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 welfare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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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장애인한국대회 참가자들이 가장 먼저 터뜨린 불만은 장애인 편의시설이었다.

편의시설에 대한 문제는 이미 대회 준비과정에서부터 드러났다. 조직위원회 관계자는 “장애인 편의시설이 너무나 미비해 예산의 상당액을 ‘이동권’ 확보에 사용해야 했다”고 말했다. 이에 조직위원회는 대회장소까지 걸어오기 힘든 장애인을 위해 기차역과 지하철역 곳곳에 저상버스를 대기시켰으나 역부족이었다. 표지판이 없어 어떤 버스를 타야할지 몰라 참가자들이 헤매는 모습이 연출됐고 저상버스를 타고 숙소로 가려했던 국내 참가자는 운전기사로부터 ‘호텔 이외에는 승하차 금지, 이 차는 호텔까지 가는 외국인 전용’이라는 말로 탑승을 저지당하기까지 했다. 이에 한 운전기사는 “미숙했던 것은 인정한다. 하지만 익숙해지기에는 교육기간이 너무 짧았다”며 “주최 측에서 차량마다 가이드 지원을 약속했는데 지키지 않았다. 또 운전기사 대부분이 이 지역을 잘 몰라 경찰이 선도해주기로 했는데 그것도 지켜지지 않았다”며 억울해 했다.

관계자는 “특급호텔조차 장애인용 목욕시설을 갖추지 않는 등 장애인이 편하게 머물 수 있는 숙소가 우리나라에 단 한군데도 없는 실정”이라며 “정부는 장애인 편의시설 구축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말했다.

점자블록은커녕 전철역 리프트도 부실,
장애인전용 화장실은 남녀공용

대회가 열리는 킨텍스 주변의 장애인 편의시설도 미흡하기는 마찬가지였다. 킨텍스까지 가기 위해 지하철을 이용할 경우 서울 지하철 3호선 대화역이나 장발산역에 내려야 한다. 문제는 여기서부터 시작이다. 스크린도어가 없어 시각장애인이 위험에 처할 가능성이 많았다. 또 비장애인용 화장실은 남녀가 이 구분돼 있지만 장애인전용 화장실은 남녀가 함께 이용해야 한다.

지하철역 밖으로 나가는 것도 문제다. 대화역에는 엘리베이터가 없어 리프트로 100m 이상을 올라가야 한다. 리프트를 이용하는 것은 시간도 오래 걸리고 사고 가능성도 높다. 겨우 역 밖으로 나와도 첩첩산중. 역에서 킨텍스 까지 거리는 500m 정도지만, 곳곳에 턱이 많아 휠체어를 탄 장애인이 가기에는 위험하고, 시각장애인을 안내하는 점자블록은 아예 없었다. 킨텍스 건물 안도 점자블록이 없기는 마찬가지였다. 심지어 점자안내자료조차 없었다. 시각장애인이 도우미 없이 다양한 프로그램을 경험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상황이었다.

쉴 수 있는 의무실에는 침대가 턱없이 부족했고, 휴게소도 마련돼 있지 않아 참가자들이 로비에서 서성거리거나 프레스 룸 뒤편에 자리를 깔고 눕는 진풍경을 연출하기도 했다.

또한 야외에 설치한 간의화장실은 세면대와 변기가 너무 낮게 설치됐고 손잡이 간격이 멀었으며, 입구로 올라가는 경사로의 경사가 심해 장애인들이 이용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

장애우권익연구소 임수철 정책팀장은 “지하철과 보도블록 등 장애인 편의시설을 바꿔 나가는 데 시간이 걸리는 것은 맞지만 지방자치단체와 정부가 의지를 보여줘야 한다”며 “대규모 행사 유치에만 만족하지 말고 내실을 키워야 할 때”라고 말했다.

30억 예산을 들였다는데...

시설 외에도 많은 문제점이 노출됐다.

자원봉사자들에게 대회와 관련된 교육이 제대로 안 된 모양이다. 같은 질문에 대해 자원봉사자들이 다르게 대답하는 일이 빈번해 참석자들이 혼란을 겪기도 했다. 2천 7백여 명 정도 되는 참가자에 3~40여 명의 자원봉사자. 참가자에 비해 턱없이 부족한 자원봉사자의 수도 문제였지만 더 심각한 것은 자원봉사자들 개개인의 의식과 사전교육이 부족했다는 점이다. 2층 식당에 올라가기 위해 휠체어를 밀어달라고 부탁하는 외국인 참가자를 자원봉사자는 자신의 담당이 아니라며 외면하기도 했다.

