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나는 눈빛! 송병구(좌) 선수와 고우주 씨의 스타크래프트 경기 장면. ⓒ2006 welfarenews
▲ 빛나는 눈빛! 송병구(좌) 선수와 고우주 씨의 스타크래프트 경기 장면. ⓒ2006 welfarenews

★ 별들이 사는 ‘그곳’을 엿보다

서울의 한 아파트단지 앞에 위치한 숙소. 주차된 선수단의 차량이 보인다. ‘이 차에는 완전소중 삼성전자 칸 선수들이 타고 있어요’, ‘사랑해요’, ‘너무 멋있어요’ 등 차를 가득 메운 팬들의 애정공세에서 선수단의 뜨거운 인기가 전해진다.

아이보리 빛 건물. 아담하고도 편안해 보인다. 문을 열고 들어서니 칸 김가을 감독과 선수들이 우리를 반갑게 맞이했다. 현관 바로 옆에 위치한 두 개의 방에서 게임에 열중하는 또다른 선수들의 모습이 보인다. 스타크래프트 게이머 전용 연습실과 피파ㆍ워크래프트 게이머를 위한 연습실이다.
연습실을 바라보던 우주 씨는 “정말 부럽다. 나도 어린 나이에 이렇게 좋은 환경에서 시작했다면 꿈을 이룰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며 아쉬움을 나타냈다.

게임을 마치고 화이팅을 외치는 고우주(왼쪽) 씨와 송병구 선수 ⓒ2006 welfarenews
▲ 게임을 마치고 화이팅을 외치는 고우주(왼쪽) 씨와 송병구 선수 ⓒ2006 welfarenews

★ 고우주 vs 송병구, GG로 마무리!

하지만 우리의 우주 씨. 이대로 갈 수는 없다. 게임 한판 하자! 김가을 감독이 지켜보는 가운데 송병구(19) 선수와 스타크래프트 맞장을 떠보기로 했다.

9월 현재 전체랭킹 16위에 빛나는 송병구 선수는 지난 2004년 제7회 커리지매치(입상 시 아마추어에서 준프로게이머로 승격할 수 있는 대회)에서 두각을 나타내며 프로게이머 세계에 입문했다. 지난 3월 대한민국 e-sports 대상에서 신인상을 수상하기도 한 송 선수는 현재 최고의 컨디션을 자랑하고 있다.

우주 씨, 시작 전부터 떨리는 마음을 가눌 수 없다. 채팅으로 “1:1 게임은 6년 만이다. 잘 좀 부탁한다”는 메시지를 날리는 그의 얼굴에 긴장감이 감돈다.

드디어 경기 시작. 우주 씨는 저그를, 송병구 선수는 프로토스를 선택했다. 두 남자의 손놀림이 빨라지기 시작한다. 송 선수가 빠르게 질럿(프로토스의 기본전투유닛)을 만들어 우주 씨의 진영을 공격했다. 하지만 우주 씨, 역시 빠른 저글링(저그의 기본전투유닛)으로 이에 화답한다. 송병구 선수, 조금은 당황한 기색이 보인다. 하지만 역시 프로와 아마추어는 다른가? 송 선수는 질럿을 이끌고 자신의 진영으로 되돌아가 안정적인 플레이를 펼쳤다. 지속적으로 물량을 뽑아내던(업그레이드된 병력을 지속적으로 생산) 송 선수. 결국 터져 나오는 물량을 감당하지 못한 우주 씨의 GG(Give up Game. 게임포기) 선언을 끌어냈다.

게임을 끝낸 고우주 씨는 상기된 표정으로 “정말 행복했다”고 말했다. 자신이 너무나 갈망했던 프로게이머로 우뚝 선 송병구 선수와 게임 한판을 펼친 것만으로도 만족스러웠다고 말하는 우주 씨.

송병구 선수는 “우주 씨의 빠른 저글링에 처음에 당황했다”며 “반응속도가 무척 빠른 것 같다. 질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고 답했다.

우주 씨와 함께 경기한 소감에 대해 송 선수는 “장애인과 게임했다고 느껴지지 않는다. 다를 바가 없다”며 “게임이 큰 체력을 요하는 것도 아니고 장애인이라 해도 노력만 한다면 충분히 꿈을 이룰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송병구 선수는 장애인의 프로게이머세계 입문에 대해 “커리지매치를 통과해야 프로의 세계로 들어갈 수 있다는 점은 비장애인이나 장애인이나 공통된 점”이라며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기 위해서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 한번 마음먹었으면 목숨을 걸고 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프로게이머가 되면 좋은 점에 대해 송 선수는 “학교에 가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 가장 좋다”며 너털웃음을 지었다. 공부하기 싫은 것은 누구나 다 마찬가지인 모양이다. 송 선수는 “스타크래프트를 정말 좋아했지만 계속 하니까 지겹다는 생각도 든다. 다른 게임을 하면서 스트레스를 푼다”고 전했다.

송병구 선수의 이야기를 미소 띤 얼굴로 듣고 있는 우주 씨. 결국 두 사람의 한판은 GG(Good Game)로 마무리됐다.

