멋진 한 골을 기대하며 함께 머리 위로 축구공을 굴리는 시민들 ⓒ2006 welfarenews
▲ 멋진 한 골을 기대하며 함께 머리 위로 축구공을 굴리는 시민들 ⓒ2006 welfarenews

대~한민국! 오~필승 코리아! 지난 2002년 한ㆍ일 월드컵의 함성은 전국을 열광의 도가니에 빠뜨렸다.

빨간 티셔츠를 입고 쏟아져 나온 시민들로 온 거리가 붉게 물들고 리듬에 맞춰 울려대는 자동차 경적소리는 흥분되는 가슴을 더욱 들뜨게 만들었다. 승리, 승리, 또 승리. “아직도 배고프다”는 히딩크 감독의 말처럼 한국은 4강 신화를 일궈냈고, 거리응원전에 참여하는 시민들의 숫자는 하루가 다르게 늘어났다. 12번째 선수라는 별명이 붙을 정도로 월드컵응원은 하나의 문화코드로 자리매김했다.

하지만 거리에 넘쳐나는 시민들 속에 장애인들의 모습을 찾기는 어려웠다. 가장 쉽게, 가장 즐겁게 참여할 수 있는 축제 속에 장애인들은 주체로 설 수 있었을까? 

복지TV 우영권(39ㆍ지체3급) 기획팀장은 거리에 나오면 시민들 때문에 다칠까봐 두려워 지난 2002년 한 번도 거리에 나오지 못했다고 한다. 방배동의 한 카페에서 경기를 관람한 적은 있지만 거리응원의 뜨거운 열기를 직접 느껴보지 못했다는 우 팀장. 그와 함께 아직도 장애인에게는 너무 먼 월드컵이 아닌지 알아보기 위해 지난 23일 세네갈과의 1차 평가전을 위한 시청광장 거리응원전 현장을 습격했다.

 

게임 캐릭터와 함께 포즈를 취한 응원단의 모습 ⓒ2006 welfarenews
▲ 게임 캐릭터와 함께 포즈를 취한 응원단의 모습 ⓒ2006 welfarenews

▶곳곳에서 느껴지는 무관심

이날 광장에는 가는 길마다 시민들의 안전과 통제를 위한 펜스가 쳐져 있었다. 펜스 안쪽에 들어서자 경호원들이 다른 길로 나가야 한다며 막아섰다. 경호원들에게 질문을 건넸다.

“장애인을 위한 안전교육을 받은 적이 있느냐?”
“따로 진행하는 부분은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

하나같이 똑같은 대답을 늘어놓는다. 이에 대해 우 팀장은 “곳곳에 쳐져 있는 펜스가 아무런 방향표시도 없고 그 간격이 좁은 편이어서 목발을 짚고 다니기도 불편한데 휠체어를 타고 오면 더 힘들 것 같다”고 말했다.
또한 “장애인에 대한 기본지식 쯤은 알고 있어야 하는 것 아닌가”라며 “장애인에 대한 배려가 너무 부족한 것 같다”고 말했다.

광장 한쪽에는 중부소방서에서 파견된 안전사고대비응급센터와 미아보호소ㆍ의료센터가 마련돼 있었다. 소방서의 한 관계자는 “장애인에 대한 교육은 따로 없고 시민들의 안전사고, 화재 등에 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편 시청광장에 비치된 화장실은 총 네 곳. 이중 무대 옆 한 곳에만 장애인화장실이 비치돼있다. 화장실과 반대편 쪽에 있어도 다시 무대 앞쪽까지 돌아 나와야 하는 것. 이동이 불편한 지체장애인을 생각한다면 무관심한 처사라고 할 수 있다.

