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MPHILL은 지적장애인의 탈시설화에 새로운 대안이 될 수 있을까?
김정하(장애와인권발바닥행동 활동가)
김병용(전북시설인권연대 사무국장)

“공동체의 심장, Karl Konig Hall"

어느 공동체에나 있다는 Karl Konig Hall은 무도회, 공연, 영화상영, 교육실, 각종 파티, 페이스페인팅, 원예, 예능 예술적인 모든 배우는 코스들이 진행되는 곳이다.
이곳을 공동체의 심장이라 소개할 만큼, 그리고 창시자의 이름을 따서 붙일 만큼 이 공간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특히 이곳에선 마을 전체 회의와 공동체가 함께하는 파티 등이 열린다고 하니, 그도 그럴 것 같았다. 우리가 홀에 들어섰을 때 마침 그곳에서는 세명의 스텝이 춤 공연을 연습하고 있었다. 워낙 연습에 집중하고 있어서 무슨 공연이냐고 묻지도 못하고 연수자들은 잠시 넋을 놓고 구경하고 있었다.

언어와 문화적인 동서양의 차이를 극복하고 이해하려 했지만 몇 동작의 춤사위로는 공연내용을 짐작할 수 없었다.
그렇게 구경하면서 이곳에 앉아서 각종 문화예술을 향유할 마을 사람들을 상상했다.

이곳에서 영화를 보고 춤을 추고, 파티를 즐기는 사람들...... 내가 아직 공동체 정신과 그 문화를 이해하지 못해서일까? 집 옆에 작업장, 작업장 옆에 파티장과 영화관, 같은 마을 사람들만을 주로 만나는 일상, 정해진 일과표들이 한국의 비(非) 통합적인 장애인시설과 무엇이 다를까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캠프힐의 삶은 지금 거주하고 있는 지적장애인들의 진정한 자기선택이었을까? 너무 짧은 시간의 방문으로는 이러한 질문들을 해소할 수 없었다. 더욱이 개인적으로는 영어가 짧아서, 지적장애인들과 대화를 나누지 못했다는 것이 아쉽게 남아있다.

 ⓒ2011 welfarenews
▲ ⓒ2011 welfarenews
캠프힐에서 발간하는 소식지들 ; 캠프힐에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주로 수록되어 있으며 회계도 공개되어 있다. ⓒ2011 welfarenews
▲ 캠프힐에서 발간하는 소식지들 ; 캠프힐에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주로 수록되어 있으며 회계도 공개되어 있다. ⓒ2011 welfarenews

“선택과 의사결정이 중요하다, 강요하지 않는다.”

이곳 Delrow House는 약 100명의 사람들이 살고 있다. 그 중에 장애인은 44명, 스텝은 17명, 조수는 15명, 그 외 각 House 스텝의 가족들까지 한 House에 적게는 3~4명 많게는 10명정도가 한 House에 살고 있다고 한다.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비율이 1:2 정도이다. 이는 캠프힐이 단기적으로 오가는 자원활동가가 있기에 가능한 구조가 아닐까 생각한다.

캠프힐에서는 각자 개인이 원하는 서포트를 받을 수 있도록 첫째 선택, 둘째 의사결정의 권리를 중시한다고 한다. ‘선택’은 장애인에게 그동안 전혀 주어지지 않았던 권리였다.
공동체의 실제 운영은 거주 장애인이 아닌 매니저하는 사람들로 굴러가고 있지만, 매니저는 사람들에게 강요하지 않는다. 선택과 자기결정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공동체안에서 ‘관계’란 구성원들 간의 ‘주고 받는’ 관계이지 일방적인 관계는 아니기 때문이라 한다. 그렇다면 한국의 현실은 어떤가? 한국에서의 장애인 시설안의 관계들을 생각해 보았다. ‘시설장>직원>거주장애인’으로 크게 구분할 수 있는 권력구조, 거주 장애인들 안에서도 중증장애인에 비해 경증장애인이 우위에 있거나 정신적 장애인에 비해 신체적 장애인이 우위에 있는 경우가 많다.
관계는 철저하게 권력적 관계를 기반으로 형성되어 있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이러한 관계속에서 지적장애인의 선택과 자기결정을 보장하는 것은 그야말로 세심하고 의무적인 노력없이는 불가능할 것이다.