지정 통역원이 없었다는 것도 문제였다. 해외에서 온 VIP 인사와 인터뷰를 하려 해도 통역을 구하지 못해 제 시간에 인터뷰를 하지 못하는 일이 자주 일어났다. VIP 인사가 이 정도니 일반 참가자들이 외국 장애인들과 대화 하는 것은 더욱 힘들었다. 게다가 ‘장애인’을 ‘장애자’로 통역하는 실수를 계속 반복할 정도로 기본적인 장애관련 용어에 대한 준비조차 충분치 않았다. 세계의 장애인들이 한데 모여 교류를 쌓을 수 있는 자리인 세계장애인대회. 그 명칭이 무색할 뿐이었다.

참가자들을 위한 식사준비는 어땠을까. 주최 측은 모든 참가자들에게 똑같은 도시락을 제공했다. 그러나 이는 참가자들의 다양성을 무시한 서비스였다. 참가자들 중에는 이슬람교, 힌두교 등의 종교를 이들도 있었다. 그러나 그들에게 제공된 것은 그들이 금기시하는 돼지고기와 소고기, 그리고 낯선 한국음식들이었다. 결국 그들은 도시락을 먹지 못하고 근처 편의점에서 샌드위치 등으로 끼니를 때울 수밖에 없었다. 세계 장애인대회에 참가한 외국인들마저 주최 측으로부터 차별을 받은 것이다.

약 30억원의 예산을 들였다고 하기에 대회 상황은 엉망진창이었다. 그 많은 돈을 도대체 어디에 어떻게 썼다는 것일까. 주최 측은 예산 활용에 대해 투명하게 공개하고 요목조목 따질 필요가 있다.
생색내기에 급급한 정부의 장애인 정책은 이번 대회에서도 여실히 드러났다. 명예대회장을 맡은 권양숙 여사는 개막식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고 영상메시지도 없었다. 권 여사를 대신한 한덕수 국무총리는 장애인 차별금지법 제정, 활동보조인 서비스, 복지예산 증가 등 치적 자랑만 늘어놓았을 뿐 장애인권리협약 국내 비준 문제에 대해서는 전혀 언급하지 않았다.

때문에 세계 장애인들의 권리를 주장하고 장애인 문제에 대한 국제적인 해법과 UN장애인권리협약의 비준을 촉구하기 위해 만든 이번 대회의 의의는 외국인과 한국인, 등록 참가자와 비장애인 참가자의 차별만을 실감하는 무대가 되고 말았다. 세계 장애인들의 문제를 함께 고민해야 하는 자리가 한국 정부의 장애인 정책 홍보자리로 바뀐 것이다. 게다가 그것도 제대로 지켜지지 않아 대회 기간 서울 중심에서는 장애인 대표들이 모여 노숙농성을 하고 강변북로를 점거하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었다는 사실을 정부는 알고 있었을까.

다른 한 쪽에서는 장애인 차별 철폐를 외치는 목소리가...

세계장애인한국대회가 진행되고 있을 무렵 서울 광화문에서는 ‘장애민중행동대회’가 진행되고 있었다. ‘장애민중행동대회’는 장애인의 생존권을 쟁취하고 비참한 장애인의 현실을 고발하기 위해 열린 행사다. ‘장애민중행동대회’를 주최한 전국장애인차별쳘폐연대 박경석 집행위원장은 “우리나라 장애인의 인권상황은 여전히 야만적이다”라며 “시혜와 동정으로 왜곡되고 치장되는 장애인의 비참한 현실을 외면하는 정부가 ‘세계장애인대회’를 연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라고 주장했다.

‘장애민중행동대회’ 참가자 중 50여 명의 장애인과 장애인부모는 서울 강변북로 차로를 점거하고 3시간 동안 농성을 벌였다. 정부의 기만적인 태도를 그냥 보고 넘길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지적장애를 가진 쌍둥이 아이를 둔 어머니라는 한 참가자는 “이 나라 장애인은 언제나 법과 예산 대상에서 우선적으로 제외된다. 장애인들은 의무교육도 유예된다”며 “지나가는 시민들에게 물론 죄송하지만 가만히 있으면 누가 해주겠느냐. 불법이라 해도 이렇게 해야 세상이 조금이나마 알아 줄 것”이라고 외쳤다.

