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숙인당사자모임은 '사회적 불만에 의한 사건'이 발생될 때마다, 객관적인 근거 없이 노숙인을 겨냥한 언론보도 및 수사는 노숙인의 인권을 침해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2008 welfarenews
▲ 노숙인당사자모임은 '사회적 불만에 의한 사건'이 발생될 때마다, 객관적인 근거 없이 노숙인을 겨냥한 언론보도 및 수사는 노숙인의 인권을 침해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2008 welfarenews

지난 10일 발생한 숭례문 방화사건의 범인이 ‘노숙인’으로 지목되면서, 노숙인에 대한 부정적인 시선과 비난이 불거졌다.

한 누리꾼이 문화재청 홈페이지에 “숭례문 근처에서 노숙인들이 ‘확 불질러 버려’라고 말하는 것을 들었다”는 내용의 글을 올렸고, 언론이 앞 다퉈 이를 제보로 다뤘다.
수사당국은 서울역 인근의 노숙인을 대상으로 탐문수사를 진행했으며, 심지어 국회 문화관광위원회 긴급회의에서는 “노숙인들이 불을 지르겠다고 했다는 경고글이 올라왔는데 이를 무시했다”는 질타가 이어지기도 했다.

이 같은 언론보도를 통해 국민들은 노숙인에게 분노했고, ‘노숙인 때려주고 싶어요’, ‘이런 쓰레기들을 처리하여야 한다’ 등 노숙인을 멸시하는 내용이 담긴 누리꾼들의 글들이 쏟아졌다.

그러나 숭례문 방화사건의 범인은 인근의 노숙인이 아닌 60대 노인인 것으로 밝혀졌다.

툭하면 노숙인, 대체 왜?

지난 2005년 1월 지하철 7호선 방화사건과 수원역 영아살해사건 등에서도 노숙인이 범인으로 지목됐던 적이 있다. 지하철 7호선 방화사건의 경우 한 목격자가 ‘노숙인 같은 차림이었다’라고 말했고, 이에 경찰은 노숙인 범행 가능성을 놓고 탐문수사를 강행했다. 그러나 두 사건 모두 노숙인에 의한 범행이 아니었다.

노숙인은 길이나 공원 등지에서 잠을 자는 사람을 일컫는 말로, 특성상 차림새가 위생적이지 못하고 역 근처나 길거리를 배회하며 끼니를 해결하기 위해 푼돈을 빌기도 한다.

노숙인은 주로 실직, 질병, 폭음, 가족해체, 주거비 상승 등으로 인해 사실상 경제능력을 상실한 상태거나, 노동능력은 있으나 IMF체제 이후 찾아온 경제난으로 노숙을 해온 사람들이다.

노숙인의 거리생활에 익숙해져 규칙적인 생활로 돌아가기 쉽지 않으며, 일종의 쉼터에서 소개해주는 일자리가 적합하지 않아 직업재활에서 아예 고개를 돌려버리는 경우가 많다. 또한 재활프로그램을 견디지 못해 다시 노숙을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렇다보니 사회생활을 하는 사람들에게 노숙인은 ‘무능하고 더러운’ 이미지로 각인돼 있다.

그러나 노숙인들은 “아무리 못난 사람이라도 숭례문이 우리나라 국보1호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 어떻게 누각 안에 들어가 취사를 하며 안에서 술을 먹고 잠을 잘 수 있겠냐”며 무능하다고 해서 인간으로서 최소한의 도리까지 잃어버린 것은 아니라고 말하고 있다.

한울타리회, 노숙인인권공동실천단, 노숙인복지와인권을실천하는사람들(이하 노실사)은 노숙인당사자모임을 갖고, 지난 13일 숭례문 방화사건 보도내용과 관련해 “노숙인을 겨냥한 마녀사냥식 언론보도를 즉각 중단하라”며 성명서를 발표했다.

이들은 선입견에 휘둘려 사실여부를 확인하는 절차를 무시하는 등, 객관적이지 못한 경찰의 수사과정을 비난했다.

