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우와 두루미가 한 마을에 살고 있었다.
어느 날 여우가 두루미에게 저녁 식사 초청을 했다. 잔뜩 기대를 하고 갔던 두루미는 실망을 금치 못했다. 자신의 긴 부리로는 먹을 수 없는 편편하고 큰 접시에 담긴 수프가 나왔기 때문이다.

“두루미님 맛있게 드세요.”

여우는 그렇게 말하고 수프를 맛있게 핥아 먹었다. 며칠 후 이번에는 두루미가 여우를 만찬에 초대했다. 음식은 주둥이가 길죽한 물병에 들어있었다. 여우는 주둥이를 내밀어 음식을 먹으려 했지만 무엇 하나 제대로 먹을 수 없었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 고도로 전체화 된 사회에서 인간은 타인과의 관계를 형성하며 살아가야 한다. 이 관계 형성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타인의 입장에서 생각하는 마음가짐이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이런 인간 관계를 제대로 다루지 못해 갈등을 일으킨다. 바로 여우와 두루미가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존재는 사유를 규정한다는 만하임의 말처럼 인간은 자신의 존재 한도 내에서 사고할 수밖에 없는 기본적 한계를 지닌다. 장애인과 비장애인과의 보이지 않는 갈등도 여기에서 시작된다. 여우와 두루미의 이야기에서 최초의 갈등은 여우의 무지에서 비롯된다. 여우의 무지에 상처받은 두루미의 통렬한 복수극. 이들은 정상적인 사회 관계를 유지하며 살아갈 수 있을까?

비장애인도 마찬가지로 장애인의 입장에서 사고할 수 있는 여건이 많지 않다. 비장애인의 무지에 상처받은 장애인들은 그들에 대한 반감을 드러낸다. 비장애인의 태도 변화만큼 중요한 것은 장애인들의 관용이라 할 수 있다. 장애인을 많이 접하지 못해 겪는 비장애인들의 당황스런 태도에 대해 상처를 관용으로 승화시킬 줄 아는 자세 말이다.

장애인들이 벌이는 투쟁은 분명 의미 있는 일이다. 하지만 그런 투쟁만으로는 진정한 사회 통합의 구성원으로 거듭나는 데는 한계가 있다. 장차법 서명식이 개최된 청와대에서 항의 시위를 했던 두 장애인 운동가의 행동에도 관용의 부족함이라는 아쉬움이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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