장애민중행동대회가 폐막했던 지난 8일에는 폭력과 성추행까지 난무했다. 장애민중대회 마지막 행사로 진행된 ‘장애인 인권 장례식 및 거리행진’. 참가자들의 행렬이 광화문 사거리에 도착하면서 경찰의 봉쇄가 시작됐다. 경찰은 방패를 이용해 행렬을 밀어냈고, 그 과정에서 장애인을 보호하려 했던 4명의 장애인 활동보조인과 장애학생 부모들이 강제 연행되기도 했다. 한 여성장애인은 “세계장애인대회는 보장하고, 장애민중대회는 폭력으로 진압하는 이 나라는 도대체 누구의 나라인가?”라고 쓴 휴대폰 문자를 내보였다. 그는 언어장애를 갖고 있어 그렇게 밖에 자신의 목소리를 낼 수 없었다.

행렬에 참가했던 장애인들은 결국 ‘평화시위를 보장하라’는 구호를 외치며 횡단보도에 앉거나 눕는 등 극단적인 행동을 취할 수밖에 없었다. 경찰의 폭력에 힘으로 맞설 수 없었기 때문이다. 연행됐던 참가자는 안경이 부서질 정도로 경찰에게 맞았고 한 여성장애인은 경찰이 진압과정에서 가슴을 만지며 팔을 잡아 비트는 바람에 엉엉 울기만 했다. 한 노인 장애인은 경찰에 의해 휠체어에서 떨어지고 다시 도로 바닥으로 메치기를 당하기까지 했다.

이런 현실을 외면한 채 정부는 막대한 예산을 들여 세계장애인대회를 치렀던 것이다.

허울뿐이었던 세계장애인한국대회

이번 대회는 역대 최대 규모라 했으나 뭔가 부족해보였다. 자원봉사자나 대회 관계자 등을 제외한 비장애인의 모습이 거의 눈에 띄지 않았기 때문이다. 한 참가자는 “국제 행사인데도 정부나 비장애인들의 관심이 너무 저조하다. 킨텍스 밖에는 아무런 홍보물도 없었다. 비장애인들은 이 행사 자체를 모를 것”라며 “아직도 ‘장애인’이라는 말만 들어가면 찬밥 신세를 면치 못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장애인들은 특별한 날에만 일시적으로 주목하는 비장애인들의 관심을 부담스러워 한다. 장애인들에게 필요한 것은 그들을 이웃으로 받아들이고 그들이 겪고 있는 어려움들을 해결하기 위한 관심이다.

많은 문제점과 시사점을 남기고 세계장애인한국대회는 끝이 났다. 폐막 선언문은 ‘한국을 비롯한 각국 모든 정부가 장애인권리협약이 효력을 갖기 위해 조속한 시일 내에 장애인권리협약에 서명하고 비준할 것’을 촉구했고, ‘장애 해방을 위해 투쟁하는 모든 동지들은 장애인권리협약의 비준과 이행을 자신들의 활동에서 최우선으로 삼고 연대해 우리가 항상 추구했던 인권을 실현해야 한다’는 내용을 담았다. 그러나 우리 정부는 장애인권리협약 비준보다 장애정책에 대한 치적을 늘어놓기에만 급급했고, 장애 해방을 위해 광화문에서 투쟁을 벌이던 장애인 동지들은 인권을 무시당했다. 결국 세계장애인대회의 마지막을 장식할 것으로 기대됐던 서울거리 퍼레이드는 결국 취소됐다. 그 시각 거리에는 ‘장애민중행동대회’가 진행되면서 장애인들과 경찰의 대립이 있었기 때문이다. 세계장애인한국대회 주최 측은 세계에서 온 참가자들에게 취소 이유를 사실대로 해명했을까.
세계장애인대회는 끝났지만 우리 사회의 장애인 현실은 개선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방송위원회는 공익성 방송 분야에서 장애인 분야를 없애버리는 장애인차별정책을 고시했다. 지난 11일에는 인천시에 거주하는 유모씨(50)가 주위의 장애인에 대한 편견과 차별, 생활고를 비관하다 지적장애와 뇌성마비를 동시에 가진 14살 된 딸과 함께 25층 아파트 옥상에서 뛰어 내려 동반자살을 한 사건이 있었다. 장애인을 대상으로 저질러지는 성폭행, 인권유린 등 셀 수 없는 사건들이 도처에서 발생하고 있다. 이 상황에서 과연 우리나라는 세계장애인대회를 주최할 만큼 장애인 인권에 대해 당당했는지 의문이다.

올 12월 13일까지 서명과 비준을 마치고 이를 위해 연대하자는 서울 선언문이 단지 문서상으로만 끝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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