고 여기서 생산과 소비라는 주고 받음이 발생한다.그러나 사람은 먹고 살기 위해서만 일을 하지 않는다. 인간은 노동을 통해 즐거움과 의미를 발견하고 성장해 간다. 하지만 실제
“너무 형식적인 것 아닐까요?”“물론 그래. 형식적이라는 것을 부정할 수 없지만 어쩌겠는가. 외부의 이해관계자가 그걸 바라잖은가.”형식적인 업무가 주어졌을 때 흔히 이뤄지는 대화양상이다.‘과연 그럴까?’ 외부의 이해관계자들이 원하는 것은 형식이 아니다. 원하는 정보와 단어, 숫자를 알고 싶어 한다. 문제는 형식에 대한 과도한 충실함이다.그 충실함은 기관에서 선택한 것이다. ‘어떻게 하면 요구하는 대로 잘 전달할 수 있을까’에 대해서도 고민하지만 필요이상의 내용을 적기도 한다. 흔히 공무원 등 외부 이해관계자들이 이런 충실함을 원한다
국가와 사회에 외치는 민주주의의 요구는 조직 문 앞에서 왜 멈춰 설까. 인권의 중요성을 주장하는 사회복지조직에서도 사무실 안에서는 인권을 말하지 않을까.인권을 강자가 약자에게 배려하는 것으로만 이해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접하는 이들을 사회적 약자로 인식하는 시혜적 개념이 존재하는 이상 (사회복지조직의) 리더와 구성원들은 강자다. 시혜의 틀 안에서 스스로들 강자로 인식하고 있기 때문에 인권은 사회복지조직 사무실 문 앞에서 멈춰 설 수밖에 없다.하지만 인권은 실천이자 구체적 행동이다. 또 보편적이다. 리더와 구성원, 사회적 약자를 구분하지 않으며, 강자와 약자를 구분하지도 않는다. 인간이라면 당연히 누릴 보편적 권리다.민주주의를 투표로만 이해한다면 시민에게 주어진 몫은 투표뿐이다.그
성공한 조직은 흔하다. 그러나 지속되는 조직은 흔하지 않다. 이미 성공의 경로를 경험했기 때문에 새로운 변화보다는 안주를 선택함으로써 성장을 멈춘다.과거 성공했던 경험이 관성화 돼 변화하기를 거부하는 것을 ‘경로 의존성(Path Dependence)’이라 한다. 영문 타자기의 왼쪽 상단을 보면 QWERTY로 배열되어 있는데, 이는 수동식 타자기의 팔이 엉키지 않도록 한 것이다. 오늘날 키보드는 엉킴의 문제가 없음으로 다른 시도들이 가능하나, 개선 없이 기존 경로를 선택해 버렸다.조직을 이끌어 가는 방법은 다양하다. 영리든 비영리조직이든 목표는 근원적으로 동일하다. 이윤 추구와 공동체의 유지이다. 그러나 목표를 달성하는 방식은 내·외부의 환경에 따라 각기 다른 선택을 해야 한다. 상황이 다르니
서태지는 자타공인의 문화대통령이다.그가 문화대통령으로 칭호를 받은 것은 수 백 만장의 앨범 판매 기록수치나 그의 독특한 춤이나 작곡 수준 때문만은 아니다. 대한민국 대중연예계의 문화를 바꾸어 놓았을 뿐만 아니라 대한민국 사회 시스템을 바꿔 놓았기 때문이다.당시 트로트와 발라드가 대세였던 가요계에 댄스와 힙합을 가지고 들어옴으로써 10~20대가 주요 소비 세력으로 등장하게 했다. 기획사의 독점에 반하여 직접 소속사를 설립했고, 공연윤리위원회의 사전심의제도에 대해 저항하며 기존 주류 문화를 바꿔 놓아 버렸다.집권 1년차에도 80%대의 높은 국정지지율을 보이는 문재인 대통령.고용지표나 경제성장률 등을 살펴보면 과거 정부들과 비교해 봤을 때 괄목할 만한 큰 성과는 이루지 못했다. 오히려 우리가
종사자를 위한 인권센터 설립 및 운영이라니!경기 등 최근 치른 사회복지사협회 선거 등을 지켜보면서 감회가 남다르다. 사회복지 노동자를 위해 인권센터를 설립하거나, 운영 활성화 등을 공약으로 내세운 걸 보면서 그리 낯설어만 하던 ‘인권’이 어느덧 우리 옆에까지 왔구나 싶다.알다시피 사회복지사 보수교육 과목에 ‘인권교육’이 포함된 것도 이른바 ‘도가니’ 사건을 겪고 나서야 가능했으며, 지금도 (이럴 때만 필요한) 1급 사회복지사 자격증 소지자가 아니면 인권 강의를 할 수 없다. 수많은 경험과 경륜이 있는 인권활동가라도 사회복지사 자격증이 없기 때문에, 그것도 1급 자격증이 없으면 사회복지사들을 위해 강의조차 할 수 없다는 말이다.이렇게 막힌 구조에서 사회복지 노동자들의 권익과 인권을 지키겠다는
최근 한 여 검사의 양심고백으로 인해 드러난 진실을 놓고 검찰에 대한 비난여론이 뜨겁다.법을 집행하는 검찰 내에서 성희롱은 물론 성추행, 성폭행까지 벌어졌으나 징계는 고사하고 유야무야 넘겼다는 사실이 우리사회의 단면을 보여주는 것 같아 씁쓸하다.양파 까듯 연이어 터져 나오는 기사들을 보면서 문득 옛날의 기억들이 떠올라 마음이 불편했다. 바로 사회복지계의 일이다.일반 대중들에게는 여전히 ‘사회복지 일을 하는 사람은 천사’라는 인식이 강하기 때문에 상상하기 힘들겠지만, 기자가 들여다 본 사회복지계는 다른 어떤 조직만큼이나 권위적이고 수직적이다. 군대처럼 상명하복이 존재하고, 기관과 법인, 지역으로까지 연결돼 있는 관계망은 거부했을 때 상상하기 힘든 압박으로 돌아온다.지금은 사라졌으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