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순실의 ‘아들하고 나하고’
우순실의 ‘아들하고 나하고’
  • 남궁선
  • 승인 2005.02.28 1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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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수 우순실씨와 지금은 하늘나라로 간 아들 병수.
2000년 가을 어느 새벽 *지금은 새벽 4시 40분. 오늘도 아기 천사 병수는 동이 터올 무렵에 잠이 들었다. 어릴 적 뇌수종으로 뇌손상을 입고 시신경 세포까지 손상을 입어서 눈이 보이지 않아 밤낮의 구별이 안 된다. 늘 밤낮을 거꾸로 산다. 새로운 하루가 시작되려는 순간, 나는 뜬 눈으로 밤을 새우고 조용히 책상 앞에 앉아 졸린 눈을 부비며 펜을 들었다.
 
낮에 푹자는 병수와는 달리 낮에도 할 일이 많은 나는 새벽까지 잠을 설치는 병수에게 왜이리 안자냐고 야단도 해본다. 그러다가도 엄마의 마음과는 상관없이 평화롭기만 한 병수의 얼굴을 보고 이내 피식 웃어버리곤 한다.

깨어 있을 땐 나름대로 많은 생각을 하는 듯 커다란 눈망울을 껌뻑껌뻑 하는 것이 마치 속깊은 아이 같다. 하지만 잠이 들면 언제 그랬냐는 듯 죽은 듯이 잠을 잔다.
 
잠을 자면서 병수는 무슨 꿈을 꿀까? 아장 아장 걸어다니는 꿈? 아니면 천사처럼, 새처럼 하늘을 날아다니는 꿈? *아련한 과거 속으로 *이런 저런 생각을 하다보니 문득 나의 어린 시절 아무 걱정없이 마냥 뛰어다니던 그 시절이 생각났다. 딸 다섯에 막내인 나는 학교만 마치면 가방을 내팽개치고 언니와 뒷산으로 달려가곤 했다. 버섯 냄새와 풀잎 냄새가 향기로운 산속으로 돌아다니며 고사리도 뜯고 버섯도 캐곤 했다. 자연과 하나되는 기쁨을 누리던 때였다.
 
지금은 흔적도 없이 사라진 기찻길 위를 지나기도 하고 동네 앞 시냇가에서 신나게 물장구 치다가 물살에 밀려 떠내려가 가까스로 살아난 일…
휴! 정말 평화롭던 시절이었다.
살다가 힘들고 지치고 눈물날 때면 그때가 떠올라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지만 이젠 추억으로 묻어 둬야 함을 알기에 그리움으로 눈물 지을 때가 많다.
 
대학 2학년 시절 대학가요제를 통해 ‘잃어버린 우산’으로 음악활동을 하다가 우연히 CM song을 부르게 됐다. 1988년 CM song 스튜디오에서 작곡을 하는 지금의 남편을 만나게 됐다. 기타리스트였던 그는 하얀 피부에 선한 모습을 하고 로이 부캐넌의 ‘Messia will come again’을 멋지게 연주하곤 했다. 그 모습에 반한 나는 스팅의 ‘sister moon’이라는 음반을 선물하면서 우리 사랑은 시작됐다.
 
3년동안 연애를 하고 1991년 봄, 우리는 행복한 결혼생활을 시작했다. 남들처럼 소중한 우리만의 아이도 갖게 됐다. 행복했던 시절이었다.
예정일을 한달 앞둔 1992년 1월 10일.    
아침에 약간의 피가 보이더니 간간히 진통이 왔다. 그렇지만 바로 어제 ‘한달 후에 오세요’라는 말에 설마하며 무심히 넘겼다. 그러던 가운데 결국 밤 12시가 넘어서야 집을 나섰다. 그동안 노래밖에 모르고 살던 무지의 소치였다.
진통이 갑자기 빨라지기 시작하며 병원에 도착하기 10분전, 나의 외마디 소리 ‘아’와 함께 아이가 태어났다.
참으로 어이없이…
 
다들 처음 당하는 일에 그저 당혹스럽기만 했고, 한편으로는 새 생명에 신기하기도 했다. 아이는 아무 문제도 없는 듯 보였다.
한치 앞을 내다보지 못하는 우리 인간들은 얼마나 나약하고 한심하고 힘없는 존재인지. 그래서 신에게 하루하루를 맡기며 살아가는 것이 아닐까.
병원에 도착해서 안 일이지만, 그것이 얼마나 치명적이고 위급한 일이었는지.
 
병수는 1.72㎏ 몸무게로 태어났으며, 산소부족으로 뇌에 손상이 생겼다고 했다.
그러더니 하루 하루가 다르게 아이의 상황이 점점 안 좋아졌다. 생명을 포기하라는 말까지 나왔다. 그럴 수 없었다. 이 세상에 태어난 이상 아무리 장애를 가지고 살아간다 할지라고 병수가 살아가야 할 존재의 이유가 분명히 있으리라 생각했다. 지금에서야 생각이지만 그것은 탁월한 선택이었다.
 
서둘러 종합병원으로 옮기고 여러 가지 검사 끝에 병수는 대천문이 일찍 닫히고 뇌에서 복강으로 내려가는 뇌척수액이 흐르는 길이 막혔기때문에 뇌에 커다란 물집이 생겼다고 한다. 점점 커지는 그 물집으로 인해 살아있는 세포는 10%밖에 안 된다고 했다.
 
참으로 눈앞이 깜깜하기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