특히 자유로운 공동체일 경우는 말할나위 없이. 캠프힐에 거주하는 당사자들과의 대화를 하지 않은 상황에서 무엇이 어떻다고 섣부르게 판단하거나 곡해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 캠프힐을 방문한 우리의 결론이었다.
영국에서도 우리처럼 의사결정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장애인들의 자기결정에 관한 오랜 논의가 있었나 보다. 마이클은 최근에 장애인의 의사결정이 강조됨에 따라 ‘의사결정능력에 관한 법률(mental capacity act)’이 통과되었다고 소개했다.

당사자가 의사결정을 할 수 없으면 관련자들이 회의를 통해서 ‘최상의 대안이 무엇이냐’를 논의하도록 한 법률이란다. 영국에 오기전에 미처 공부하지 못한 부분이다. 돌아가서 내용을 채우리라 다짐했으나 이 보고서를 쓰는 지금도 아직 내용을 채우지 못했다. 에구.

흔쾌히 점심식사에 초대해준 마을 사람들, “감사합니다”

아침부터 연수를 챙기는 마이클이 바쁘다. 돌아볼 곳이 대충 마무리되자, Delrow House에 속한 11가구의 House에 우리 연수자 무려 16명을 두명씩 나눠 점심식사에 초대한 것이다. 이렇게 각 집에 나눠져서 식사에 초대받을 줄 몰랐던 연수자들은 캠프힐측의 배려에 깊은 감사를 보냈다. 그러나 막상 한 집에 두명씩 짝을 지어 조를 짜니, 다들 술렁였다.
영어 울렁증이 있는 연수자들은 통역자가 없는 상황에서 어떻게 마주앉아 식사를 해야 하느냐고 아우성이었다.
우리는 훌륭한 국제언어인 바디 랭귀지만을 믿고 각 집으로 신나고 무거운(?) 발걸음을 옮겼다.

내가 간 집은 (아쉽게 사진을 못 찍었는데) 아담한 단층집이었다. 식당 밖으로는 아담한 정원이 펼쳐져 있고, 하우스 페어런츠인 스텝 한분과 독일에서 이제 막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온 두명의 독일여성이 보조스텝으로 자원활동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 집에는 지적장애를 가진 성인남녀 다섯분이 살고 계셨는데, 말도 안 통하는 동양인 손님을 편안하게 맞아주었다.

식사내내 묘하게 도는 긴장감(그건 필시 언어의 장벽 때문이었으리라)이 계속됐지만 끊임없이 작은 대화라도 던지는 그들의 사교성에 감복하고, 애플파이를 애플트리로 잘못 들어 몇 번을 반복해서 물었어도 잘 대답해는 주는 친절함까지......
초면에 찾아온 손님들을 기꺼이 환대해주는 그들에게 거듭 인사를 하고 집을 나왔다. 식사를 마친 연수자들이 다 모였을 때, 각 House마다 대접해 준 음식도 다르고 사람들도 달랐기 때문에 서로 자기가 초대받은 House의 상황을 이야기하느라 바빴다. 물론 영어울렁증이 제일 큰 대화소재였지만.

<한국에 소개된 캠프힐에 관한 책 ; 캠프힐에서 온 편지(2008, 저자 김은영, 출판사 지와사랑>이 책은 특수교사로 일하던 한 여성이 독일 발도르프 교육학을 전공하고, 뉴튼 디 캠프힐에서의 경험을 한국에 소개하는 책자이다. 현재 양평지역에서 발도르프 교육센터를 열어 한국의 캠프힐을 만들어 가고 있다. 
슈타이너 학교 홈페이지 : www.steiner.or.kr
카페 ‘캠프힐에서 온 편지’ : cafe.daum.net/camphiller ⓒ2011 welfarenews
▲ <한국에 소개된 캠프힐에 관한 책 ; 캠프힐에서 온 편지(2008, 저자 김은영, 출판사 지와사랑>이 책은 특수교사로 일하던 한 여성이 독일 발도르프 교육학을 전공하고, 뉴튼 디 캠프힐에서의 경험을 한국에 소개하는 책자이다. 현재 양평지역에서 발도르프 교육센터를 열어 한국의 캠프힐을 만들어 가고 있다. 슈타이너 학교 홈페이지 : www.steiner.or.kr 카페 ‘캠프힐에서 온 편지’ : cafe.daum.net/camphiller ⓒ2011 welfarenews

