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 주차구역 위반 사례들 ⓒ2007 welfarenews
▲ 장애인 주차구역 위반 사례들 ⓒ2007 welfarenews
장애인 전용 주차구역 있으나마나

아들의 생일선물을 사고 생일상을 차릴 장을 보기 위해 서울역에 있는 대형 마트를 찾은 손모 씨(37·지체장애2급)는 차를 주차하지 못해 주차장을 5바퀴나 돌았다. 장애인 주차구역이 모두 찼기 때문이다. 더구나 4~6층에는 장애인 전용 주차구역이 아예 없었다. 결국 비장애인 주차구역에 주차를 하고 간신히 휠체어를 타고 나왔다. 그리고 매장으로 들어가는 순간 참았던 화가 치밀어 올랐다며 그때의 심정을 토로했다. “장애인 전용 주차공간에 비해 비장애인 주차공간이 비좁아서 휠체어를 꺼내고 타기가 매우 힘들어요. 그렇게 힘들게 나오는데......” 손 씨가 화가 났던 이유는 장애인 전용 주차구역을 차지한 차들이 모두 비장애인 차량이었기 때문이다. 그는 곧바로 주차관리 직원에게 항의했지만 돌아온 것은 “주차공간이 꽉 차서 그러는데 여기(장애인 전용 주차구역)가 비었으니 주차하면 안 되냐는 손님들의 요구를 거절할 수 없다. 거절하면 화를 내기 때문에 어쩔 수가 없다”라는 어이없는 답변이었다.

그러나 손 씨는 주차관리 직원을 원망해야 할 뿐 아무런 조치를 취할 수가 없었다. 단속 권한이 있기는커녕 민원을 제기해도 소용없기 때문이다. 서울시 장애인복지과의 장애인 주차구역 담당자는 “장애인 당사자가 권리를 침해당했다 할지라도 단속권한이 없기 때문에 사진을 찍어 민원을 올려도 처리할 수 없다”며 “도로교통법 제10조 조항에 따르면 단속권한을 가진 사람만이 단속을 할 수 있다. 일반 시민은 해당 지자체에 전화해 단속할 것을 요구할 수만 있다”라고 설명했다.

장애인 전용 주차구역에 비장애인이 주차하는 일은 어제오늘만의 일은 아니다. 그러나 비장애인차량의 파렴치한 장애인 전용 주차 공간 점거, 대형 마트의 눈감아주기 행태가 되풀이되기만 할 뿐 전혀 개선되지 않고 있다.

이유는 시·군·구청의 허술하고 의지 없는 관리 태도

이러한 문제점이 개선되지 않는 이유는 단속권한을 갖고 있는 공무원이 적발 차량을 봐주거나 과태료마저 걷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장향숙 의원이 보건복지부에 제출한 국정감사 자료에 따르면, 2005년 전국적으로 7,007건의 문제 차량을 적발했으나 그중 75.7%인 5,305건에만 과태료를 부과하고 나머지 1,702대는 시정을 권고했던 것으로 밝혀졌다. 또 2006년에는 6,464건 중 4,691건만 과태료를 부과해 과태료 부과율이 72.6%였다. 올해는 더욱 심각하다. 2007년 7월 현재, 4,675건 중 2,799건만 과태료를 부과해 과태료 부과율이 59.9%에 불과한 것이다. 결국 지난 3년 간 적발 차량 10대 중 3대는 봐주고 있는 셈이다. 특히 올해 7월말 현재, 부산의 경우는 과태료 부과율이 7.2%에 불과해 10대 중 9대를 봐주고 있고 경북의 경우에도 18.8% 밖에 안 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불법차량을 적발해도 과태료를 단 한 건도 부과하지 않거나 단속을 나가더라도 적발 건수가 하나도 없는 지역도 많았다.

