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방송권 쟁취를 위한 시위 현장 ⓒ2007 welfarenews
▲ 장애인방송권 쟁취를 위한 시위 현장 ⓒ2007 welfarenews
장애인방송권 쟁취를 위한 장애계의 끊임없는 투쟁 끝에 방송위원회(이하 방송위)와의 면담이 지난 12일 이뤄졌다. 시위 3일 째에 이룬 성과며 개개인의 비공식적인 면담이 아닌 공식적인 면담이라 그 의미도 남달랐다.

한국장애인단체총연맹(이하 장총)을 비롯한 ‘장애인방송권 쟁취를 위한 투쟁 연대(이하 방투연)는 지난 10일 성명서를 내고, 방송위원회 앞에서 시위를 시작했다. 방투연 관계자는 “방송위가 고시한 새로운 편성은 장애인 시청자를 차별하는 정책”이라며 “지난 8월 17일부터 방송위원장과의 면담을 지속적으로 요구했으나 반응이 없어 방투연을 조직하고 시위를 시작하게 된 것”이라고 배경을 밝혔다.

방송위는 지난달 14일 유료방송채널의 공익성 방송 분야와 관련, 기존에 별도로 지정받았던 ‘장애인 시청지원 분야(수화자막화면 해설)’를 ‘시청자 참여 분야’와 합쳐 ‘시청자 참여 사회적 소수이익 대변’이라는 분야로 새롭게 편성하는 내용의 ‘공익성 방송 분야 고시’를 의결한 바 있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수화․자막․화면 해설 등을 지원하는 장애인 분야가 삭제됐다는 점이다. 장애인에게 방송권은 생존권과 연결된다. 장애인을 위해 수화나 자막 등으로 방송을 하는 것은 다른 방송에서처럼 볼거리를 제공하는 것이 아니다. 휠체어나 점자와 같이 필수적인 보장구로 이해해야 한다. 예를 들어 청각장애인의 경우 방송에 수화나 자막 해설이 빠지면 정보를 쉽게 얻지 못해 생활에 어려움이 생긴다.

그러나 방송위는 장애인 분야를 군인, 근로자, 교육, 환경 등 다른 분야와 묶어 형평성의 개념으로 인식하고 있어 문제다.

또한 방송위는 장애인 전문 FM라디오를 신설해 달라는 장애계의 끊임없는 간청을 무시하고 두 번째 보도전문 FM라디오를 신설하고 있다.

장애계는 지난 7월 방송위의 보도전문방송편성 사업자 선정을 위한 공청회를 막고 장애인전문 FM라디오 방송의 추진을 역설하며 투쟁한 바 있다. 이와 관련 지난달 9일 회의를 가졌고 이 자리에서 방송위는 장애인 전문 FM라디오 방송의 추진을 위해 노력하겠다는 약속을 했다. 그러나 이는 장애계의 목소리를 반영하는 듯 시늉만 보인 생색내기에 불과했고 그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다.

서울시지체장애인협회 김옥순 사무처장은 “우리나라는 OECD의 회원국 중 장애인을 위한 시청지원이 가장 낮은 나라다. 그런데도 다른 분야와 마찬가지로 경쟁을 해서 장애인 분야 방송채널을 얻어내라는 방송위의 입장은 공익적인 성격의 채널을 살리고자 작년부터 추진해온 공익채널제도를 스스로 위반하는 것”이라며 “별도의 장애인 분야는 공익채널의 의미상 당연히 신설돼야 하고, 이것은 방송권으로부터 소외된 장애인의 권리를 보장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시위에 참가한 한 장애인 ⓒ2007 welfarenews
▲ 시위에 참가한 한 장애인 ⓒ2007 welfarenews
장총의 통계자료에 따르면 장애인은 비장애인에 비해 인터넷 이용률에서는 30% 포인트, 신문 구독률에서는 45% 포인트 차이의 낮은 정보이용률을 보이고 있다. 또한 전체 언론수용자의 41.1%가 TV를 통해 정보를 취득하고 있는데 해설 방송 편성은 이중 5% 이내에 불과해 시각장애인의 정확한 정보 취득이 불가능한 상황이다.(통계자료출처. 장총)

