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들장애인야학의 한 학생이
▲ 노들장애인야학의 한 학생이 "서당개도 풍월을 읊기 위해선 3년이라는 기간과, '서당'에서의 생활이 보장되어야 합니다"라는 문구가 적힌 피켓을 목에 걸고 있다. ⓒ2008 welfarenews

유난히 바람이 매서웠던 지난 2일, 노들장애인야학(이하 노들야학)은 대학로 마로니에공원에서 수업을 진행했다.

노들야학은 장애인이 교육받지 못하는 현실과, 장애인의 배우고 싶은 열망을 토대로 지난 1993년에 개교했다. 한국소아마비협회 소속기관인 장애인복지이용시설 정립회관에 30평 남짓한 공간을 무료로 빌려 운영됐다.
초·중·고등학교 과정, 한글반, 문해교육반 등 총 4개의 반으로 나눠 수업을 실시했고, 문화활동 및 특활반도 진행됐다.

장애성인의 45.2%가 초등학교 졸업 이하의 학력이라는 현실을 볼 때, 노들야학은 장애인이 배움에 대한 욕구를 해소하고 사회인으로 거듭날 수 있는 곳이었다.

노들야학의 1차적 목표는 검정고시 자격 취득이지만, 집안에만 머물던 장애인이 야학을 다니면서 외출을 하고 대인관계를 만들어나가는 데 그 의미가 더 컸다.

15년간 노들야학을 수료한 장애성인은 약 200명으로, 현재 20명의 교사와 37명의 장애성인이 노들야학에 다니고 있다.
그렇게 장애성인의 교육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해온 노들야학의 꿈은 지난해 말 거리로 내몰렸다. 정립회관 측으로부터 ‘업무용 공간부족과 운영 및 관리비가 부족하니 비워 달라’고 퇴거 요청을 받았기 때문이다.

장애성인 교육권쟁취를 위해 노들장애인야학이 대학로 마로니에공원에서 개학식을 갖고 기자회견을 열었다. ⓒ2008 welfarenews
▲ 장애성인 교육권쟁취를 위해 노들장애인야학이 대학로 마로니에공원에서 개학식을 갖고 기자회견을 열었다. ⓒ2008 welfarenews

줄줄이 문 닫는 야학, 이유는?

노들야학의 박경석 교장은 서울시교육청에 도움을 청했지만, 서울시교육청은 장애인야학은 지원할 법적 근거가 없다며 교육인적자원부로 책임을 돌렸다고 말했다.

국가청소년위원회(이하 위원회)는 지난 2006년까지 150여개의 야학을 지원했다. 그러나 2007년 위원회는 ‘학생 중 청소년 비율이 80%이상인 야학에만 지원을 하겠다’고 밝혔다.

야학에 지원하는 기금은 청소년 육성기금이기 때문에 청소년이 없는 야학에는 지원을 중단할 수밖에 없다는 게 이유였다. 따라서 40대~60대의 늦깎이 학생들이 대부분인 100여개의 야학들에 대한 지원 또한 중단됐다.

전국야학협의회(이하 전야협)에 따르면 교육개발원에서 보조하는 문해사업지원금이 있긴 하지만, 대부분의 야학들이 신청하는 방법을 몰라 160여개 소속 야학 가운데 50여개만이 문해사업지원금을 받았다고 한다.

문해사업이란 글을 읽지 못하거나 읽어도 뜻을 모르는 ‘비문해자’들을 위한 교육사업이다. 이 지원금은 지방자치단체에 신청서를 접수해야만 심사를 거쳐 받을 수 있다.

전야협 김동영 회장은 “기회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지원금을 받지 못하는 상황이 안타깝다”며 “야학이 진정한 배움터로 자리 잡기 위해서는 사회적 지식과 정보가 꼭 필요하다”고 당부했다.

김회장은 이어 “야학은 ‘우리의 힘으로 배우자’는 정신을 토대로 만들어진 것이고, 현재 많은 야학들이 바자회나 회비를 통해 운영되고 있다. 국가에게 의무교육의 책임을 당당하게 요구할 권리는 있지만, 무조건 재정지원에 기대는 것은 야학의 모순”이라며 무엇보다 자신의 의지와 책임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2005년 장애인실태조사에 따르면, 초등학교를 다니지 않은 장애인이 전체 장애인구의 15.8%, 중학교를 다니지 않은 장애인이 45.2%, 고등학교를 다니지 않은 장애인은 62%였다.