불을 지르겠다는 노숙인의 우발적인 발언이 반드시 범행으로 직결되리라는 과학적인 근거가 없고 ‘노숙인 차림’이라는 개념이 정의된 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숭례문·지하철 7호선 방화사건에서 경찰은 주관적인 진술에 기초해 수사를 진행했다고 꼬집었다.

노숙인모임 '한울타리회' 김재호씨는
▲ 노숙인모임 '한울타리회' 김재호씨는 "힘 없는 노숙인들에 대한 편파적 견해를 버려 달라"고 호소했다. ⓒ2008 welfarenews

사고 없기를 바라는 사람은 노숙인

지난 15일 서울남대문경찰서는 숭례문 화재현장 부근에서 방송사 기자와 인터뷰를 하던 여성을 폭행한 노숙인 강모씨를 다음날 불구속 입건했다.

강씨는 피해자 여성이 인터뷰 당시 “평소 노숙인들이 숭례문 누각에 오르는 것을 방치하는 등 관리가 부실했다”는 내용의 발언을 하자, 노숙인을 무시하는 것 같아 격분한 나머지 이 같은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전해졌다.

숭례문 방화사건의 범인이 노숙인으로 지목되자 노숙인들은 단속반원에게 공범취급을 받는가 하면, 잠을 자다가 경찰에게 숭례문 방화사건 발생 당시 자신의 행적을 밝혀야 하는 등 고역을 치렀다.

노숙인당사자모임은 지난 17일 ‘숭례문 화재사건 보도내용에 대한 노숙인 인식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이들은 12일 평소 남대문 인근에서 노숙생활을 하고 있는 노숙인들을 대상으로 면접을 실시하고, 14일 노숙 경험이 있는 쪽방거주민, 거리노숙인 52명에 대한 실태조사를 했다.

그 결과 평소 남대문 누각에 진입하거나 이를 목격한 이는 단 한 명도 없는 것으로 나타났으며, 전체 응답자 중 96.2%는 언론보도에 대해 억울해하는 등 불편한 마음을 갖고 있었다.

노숙인을 겨냥한 언론보도를 보면서 드는 느낌으로는 노숙을 하는 것 자체에 대한 서러움이 대부분이었고, ‘사회적 불만에 의한 사건’ 발생 시 언론으로부터 가장 먼저 지목받는 것에 대해 92.3%가 ‘불편하다’고 대답했다.

또한 18.2%가 자신을 범죄자로 보는 사회적 시선과, 타인의 손가락질 등에 대해 불안함을 보였다.

노숙인들은 ‘노숙인을 겨냥한 편파적인 보도에 대한 항의서한’을 작성하고, 근거 없이 노숙인을 몰아붙이는 행위를 삼가달라고 요구했다.

숭례문 방화사건 목격자 “죄송합니다”

문화재청 홈페이지에 글을 올린 누리꾼 이모씨는 지난 17일 노실사 홈페이지에 ‘노숙인분들게 머리 숙여 사과드립니다’라는 제목의 글을 남겼다.

그는 노숙인을 폄훼하기 위한 행위가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용의자 인상을 언급하는 과정에서 ‘노숙인’이라는 표현을 썼다며, 자신의 죄책감이 향후 노숙인들을 바라보는 사회의 그릇된 시선을 바로잡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또한 이씨는 노실사 이동현 상임활동가와 직접 통화해 사과의 뜻을 전하고 후원금을 입금하기도 했다.

또 다른 누리꾼은 “새 정부가 꼭 해결해야 한다. 그 사람도 우리 국민이다. 다시 살려야 된다”고 주장했다.

이 상임활동가는 “숭례문 방화사건의 본질은 허술한 문화재관리에 있다”며 “노숙인을 겨냥한 언론보도는 노숙인을 혐오와 기피의 대상으로 각인시킬 뿐”이라고 말했다.
더불어 노숙인들도 대한민국 국민의 한 사람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배려해줄 것을 당부했다.

저작권자 © 웰페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