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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붕어빵의 꿈

얼마 전 탤런트 임은경 씨의 가족사를 모티브로 한 ‘붕어빵의 꿈’이라는 동화집이 발간됐다.
커다란 눈망울에 오똑한 콧날, 아름답고 청초한 임 씨의 얼굴에서 ‘부족함’을 찾기란 쉽지 않다.

하지만 이 책에는 화려한 스타의 빛 뒤에 숨겨진 그림자가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부모와 삼촌이 모두 농아인인 가정에서 태어나 온몸으로 겪었던 가난과 장애인에 대한 차가운 시선 아래 느꼈던 고통이.......

하지만 붕어빵의 꿈은 결코 어둡고 암울한 이야기가 아니었다.
머리를 자르고 새로운 인생을 시작하기로 결정한 어린 소녀는 운명처럼 기획사에 발탁돼 연예인의 길을 걷게 되고 다시금 환한 웃음을 짓게 된다.

이 책의 지은이는 MBC 느낌표 선정도서 ‘가방 들어주는 아이’ 등 장애인 소재 동화로 유명한 고정욱 작가(47ㆍ지체1급)다.
고 작가는 임 씨의 삶에 드리워진 어두운 그림자에 그대로 머물지 않고 따스한 빛을 더해 감동으로 다가오는 하나의 이야기를 만들어냈다.

☆동화로 장애를 읽어주기까지

그는 돌 때 앓았던 소아마비로 장애인이 됐다. 책을 좋아하긴 했지만 작가를 꿈꾸는 문학 소년은 아니었다. 의사가 되고 싶었던 그는 의대에 지원했지만 입학거부를 당했고, 차선으로 생각한 공대 역시 장애인이란 이유로 들어갈 수 없었다.
상심한 그가 아무 과에나 지원하겠다고 했을 때 아버지는 경쟁률이 낮다는 이유로 국문학과에 원서를 넣었고, 결국 합격했다.

장애 때문에 겪은 슬픔과 좌절... 그 모든 굴레를 떨치고 숨겨진 욕망을 풀어낼 탈출구는 자신에게 주어진 ‘펜’에 있음을 깨달은 그는 습작을 쓰기 시작해 신춘문예에 단편 ‘선험’으로 당선, 92년 등단했다.

소설로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지만 사랑하는 아내와 토끼 같은 아이들이 있는 가정을 꾸려가면서 고 작가는 동화에 눈을 돌리게 됐다.
아주 특별한 우리 형, 안내견 탄실이, 가방 들어주는 아이 등 지금까지 10여 편의 장애인 소재 동화를 줄기차게 펴냈다.

몇 년 전만 해도 장애인이 지나가면 피하거나 놀리는 아이들이 대부분이었지만 지금은 장애인을 봐도 스스럼없이 대하는 어린이들을 보면서 세상의 변화를 느낄 수 있었다는 고정욱 작가. 자신의 글이 이러한 변화에 작은 보탬이 됐다는 것에 그는 작은 행복을 느낀다고 한다.

“백지처럼 순수한 아이들에게 장애를 알려주는 것이야말로 인식을 바꾸고 세상을 바꾸는 가장 좋은 방법임을 깨달았고, 내 소명임을 알게 됐습니다.”

 

사진제공/ 현문미디어 ⓒ2006 welfarenews
▲ 사진제공/ 현문미디어 ⓒ2006 welfarenews

☆왜 하필 내가

“여러분, 나를 보면 어떤 생각이 드나요?”
“선생님은 잘 생겼고, 행복한 가정도 있고, 글도 잘 쓰시고 정말 완벽해요!”
“그런데 왜 제가 장애인이 됐을까요?”
“........”

학생들에게 이런 질문을 던지면 꿀 먹은 벙어리처럼 아무 말도 못 한다는 고정욱 작가.
현재 200만부 이상의 판매고를 올리는 등 수십만 독자의 사랑을 받는 베스트셀러 작가에 장애계, 학계, 언론계 등 각 영역에서 왕성하게 활동 중인 그지만 천형처럼 내려진 장애에 대한 고민과 불만은 최근까지도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그런데 얼마 전 한 신부의 일화를 통해 장애를 해탈하는 기회를 얻었다고 한다. 이야기의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미국 뉴욕의 한 신부가 자신의 성당 앞에서 신학교 동창생이지만 노숙자가 된 친구를 발견했다.

신부는 교황에게 편지를 보내 친구의 복직을 요청했고, 교황은 이를 수락하며 노숙자들이 모인 성당의 신부가 되도록 명했다. 교황은 “노숙자를 구원의 길로 이끌기 위해서는 신부도 노숙자가 돼야 한다. 직접 겪은 자만이 그 고통과 아픔을 알 수 있지 않느냐”면서 노숙자로 전락했던 그에게 하느님의 소명을 일깨웠다.

고 작가는 이를 통해 “내가 장애인이 됐기 때문에 글로써 수십, 수백만의 독자를 만나면서 장애에 대한 생각을 바꾸고 좀 더 따뜻하고 밝은 세상을 만들 수 있다는 확신을 얻었다”며 “머릿속을 괴롭히던 생각에서 좀 더 자유로워질 수 있었다”고 말했다.

☆죽는 날까지 글을 쓰고파

고 작가의 하루 일과는 단순하다. 아침 7시 작업실에 도착해 하루 종일 글을 쓰고, 읽고, 정보를 취재하고....... 글쟁이가 되기로 마음먹은 다음부터 단 하루도 거르지 않았던 작업들이 지금의 그를 있게 했다.

처음엔 자신의 억압된 욕망의 분출구로 글을 활용했지만 이제 그의 펜은 타인과 사회를 향해 있다.
일상의 편린 속에 숨겨진 차별과 고통의 어두운 단면을 따스함과 감동으로 버무려 진정한 변화는 서로를 이해하고, 동등한 기회를 주는 것에 있다는 메시지를 전파하고 있다.

‘붕어빵의 꿈’이 스타라는 이미지를 활용함으로써 자칫 상업적이라는 비판을 받을 수 있지 않느냐는 질문에 고 작가는 당당히 “독자들에게 읽혀야 비로소 메시지가 전달될 수 있다. 당대에 소비되고, 사랑받는 글을 쓰는 것은 작가의 행복”이라고 말했다.
또한 “나는 스스로 장애인식개선 전도사라고 생각한다. 읽히는 글을 통해 변화를 시도해나갈 것이다. 죽는 날까지 글을 쓰고 싶다”고 덧붙였다.

펜으로 빛을 더하는 남자. 세상을 밝히는 남자. 그의 아름다운 펜이 멈추지 않고 세상 끝까지 굴러가기를 기원하며 길을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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