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 welfare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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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첫 ‘존엄사’ 시행 당사자 김모(77) 할머니의 연명치료 중단이 이뤄진지 1달이 다 돼간다. 김 할머니가 스스로 안정적인 호흡을 유지하면서, 존엄사에 대한 논란이 더욱 불거지고 있다.

존엄사 허용 관련 여론조사에 따르면 국민(남·여 1,020명) 중 88.3%가 존엄사를 찬성했다. 그러나 반대하는 목소리를 비롯한 우려의 목소리도 적지 않다.

장애계단체 역시 반발하고 있다. 한국장애인자립생활센터총연합회, 한국장애인인권포럼, 장애여성네트워크, 서울장애인연맹은 ‘안락사 허용과 존엄사법 제정 기도를 반대한다!’는 제목의 성명을 지난 14일 발표했다.

법제화의 가능성과 방향에 대한 의견을 나누기 위한 ‘존엄사의 올바른 법제화를 위한 토론회’가 지난 16일 국회입법조사처, 한국입법학회,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공동 주최로 마련됐다.

참석자들은 입법 자체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모두 인정, 쟁점별로는 다양한 목소리가 나왔다.

▶‘존엄사’ 명칭 논란

토론회에서 가장 먼저 거론된 것은 ‘명칭에 대한 논란’이었다. 발의된 법안을 살펴보면 한나라당 신상진 의원 안(2009.2.5)은 ‘존엄사’로, 같은 당 김세연 의원 안(2009.6.22)은 ‘삶의 마지막 단계에서 자연스러운 죽음을 맞이할 권리’로 정의했다. 이외 자연사, 안락사, 무의미한 연명치료 중단, 의사조력자살 등 다양한 개념이 있었다.

참가자들은 무의미한 연명치료 중단 또는 연명치료 중단 등으로 표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데 의견을 모았다.

홍익대학교 법과대학 이인영 교수는 “이미 진료중인 환자의 인공호흡기 또는 영양공급 튜브의 제거는 결과의 확실성으로 말미암아 적극적 안락사로 분류하는 것이 더 합리적으로 판단됐다”며 “현재로서 적극적 안락사와 소극적 안락사의 구분은 설득력을 상실한다”고 말했다.

이화여자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김현철 교수는 “존엄사 개념은 논란이 많고 자연사 개념은 구체적인 내용이 분명하게 와 닿지 않는다. 연명치료 중단으로 개념을 한정짓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주장했다.

건국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홍완식 교수 역시 “일부 전문가들이 오해 가능성이 있는 안락사, 또는 죽음을 미화할 가능성이 있는 존엄사라고 표현해 사회적 합의가 어렵다”며 “의학적으로 ‘무의미한 연명치료 중단’이라는 용어가 가장 적절하다”고 주장했다.

▶대상 환자 및 연명치료의 범위

신상진 의원과 김세연 의원이 대표발의한 두 법안이 △비가역적이고 △치료가 없을 경우 곧 사망에 이르는 상태며 △의사의 진단이 있을 것 등을 규정하고는 있다.
다만 신 의원은 단기간 내 사망하는 경우와 2인 이상의 의사의 진단을, 김 의원은 수개월 이내 사망과 담당의사·해당질병 전문의사의 진단을 명시하고 있다.

신 의원 안은 연명치료와 응급의료처치로 구분, 김 의원 안은 생명연장조치로 개념을 일원화하고 있다는 데 차이를 둔다.

신현호 변호사는 “오히려 의사에게 생존가능성 및 치료가능성이 훨씬 높은 초기 암환자에 대한 보증인적 의무는 묻지 않고, 말기환자에 대한 책임을 묻는 모순은 없애야 한다”며 “말기환자의 정의에 지나치게 치중하는 것도 삼가야 한다”고 지적했다.

국림암센터 윤영호 기획조정실장은 “광의의 말기상태와 협의의 임종상태는 구분돼야 한다. 광의의 말기환자라고 해도 질병으로 인한 죽음이 임박한 상태가 아니거나, 급성질환으로 죽음이 임박한 환자에 대한 연명치료나 응급의료처치는 시술돼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말기암환자 외 다른 만성질환으로 인한 말기환자의 경우 예측이 정확하지 않을 수 있다”며 “연명치료 중단 대상은 1차적으로 ‘말기암환자(혹은 말기환자)가 지병이 악화돼 돌이킬 수 없는 죽음이 임박한 시기에 심폐소생술 또는 인공호흡기 사용’으로 제한한 후, 제도의 시행 결과를 분석하고 연명치료에 대한 사회적 이해를 넓힌 다음 확대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라고 제시했다.

▶사전의료지시서 진정성 담보 방법

사전의료지시는 연명치료 중단 등에 대한 환자 본인의 결정 및 의사를 표시하는 방법이다.

신 의원 안은 △민법 제1065조에 의한 유언이나 사전의료지시서에 의해 존엄사 결정 가능 △의료지시서 작성시 증인 2명 입회 △증인의 연령 요건 19세 이상 성인으로 정하고 있다.

김 의원 안을 살펴보면 ▲생명연장조치거부 사전결정서로만 연명치료 중단 가능 ▲사전결정서 작성시 공증인 입회 ▲증인의 연령 요건 18세 이상이다.