장애인화장실이 아닌 ‘장애우화장실’이라는 이름이 붙은 이 화장실에 들어서려고 하자 이동화장실 업체 소속 직원이 열쇠를 꺼내든다. 네 명의 직원이 돌아가면서 화장실 출입을 관리하고 있는 것. 이 직원은 “비장애인이 자주 이용해서 장애인이 올 때마다 문을 열어주도록 하고 있다”고 말했다. 시민들의 장애인에 대한 낮은 의식 수준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장애인에 대한 배려가 부족하지 않느냐는 지적에 이날 행사 대행을 맡은 TBWA KOREA의 한 관계자는 “불특정 다수인 시민을 위한 행사이므로 장애인에 대한 지원 부분에서 부족한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수십만ㆍ수백만이 몰리기 때문에 시민들도 어느 정도 위험에 노출돼있는 부분이 있다. 자발적인 노력들도 중요한 부분”이라고 말했다.
 

시청광장 분수대의 물줄기를 온몸으로 맞는 아이들의 천진난만함 ⓒ2006 welfarenews
▲ 시청광장 분수대의 물줄기를 온몸으로 맞는 아이들의 천진난만함 ⓒ2006 welfarenews

▶응원전, 그 열기의 겉과 속

시청광장에 들어서자 붉은 옷을 입은 시민들이 넘쳐난다. 스쳐가는 시민들 사이로 한눈에 들어오는 이가 있었으니 월드컵공식티셔츠에 청색 모자를 쓰고, 전동휠체어에 태극기를 꽂은 채희준(37ㆍ지체1급) 씨. 2002년 월드컵 응원전에 한 번도 빠지지 않았다는 그는 현재 붉은악마 회원으로 왕성하게 활동 중이다.

이날 비장애인 친구들과 함께 응원을 펼쳤던 채 씨는 “장애인 친구들과 함께 오고 싶어도 안전문제와 사람들의 시선 등을 이유로 꺼려하기 때문에 비장애인들과 참여하고 있다”며 아쉬움을 토로했다.

채 씨는 “거리응원전은 그 무엇과 비교할 수 없는 재미가 있다”며 “함께 즐길 수 있도록 각계의 관심과 배려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응원전이 시작되자 광장이 술렁거리기 시작한다. 구호에 맞춰 박수를 치고, 목청을 높이는 사람들. 점차 하나가 되어가는 모습이다.

채 씨의 옆에서 응원을 펼치던 손지연(21) 씨는 “장애인과 응원을 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지만 아무런 차이를 느낄 수 없다”며 “함께 즐기는 것이 중요한 것 아닌가”라고 말했다.

이날 SG워너비, 싸이, 장윤정 등 유명연예인의 공연이 흥을 돋웠다. 점점 더해가는 열기 속에서 월드컵이 낳은 스타 윤도현 씨가 무대에 오르자 광장은 떠나갈 듯 환호에 휩싸였다.

그때였다. 갑자기 윤 씨가 무대서 내려와 시민들이 앉은 광장 속으로 뛰어들었다. 사람들이 모두 일어나 모여들기 시작한다. 웅성대는 사람들 틈에서 채 씨와 우 팀장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자칫하면 다칠 수 있는 상황이었다.

채희준 씨의 휠체어를 잡고 몸을 지탱했던 우 팀장은 “시민들이 갑자기 모여들자 위험을 느꼈다”며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장애인을 배려하는 모습이 필요한 것 같다”고 말했다.
채 씨 역시 “응원전에서 사람들이 갑자기 일어나면 경기를 보기가 힘들고 몰려들 경우 안전에 위험이 있을 수도 있다”며 “시민의식 성숙이 필요한 부분”이라고 말했다.
 

시민들과 함께 대한민국을 외치는 채희준(좌) 씨와 우영권 씨 ⓒ2006 welfarenews
▲ 시민들과 함께 대한민국을 외치는 채희준(좌) 씨와 우영권 씨 ⓒ2006 welfarenews

한편 이날 경기는 후반 5분 안정환 선수의 골이 오프사이드 처리돼 아쉽게도 1:1 무승부로 마무리됐다.

채희준 씨는 “무승부로 끝난 점이 너무 아쉽지만 역시 즐거운 응원전이었다”며 “좀 더 많은 장애인들이 참가할 수 있도록 길이 열렸으면 한다”고 말했다.

우영권 팀장 역시 “처음 참가했지만 응원전이 재미있는 줄 몰랐다”며 “장애인들이 함께 어울릴 수 있도록 배려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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