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메트로, 휴먼 발전소
서울메트로, 휴먼 발전소
  • 김호중
  • 승인 2010.09.02 01:4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천경례 역장(오른쪽)과 사랑의 쌀독에 대해 의논중인 안치문 주임(왼쪽) ⓒ2010 welfarenews
▲ 천경례 역장(오른쪽)과 사랑의 쌀독에 대해 의논중인 안치문 주임(왼쪽) ⓒ2010 welfarenews
서울메트로 정연수 노조위원장이 기증한 안성맞춤쌀, 서울메트로 노조는 1노1촌운동을 추진하고 있는데 이 쌀은 이 운동의 결실중 하나, 정 위원장은 최근 외부 강연료 전액을 사랑의 쌀독에 쌀로 채웠다. ⓒ2010 welfarenews
▲ 서울메트로 정연수 노조위원장이 기증한 안성맞춤쌀, 서울메트로 노조는 1노1촌운동을 추진하고 있는데 이 쌀은 이 운동의 결실중 하나, 정 위원장은 최근 외부 강연료 전액을 사랑의 쌀독에 쌀로 채웠다. ⓒ2010 welfarenews

지난해 장마철, 서울메트로 당산역에서 어느 장애인이 엘리베이터 고장으로 곤혹스러운 일을 당했다는 제보가 있었다. 확인결과 폭우로 인해 해당 시설이 고장 나 있었고, 전동휠체어를 탄 제보자가 폭우를 맞는 등 천재에 가까운 상황에서 불편한 상황이 발생하여 당산역 서비스 현황을 둘러본 적이 있었다.

당시 필자의 기억으로 서울메트로의 역무원들은 고객만족을 위해 다양한 아이디어를 수집하고 있었고, 역무자동화의 일환으로 역 매표소가 폐쇄됐고, 대신 역무원들은 게이트주변으로 근무지가 바뀌어 다소 어눌하고 어색한 그들만의 인사가 시작됐었다.

그랬던 그들이 달라졌다. 억지미소가 편해졌고, 뻣뻣했던 허리와 고개의 힘이 빠지고 친절한 기운이 맴돌고 있었다. 지난 1년 동안 그들에게 어떤 일들이 있었는지 한 역무원의 삶을 통해 지하철의 오늘과 내일을 들여다보았다.

필자를 맞이해준 사람은 당산역 안치문(42세)주임. 미소 왕으로 선발될 만큼 넉넉한 안씨는 지난해 개설된 사랑의 쌀독 때문에 천경례 역장과 대책회의를 하던 중이었다.

▲사랑도 역사가 있어야 깊어진다

곰두리복지재단(회장 최규옥)과 함께 2009년에 시작한 사랑의 쌀독은 여전히 여러 사람과 단체의 정성으로 채워지고 있었다. 최근에는 지하철 9호선 당산역에 근무하는 지하철 수사대 심우정 경사와 동료들이 매월 한가마, 당산교회(당회장 이정곤 목사) 한 가마씩 기증하고 있고, 서울메트로 정연수(53세)노조위원장이 받은 외부강연료 전액을 내놓아 스무 가마, 사랑밭에서도 최근 백미 20가마를 기탁하는 등 다행히도 쌀독이 마르지 않고 있다. 이처럼 기탁된 쌀은 채우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 쌀이 꼭 필요한 분들에게 소중히 전달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안 씨는 힘주어 말한다. 어떤 노인들은 커다란 가방을 들고 와 쌀독을 거덜 내고 가신단다. 그럴 때면 속상하기도 하고 오죽 없으면 그럴까하며 스스로를 위로하기도 한다. 지금은 소봉투에 담아 드리고 있다. 지난 1년 동안 당산역 사랑의 쌀독에서 나누어준 쌀은 약 3만 명분. 안씨는 “사랑도 역사가 있어야 깊어진다”며 사랑의 쌀독이 메마르지 않는 비결을 들려줬다.

