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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전쟁시 포로수용소에서 학살당한 사람들. 
54년전 6월 25일 새벽 6·25전쟁 발생. 6·25전쟁은 많은 아픔만을 남긴 동족상잔의 비극으로 기억되고 있다.
6·25로 인해 20여만명의 미망인과 10여만명의 전쟁고아가 생겨났다고 한다. 더욱이 안타까운 것은 6·25 전쟁에 참전해 다리 절단 등 장애인이 된 사람도 있고, 현재까지도 보훈병원에 입원해 있는 상이군경도 있다.
상이군경들은 그 날의 악몽과 그 당시의 상처로 인한 통증으로 인해 약에 의존하며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고 한다.
18세에 군대에 입대, 6·25전쟁터 현장에 간 우정각(75·지체3급) 어르신.
1951년 5월, 중공군의 개입과 1.4후퇴가 있던 때였다. 우 어르신의 나이 21세, 낙동강 대관령전투에서 폭격을 당해 오른쪽 다리 사이의 뼈 7∼8㎝정도가 으스러지는 상처를 입었다. 그 사건으로 인해 우 어르신은 현재 오른쪽 다리가 짧은 채 살아가고 있다고.
우 어르신은 “6·25 당시를 설명하면 참혹했다는 말밖에 안 나온다”며 “1년동안 시체 속에서 파묻혀 생활했었다. 살기 위해 다른 사람을 죽여야 하는...”이라며 그 당시의 상황을 얘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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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로 인해 발생한 고아들.우 어르신을 포함해 6·25 전쟁으로 인해 장애인이 된 인원만 해도 3만5천여명. 이들 상이군경들은 현재 연금 60만원 등의 보훈시책만이 나라를 구한 대가로 지원될 뿐이다. 그러나 이들이 정말 원하는 것은 ‘대우’보다는 ‘명예’라고 말한다.
우 어르신은 “나라가 없으면 민주화도 없고, 국민도, 자유도 없다”며 “민주화 운동을 한 사람은 민주열사고 나라를 구한 사람들은 그냥 국가유공자다”라며 사회인식에 대한 아쉬움을 토로하기도 했다.
또한 우 어르신은 “요즘 젊은이들은 국가관이 약하다. ‘내 나라는 내가 지킨다’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어야 하는데 군대 안가는 일도 발생하고...”를 덧붙이며 젊은이들에게 국가안보에 대한 중요성을 피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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