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이 반포된 지 561년. 한글의 세계적인 위상이 높아지고 있다. 한글이 지난 1997년 유네스코가 지정하는 세계기록유산이 된데 이어 최초로 국제기구의 공식 언어로 채택됐다. 최근 유엔 산하에 있는 세계지식재산권기구가 한글을 국제특허협력조약(PCT)의 국제 공개어로 채택했다.

이에 따라 이 기구에 등록되는 국제특허 관련문건을 한글로 볼 수 있게 됐다. 한글이 국제기구에서 최초로 공식 언어로 지정됨으로써 국제사회에서 한글 위상이 그만큼 높아지게 된 것이다.

사용자수로 언어순위를 매기는 세계언어목록 ‘에스놀로그’에 따르면 2000년 현재 지구촌에서 사용되는 언어는 6912개이다. 남북한 7,500만명이 사용하는 한글은 프랑스어 보다 한 단계 높은 세계 13위를 기록하고 있다.

유네스코는 1989년 세종대왕(1397~1450) 탄신일인 5월 15일을 세계문맹퇴치일로 정하고 문맹을 없애는 데 힘쓴 인물과 단체에 주는 상(賞)을 ‘세종대왕문해(文解)상’이라고 이름 지은바 있다.

소설 대지의 작가 펄벅(1892~1973)은 구한말을 배경으로 한 작품 ‘살아있는 갈대’에서 “한글은 24개의 알파벳으로 이뤄진 세계에서 가장 단순한 문자체계지만 자음과 모음을 결합하면 어떤 음성도 표기할 수 있다”고 적었다. 한글이 이처럼 국제적으로 높은 평가를 받은 것은 독창성과 과학성 때문이다.

뜻도 불분명한 ‘잡탕 글’ 쓰고 부끄러운 줄도 몰라

그러나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촌에는 아직도 자기네 말을 갖지 못했거나, 말은 있으되 그것을 기록할 글을 갖지 못한 민족들이 너무나 많다.

우리는 지혜로운 조상을 둔 덕으로 훌륭한 말과 글을 가지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정작 우리말과 글에 대한 소중함과 고마움을 깨닫지 못하고 온갖 국적 없는 외래어들을 끌어들여 우리말을 오염시키고 있는 것이다. 게다가 누리꾼들이 인터넷에서 쓰는 글들은 도무지 알아듣지 못할 정도로 심하게 훼손되고 있다. 이대로라면 한글이 앞으로 어떤 모습을 보이게 될까.

특히 우려되는 것은 우리말을 보호하고 가꾸는데 앞장서야할 정부 등 공공기관과 언론이 국적 없는 외래어 사용을 부추기고 있다는 점이다.

한글문화연대(대표 고경희)는 지난달 1일부터 행정자치부가 기존의 동사무소 이름을 ‘동주민 센터’로 바꾸는 것에 반대하여 백만인 서명운동을 진행하고 있다. 행정자치부는 올해 말까지 30여억원을 들여 전국 2,100여개 동사무소 이름을 ‘동주민 센터’로 바꾸기로 했다. 이유는 변화된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서라고 한다.

이 뿐만 아니다. 경찰서 파출소는 ‘치안 센터’, 119소방파출소도 ‘119안전 센터’로 바꾸었다. 서울지하철공사는 ‘서울매트로’ 한국철도공사는 ‘코레일’로 바꾼 지 오래다. 서울시가 ‘하이 서울’이라는 국적도 알 수 없는 영어표기를 쓰자 대전시도 ‘이츠 대전’, 대전서구는 이를 본떠서 대전의 첫 번째 구청이라는 의미로 ‘퍼스트 서구’라고 표기하고 있다. 도대체 무슨 말인지 모를 ‘잡탕 글’이다.

정부부처 등 공공기관과 언론이 외래어 사용에 앞장

국립국어원이 지난 2월 발표한 27개 중앙행정기관과 16개 광역자치단체를 대상으로 ‘2006년 공공기관 누리집(홈페이지)의 언어 사용실태’를 조사한 결과는 외래어 사용(90%)을 가장 큰 문제점으로 지적했다.

언론은 한술 더 뜬다. 네이버 블로그명 ‘jackyak’는 언론의 무분별한 외래어나 외국어 남용을 꼬집었다. 대부분 신문들은 특집을 발행하면서 ‘오늘의 특집’이라는 좋은 우리말 대신에 ‘투데이 스페셜’이라고 하고, 주제가 있는 무지개 신문이라는 멋진 우리말을 놔두고 굳이 ‘테마신문 레인보우’로 Tm고 있다고 지적했다.

어떤 신문의 경우는 아예 ‘Neo Classic' 'Neo Life’ ‘Neo Focus' 'Women Square' 'Metro Life' 등 영문표기를 했다며, 그래서 얻어지는 것이 뭐냐고 꾸짖었다.

책임 있는 공공기관이나 언론, 그리고 누리꾼들이 세계적으로 우수성이 입증된 우리글과 말을 촌스럽게 여겨 천대하거나 훼손하고, 국적 없는 외래어 사용에 앞장선다면 한글의 운명은 불을 보듯 뻔한 일이다.
한글날만이라도 외래어나 외국어를 쓰지 맙시다.

왕길남(전 민주화운동보상심의위원회 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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