이는 장애인이 방송 접근권 측면에서 얼마나 소외됐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장애인의 특성상 다리품을 팔아 정보를 얻는 것은 힘들다. 따라서 원활한 사회생활을 위해 TV나 라디오를 통해 정보를 취득해야 하지만 장애인들은 철저하게 소외당하고 있는 것이다. 장애인의 방송권 확대가 반드시 필요한 이유다.

곰두리 자원봉사연합 권순명 부총재는 방송위와의 면담 후 인터뷰에서 “장애인들에게 별도의 채널을 반드시 지원해야 하는 이유 등을 확실히 전달했고 신중히 검토한 뒤 시정하고 개선하겠다는 약속을 방송위로부터 받아냈다”고 말했다. 덧붙여 “약속이 지켜지지 않을 경우 전국 480만 이상의 장애인들과 연대해 정부를 상대로 끝까지 투쟁할 것”이라고 의지를 밝혔다.

이어 방투연은 또다시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방송위의 위원 10%를 장애인으로 선임’, ‘방송위에 장애인 방송정책 전담 부서 설치’등을 추가적으로 요구했다.

장애인차별금지법이 제정된 지금, 방송위는 흐름에 역행하는 정책을 전면 재검토하고 장애인계의 목소리를 귀담아 들어야 할 것이다.

대표연설을 하고 있는 지장협 박덕경 회장 ⓒ2007 welfarenews
▲ 대표연설을 하고 있는 지장협 박덕경 회장 ⓒ2007 welfarenews
방송위의 독단 ‘점입가경’

한편 방송위는 지난 4일 부산시청자미디어센터장 선정과정에서 시청자미디어센터운영위원회(이하 운영회)의 의견을 무시하고 센터장을 결정했다.

시청자미디어센터는 독립적, 자율적 운영을 위해 운영위원회를 두고 있다. 곧 시청자미디어센터는 방송위의 소유가 아닌 시청자주권을 지역 주민에게 돌려주자는 취지에서 만들어진 독립기관이다.

그러나 방송위는 운영위원회가 규정에 따라 정당하게 추천한 후보를 배제하고 전직 방송사 인사들을 센터장으로 선정했다. 운영위가 추천한 후보는 지역 시청자주권을 대신해 현장에서 발로 뛰었던 미디어운동가들이었다. 시청자미디어센터의 설립 취지에 맞도록 지역의 민의를 반영할 미디어운동가로 센터장을 선정해야 했으나 방송위는 이를 무시한 것이다.

장총은 성명서를 통해 “시청자미디어센터는 지역주민을 대상으로 하는 미디어 교육, 지역주민이 주체가 되어 진행하는 방송 프로그램 제작 등 퍼블릭 엑세스를 중심으로 운영되기 때문에 미디어 소외 계층인 장애인도 창조적 시청자로 퍼블릭 엑세스의 주체가 될 수 있었다”고 말했다. 덧붙여 “그러나 퍼블릭 엑세스와 거리가 먼 거대 방송사 인사가 센터장이 됐다. 이는 방송위가 시청자미디어센터의 운영 목적을 망각한 것이다”라고 지적했다.

방송위는 모든 것을 원점에서 다시 시작해야 한다. 공익 채널 편성에 있어 장애인 방송권 보장 문제부터 시청자미디어센터장 선정에 이르기까지 방송위의 독단을 지지해 줄 명분이 없다. 잘못한 것이 있다면 더 늦기 전에 공식 사과를 하고 바로 잡아야 한다. 그래야 이후 다른 정책결정 과정에서 실수를 방지할 수 있는 것이고 공공기관으로서 올바른 운영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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