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순득씨는 지난 2월 만 65세가 됐다는 이유로 2년간 이용했던 장애인활동보조서비스를 더 이상 이용할 수 없게 됐다. ⓒ2009 welfarenews
▲ 전순득씨는 지난 2월 만 65세가 됐다는 이유로 2년간 이용했던 장애인활동보조서비스를 더 이상 이용할 수 없게 됐다. ⓒ2009 welfarenews

“가사간병도우미서비스를 이용하고 있는데 오늘 이 자리에 나오는 데는 장애계단체와 함께 동행했습니다. 1주일에 2번, 물건을 사러 나갔다 오는 것만으로도 서비스 시간이 모자란데…”

전순득(여·65·시각장애 1급)씨는 2007년부터 약 2년간 이용했던 장애인활동보조서비스를 지난 2월 만 65세가 됐다는 이유로 더 이상 이용할 수 없게 됐다.

전씨는 활동보조서비스가 끊기기 한 달 전 더 이상 이용할 수 없다는 통보를 받았지만,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대책을 마련하지 못했다. 활동보조서비스가 끊긴 뒤, 전씨는 한 달 간 암흑 속에 갇혀 살았다.

전씨는 쌀이 떨어지자 위험을 무릅쓰고 혼자 밖으로 나왔다. 우여곡절 끝에 관할 구청 및 동 주민센터를 찾아 자신의 사정을 알렸고, 현재 서울시의 가사간병도우미서비스를 이용하고 있다.

서울시에서 제공하는 월 27시간의 가사간병서비스는 1주일에 2번 물건을 구입하러 나가는 것 외엔 다른 활동을 할 수 없기는 마찬가지였다.

전씨는 “활동보조서비스를 180시간 받을 당시 장을 보는 것은 물론 병원을 가는 등 건강관리를 할 수 있었지만, 현재는 시간이 턱없이 부족해 병원을 갈 수 없는 상황이다. 여기저기가 아프다”고 호소했다.
이어 “활동보조서비스와 비교했을 때 가사간병도우미서비스는 ‘간단한’ 것들만 도와줄 뿐”이라고 불편한 점을 전했다.

 ⓒ2009 welfare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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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활동보조서비스는 만 6세부터 64세까지를 대상으로 하고 있다.
만 65세 이상이 되면 노인장기요양보험제도 서비스를 신청할 수 있는데, 노인요양보험제도 서비스는 장애노인의 특성을 고려하지 않고 있어 활동보조서비스에 비해 시간이 적고 자부담 또한 크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전씨는 ‘뇌졸중이나 중풍이 아니고, 일어설 수 있다’는 이유로 서비스 대상에 해당되지 않았다.

지난 2007년 4월부터 장애인활동보조지원사업이 전국적으로 시행됐지만, 서비스 시간과 대상제한으로 인해 장애인들의 비판과 불만의 목소리는 날로 커지고 있다.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한국장애인자립생활센터협의회, 장애인서비스권리확보와공공성쟁취를위한공동행동은 4일 보건복지가족부(이하 복지부) 앞에서 ‘장애인활동보조 연령제한철폐 촉구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들 단체는 “현재 활동보조서비스는 반쪽짜리 제도”라며 “나이가 든 장애인에게 활동보조서비스를 끊는 것은 죽으라는 이야기다. 복지부는 예산의 논리로, 때로는 어처구니없는 행정상의 논리로 중증장애인의 생존의 권리를 무시하고 있다”고 질타했다.

이날 기자회견이 끝난 뒤 복지부 전재희 장관에게 활동보조서비스 나이 제한 폐지를 촉구하는 서한을 전달했다. 그러나 당초 약속했던 복지부 관계자와의 면담은 이뤄지지 않았다.

아래는 한국장애인자립생활센터협의회, 장애인서비스권리확보와공공성쟁취를위한공동행동의 서한.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한국장애인자립생활센터협의회, 장애인서비스권리확보와공공성쟁취를위한공동행동은 4일 보건복지가족부 앞에서 ‘장애인활동보조 연령제한철폐 촉구 기자회견’을 열었다. ⓒ2009 welfarenews
▲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한국장애인자립생활센터협의회, 장애인서비스권리확보와공공성쟁취를위한공동행동은 4일 보건복지가족부 앞에서 ‘장애인활동보조 연령제한철폐 촉구 기자회견’을 열었다. ⓒ2009 welfarenews

보건복지가족부 장관님께 드립니다.

