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대법원장의 말 한마디로 법조계 전체가 시끄러웠다. 수사서류를 집어 던지라고 했다고도 하고, 변호사들이 법원에 내는 서류는 대부분이 거짓된 것인 양 표현을 해서 관련기관 ․ 단체와 그 구성원들로부터 심한 반발을 사기도 했다. 대법원장의 진의가 어디에 있든, 사법부의 수장으로서 신중하지 못한 발언임에는 틀림없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대법원장의 이와 같은 발언이 법조계에 대한 신뢰를 실추시킴으로써, 그렇지 않아도 ‘유전무죄, 무전유죄’라는 말로 불신을 받고 있는 법조계에 대해 불신을 더욱 심화시킨 것은 매우 유감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 탈옥하여 인질극을 벌였던 지강원이 주장하여 더 유명해 진 ‘유전무죄, 무전유죄’는 과연 사실일까? 답은 ‘항상 그런 것은 아니지만 그럴 개연성은 상당히 높다’는 것이다. 그 직접적인 이유는 금전의 유무, 재력의 유무에 있는 것은 아니고, 변호인의 조력을 받을 수 있는지 여부에 있는 것이지만, 현실적으로 변호사를 선임하려면 비용이 들어가기 때문에 결국은 그 말이 그 말인 셈이다.

형사사건에 있어서 수사기관의 수사를 받고, 기소되어 재판을 받는 일련의 과정에서, 법률지식이 없거나 부족한 일반인들의 경우 자신에게 법률적으로 유리한 주장이나 증거를 제시한다는 것이 그렇게 용이한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어떤 말을 하고, 어떤 서류나 증인 기타 증거를 제시하면 자신의 무고함이 밝혀질 것인데도 불구하고, 무엇이 자신에게 유리한 주장이고 증거인지를 잘 몰라, 일단은 유죄의 심증을 갖고 있기 쉬운 수사기관의 유도심문에 잘못된 대답을 함으로써, 결국 억울하게 처벌을 받는 경우가 없지 않다.

심지어는 필자가 수행중인 어느 사건의 관련자는 자신이 아무런 죄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제대로 항변을 못해 유죄판결을 받았고, 나아가 항소제도를 통해 잘못된 재판을 시정할 수 있다는 사실마저 몰라 항소기간을 넘김으로써 그 유죄판결이 확정되어, 평생 억울함을 안고 살아가게 된 경우를 보았는데, 법률지식이 일반인에 비해 상대적으로 더 부족할 수 있는 장애우들의 경우에는 이런 일이 더 많이 발생할 수 있다고 생각된다.

실제로 장애인신문의 편집담당자로부터 어느 장애우가 돈을 빌려주고 나서 그 돈을 되돌려 받는 것은 고사하고, 그 채무자에게 폭행까지 당했는데도 경찰에 신고하면 그 사람이 보복할까 두려워 신고조차 못하고 있다는 딱한 이야기를 듣기도 했다.

그런가하면 필자가 서울남부지방법원에서 무료법률상담을 하는 과정에서, 어느 지체장애우가 전화상담을 하면서, 자신은 지체장애가 있어 이동을 하려면 장애우용 승용차를 운행하는 것이 필수적인데, 교통사고를 당해 차가 부서졌으나 가해자와 보험사가 미온적으로 대응하고 있어 하루하루 매우 힘든 나날을 보내고 있다는 하소연을 듣고는, 그 장애우의 처지에 대한 안타까움과 함께, 그와 같은 장애가 없이 마음대로 이동할 수 있는 내 자신의 현재 상황에 대해 감사하기도 했다.

그런데 우리 사회가 조금씩 선진화되면서 과거보다는 많은 분야에 법률서비스가 확대되고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우선 형사사건의 경우에는, 헌법에도 ‘누구든지 체포 또는 구속을 당한 때에는 즉시 변호인의 조력을 받을 권리를 가진다.

다만 형사피고인이 스스로 변호인을 구할 수 없을 때에는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국가가 변호인을 붙인다’(제11조 제4항)고 규정되어 있거니와, 국선변호제도가 확충되어 국선전담변호사제도가 운영되고 있고, 전담은 아니라도 피의자나 피고인 이 신청하면 법원이 변호사 중에서 국선변호인을 선정해 줌으로써, 영장실질심사단계에서부터 법률적으로 조력을 받을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민사사건의 경우에도 법률구조공단 각 지부에서 무료나 적은 비용만을 받고 민사소송을 대리해 주기 때문에 본인이 원하면 법률 전문가의 조력을 받을 수 있는 여지는 많다. 이와 함께 각 지방법원별로 설치된 민원상담실에서 변호사와 법무사 등이 무료 법률상담을 하고 있으니, 장애우들도 자신들이 억울한 일을 당했을 때 ‘유전무죄, 무전유죄’라는 말로 자포자기하지 말고, 이들 제도를 활용하여 법률전문가의 도움을 받아 적극적으로 대처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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