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행취재/ 여성장애인으로 산다는 것은
동행취재/ 여성장애인으로 산다는 것은
  • 조경희
  • 승인 2004.05.03 1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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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 내리는 오후 5시.
아침부터 이 시간까지 쉼 없이 전화통화를 하는 이현주(가명 36살)씨.
하루 300~400통까지 전화를 걸기도 한다는 이씨는 현재 H회사에서 텔레마케터로 근무 중이다. 아침 9시 30분부터 지금까지 쉼 없이 전화해 지쳤을 법 한데 생글생글 웃는 걸 보면 본인 말대로 천직인가 보다.
“말로 할 수 있는 건, 다 잘할 수 있어요.”
 
1살 때 앓은 소아마비로 부모님에 업혀서 학교에 다닐 정도로 귀한 딸이었던 이씨는 피아니스트가 되고도 싶었고 여군이 되고 싶기도 했었다. 하지만 ‘장애인’이라는 이유로 여기저기 부딪히다 하게 된 일은 여관의 전화교환원. “그때부터 인가봐요. 이 일이 천직이라고 느끼게 된 게. 여기저기 많은 일을 해봤지만 말을 할 수 있는 직업이 가장 즐거웠어요.”
 
여성이면서 장애인으로서의 그녀는?
현재 이씨는 별거상태다. “1년 전부터 별거하기 시작했어요. 남편의 상습적인 폭행에, 아이가 보는 앞에서의 폭행에 아이가 상처받을까봐 너무나 두려웠어요” 자신이 폭행당하면서도 아이를 먼저 걱정하는 모습은 장애를 넘어 어느 어머니에게나 똑같은가 보다. 아이가 폭력 앞에서 이상해질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이씨는 이혼을 결심하게 됐지만 남편은 이혼해주지 않았다. 그래서 아이와 남편은 원주에, 이씨는 언니와 함께 서울에 거주하면서 아이와 생이별을 해야만 했다. 그래도 석달에 한 번은 만난다고.
 
“아이가 눈을 잘 뜨지 못하는 안검하수증을 앓아서 석달에 한 번 서울 병원을 와요. 병원 올 때 한 번씩 보지요”너무 보고 싶을 때는 전화를 해 목소리를 듣기도 하지만 개구쟁이 용호는 놀러가야 한다며 가끔씩 엄마 전화를 끊기도 한다고 한다. 게임도 좋아하고 친구들과 어울려 노는 걸 좋아하는 7살 개구쟁이 용호답다.
 
“용호가 엄마와 함께 살기를 원하면 지금 당장이라도 함께 살고 싶어요.”
“언젠가 용호가 이런 말을 했어요. 나와 남편이 자꾸 싸운다며 아이가 아빠랑 살테니 엄마는 딴데가라고...” 아이가 활동적이고 노는 것을 좋아해 장애인인 엄마가 자신과 놀아줄 수 없다는 것을 안 이후로 아이는 친구들과 아빠와 노는 것을 더 좋아했다고 한다. 엄마가 자신에게 해 줄 수 없는 게 너무 많음을 알았다고. 남편과 결혼한 것을 가장 후회하지만 아이를 낳아 책임질 수 없다고 느껴질 때는 그보다 더한 고통을 느꼈다고 한다. 그래서 이씨는 어서 빨리 저축해 용호와 단둘이 사는게 꿈이다. 용호가 아직은 엄마를 이해하지 못하지만 이해할 날을 기다리며 용호와 단둘이 살 방을 마련하는게 이씨의 작은 소망이다.
 
사노라면 언젠가는 밝은 날도 오겠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씨는 너무나 밝은 성격을 지니고 있다. 언제나 씩씩하고 재미있게 사는 것이 그녀의 좌우명이란다. 주변 사람들에게 잔소리도 농담처럼 하는 그녀. 
비가 오는 날은 자신 있는 메뉴인 “골뱅이 무침에 소주 한 잔 해야한다”며 활짝 웃는 모습이 밝아 보인다. 그러면서 기자를 초대하겠다고 한다. 다음에 비가 오거나 우울할 때 전화하라고. 
 
엘리베이터가 없어 매일매일 등산하는 기분으로 5층 회사에 오르내리는 그녀. 그녀가 밟는 수많은 계단. 하지만 그 계단이 단지 계단이길 바란다. 여성이며 장애인으로서의 그녀에게 오르기 힘든 계단이 아닌 일상의 무수한 일들처럼 무심하게 넘어갈 수 있는 계단이 되길, 그리고 그녀의 인생도 그렇게 되었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