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 welfare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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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나모테크는 전자부품 조립제조회사이자 현대자동차, 기아자동차, 대우자동차 업체 전장 쪽을 조립하는 회사입니다. 핸즈프리, 하이패스 단말기, 내비게이션 등을 생산하고 있습니다.

지체장애 2급으로, 직장생활하기 전에 다리 수술을 한 번 했고, 또 한 직장에 10년 정도 다니고 나서 다시 한 번 수술했습니다.
어릴 적 어머니는 연세가 많으셔서 셋째누나가 가방도 들어주고, 어떨 때는 업고 다니면서 많은 도움을 줬습니다. 제가 초등학교에 들어갈 때 셋째누나는 5학년이었습니다.
누나가 2년 후에 중학교를 가게 됐는데, 저는 계속해서 초등학교에 다녀야 됐죠. 제가 ‘혼자 다닐 수 없으니까 학교를 그만두겠다’고 이야기했는데 누나가 ‘다녀라’고 말했고, 초등학교·중학교를 혼자 다니면서 마칠 수 있었습니다.

고등학교에 들어갈 때 누나가 ‘네가 벌어서 먹고 살 수 있는 일을 해야 되지 않겠느냐’며 서울로 갈 것을 권유했습니다. 무작정 가방만 싸서 서울로 누나를 따라왔죠.

단칸방 하나를 얻어서 실업계 학교에 입학해 공부했고, 대학교도 들어갔습니다. 누나는 직장생활하면서 본인은 먹지도 쓰지도 않고 저에게 다 쏟아 부었습니다.

대학교를 졸업한 뒤에는 직장생활을 해야 하는데, 당시 직장을 구하는 것조차 힘들었습니다. 큰 전자회사에 취직하려고 면접에서는 거의 합격이었지만, 실기 쪽에서 앉았다 일어나는 등을 제가 못하니까 불합격돼 좌절을 많이 했습니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서 취업광고가 난 전단지 및 신문지를 수거해서 보기 일쑤였습니다.
그러다 방배역 근처에 있는 중소기업 공채 시험을 봤는데, 필기도 붙고 실기도 붙었습니다. 그리고 그 회사를 10년 동안 다녔죠. 최우수모범상까지 받으며 열심히 일했는데, 어느 날 노동조합이 설립됐습니다. 노조가 설립되면서 회사가 어려워졌고, 우여곡절 끝에 회사를 떠나게 됐죠.

회사를 나와 작은 공장에서 조립과 관련된 일을 했는데, 사장님이 6개월 만에 사업을 접었습니다. 할 일이 없게 된 것이죠. 그때쯤 뻐꾸기시계를 생산하는 일을 했는데, 그것 또한 1년도 채 못 돼 협력회사가 부도났습니다.

집 한 채 있는 것도 넘어간 상태에서, 공장에서 서너 명의 직원과 남은 1,000대분 자재를 활용해 만들어 각 지방 재래시장에 나가 판매했죠. 현수막을 차에 붙여놓고 뻐꾸기시계를 팔아서 2~3개월 만에 2,000만원 정도를 판매했습니다.

이렇게 번 돈과 어머니께 빌린 돈을 갖고 집을 하나 마련했습니다. 그리고 또다시 사업을 시작했죠.

그때 칩마운터, 자동차 쪽에 관련된 자동화 시스템으로 일하는 것을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이 경험이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습니다.

SMT 장비를 그때 한 4억 주고 예약했고, 1999년도 12월 30일날 자재가 들어왔어요. 그때가 INF 때쯤인데, 거의 3개월 정도 일이 없었습니다. 주문도 없는 상태에서 장비를 들여놓은 것이죠.

한 회사에 ‘한 번 우리가 만들 100만원어치의 물량을 줘봐라, 품질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그 다음부터 주지 않아도 좋다’고 말했습니다. 그렇게 100만원 정도의 주문을 받았고, 점차 인정받기 시작해 주문수량이 늘어났습니다.

나중에는 주문수량이 많아져 장비를 또 하나 구입했습니다. 그 다음에는 SQ인증을 받으려고 노력했습니다. 임대공장인 데다가 환경 등이 따라주지 못해 인증에 실패했습니다.

인증에 실패하다보니까 1차 밴드에서 자재를 3개월 내 이관하라는 말이 떨어졌습니다. 1차 밴드를 찾아가 ‘사유서를 쓰더라도 공장을 하나 지어서 깨끗한 환경에서 일해보고 싶다’고 말했습니다.
그랬더니 그 회장님이 현대자동차에 들어가서 한 번 해보겠다고 말씀하셨고, 그렇게 해서 다이나모테크가 오늘날에 이르게 된 것입니니다.

저는 남하고는 반대로 일을 많이 했다고 생각하는데, 다이나모테크 사훈도 ‘남과 같이 해서는 남 이상 될 수 없다’입니다. ‘남이 잘 때 나는 일 한다’는 마음을 먹고 열심히 해왔습니다. 그게 성공의 비결이라고 생각합니다.

또한 제 아내에게도 고맙습니다. 제가 회사에서 잘리고 어려웠을 때, 부도가 났을 때, 아내가 ‘좌절하지 마라, 일어서서 열심히 살자’라고 늘 이야기했습니다.
‘차라리 나 혼자만 죽는 게 낫지 않을까’하는 생각도 많이 했었는데, 그때마다 ‘다시 한 번 더 일어서서 해봐라’는 말로 용기를 많이 줬습니다.

앞으로 더 열심히 일해서 이루고 싶은 것은, 노인을 위한 요양원을 만드는 것입니다.

저는 어렸을 때부터 꿈이 사업하는 것이었습니다. 10년 동안 생산·제조 현장에서 일했고, 지금도 열심히 살고 있습니다.
모든 여러분들이 좌절하지 말고 끊임없이 연구하고 노력하면 된다는 생각을 가졌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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