조례연구소 전기성 소장은 “신체의 질환으로 삶과 죽음을 선택하는 사항을 연령으로 제한하는 것은 불합리하다”고 주장했으며 공증인 관여 불필요, 문서방식 외 유언방식 고려 등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기도 했다.

▶본인 의사표시 추정과 대리 논란

신 의원 안은 만 20세 이상을 성인으로 보며 의사표시의 대리 및 추정을 인정하고 있지만, 김 의원 안은 만 18세 이상을 성인으로 보고 의사표시의 대리 및 추정에 대한 규정이 없다.

국민대학교 법과대학 정철 교수는 “김세연 의원 안은 자신의 생명과 직결되는 연명치료 중단을 자기결정권으로 정당화하면서, 가정적 의사로 이를 판단하는 것은 모순이라는 점을 가정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해석하며 “연명치료 중단을 결정짓는 데 있어서 가장 판단이 어려운 영역일 것”이라고 말했다.

정 교수는 헌법상 적법 절차의 요청에 의해 의사확인절차의 적정화와 정당화가 요구된다고 봤다.

한국보건의료연구원 허대석 원장은 “사전의료지시서는 환자 본인이 작성하는 것이 원칙이나, 우리나라의 진료 현장에서 사전의료지시서를 본인이 작성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이같은 상황에서 본인 작성을 의무화하면 제도로서의 수용성은 희박하다”고 주장했다.

김현철 교수는 먼저 “사람의 생각은 시시때때로 변하는 경우가 많은데 하물며 생명의 종결을 결정하는 문제에서는 더욱 그렇다. 가장 환자 본인의 의사에 가깝다고 인정할 수 있는 방식을 개연적으로 찾아가는 것일 뿐”이라고 확고히 했다.

김 교수는 “본인의 자기결정에 근거한 연명치료 중단이라는 주제가 사전의료지시가 있는 것에만 매달려있는 것도 문제가 될 수 있다”며 “병원윤리위원회, 법원의 판단을 신뢰하고 절차 모델에 따라 심의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또한 “때에 따라서는 사전의료지시의 일부로 가족 외 사람을 지속적 대리인으로 지정하는 것도 고려해볼 필요가 있다”고 언급했다.

▶오·남용 막을 수 있는 법적 장치 마련돼야

토론회 참석자들은 오·남용을 예방하고 처벌할 수 있는 법적 근거와 장치를 마련한다는 데 뜻을 같이 했다.

홍완식 교수는 “처음에는 요건과 절차를 엄격하게 하고 통제하더라도, 나중에 무분별하게 시행될 가능성이 있다. 결국에는 생명을 경시하게 하는 제도적 물꼬를 터주게 될 것”이라며 법률이 악용될 것이라는 견해를 보였다.

홍 교수에 따르면 이른바 ‘존엄사’를 허용하는 법률이 제정돼 법적으로 허용되면 유산상속, 치료비부담 등 경제적인 이유 등으로 악용될 수 있다는 점이 우려되는 것. 그는 특히 저소득층 노인환자나 자녀와 재산분쟁을 겪는 노인환자의 경우에는 본인의 삶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연명치료를 거부하거나 거부당할 가능성을 강조했다.

신현호 변호사는 “환자의 자기결정권이 확실한 경우에는 의사조력자살도 허용을 심도 있게 논의해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말기치료가 오·남용될 경우 다양한 사회적 감시체계하에서 고소고발 될 수 있는 구조를 가지고 있다. 오·남용시 살인죄나 자살방조죄로 처벌할 수 있다”고 밝혔다.

▶무엇보다 사회적 합의 우선

참석자들은 법제화 과정에서 사회적인 합의가 기초가 돼야 한다는 데에도 한목소리를 냈다.

홍완식 교수는 “입법의 대상, 요건, 절차, 악용방지를 위한 제도적인 장치 등에 관해서는 더욱 많은 성찰과 논의가 필요한 단계”라고 설명했으며, 허대석 원장은 “윤리적 기준을 높이면 진료 현장에서 적용하기가 힘들고, 수용성을 높이면 윤리와 안전성 우려가 제기될 수 있어 2가지를 모두 만족시킬 수 있는 규정은 없다. 사회적 합의가 최우선돼야 한다”고 말했다.

“존엄사법 제정 보다 의료법 개정”

한편, 전기성 소장은 ‘존엄사법’을 새로 제정하는 것보다 ‘의료법’을 보완·개정하는 것이 합리적이라고 주장했다.

전 소장은 “존엄사와 관련된 입법이 필요하다는 의견에 동의하지만, 새로운 법률로 제정하기 보다는 현행 의료법을 보완해 개정하는 것이 합리적”이라고 말했다.

특히 치료행위의 개념에 ‘말기환자에게 공급되는 최소한의 수분과 영양분을 공급하는 행위’를 포함시키고, ‘수분과 영양공급을 위한 치료행위는 어떤 경우에도 정지되지 아니된다’는 취지를 규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한 의료법이 △‘보건의료법’의 하위법 지위에 있어 위임입법 용이 △의료인의 자존심이 담기는 의료관련내용을 규정하는 것이 정당 △의료법에 규정된 다른 규정과의 연결이 용이해 경제적 입법 등을 의료법 보완·개정의 합리적인 이유로 내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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