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돌아갈 수밖에 없나
그래도 돌아갈 수밖에 없나
  • 정혜문
  • 승인 2006.05.29 1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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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발생 후 로뎀동산에서 일시적으로 보호받고 있는 피해자들 ⓒ2006 welfarenews
▲ 사건발생 후 로뎀동산에서 일시적으로 보호받고 있는 피해자들 ⓒ2006 welfarenews
지난 23일 온 국민을 경악케 할 사건이 발생했다. S기도원의 정모 씨는 장애인을 감금하고 장애여성을 70여차례 성폭행한 혐의, 향정신성 약물을 장기간 복용케 해 장애인을 숨지게 한 혐의 등으로 구속됐다.

한 자원봉사자의 신고로 장애인 인권유린의 현장으로 지목된 이 기도원은 현재 경찰의 폐쇄조치로 운영이 중단됐고, 사건의 피해 장애인들은 김포 시내 시설에서 일시적으로 보호받고 있다.


◎피해자들의 숨김 없는 증언

지난 24일 여성 3명, 남성 1명 총 4명이 일시 보호받고 있는 로뎀동산을 찾아 피해자들을 만나봤다. A 씨, Y 씨, K 씨 등 여성 3명은 성폭행, 폭력 등의 피해로 정신적 충격을 경험해 상담 중에 있다.

▶기도원에서의 생활은 어떠했나

A(46ㆍ여ㆍ간질) 씨- 내가 하는 일은 주로 식사를 준비하는 일이었다. 푸드뱅크와 인근 학교에서 지원받은 음식을 준비해 나눠 먹었다. 하루 세 끼 준비하는 것 자체가 힘들고 짜증났지만 책임감으로 열심히 일했다. 치매노인들도 있어서 그들의 용변 처리 등도 도맡아했다.

Y(33ㆍ여ㆍ정신분열) 씨- 잠을 잘 때는 항상 약을 먹어야 했다. 정신병 약을 주로 먹었는데 몸에 맞지 않아 구토를 네 번이나 하기도 했다. 먹기 싫어도 먹어야 잠을 잘 수 있도록 했다.
K(26ㆍ정신지체) 씨- 약을 먹기 싫어서 반항하면 폭력을 행사했다. 또 정 씨의 말을 듣지 않는 장애인은 강제로 끌려가서 감금당했다. 맞고 약을 먹는다고 들었다.


▶정모 씨는 어떤 사람이었나. 그와 관련된 일들에 대해 서로 공유했었는지

A 씨- 정 씨는 좋은 사람이기도 하고 나쁜 사람이기도 했다. 성격은 호랑이 같았지만 A 씨, Y 씨, K 씨 우리 셋에게는 맛있는 것도 잘 사주고 했다. 내 몸을 만질 때는 기분이 나쁘기도 했지만 나를 사랑해준다는 느낌을 받아서 싫지 않을 때도 있었다.

Y 씨- 난 정 씨의 며느리다. 정 씨가 나를 건드릴 때 참았다. 효도한다는 생각으로 가만히 있을 때가 많았다. 하지만 시어머니를 볼 때는 죄책감이 들기도 했다. 다시 보고 싶지는 않지만 미워하지는 않는다.

K 씨- 우리 셋이 서로 정 씨에 대해 얘기한 적은 한 번도 없다. 그는 우리에게 신과 같은 존재였다. 항상 입조심을 시켰기 때문에 우리끼리도, 시설에 오는 다른 사람들에게도 아무것도 말하지 않았다. 성추행 등의 행위에 대해서도 서로 말을 해본 적이 없다.


▶약물 관리는 어떻게. 주변 사람들과의 접촉은 없었는가

A 씨- 정 씨가 장애인들을 데리고 나가 약을 타온 것으로 알고 있다. 동네 사람들과의 접촉은 많지 않았다. 가끔 나물 등을 뜯으러 나갈 때 사람들이 우리를 보는 시선이 따갑기도 했지만 별다른 관심들은 없었다.

Y 씨- 자원봉사자들은 가끔 왔다. 대학생도 오고, 주변에 군대가 있어서 군인들도 왔다 갔다. 하지만 이들에게 폭력 등 우리들의 이야기를 한 적은 없다.


