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김성곤 기자 ⓒ2006 welfarenews
▲ 사진/ 김성곤 기자 ⓒ2006 welfarenews

시인 김영랑은 왜 봄을 찬란한 슬픔으로 표현했을까.

꽃은 피고 진다. 계절은 돌고, 세월은 흐른다. 시간이 약이라는 말이 있듯이 슬픔이 지나면 기쁨이 올 것이라는 희망 때문에 우리는 하루하루를 버틸 수 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기다림은 때론 사람을 힘들고 지치게 한다. 인생의 파도 앞에 우리는 한없이 작아지고 움츠러든다. 과연 봄날은 올 것인가.

얼굴에 큰 점을 안고 태어난 김가연(25ㆍ신흥대학 2년) 씨. 선천성 거대모반증으로 얼굴 한 쪽을 늘 머리카락으로 가려야 했던 그녀의 젊은 날은 슬픔과 어둠으로 점철됐다. 내게 행복이란 존재하는 것일까. 항상 되물어야 했던 김 씨.

점을 가진 것이 죄는 아니다. 하지만 외모로 사람을 평가하는 한국사회에서 그녀의 점은 정상적인 것으로 받아들여지지 못했다. 늘 가려야만 했고, 사람들은 그것을 호기심 어린 눈으로 들춰보고 그녀의 가슴에 상처를 냈다.

“머리를 묶는 것이 가장 큰 소원이었다”는 김가연 씨. 남들에겐 아름다움의 상징인 긴 머리도 그녀에겐 점을 가리기 위한 하나의 수단이었다.
눈에 띄기 싫어서 대학 수업에도 늘 뒷자리에 앉았다. 이성친구의 관심조차 경계의 대상이 될 뿐이었다. 타인이 주는 시선과 관심 자체가 늘 부담스럽게 느껴졌다.

“성격이 점차 소극적으로 변해갔어요. 머리를 가리는데 신경을 쓰다 보니 자세도 나빠지는 것을 경험했죠. 당당해지려고 노력했지만 냉혹한 사회에서 자신감을 찾기란 쉽지 않았어요.”

어둠에서 만난 한줄기 빛

그녀를 가장 절망으로 몰아넣은 것은 취업. 방송에 관심이 있어 관련 학과를 전공했지만 김 씨의 능력만을 믿어주는 회사는 없었다.
연출을 하는데 얼굴의 점이 무슨 상관이랴 싶었지만 면접관들은 외모를 이유로 그를 거절했다.

좌절에 빠진 그녀에게 찾아온 한줄기 빛은 삼성 사회공헌사업의 일환인 ‘밝은 얼굴 찾아주기’. 김가연 씨는 용기를 내 문을 두드렸고 수술비를 지원받아 피부이식수술을 하기에 이르렀다.
수천만원을 호가하는 피부이식수술을 엄두도 내지 못했던 그녀였기에 밝은 얼굴 찾아주기 사업은 하나의 기회이기도 했다.

지난해 2월부터 지금까지 네 차례 수술을 받은 김가연 씨. 귓가에 점이 남아있기는 하지만 두 차례의 수술을 통해 완치가 가능하다고 한다. 실제 그녀의 볼은 점의 흔적을 전혀 발견할 수 없을 정도로 깨끗했다.

김 씨는 “수술 후 가장 놀란 것은 나 자신이었다. 놀랄 만큼 깨끗해진 피부에 정말 행복해졌다”며 “상처로 얼룩졌던 내 마음도 함께 회복되는 느낌을 받았다”고 전했다.

 

사진/ 김성곤 기자 ⓒ2006 welfarenews
▲ 사진/ 김성곤 기자 ⓒ2006 welfarenews

그녀, 다시 태어나다

수술 후 그녀는 달라졌다. 남들의 시선 하나, 관심 하나에도 늘 경계의 끈을 놓지 못하던 그녀가 먼저 타인에게 다가가기 시작했다. 뒷자리에 앉는 버릇도 버리고, 먼저 사람들에게 말을 걸기 시작했다. 김가연 씨의 변화를 가장 크게 느끼는 것은 바로 친구들.
그녀의 친구들은 적극적으로 변한 김 씨의 모습에 낯설어하기도 했지만 지금은 “자신감에 넘치는 너의 모습이 정말 보기 좋다. 무엇이든 해낼 수 있을 것만 같다”고 말한다.

김 씨는 “밝은 얼굴 찾아주기라는 사업 이름처럼 정말 내 자신이 밝아졌다”며 “스스로 자신감을 갖게 되니 세상에 다가서는 것이 두렵지 않게 됐다”고 밝혔다. 현재 그녀는 자신을 절망으로 몰아넣었던 방송을 포기하고 신흥대학 치기공과에서 전문 치기공사의 꿈을 불태우고 있다.

김가연 씨는 “좌절 끝에서 한 선택이라 후회되는 부분도 없지 않았지만 다른 이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다는 것에 보람을 느꼈다”며 “기술로 당당히 평가받는 멋진 치기공사가 되기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희망이 전파되는 그날까지

지난 4월 그녀는 ‘궁’으로 유명한 탤런트 윤은혜 씨와 함께 삼성 해피투게더 광고를 찍기도 했다.

자신의 장애를 온 천하에 드러내는 것이 두렵지 않았냐는 질문에 그녀는 당당하게 대답했다.

“물론 두려웠죠. 하지만 내가 먼저 용기를 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밝음을 찾기 위해서는 스스로 일어나야 했고, 기회를 잡아 다시 태어나게 됐어요. 보다 많은 사람들이 빛을 찾았으면 좋겠어요. 이런 좋은 기회는 알려야 한다고 생각해요.”

김가연 씨는 그녀의 용기를 도미노 게임에 비유했다. 스스로 세상 밖으로 나서면 자신을 통해 장애를 가진 다른 사람들도 변화될 수 있을 거라고 믿는다는 김 씨. 하나의 도미노로 인해 모든 도미노가 연쇄적으로 영향을 받는 것처럼 보다 많은 사람들이 세상 밖으로 나올 수 있도록 돕고 싶은 소망이 노출에 대한 두려움보다 훨씬 컸다.

김 씨는 “한 교도소의 수감자가 광고를 보고 편지를 썼다는 사연을 들었다”며 “많은 사람들이 나를 통해 희망을 얻었으면 한다”고 말했다.

한편 김가연 씨는 안면장애에 대한 사회적 관심을 호소하기도 했다. 김 씨는 “2003년부터 장애로 인정받기는 했지만 피부이식수술의 경우 보험이 적용되지 않아 형편 때문에 수술을 할 수 없는 사람이 정말 많다”며 “보험적용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슬픔 끝에서 환희를 맛본 그녀. 그 달콤함에 그치지 않고 타인에게 손을 내미는 그녀. 그녀는 그 자체로 희망이요 찬란한 빛이었다.
 

저작권자 © 웰페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