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도에 장애인을 위해 세워진 건물이 있는 것은 알고 있는가? 그 건물의 설립 취지는 장애인의 입장을 모아 보다 효율적으로 국회에 입장을 전하기 위해서이다. 결국, 장애인을 위한, 장애인에 대한, 장애인에 의해 설립된 것이 현재 여의도에 있는 ‘이룸센터’이다.

하지만 설립취지 만큼이나 부합되는 장애인의 입장을 잘 대변하는지는 의문이다. 물론, 장애인의 입장을 대변하기 위해 동분서주하는 활동가들이 많은 현실 내에서 이런 의문을 제시하는 것이 타당한지 판단하기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글을 쓰는 이유는 헌신적인 장애인 단체들 사이에 이단아처럼 장애인의 입장을 대변하기보단 자신들의 이익을 챙기고 장애인의 피땀 어린 투쟁의 산물을 자신의 것처럼 남용하는 단체들이 있어서이다.

한 예로 이룸센터 내에 입주한 한 단체는 장애인의 권익보호는 물론 권익신장을 위한 활동에 항상 소극적인 것은 물론, 길거리투쟁을 함에 있어서도 형식적인 참여, 혹여, 자신들의 얼굴이 찍힐까봐 혹은 창피하다는 이유로 피켓으로 얼굴을 가리고 그 자리에 참석하곤 한다. 더욱이 그들은 장애인의 인권이 무엇인지, 장애인의 어려움이 무엇인지를 알려고도 하지 않고 알고 싶어 하지도 않는다. 다만, 그들에겐 활동가는 돈을 벌기 위한 도구이자 수단으로써 직업일 뿐이다.

심지어 그들에게 기부는 물론, 봉사라는 개념조차 불분명 할 때가 있다. 오히려 자신들이 그곳에서 일하기에 장애인들을 위한 봉사이자, 기부라고 인식하는 듯하다. 사실, 장애인들에게 물질적인 지원도 중요하고 제정적인 지원도 중요하다. 하지만 이에 앞서 더욱 중요한 것은 자신들이 일반인보다 약간 더 불편하고 이러한 불편이 사회제도 등의 문제에 기인된 현상임을 말하고 싶은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장애인 단체들은 단순히, 책상에 앉아서 장애인 인권을 외치고 그들의 권리신장을 위해, 공단이사장 퇴임이나 정치권과 맞물려 정치권의 입장을 대변하기보다 장애인들과 같이 이야기하고 같이 불편함을 공유하는 현실적인 실태 파악이 중요한 것이 아닐까?

우리 사회 속에 장애인의 인권은 인권이란 추상적인 개념보다는 법적 권리로써의 실질적 개념으로부터 접근되어야하고 이를 위해 보다 현장과 가깝고 서로 아픔을 공유할 수 있는 단체들만이 장애인을 대변하길 진정 바란다.

마지막으로 장애인 단체 내에 한 명의 사이비 활동가가 말했던 말을 전하며 이 글을 마친다.

“난 장애인의 인권을 위해 이곳에 있는 것이 아니라 안정적인 임금을 받을 수 있기에 이곳에 있다.”

<이 글은 남도발전연구원 김세현 주임연구원이 welfarenews.net으로 보내온 기고문입니다. 기고의 내용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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