경남 사천시청은 2006년 한 해 동안 총 42명이 12차례 단속을 나갔으나 단 한 건도 적발한 것이 없었다. 경기도 남양주시청 역시 2005년에 총 38명이 3차례 단속을 나갔지만 적발 건은 단 한 건도 없었다. 전북 익산시청은 지난 2005년부터 2년 동안 총 547건을 적발했으나 계도 위주의 단속이라는 미명 하에 단 한 건도 과태료를 부과하지 않았다. 강원도 정선구청 역시 2005년과 2006, 총 51건을 적발했으나 과태료를 부과한 적은 단 한 건도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밖에도 경기도 안양시청과 광주시청은 2007년 각 1회씩 단속을 나간 것으로 돼 있지만 장소는 각각 안양시청 주차장과 광주시청 주차장인 것으로 밝혀졌다. 청사 주차장을 한 번 둘러보는 것만으로 장애인 전용 주차단속을 했다는 것.

아예 한 번도 단속을 나간 적이 없는 시·군·구청도 있었다.

2005년에는 부산의 중구청, 사하구청, 연제구청, 기장군청과 경기도의 광명시청, 김포시청, 광주시청, 연천군청, 양평군청 등 총 9곳의데 시·군·구청이 단속을 한 번도 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2006년에는 경기도 오산시청, 김포시청, 광주시청, 포천시청, 양편군청 등 5곳이 단속 업무를 하지 않았다. 특히 김포시청, 광주시청, 양평군청은 2년 연속 단속 실적이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2007년 7월 현재는 인천 연수구청, 강원도 춘천시청, 강릉시청, 영월군청, 평창군청, 충청북도 제천시청, 진천군청, 전남의 모든 시군구청 등 총 39곳이 단속실적이 없는 것으로 드러났다.

불법 사례는 국회와 과천정부종합청사도 예외가 아니었다. 국회의원회관 장애인 전용 주차구역에는 수많은 비장애인 차량들이 이중 주차돼 있고 국회도서관 장애인 전용 주차구역에는 장애인 자동차 표지가 없는 차량이 주차돼 있었다. 과천청사는 건물입구 경사로에 차량과 오토바이가 주차돼 장애인이 전혀 이용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법을 만들고 집행하는 국회와 정부청사에서조차 장애인 이동권을 보장하기 위해 만든 법을 어기고 있는 것이 현실이었다.

이에 장향숙 의원은 “장애인전용 주차구역 불법주차를 방지하기 위한 엄정한 법 적용이 필요하고 불법주차신고 포상금제도를 도입해 국민들에 의한 적극적인 단속이 가능하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장애인 편의시설 설치되지 않은 지하보도 ⓒ2007 welfarenews
▲ 장애인 편의시설 설치되지 않은 지하보도 ⓒ2007 welfarenews
지하보도 200m 내에 횡단보도를 설치할 수 없다?

차 없이 이동하는 장애인은 어떨까? 그들이 움직일 때마다 넘어야 할 산은 너무 많다.

부산의 남천역에서는 현재 없어진 횡단보도를 다시 복원하기 위한 주민운동이 활발히 벌어지고 있다. 남천역 지하보도 가장 깊은 곳 양쪽 계단은 모두 합해 134계단, 웬만한 7층 높이 건물과 맞먹는다. 주민들이 이 지하보도를 이용하기 시작한 것은 지난 2001년 지하철 남천역이 생기고부터다. 도로교통법 시행규칙은 지하보도 2백 미터 안쪽으로는 횡단보도를 설치할 수 없도록 규정하고 있어 지하철역이 설치되면서 기존의 횡단보도가 없어졌기 때문이다. 가장 가까운 횡단보도가 남천역에서 1.5킬로미터나 떨어져 있어 주민들은 지하보도를 이용하지 않으면 무단횡단을 할 수밖에 없는 형편이다. 이 때문에 노약자와 장애인들의 행동반경이 확 줄어들었다. 주민들은 횡단보도가 없어지고 나서 7년째 횡단보도 복원을 건의해 왔지만 경찰은 설치 불가 입장을 고수해오고 있다.