▶다시 시설로 돌아가고 싶은가

A 씨- 지금 이곳이 예전 기도원보다 훨씬 좋다. 다시 돌아가고 싶지는 않다. 이곳을 나가게 되는 것은 무척 두려운 부분이다. 이 일을 겪으면서 마음에 기쁨과 소망이 사라졌다.
나가게 된다면 치매노인들을 돌본 경험이 있으니까 그 일을 할 수 있는 곳으로 가고 싶다. 또 내 일을 갖고 일하면서 살 수 있는 시설로 가고 싶다. 가족과는 연락이 없기 때문에 집으로 돌아갈 수는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

Y 씨- 돌아가고 싶지 않다. 나도 내 일을 갖고 싶다. 일할 수 있는 곳으로 가고 싶다.

K 씨- 마찬가지다. 돌아가고 싶지 않다.

◎종교와 사회복지의 틈새로 사라진 인권


정모 씨는 지난 1992년 신학대학을 나와 목사의 길로 들어섰다. 정 씨가 설립한 S 시설은 처음에는 기도원이 아닌 미신고시설로 분류됐다. 지난 2002년 미신고시설 양성화 정책에 따라 조건부신고를 권고 받았으나 정 씨는 이를 거부, 기도원으로 탈바꿈해 정부의 관리체계를 벗어났다. 현재 기도원은 종교시설로 분류돼 정부의 감사영역에서 벗어나 있다.

한 기도원 관계자는 “기도원은 비정부기구의 한 종류로 관리하는 부처가 따로 없는 것으로 안다. 정부의 관리, 감사와는 거리가 멀다”고 말했다.

보건복지부 사회정책기획팀의 한 관계자는 “종교시설이라고 주장할 경우 강제로 확인할 권한이 없다”고 말했다.

현재 기도원으로 등록한 후 시설을 운영할 경우 복지시설의 형태를 띠더라도 정부의 관리감독의 근거가 없어 인권유린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에 복지부는 지난 23일 ‘미신고대책 및 개인운영시설 대책 및 추진현황 계획’을 통해 미신고시설 대책을 올해로 마감하고 신고전환한 시설의 운영 안정화에 역점을 두겠다고 발표했다.

복지부는 특히 종교시설에 대해 “사회복지 전문가 및 각 종교계 종단에 종교활동시설과 사회복지시설의 구분기준에 대한 의견수렴 중”이라며 “마련된 기준에 따라 사회복지시설로 분류될 경우 신고해야 하며 하지 않을 경우 폐쇄 및 고발조치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한편 이번 사건의 경우 정 씨가 시설인을 동원, 강제로 향정신성 의약품을 투여해 사망하는 지경에 이르렀음에도 발각되지 않아 의약품 관리체계에 대한 문제점도 여실히 드러났다. 향정신성 의약품은 중추신경계에 작용하는 약물로써 오용 또는 남용할 경우 인체에 현저한 해가 될 위험소지가 있어 특별 관리가 요망되는 품목이다.

복지부의 한 관계자는 “현재 등록된 시설이라 할지라도 자체 내규에 따라 약물을 관리하고 있지만 따로 감사를 하는 부분은 없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김포시청의 관계자 역시 “시에서 의료부분까지 관리하지는 않는다. 특별히 감사 나가는 부분은 없는 것 같다”고 말했다.


◎장애계, 탈시설화ㆍ자립생활지원 외쳐

한편 이번 사건을 놓고 장애계 단체들의 분노가 극에 달해 논란이 일고 있다.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이하 전장연)는 지난 24일 철창 1인 시위 돌입 기자회견을 갖고 “이번 사태는 시설의 반인권성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것”이라며 “수용시설은 그 자체로서 반인권적”이라고 말했다.

또한 복지부의 희망한국21 프로젝트 장애인수용시설 확대 정책에 대해 “시설확대는 엄청난 예산을 투입해야 한다. 이는 시대를 역행하는 정책으로 전면 폐기돼야 한다”고 말했다.

한국DPI 등 4개 단체는 성명서를 통해 “탈시설화 정책으로 장애인 인권을 보장하라”며 “미신고시설에 집중 투입하는 복지부의 정책은 양성화가 아닌 시설 대형화를 부르는 것”이라고 밝혔다.

또한 전장연과 마찬가지로 “시설 그 자체가 비리와 인권의 온상”이라며 희망한국21 프로젝트를 철회하고 탈시설화 정책을 수립할 것을 요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