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당년 82세, 말하자면 인생 고참인 셈이다. 내 남편은 1997년 3월, 81세로 ‘치매’라는 병명을 마지막으로 달고서 먼길을 떠났다. 내 남편은 몸의 어느 작은 부분이라도 이상이 있으면 즉시 병원에 다녔던 자기의 건강 관리에는 지나치리만큼 철저했던 사람이었다. 그런데 ‘치매’라니...
치매 초기에는 기억력이 급격히 떨어지고 억지 소리를 많이 하여 나를 속상하게 한 적이 한 두 번이 아니었다. 예를 들면, 화장실에 가서 용변을 보고 물을 안 내리고서는 ‘물을 내리라’고 내가 말하면 자기가 하지 않았다고 우겨대곤 했다. 또 실내화와 실외화를 구별하지 못하고 사용하는 적이 많았다. 자기가 혼자 사용하던 틀니까지도 어디다 두었는지를 찾지 못하고 누군가 그것을 가져갔다고 주위 사람을 의심하는 적이 많았다. 그리고 가까이 지내던 사람들이 무엇이 싫고 무엇이 기분 나쁘다고 불만이 많았으며 오해를 많이 했다. 그러한 증상들이 치매 초기이기 때문에 나타나는 일들이라는 상식을 나는 몰랐기 때문에 어린애 같은 남편의 행동에 눈살을 찌푸린 적이 많았다. 그러다가 병원에서 치매라는 판정을 받고 나서는 육체적 고통은 말도 못하게 고되었지만 정신적으로는 안정을 되찾았다. 환자는 한없이 불쌍했다.
몹쓸 병에 걸린 내 남편. ‘억지 소리하면 다 받아주고’. ‘헛소리하면 나도 따라가 같이 헛소리하고’, ‘먹으면 나도 먹고’, ‘안 먹으면 나도 안 먹자’, ‘환자가 울면 나도 같이 울고’, ‘환자가 웃으면 나도 웃자’. 어쩔 수가 없지 않은가! 부부는 일심동체가 아닌가? 이 분이 그런 병에 걸리고 싶어서 걸렸겠는가! 내 힘을 어찌할 수 없는 일이라면 운명으로 받아들이고 최선을 다하리하 마음먹었다.
환자가 “사람들이 많이 와 있다. 얼른 나가서 대접을 하라”고 하면 나는 얼른 아무도 없는 마루로 나가서 “아니 어쩐 일이세요? 어서 들어오세요!”하고 같이 허튼짓을 했다. 또한 그분과 같이 오목도 두고 같이 놀아주곤 했다. 소꿉장난하는 어린 아기같이 화투를 가지고 모였다 헛쳤다 하기도 했다. 잠을 재울 때에도 엄마가 재우는 갓난아기같이 내 무릎 위에 남편 머리를 눕히고 “글게 글게 우리 아가, 팥대가리 껄껄, 우리 아가 잘도 잔다. 자장자장 잘 자라”하면서 재우고 나서 틈틈이 집안일들을 쏜살같이 보살폈다.
<자료출처: 서울시치매노인종합상담센터 afcdeol@unite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