 

역무원으로서 늘 행복했다던 안치문 주임. 사진기 앞에 그의 미소는 화려하지 않았다.  ⓒ2010 welfarenews
▲ 역무원으로서 늘 행복했다던 안치문 주임. 사진기 앞에 그의 미소는 화려하지 않았다. ⓒ2010 welfarenews

▲매 맞고도 기쁜 역무원

안씨는 1993년도에 입사했다고 한다. 올해로 만 17년 근무. 철도원으로서 짧지 않은 근무기간임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주임이다. 늦은 밤 시간의 경우 취객들이 많은데 이들에 대한 추억을 물었다. 안 씨의 나지막한 목소리, “사실 술 취한 승객들에게 역무원들이 많이 맞습니다. 저 또한 승객들의 귀가를 돕겠다고 깨웠다가 몇 번을 맞았는지 모릅니다. 고의로 때린 게 아니기 때문에 맞으면서도 집에 잘 돌아갈 수 있도록 택시까지 태워드린 적이 많습니다. 그래도 나중에 찾아와 덕분에 집에 잘 갔다고 인사하며 자신의 실수를 사과하는 분들이 더러 있어 맞으면서도 보람을 느낄 때도 있죠”

▲여권 들고 달려라

안치문씨는 근무 중 여권 분실한 고객과 얽힌 사연이 많다. 홍대입구역에 근무하던 시절, 어느 외국인이 여권든 가방을 지하철 차량에 두고 내려 역무실을 황급히 찾았다. 여권이 없으면 이 외국인은 자기나라로 제시간에 가지 못할 판. 안 씨는 중앙사령부터 해당차량이 통과할 만한 역사에 연락을 취해 1시간 만에 여권을 찾아 주인에게 되돌려줬다. 서울메트로 직원들의 세트플레이가 외국고객에게 큰 도움이 된 것.

또 한 번은 영등포구청역에 근무하던 때인데 한 고객이 여권이 든 가방을 차량에 두고 내렸다는 전갈을 받았다. 안 씨는 이때도 마찬가지로 고객을 먼저 공항으로 보낸 뒤 여권을 찾아 공항까지 달려가 전달해줬다.

▲당산역 블로거

안 씨는 블로거다. 당산역 블로그를 만들어 당산역 주변 경치를 소개하고 있고 각종 문화계소식을 전달하는 역할도 한다. 당산역 블로그에는 200명이 넘는 이웃이 있고 정감 묻어나는 글마다 공감글들이 댓글로 빼곡하여 제2의 정거장 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있다. 최근 당산역 블로그에는 어느 자원봉사 여대생의 미모에 방문자들이 푹 빠져 있다고 귀띔했다.

▲소원의 벽

당산역에는 의미 있는 긴 벽이 있다. 즉 당산역에서 한강둔치까지 건너갈 수 있도록 조성한 연육교가 매력물로 평가 받는 것. 안 씨는 이 연육교를 매일 왕복하면서 지하철 고객들에게 제공할 수 있는 콘텐츠가 무얼까 연구 중이다. 안씨는 “그룹 소녀시대의 소원을 말해봐가 히트 칠 때, 이 벽이 단순한 낙서를 넘어 희망, 사랑, 나눔, 열정, 봉사정신이 그려진다면 또 하나의 명소로서 보다 많은 고객을 창출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만약 이 아이디어가 현실화된다면 소녀시대친구들이 방문해 메시지를 남겨주면 더 좋겠죠”라며 그의 소원을 털어놨다.

 

 지난해 가족들과 함께 등정한 덕유산 향적봉. 안씨는 가족간 화목이 중요한 만큼  보다 겸손한 마음으로 친절한 쌀집아저씨로서 소임을 다하겠다고 다짐했다. ⓒ2010 welfarenews
▲ 지난해 가족들과 함께 등정한 덕유산 향적봉. 안씨는 가족간 화목이 중요한 만큼 보다 겸손한 마음으로 친절한 쌀집아저씨로서 소임을 다하겠다고 다짐했다. ⓒ2010 welfarenews

필자는 지난해 서울메트로의 역무자동화과정을 보면서 자동화 기기들에게 일자리를 빼앗긴 역무원들이 설자리가 걱정됐었다. 하지만 지하철을 이용할 때 마다 유심히 지켜보는 항목인 이들의 표정변화는 지난 1년 전 보다 훨씬 밝아져 있었다.

서울처럼 인구밀도가 높은 도시 지하철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다. 당산역 안 씨처럼 승객들의 안전과 친절서비스가 너무도 당연하여 새삼스레 강조할 필요도 없다.

하지만 익명사회가 강화되고 인간성이 상실된 소식들이 뉴스의 중심을 차지할수록, 안씨 같은 쌀집아저씨들의 미소가 자동화 기기를 초월한 체온계역할을 하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