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각장애 안마사 손모 씨 죽음 소식이 알려지자 지난 5일 마포대교 밑에서 추모행사를 진행했다.  ⓒ2006 welfarenews
▲ 시각장애 안마사 손모 씨 죽음 소식이 알려지자 지난 5일 마포대교 밑에서 추모행사를 진행했다. ⓒ2006 welfarenews

안마사자격에 관한 위헌판결이 난 지 열흘 째.

시흥동 A 아파트 화단에서 이 아파트에 살고 있던 시각장애인 손 모(41세)씨가 숨진 채 발견됐다.

손 씨 아파트 문이 열려져 있고, 거실에 텔레비전이 켜있던 것으로 미루어 보아 경찰은 손 씨 스스로 뛰어내린 것으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20년 전 불의의 사고로 실명한 뒤 재활을 못하고 방황하다 지난 2003년 겨우 마음을 잡고 2년간의 안마수련 과정을 밟기 시작한 손 씨.

지난해 2월 안마사 자격증을 당당히 취득했지만 지난 1년여 동안에 뚜렷한 직장 또한 얻지 못했다. 아르바이트와 교회봉사로 전전하던 그는 끝내 헌법재판소(이하 헌재)의 위헌판결에 살 소망을 잃고 세상을 등진 것이다.

불행한 삶을 살다 간 손 씨의 운명 소식이 알려지자 예상대로 세간에 큰 파문이 일고 있다.

손 씨의 투신자살 소식이 알려진 다음날인 지난 5일 한나라당 정화원의원(우), 대한안마사협회 라종천 전 회장(중), 손 씨의 안마수련 스승인 안마수련원의 양출석 씨(좌)가 기자회견을 가졌다. ⓒ2006 welfarenews
▲ 손 씨의 투신자살 소식이 알려진 다음날인 지난 5일 한나라당 정화원의원(우), 대한안마사협회 라종천 전 회장(중), 손 씨의 안마수련 스승인 안마수련원의 양출석 씨(좌)가 기자회견을 가졌다. ⓒ2006 welfarenews

대한안마사협회는 손 씨 죽음 직후 “시각장애인의 목숨을 담보로 한 한 가지 직업을 개방한 것에 대해 울분을 금치 못해 먼저 간 故 손 씨의 죽음을 통분히 여긴다”며 “이번 헌재 결정을 계기로 약자들의 처지와 심정이 공감되는 일대의 혁신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다음날 정화원 의원과 대한안마사협회(이하 안마사협회) 나종천 전 회장, 대한안마수련원 양출석 씨가 국회 기자회견을 통해 손 씨 죽음에 대해 유감을 표명했다.

손 씨를 2년 동안 지도해 왔던 양출석 씨는 “중도 실명한 손 씨가 오랜 방황 끝에 겨우 희망을 갖고 이제는 나보다 동료나 주변 사람들을 위해 살아야 겠다고 노력해왔으나 현실의 벽이 너무 컸다”며 “사회질서 유지를 위해 존재하는 법률이나 헌법이 어느 사람에게도 해가 되지 않도록 해야 하지 않겠느냐”고 밝혔다.

손 씨의 죽음과 관련해 장애계의 지지성명이 잇따르고 있는 가운데 열린우리당 장향숙 의원이 추모행사장을 방문, 애도의 뜻을 표명하고 있다. ⓒ2006 welfarenews
▲ 손 씨의 죽음과 관련해 장애계의 지지성명이 잇따르고 있는 가운데 열린우리당 장향숙 의원이 추모행사장을 방문, 애도의 뜻을 표명하고 있다. ⓒ2006 welfarenews

장애계 잇따른 성명 발표

이후 각 장애인단체와 관련자들도 잇따라 성명을 발표하며 죽음을 불러일으킨 헌재 판결에 이의를 제기했다.

