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 동안 중노동에 시달리고도 돈 한 푼 받지 못한 30대 지적장애인의 사정이 지난 5월 세상에 공개돼 사람들로 하여금 경악을 금치 못하게 했다. 김모씨(정신지체 2급)는 하루 종일 수만 평에 이르는 논밭과 축사를 관리하고 농사일까지 도맡아했다. 그러나 김씨는 숙식만 제공받을 뿐 돈이란 것은 받아본 적이 없다. 숙소는 축사 옆 헛간이었고, 몸을 씻는 곳은 축사 밑 개울이었다. 개울은 청태가 잔뜩 끼어 농업용수로만 사용되는 물이다.

방송을 통해 공개된 김씨의 모습은 34살(당시 추정 나이)이라는 나이가 믿기지 않을 정도로 심각했다. 허리가 많이 굽었고 치아는 거의 다 빠져버렸으며 피부에는 병으로 보이는 얼룩이 번져있었다. 김씨는 참다못한 주민들과 봉사활동을 나온 대학생들의 신고로 다행히 복지시설에 옮겨질 수 있었다. 그러나 후견인을 자처했던 김모씨는 “그동안 오줌수발을 다 해주고 고생하며 키웠는데 억울하다”며 잘못을 인정하지 않았다.

이 일화로 ‘현대판 노예’로 불리며 기본적 대우조차 받지 못하는 장애인들의 실상이 드러났고 장애인에 대한 인권침해와 무관심이 매우 심각함을 알리는 계기가 됐다.

지적장애 악용한 인권침해, 끊이지 않아

그러나 이와 같은 사건은 최근에 또 일어났다.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이하 연구소)는 지난달 23일 대전의 김모씨가 지적장애인 이모씨의 임금을 갈취한 것 등과 관련해 준사기, 사기, 사문서위조, 위조사문서행사, 위계에 의한 공무집행방해로 대전지방검찰청에 고발장을 제출했다.

이모씨(정신지체 3급)는 1961년 경(추정나이 13세), 과수원을 운영하는 김모씨(87)에게 유괴돼 어린 나이에 밥만 얻어먹고 과수원지기로 일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시작한 이씨에 대한 김씨의 임금갈취는 40여 년간 지속됐다. 그동안 이씨가 일한 임금액을 합쳐보면 7억3천여만 원이나 된다. 그리고 김씨는 2002년에 이씨 명의로 기초생활수급권자를 만들어 동에서 나오는 생계비와 장애인 수당 등 1,170여만 원까지 갈취했다.

이씨는 비닐하우스에서 먹고 자면서 900평 과수원의 풀을 혼자 뽑아 밭을 갈고, 고구마를 캐고 고추농사를 짓는 등 머슴살이를 했다. 씻는 물은 물론 먹는 물도 더러워 사람답게 살 수 없는 환경이었다. 그러나 앞선 일화와 마찬가지로 김씨 역시 “나라와 부모가 버린 아이를 먹이고 입히면서 보살펴줬다. 정부에서 나온 수당보다 쌀․가스․부식비 등으로 들어간 돈이 더 많다”며 잘못을 인정하지 않았다.

이씨는 연구소에 의해 전북 전주의 장애인 ‘그룹홈’으로 보내졌으나 방에 들어가지 않고 “농장에 가야 해요. 혼나요”라고 말해 관계자들을 안타깝게 했다.

사실 이와 같은 장애인에 대한 노동력․임금 갈취는 최근의 일만이 아니다. 이러한 사건들은 그동안 방송과 신문 등에서 끊임없이 보도됐다. 특히 지적장애를 악용한 학대나 임금착취, 생계비 및 장애수당 횡령 등의 사건은 일상적으로 일어나고 있다. 지적장애인의 판단능력과 인지능력 부족으로 제보자가 없으면 사건이 쉽게 드러날 수 없기 때문이다.

지난 4월에는 권모씨(25, 정신지체 2급)를 포함한 장애인 400여 명이 선원 인신매매를 전문으로 하는 조직폭력단에 의해 섬이나 양식장, 그리고 일명 ‘노예선’이라 불리는 새우잡이 어선에 팔려 중노동을 한 사건이 있었다. 권씨는 임금을 전혀 받지 못했고 오히려 1,300만원의 빚만 떠안고 영문도 모른 채 이곳저곳으로 끌려 다니는 생활을 하다 천신만고 끝에 탈출했다.

