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수(64,정신장애,지체장애)씨는 흡사 열아홉 소년의 쑥스러운 미소를 가지고 있었다.
장애인 재활을 위한 도예 직업훈련원인 향림 도예원의 첫 작품 전시회. 그 곳에서 이종수씨와 부인 이진순(54)씨를 만날 수 있었다. 그동안 이종수씨가 향림 도예원에서 만든 도자기 필통 몇 점도 이날 전시됐던 것. 자신의 작품이 마음에 드냐는 질문에 이종수씨는 쑥스러운 웃음으로 대신한다.
 
이종수씨는 정신장애인이다. 부유하고 유명세있던 집안의 장남으로 태어나 당시 경기중․ 경기고를 졸업했으니 꽤 총명한 소년이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서울대를 고집하는 부모와 학업보다는 운동이 더 좋았던 열아홉 소년의 갈등이 결국 입시를 앞둔 해 정신분열을 낳고 말았다. 그 후 안양병원, 명동 성모병원 등 정신병원을 떠돈지 27년째인 1986년, 이진순씨를 만나게 되고 결혼도 하게 됐다.
 
비장애인인 이진순씨가 정신장애인 그것도 중증장애인인 이종수씨와 결혼했다는 사실을 알게되면 사람들은 으레히 고개를 갸우뚱거린다. 이진순씨도 보이지 않는 장애를 가진 것이 아닌가, 혹은 이종수씨의 어떤 배경을 보고 결혼한 것이 아닌가… 그러나, 현재 이 부부는 연금 30여만원과 이진순씨의 친정 도움으로 살아가고 있다. 이종수씨의 가족은 모두 미국으로 이민을 가고 연락이 끊긴지 오래다.
 
이진순씨는 현재까지 30여년동안 자원봉사를 해오고 있다. 특히 정신병원에서 오랫동안 자원봉사를 하면서 오히려 비장애인보다 정신장애인들과 더 스스럼없이 어울릴 수 있었다고 한다. 그러던 어느날, “나 좀 죽을때 까지 돌봐줘요”라며 이종수씨로부터 청혼답지 않은 청혼을 받은 후, 이 부부의 평범하지 않은 결혼생활이 시작된 것이다. 올해로 결혼생활 18년째, 이종수씨의 병으로 부부생활을 전혀 하지 못하는 부부는 자식이 있을턱이 없다. 그러나, 그 18년이 마냥 허송세월은 아니었던 것.  결혼초기, 이종수씨는 음식을 손으로 집어먹고 씻지도 않고 손,발톱을 깎지도 않았다. 하루에 담배 5~6갑을 피워대는 것은 기본이었고 밤이면 잠을 자지 않고 목청을 돋워 노래를 불렀다. 그동안 이진순씨의 고생이 심했던 것은 더 이상 강조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 그러나, 이제 이종수씨는 아예 담배를 끊었고, 외출복을 챙겨 입을 수 있고, 매일 서른세 알이나 되는 약을 먹다가 현재는 세 알까지 줄였다. 정신과 의사들도 믿지 못할 정도의 회복이라고 한다.
비결을 물었더니 이진순씨는 “남편에게 화 한번 내지 않았다. 단지 매일 똑같은 톤으로 계속해서 이야기 했을 뿐” 이라고 한다.
 
이종수씨의 기적같은 회복에 힘입어 이진순씨는 지난 2000년에 이들 부부의 이야기를 담은 ‘종수이야기’ 라는 책을 쓰기도 했다. 무엇보다 가장 큰 수확은 이 책을 통해 이종수씨의 경기고 동창들을 찾을 수 있었던 것.
 
현재 이종수씨는 정신병 증상은 많이 회복됐지만 당뇨로 인해 오른쪽 다리를 절단한 상태다. 또한 당뇨 합병증으로 몸의 기능이 많이 약해졌다.
그래도 이 부부는 하루 두 번 이종수씨가 좋아하는 드라이브를 하며 또 일주일에 두 번은 향림원을 찾아 도자기를 만든다. 평범하고 반복되는 일상이지만 그 안에는 이진순씨의 믿음과 기도가 있고 싹이 자라고 있다.  이진순씨에게 앞으로의 소원을 물었다. “오늘 하루 즐겁게 잘 사는거요….” 단순한 대답이 돌아온다. 순간 든 생각, 18년동안 이 단순한 소원이나마 이뤄진 날이 며칠이나 있었을까. 되묻자 이진순씨는 그때도 행복했고 지금도 행복하단다. 이종수씨는 “우리 진순이 없으면 못 산다”고 한다. 이런 살가운 부부가 또 어디있을까, 천생연분이지 싶다.
저작권자 © 웰페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