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각장애인의 세상을 스크린에 담다
시각장애인의 세상을 스크린에 담다
  • 최지희 기자
  • 승인 2009.04.01 16: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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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9 welfarenews
▲ ⓒ2009 welfarenews

“이번 영화는 덕윤이라는 사람이 느끼는, 시각장애인이 느끼는 세상을 그리고 있어요.”

2009년 여전히 유쾌한 말투를 가지고 있는 임덕윤(41·시각장애 1급) 감독을 다시 만났다.
임 감독은 현재 ‘조금 불편한 그다지 불행하지 않은...’이라는 제목의 영화를 제작, 후반 작업이 남아있는 상태다.

지난 2007년 임 감독과 첫 인터뷰를 했을 때, 그는 ‘킬러’라는 작품을 제작하고 있었다. 작품 ‘킬러’의 촬영은 마쳤지만, 제작진 및 여러 가지 문제로 관객들을 만나지 못했다.

임 감독은 ‘없는 이야기를 힘들게 만들려고 하지 말고, 현재 내가 겪고 있는 것들을 담아내보자’는 생각으로 이번 작품을 시작하게 됐다.

임 감독은 2003년 말에 찾아온 만성신부전과 초자체 출혈 및 망막박리로 오른쪽 눈 시력을 잃었고 왼쪽 눈도 제 기능을 거의 잃었다.

‘조금 불편한 그다지 불행하지 않은...’은 임 감독이 보는 세상을 최대한 ‘그대로’ 그리고 있다. 영화 초반부는 여느 영화와 같이 사물, 배경 등을 카메라로 비추고 있다. 하지만 중반부부터는 검은색 화면에 ‘임 감독이 보는 것들’만 나타난다.

“놀이공원의 ‘유령의집’ 같아요. 시각장애인이 보는 화면은 깜깜하거든요. 손으로 무언가를 만졌을 때, 또는 소리를 들었을 때 비로소 검은 화면 속에 형태가 나타나죠. 단적인 예를 들자면, 누군가가 내 팔을 잡고 ‘괜찮으세요?’라고 말하기까지의 짧은 시간에 공포감을 느껴요. 상대방의 목소리가 들리기 전까지 괴물이나 뱀이 내 팔을 잡았다는 느낌이 들거든요.”

임 감독은 이번 작품에 ‘상황에 따라 시각장애인을 대하는 법’을 영화 속에 녹여냈다.
영화 속 임 감독이 ‘시각장애인에게 길을 안내할 때는 이렇게 하라’고 관객에게 대놓고 이야기하는 방식이다.

“몸이나 기분의 상태가 괜찮을 때는 웃으면서 넘어갈 수 있지만, 이러한 경우가 반복적으로 일어나다보니 상태가 안 좋을 때는 짜증내게 되요. 상대방이 두 번 다시 장애인에 대한 도움의 손길을 주지 않을까봐 ‘아차!’ 싶다가도 말이죠.”

임 감독은 흰지팡이, 음성변환시스템(보이스아이시스템) 등 보장구 이용으로 생활이 덜 불편해졌다며, “이번 작품 ‘조금 불편한 그다지 불행하지 않은...’은 보장구 이용으로 조금이나마 불편이 줄어들어, 불행하다고 느끼는 좌절감이 덜하다는 뜻이 담겨있다”고 설명했다.

“혈액 투석을 받고나면 속이 허해서 얼큰한 음식이 먹고 싶어요. 음성변환시스템을 이용하지 않을 때였어요. 집에 가서 보니까 짬뽕라면(인스턴트 라면)이 있더라고요. 잘됐다 싶어서 물을 끓이고 분말스프를 넣는데 냄새가 이상한 거에요. 분말스프 봉지 냄새를 맡아보니까 짜파게티더라고요. 하하. 참.”

임 감독은 ‘조금 불편한 그다지 불행하지 않은...’의 시나리오 역시 음성변환시스템을 이용해 제작진과 보다 원활하게 소통하고 있다.

하지만 이것은 많은 어려움 중 아주 사소한 부분을 해소한 것에 불과하다. 2007년 이후 임 감독의 건강은 더 나빠졌다.
촬영 중 촬영감독이 ‘쉬고 있어라’고 할 정도로 체력이 떨어졌고, 지금은 끊었지만 당시 영화 제작에 고배를 마시면서 태우게 된 담배 때문에 복사뼈에 고름이 생기기도 했다.

뿐만 아니라 앞으로 ‘조금 불편한 그다지 불행하지 않은...’을 완성하기 위해서는 4여억원이 드는 컴퓨터그래픽 작업이 남았다. 검은 화면 속에 임 감독이 보는 것들을 나타내기 위해서는 이 작업이 필수다.
임 감독은 대학 영화관련 학과와 프로덕션의 도움을 요청할 계획이다.

“컴퓨터그래픽 작업, 녹음, 마지막 편집 등이 남아있죠. 제작비라던가 작업하는 과정에 고비가 여러 개 있지만, 잘 헤쳐나간다면 9월쯤에 관객들을 찾아뵐 수 있을 겁니다.”

임덕윤 감독이 보는 세상, 나아가 시각장애인이 보는 세상이 비시각장애인들 앞에 펼쳐질 날을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