지난해 8월에도 지적장애인을 데려가 십여 년 동안 노동력을 착취하고 생계수당까지 가로채 온 마을 이장이 검거됐다. 전북 정읍시 산내면의 마을 이장인 이모씨(54)는 지난 1988년 지적장애인인 전모씨(55, 정신지체 3급)를 데려와 18년 동안 임금을 주지 않고 고추농사와 가축사육 등을 시켜왔다. 그리고 전씨의 호적을 새로 만들어 생계수당과 장애연금 등 각종 수당 2,100여만 원을 가로채왔다. 그러나 이씨는 전씨의 생계수당 등을 가로챈 점만 시인할 뿐 노동력 착취와 폭행 부분은 부인했다.

앞서 지난해 7월에는 연구소가 지적장애인 장모(56)․박모(45)씨 부부를 고용해 18년간 일을 시키고도 4억1,700여만 원의 임금을 지급하지 않고 각종 수당을 가로챈 혐의로 경북 상주의 양계장 주인 박모(65)씨를 고발한 사건이 있었다.

장씨 부부는 휴일도 없이 하루 15시간을 닭똥을 치우는 등 생지옥 속에서 중노동에 내몰렸다. 욕설과 구타는 물론 심한 악취와 벌레가 들끓고 비가 새는 환경 속에서 생활해 온 것으로 확인 됐다.

인면수심으로 일관하는 가해자들

장애인의 ‘노예노동’ 사건은 계속해서 발생하고 있고, 세상에 알려질 때마다 사람들의 분노와 관심을 사지만 제도적 예방장치는 아직도 미비한 상태다. 그리고 근본적인 원인을 분석해 그 대책을 모색하기 보다는 개별화된 사건으로만 보도되고 있다.

위 사건들의 피해자들은 대부분 판단능력과 인지능력이 부족한 지적장애인이다. 때문에 몇 십 년 동안 노예처럼 일하면서도 참고 살아온 것으로 드러났다. 특별히 갈 곳이 없다는 것도 약점이다. 즉 이러한 문제는 가족의 지원을 받을 수 없는 지적장애인에게 발생할 수 있는 사회구조적 문제에서 기인한 것이다. 또한 가해자들은 자신이 저지른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오히려 먹여주고 재워주고 보살펴줬다며 억울하다는 식으로 ‘적반하장’의 태도를 보인다. 연구소 관계자는 “대부분의 가해자는 그것이 죄인 줄 인지하지 못하는 것이 큰 문제”라고 했다.

더 큰 문제는 이러한 일들이 쉽게 알려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웃주민들도 가해자의 눈치를 보느라 신고하기를 꺼려하거나 남의 일로 여기고 관심을 두지 않기 때문이다.

지적장애를 악용해 이익을 얻으려는 사람들과 주변에서 그러한 일들을 보면서도 ‘심각한 인권침해’임을 인식하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장애인에 대한 인식의 전환을 요구하는 것만으로 근본적인 대책을 마련하기 어렵다. 따라서 정부가 나서서 지적장애가 있는 사람들의 인권침해 실태를 파악해 지역사회에서 생활하고 있는 모든 지적장애인에 대한 실질적인 지원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법정에서조차 장애인이라고 무시해

그런데 이들은 법적인 보호마저 받지 못하고 있다. 연구소와 같은 단체나 기관이 사건을 고발하더라도 법정에서조차 장애인들은 인권침해를 당하는 것이다.

지난해 7월 장씨 부부 사건과 관련한 1심 2차 공판이 상주 지방법원에서 열렸다. 당시 공판장에는 가해자인 피고 박씨가 착석한 가운데 장씨 부부와 아들, 연구소 활동가가 증인으로 참석했다. 공판은 순조롭지 않았다. 공판장은 장씨에게 낯설고 위압적인 곳이었다. 이혜영 연구소 간사는 “법정에 들어서자마자 장씨가 당황해하는 것 같았다”고 당시 상황을 회고했다.