열린우리당 장향숙 의원은 “시각장애인의 안마사유보고용제도는 이미 1900년대 초부터 생계보장과 배려 차원에서 시행돼 왔으며 복지제도가 상대적으로 발달한 오늘날에도 시각장애인들의 거의 유일한 생계대책으로 자리 잡아왔다”며 “이러한 보장책이 없어지면 상당수가 빈곤층으로 전락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한국장애인단체청연맹도 지난 7일 “호적법 논란에서 볼 수 있듯이 위헌인 경우라도 사회적 파장과 혼란이 너무 클 경우 입법자의 권한을 존중하기 위해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려 그 조항을 바꿀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일반적”이라며 “여러 가지 판결의 유연성이 있는데도 위헌이라는 극단적인 방법을 꼭 취했어야 했는가”라고 꼬집었다.

장애인차별금지법제정추진연대 역시 ‘시각장애인 생존권을 무시한 위헌판결에 대해 즉각 무효를 선언하라’는 성명서를 내고 “헌재가 이번 판결에 대해 책임있는 자세를 보여주지 않는다면 헌법재판관 퇴진과 헌재의 허구성을 알리기 위해 480만 장애인이 앞장서서 투쟁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에 앞서 한국장애인단체총연합회도 “모든 국민의 자유로운 직업선택의 자유를 제한한다며 내린 판결이 오히려 ‘시각장애인들의 직업선택의 기회를 박탈하고 있는 현실을 초래했다”고 전했으며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도 “이번 결정으로 시각장애인들은 보호 장치 없이 자유경쟁시장으로 내몰린 것”이라고 천명했다.

또한 손 씨의 죽음이 알려진 지난 5일과 7일 수업거부를 하며 헌재 판결에 대한 규탄집회를 진행한 서울 맹학교 학부모들도 대국민 호소문을 통해 위헌 결정으로 실의와 절망에 빠진 시각장애인들에게 관심과 용기를 불어넣어줄 것을 호소했다.

故 손모 씨의 추모제에서 슬픔을 감추지 못하고 있는 서울맹학교 학생과 학부모들 ⓒ2006 welfarenews
▲ 故 손모 씨의 추모제에서 슬픔을 감추지 못하고 있는 서울맹학교 학생과 학부모들 ⓒ2006 welfarenews

헌재 결정에 비장애계도 반대 성명

안마사 자격에 관한 헌재 위헌 판결에 대해 장애계 뿐 아니라 비장애계에서도 시각장애인들의 손을 들어주고 있다.

시흥동 손 씨의 죽음이 알려진 지난 5일 대한의사협회(이하 의사협회)는 “직업에 제한을 두어서는 안된다는 헌재 판결의 기본 논리에는 공감하지만 현행 의료법에 의해 의료행위가 엄격히 관리되고 있지만 일부 피부미용실과 스포츠마사지 등 불법 의료행위 및 퇴폐행위 조장까지 만연하고 있다”며 “이런 실정임에도 불구하고 극히 제한하고 있는 안마사 자격인정을 무제한으로 허용할 경우 일반인에 의한 불법 및 탈법 의료가 더욱 활개 칠 것이 불보듯 뻔하다”고 심한 우려를 표명했다.

중소기업경영자총연합회도 시각장애인들의 시위 지지 성명을 내고 “정부는 장애인들이 인간으로서의 존엄성과 생존권을 실질적으로 보장할 수 있도록 각종 제도를 정비하라”며 “국회는 이번 위헌판결의 결정적인 이유인 법률유보의원칙과 과징금지 원칙을 해결할 수 있는 입법을 조속히 마련하라”고 촉구했다.

한편 지난 5일 마포대교 밑 한강둔치에서는 500여명의 안마사협회 회원들이 모여 헌재 판결에 비관, 자살한 손 모씨를 위한 추모제를 진행했다.

집회 장소에 임시로 마련된 영정 앞에는 손 씨의 죽음을 애도하는 헌화 행렬이 끊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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