서울시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서울시의 중심지인 시청과 광화문, 종로 일대는 지하철역과 이어져 각 구역으로 향하는 지하보도가 있다. 물론 지하보도와 가까운 곳에는 횡단보도가 없다. 특히 소공동 롯데백화점 앞의 지하보도에서 가장 가까운 횡단보도까지의 거리는 약 400m 정도. 당연히 계단을 이용하기가 불편한 노약자나 장애인들은 난감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더 심각한 문제는 지하보도에는 장애인 이동 편의시설이 설치돼 있지 않은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장애인·노인·임산부등의편의증진보장에관한법률’ 제4조 ‘대상시설별 편의시설의 종류 및 설치기준’에 따르면, 주변에 횡단보도가 설치돼 있지 않은 지하도 및 육교는 장애인 등의 이용에 편리한 구조로 설치해야 한다. 또 층수가 1층 이상인 교통시설에는 장애인 등이 주출입구로부터 대합실 및 승강장이 있는 층까지 편리하게 이동할 수 있도록 장애인용 승강기, 장애인용 에스컬레이터, 휠체어 리프트 또는 경사로를 1대 또는 1곳 이상 설치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하철역을 제외한 대부분의 일반 지하보도에는 장애인 편의시설을 찾아볼 수가 없었다.

편의시설이 설치돼 있어도 나아지는 것은 없다. 잘못 설치돼 있거나 불량이기 때문이다.

휠체어를 이용하는 장애인들은 지하철역 입구에 휠체어 리프트 또는 엘리베이터가 설치돼 있어야 이동이 가능하다. 현재 지하철 역사에 설치된 장애인 편의시설은 계단 난간에 레일을 부착해 이동하게 만든 고정형 리프트, 간이형 엘리베이터라 할 수 있는 수직형 리프트, 그리고 엘리베이터가 있다. 그러나 고정형 리프트는 한 번 이용할 때 20~30분 정도의 시간이 소요될 뿐만 아니라 잦은 안전사고가 계속해서 일어나 장애인들은 이용에 불안함을 느끼고 있다. 또 최근 설치되고 있는 수직형 리프트 역시 아무런 설치기준이나 안전기준이 존재하지 않아 매우 위험하다. 따라서 장애인의 원활한 지하철 이용을 위해서는 엘리베이터 설치가 반드시 필요하다. 그러나 수도권 지하철 366개 역사 중 엘리베이터가 설치된 곳은 21%인 78곳에 불과하고 휠체어 리프트조차 설치되지 않은 곳도 168곳이나 된다. 장애인이동권쟁취를위한연대회의가 실시한 장애인의 주요 교통수단 조사에서 지하철이나 전철을 이용하는 장애인이 6.8% 정도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난 것은 장애인의 이동 환경이 매우 열악함을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장애인이동권연대 관계자는 “잦은 지하철 리프트 사고는 관계 당국이 장애인들의 이동권을 무시해 온 결과”라며 “점차적으로 모든 지하철이나 지하보도에 엘리베이터를 설치하고 횡단보도를 만드는 것이 장애인뿐 아니라 노인·어린이·임산부 등 신체적 약자의 이동 편의를 돕는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밝혔다.

장애인 편의시설에 대한 인식 전환 필요

편의시설 설치가 많이 부족한 근본적인 이유는 장애인과 장애인 편의시설에 대한 비장애인과 사회의 인식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장애인 전용 주차구역에 비장애인이 주차하는 것만 봐도 ‘나만 편하면 된다’는 개인주의 의식이 아직도 깊숙이 자리 잡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장애인 편의시설의 확충은 단순한 ‘시설의 개선’ 차원이 아니라 ‘생활환경의 개선’을 통한 장애인들의 일상생활 보장이라는 국민의 기본적인 권리를 인정하는 시각으로 접근해야 한다. 따라서 편의시설의 확보는 ‘국민 모두의 생활공간’을 안전하고 편리한 ‘무장애공간’으로 만들겠다는 의지에서 출발해야 한다. 즉 장애인뿐 아니라 비장애인도 잠재적 장애인이라는 생각을 바탕으로 모든 사람들이 시설에 쉽게 접근하기 위해 환경을 조성하도록 인식을 전환할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해서는 장애인 편의시설에 대한 홍보 활동과 관리·감독 활동을 강화해 장애인만을 위한 편의시설이 아니라 우리 모두를 위한 것이며 바로 나 자신의 문제임을 인식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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