김가을 감독과 고우주 씨, 포즈를 취하다 ⓒ2006 welfarenews
▲ 김가을 감독과 고우주 씨, 포즈를 취하다 ⓒ2006 welfarenews

★ 칸의 명장, 김가을을 만나다

2000년부터 여성 프로게이머로서 각종 대회의 우승을 휩쓸었던 김가을. 그녀는 2004년부터 칸을 이끌고 있다. 옵저버로 고우주 씨와 송병구 선수의 경기를 지켜보던 김 감독은 “우주 씨는 반응속도가 좋은 것 같다. 빠른 손놀림에서 기본기가 탄탄함을 느낄 수 있었다”고 말했다.

장애인의 프로게이머 진출에 대해 김가을 감독은 “게임은 다른 스포츠와 달리 신체장애가 심한 제약이 되지 않는다고 본다”며 “비장애인 선수들과 동등한 훈련을 거치면 프로게이머로 성장할 가능성이 충분히 있다”고 말했다.

실제 칸에서는 미니맵 보는 능력을 키우기 위해 소리를 듣지 않고 게임을 하는 훈련을 받기도 한다고. 청각장애인들에게는 희소식이 아닐 수 없다. 김 감독은 “청각장애인들이 비장애인보다 반응속도는 더 빠를 수도 있다”며 “좋은 훈련이 좋은 선수를 만든다고 본다. 선천적 장애는 노력 여하에 따라 극복될 수 있다”고 조언했다.

지체장애인의 경우 숙소에 묵을 때 편의시설이 필요하지 않겠느냐는 질문에 김가을 감독은 “당연하다. 정말 실력 있는 선수를 위해서는 아낌없는 투자를 해야 한다”며 “지체장애인이 합숙을 하게 된다면 편안한 숙소가 되도록 개조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명장 김가을 감독. 그녀가 말하는 프로게이머의 자질은 무엇일까? 김 감독은 “감독마다 보는 성향이 다르지만 나는 기본기를 먼저 본다”며 “기본기가 탄탄한 사람, 즉 손놀림과 반응속도가 빠르고, 물량을 뽑아내는 능력이 뛰어난 사람들은 조금의 훈련을 거치면 금방 발전할 수 있다”고 전했다.

게임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에 대해 김 감독은 “숙소에 와서 선수들의 생활을 보면 프로게이머에 대한 편견을 불식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 감독은 “대회가 밤에 열리기 때문에 늦게 자고 늦게 일어나는 특성은 있지만 규칙적으로 게임과 운동, 식사를 병행하고 있다. 단체생활이므로 불규칙한 생활은 있을 수 없다”고 말했다.

프로게이머의 세계에는 뚜렷한 빛과 어둠이 존재한다는 김가을 감독.
김 감독은 “프로게이머의 세계는 말 그대로 경쟁사회다. 실력에 따라 뜨고 지는 것이 확연하며, 돈이 오고가기 때문에 그만큼의 책임감도 따른다”며 “어린 나이에 사회경험을 하기 때문에 같은 나이의 청소년이 겪을 수 있는 즐거움을 못 누리는 것이 가장 큰 단점”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문화 콘텐츠의 하나인 게임을 통해 돈을 벌고,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통해 자아실현을 한다는 점에서 프로게이머에 분명한 메리트가 있다고 전하는 김 감독. 그녀는 “정말 신중하게 선택해야 한다”며 “한번 선택한 후에는 최선을 다해 노력해야 한다. 좋아하는 일을 위해 인생을 투자하는 것”이라고 조언했다.

남성들만의 전유물인 것처럼 느껴지는 게임. 남성들이 지배하는 세상 속에서 여성으로서 수많은 좌절을 겪었지만 이를 극복, 화려한 선수시절을 거쳐 감독의 자리에 오른 김가을 감독. 그녀를 통해 선수로서의 프로정신과 감독으로서의 리더십, 양자의 조화를 몸소 체험할 수 있었다.

★ 돌아가는 우주 씨, 발걸음은 가볍다

칸 방문을 마친 우주 씨, 광주행 버스를 기다리며 대화를 나눴다.

우주 씨는 “비록 나 자신은 꿈을 이루지 못했지만 갈망했던 꿈을 현실로 만들어가는 사람들을 만나면서 가슴이 벅차오름을 느꼈다”며 한순간 말을 잇지 못했다.
우주 씨는 “다른 장애인들에게도 이런 기회가 주어졌으면 좋겠다”며 “장애인이라고 해서 못한다는 법은 없지 않은가. 꿈을 발견할 기회를 나눴으면 한다”고 전했다.

프로게이머의 꿈은 접었지만 게임을 통해 컴퓨터 프로그래밍에 흥미를 느껴 IT교육을 받고 있다는 우주 씨.

우주 씨는 “게임도 좋지만 다른 분야에도 관심을 가져보고 정말 자신에게 맞는 직종을 선택했으면 한다”며 “무엇을 하든 포기하지 말고 끝까지 해냈으면 좋겠다”고 장애청소년들에게 인생선배로서의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버스에 오르며 환하게 웃는 우주 씨. 그의 미소만큼 장애청소년들의 꿈과 희망도 한껏 자라나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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