‘야학의 실태 및 지원방안연구’를 총괄한 공주대 교육학과 양변찬 교수는 야학이 잇달아 문을 닫는 원인으로 재정부족을 첫 번째로 꼽았고, 두 번째로는 야학교사 모집의 어려움을 지적했다.

예전만 해도 대학생들이 야학교사로 자원봉사하는 것을 ‘자기가치 실현’이라 여겼지만, 현재 사회적 분위기가 변해 장기간 야학교사로 임하는 학생이 거의 없다.

양 교수의 말에 따르면 일본은 우리나라와 달리 공식적으로는 야학을 지원하고 있지 않지만, 실질적으로는 야학이 지원되고 있다고 한다. 일본의 경우 야간중학교가 그대로 현존하고 있어 야간중학교 교사가 야학을 운영하고 있다.

양 교수는 “국가는 의무교육에 책임을 다해야 한다”며 “단순히 학령기를 기준으로 할 것이 아니라, 배울 시기를 놓쳐 뒤늦게 배우고자 하는 사람에게도 책임을 져야 한다”고 말했다.

노들장애인야학은 '장애인등에관한특수교육법' 시행령 지원 법적 근거 마련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2008 welfarenews
▲ 노들장애인야학은 '장애인등에관한특수교육법' 시행령 지원 법적 근거 마련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2008 welfarenews

‘집지키는 개’에서 ‘인간’으로

“한 재가장애인은 학교를 다니기 전 자신이 집지키는 개인 줄 알았다고 고백했다. 어머니가 외출할 때면 '밥 놓고 간다. 집 잘 지켜'라고 말했고, 어머니가 돌아오면 '집 잘 보고 있었냐. 밥 먹자'고 말했기 때문이다. 학교를 다니면서 자신이 인간다운 삶을 사는 것을 느꼈다고 했다.”

노들야학 박경석 교장은 한 장애성인과 상담했던 내용을 밝히며 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박 교장은, 교육은 사회적 동물을 만들어가기 위한 가장 기초적인 과정임에도 불구하고 장애인이란 이유만으로 국민으로서 누려야할 기본권을 박탈당하고 있다고 토로했다.

노들야학을 졸업하고 장애인자립생활센터에서 상근활동을 하고 있는 문명동(29·뇌병변1급)씨는 어렸을 때 특수학급 및 특수교사가 부족해 학업을 포기해야 했다.

그는 “거의 평생을 집에서만 보낼 뻔 했지만, 야학을 알게 된 이후 그동안 배우고 싶었던 것을 배울 수 있었다”며 “공부뿐만 아니라 삶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조언도 얻을 수 있었다”고 말했다.

올해로 4년째 노들야학에서 국어를 가르치고 있는 안소진(여·26)씨는 자신에게도 많은 변화가 있었다고 말했다. 특수교육을 전공한 안씨는 남 앞에 나서길 부끄러워하는 성격이었지만, 노들야학을 다니면서 밝고 적극적으로 변했다.

안씨는 학생 중 가장 인상 깊은 사람으로 허정(28·뇌병변1급)씨를 지목했다. 그는 처음에는 야학에 나와서도 사람과 마주치길 꺼려하고, 집회 때 사진촬영도 피했다. 하지만 지금은 집회에 참석해 노래를 할 정도로 활발해졌다.

안씨는 “장애성인 대부분이 중간에 포기하거나 남에게 의지하려고 해서 힘들기도 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발전하는 모습을 보면 기쁘다”고 고백했다.
또한 “교육받지 못한 장애성인이 의지와 희망을 갖고 힘들게 찾아왔지만, 야학이 불안정하게 운영되기 때문에 가슴이 아프다”며 “야학이 안정적으로 운영돼서 교육 받고자 하는 많은 사람들이 꿈과 희망을 이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날 노들야학의 수업은 구청에서 천막을 제거하겠다고 통보한 상태에서 이뤄졌다. 박 교장은 불법행위는 하고 싶지 않지만 교육은 계속돼야 한다고 전했다.

저작권자 © 웰페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