대한민국의 복지를 관장하는 보건복지가족부 장관님,

복지는 후퇴하지 않는다고 배웠는데 대한민국의 복지는 그렇지 않습니까?
복지가 인간의 최소한의 삶을 보장하는 것이라 할 때, 복지의 후퇴가 개인에게 생존의 위협으로 다가올 것은 필연일진대, 왜 복지부는 장애인복지를 받던 사람을 강제적으로 그보다 불리한 노인복지체계로 전환시켜 개인의 희생을 강요하고 있습니까?

사람을 위한 행정이라고 배웠는데 대한민국의 행정은 그렇지 않습니까?
행정상으로는 작은 오차일지 모르겠으나 장애인의 생명이 달려있는 중대한 문제입니다. 장애인복지와 노인복지 행정이 사람을 제도에 끼워맞추려 개인의 피해를 외면한다면 누구를 위한 복지행정입니까?

65세가 넘거나 되어가는 장애인들이 있습니다.
장애인활동보조를 받으며 생활하던 사람들이 하루아침에 서비스가 끊깁니다. 장애를 가진 노인은 일반적 노인보다 더 많은 서비스를 필요로 한다는 것은 상식일진대, 복지부는 왜 장애인을 인정하지 않고 노인복지체계로 강제적으로 전환시키고 있는 것입니까?

장애인으로 장애인활동보조 이용하며 어렵사리 살아가다, 65세가 되니 하루아침에 갑자기 “당신은 장애인이 아닌 노인”이라며 활동보조가 완전히 끊기고, 수 십 시간이나 부족하고 수 십 만원이나 자부담이 비싼 노인요양보험을 신청하라고 합니다.

애초에 간단한 행정상의 문제였다면 해법도 간단할 것입니다. 65세 이상의 장애인에게 선택권을 주거나, 기존 서비스가 유지되도록 하는 단 한 줄의 장애인활동보조 지침상의 개정이면 될 것입니다.
행여 복지부가 장애인의 존재와 장애인의 권리를 인정하지 않고, 복지행정을 개인의 삶보다 우선으로 여기고, 장애인의 삶의 고통을 대수롭지 않은 것으로 여긴 문제가 아니길 바랍니다.
혹은 최근 장애인장기요양제도를 준비하는 과정에서도 보여지듯, 행여 장애인활동보조의 개악을 준비하면서 벌써부터 장애인의 삶을 후퇴시키는 연습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묻고 싶습니다.
문제가 어디에서 기인했건 지금 당장 시정되어야 합니다. 사람의 목숨이 달려있기 때문입니다.
사망사건만 목숨이 달린 문제가 아닙니다. 가족들의 부담으로 시설에 보내지고, 가정이 파탄나고, 하루종일 집밖을 못나와 갇혀사는 삶, 그 모두가 더 없이 중대한 사람의 목숨이 달린 문제들인 것입니다.

장관님! 잘못된 행정으로 인해 고통받는 장애인의 현실을 직시하시기 바랍니다.
활동보조서비스를 절실히 필요로 함에도 예산상의 혹은 행정상의 이유로 받지 못하고 있는 중증장애인들이 있습니다. 여전히 부족한 서비스시간에 자신의 삶을 끼워맞추어야 하는 중증장애인들이 있습니다.
그나마 있던 서비스를 잘라내는 권위적 행정이 아니라, 필요로 하는 장애인에게 필요한 만큼 권리로 보장되는 장애인활동보조, 서비스 대상과 시간을 확대하여 장애인의 삶을 개선시키는 제도를 간절히 원합니다.

2009년 8월 4일에 드립니다.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 한국장애인자립생활센터협의회 / 장애인사회서비스 권리확보와 공공성쟁취를 위한 공동행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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