위축된 상황에서 장씨는 검사와 변호사의 질문이 쏟아지자 어쩔 줄을 몰라 했다. 양계장 주인 박씨 측 변호사가 “양계장 사장이 보살펴주고 밥 먹여주기로 하고 일을 한 거죠?”라고 묻자 장씨는 “예”, “아니오”를 반복하며 쩔쩔 맸다. 장씨 부부의 장애특성상 같은 질문이라도 어감이나 질문자의 태도에 따라 다르게 대답할 수도 있어서 세심하게 질문을 해야 한다. 하지만 판사는 장씨를 다그치며 같은 질문을 반복했다. 결국 장씨는 판사의 고함에 겁을 먹고 “모르겠어요”라는 말만 반복했다. 판사는 급기야 짜증을 내며 방청석에 있는 활동가들에게 “이 사람들 원래 이래요? 누구 좀 말해주지”라며 조언을 강요하기도 했다.

당시 공판장에 같이 있던 장씨의 아들 선갑씨(24)은 “판사가 ‘정신지체 3급 장애인의 지능지수가 얼마나 되나? 이런 사람들의 말을 어떻게 인정하나?’라고 말할 때 부모님을 무시하는 것 같아 많이 속상했다”고 말했다.

공판을 담당했던 신모 판사는 “장씨가 질문에 대해 ‘예’와 ‘아니오’라는 말만 기계적으로 대답했고, 이렇게 답변이 오락가락하면 증거로 받아들여지지 않게 때문에 걱정됐다”며 “그래서 답답한 마음에 본의 아니게 목소리가 커진 것 같다”고 해명했다.

이와 관련해 연구소측은 “장애인을 위한 법률 시스템이 없고, 장애인에 대한 사법 당국의 인권의식이 부족하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물론 판사라고 해서 장애특성을 완벽하게 이해하고 이에 맞는 질문을 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재판의 결과를 좌우하는 증언에 있어 최대한 사실을 명확하게 밝혀내기 위해서 판사는 최소한의 노력을 기울였어야 했다. 법정 내에서 장애와 관련한 자문과 법조인들에게 장애인 인권 교육이 왜 필요한지 깨닫게 하는 일화다.

장씨는 현재 아무 일도 하지 못한다. 18년간의 노예 생활로 건강을 잃었기 때문이다. 장씨는 “일하느라 힘들었어요. 그런데 주인은 욕만 해요. 망치로 맞기도 했어요. 등을 때렸어요”라고 말했다. 그러나 장씨는 경찰 조사나 공판장에서 이 얘기를 한 번도 한 적이 없다. “너무 무서워서 ‘몰라요’라고 했어요.”

심리적으로 위축되기 쉬운 지적장애인들에게 비장애인과 동일한 조건에서 조사나 재판을 받으라는 것은 그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폭력적이다. 법조인이 장애인을 이해하지 못한다면 장애인의 인권을 보호해야 하는 사법기관이 오히려 장애인의 인권을 침해하는 이 같은 일은 언제든지 다시 발생할 수 있다.

신속히 해결책 마련돼야

지적장애인이 노예 같은 생활을 하고 법정에서조차 보호받지 못한 채 인권을 침해당하는 일은 근절될 수 없는 것일까.

하루 빨리 정부차원의 실질적인 지원과 법적인 제도가 마련돼야 한다. 또한 장애인에 대한 주위의 지속적인 관심도 필요하다.

한편, 정신지체인애호협회는 기존 장애인복지법이 지적 장애나 발달장애를 갖고 있는 장애인의 특성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고 인식, ‘정신지체인특별법’ 법안을 준비하고 있다. 엄형구 변호사는 “미국의 ‘발달장애인법’과 일본의 ‘지적장애인법’ 등의 사례를 연구해 선진국처럼 이들에게 맞는 권리나 복지 내용이 담긴 특별법안이 마련돼야 한다”고 말했다. 또 발달장애, 지적장애가 있는 사람들의 인권침해 방지를 위해 후견인을 제도화 하는 것이 주요 골자인 ‘성년후견인법’은 국회에서 처리를 기다리고 있는 상황이다.

더 이상 인권이 침해당하는 일 없이 장애인들이 국민으로서 올바른 권리를 누릴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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