“공동생산과 공동분배, 그들이 정말 ‘선택’한 것일까”

캠프힐의 구석구석을 살피고, 점심식사까지 초대해 준 Delrow House에 감사를 표하며 우린 다시 20인승 버스에 올라 옥스퍼드로 향했다.

앞서 소개한 책, ‘캠프힐에서 온 편지’를 보면 우리의 짧은 연수를 넘어서는 내용들이 있다. 캠프힐의 정신이나, 그들의 문화를 더 세밀하게 엿볼 수 있다. 우리는 마지막으로 마이클에게 몇가지 질문을 던졌다.
한국의 장애인시설에서도 다 ‘공동체’라고 말하기 때문에 우리는 캠프힐과 영국정부나 비영리조직이 운영하는 장애인시설과의 차이를 알고 싶었다. 그런데 그 차이가 무엇인 것 같냐는 우리 질문이 캠프힐공동체운동을 하는 사람에게는 몹시 불쾌하게 들렸나 보다.

질문을 받는 마이클의 표정부터 경직되었다. 아뿔싸. 어쨌거나 마이클은 단호하게 이야기했다. 영국정부는 ‘공동체’를 운영하지 않는다고. 이 대답은 자신들이 생활하는 캠프힐은 ‘시설이 아니라 공동체’라는 선명성을 단호히 표현한 것이리라.

그러나 한편으로 우리가 방문한 Delrow House도 영국의 시설로 등록되어 영국정부의 지도감독을 받고 있다고 했다. 그래서 CQC(Care Quality Commision) 뿐 아니라 1년에 3개 기관에서 감독을 받는다고 한다.
영국에서 직불제가 도입되자 캠프힐에 거주하는 장애인도 직불제 수당을 받고, 그 수당을 모아서 캠프힐의 생활을 유지하는 체계였던 것이다.

여기있는 거주 장애인들은 재가 장애인서비스의 내용, 예를 들어 이미용, 목욕, 신변처리 등의 서비스에 대해 정부지원을 받고, 이는 한 개인이 5군데 정도에서 받게 된다고 하는데 1년에 4만 2천파운드(8천 4백만원) 정도라고 한다.
이 공동체를 운영하는데 170만 파운드(34억)가 들고 있으며 처음에는 정부지원없이 운영하다가 직불제 도입 이후 거주장애인에 대한 정부지원금으로 캠프힐을 운영한다고 한다.
100명 정도가 생활하는 캠프힐 마을에 1년 운영비가 34억이라니, 한 개인에게 들어가는 지원금이 8천4백만원이라니... 일단 입이 벌어졌다.

그런데 이어 의문이 드는 것은 그렇다면 이 돈을 캠프힐 거주 장애인들이 자신이 속한 공동체를 위해서 자발적으로 내고 공동생산과 공동분배에 동의하느냐, 자발적 의사인 것을 어떻게 확인하느냐 였다.

워낙 공동생산과 공동분배 정신을 이해하지 못하는 문화권에서 살다 온 우리는 ‘공동체 정신’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지 헷갈려하고 있었다. 지적장애를 가진 마을 사람들이 운영에 관련한 회의에 잘 참여하고 있는지, 자유로운 발언권과 결정권이 있는지, 그들의 다른 속도의 소통방식을 인정해 주는 문화인지... 그래서 그들은 정말 ‘선택’했는지...... 캠프힐을 나오면서 꼬리에 꼬리를 무는 질문들로 우리는 더 혼란스러웠다.

“공동체? 캠프힐? 준비없이 찾아갔구나.”

장애가 있다는 이유로 수십년간 자기의사와는 상관없이 시설에 갇혀 수용되었던 시절이 있었고, 이제야 겨우 그들의 자립생활이라는 얘기가 나오고 있고, 실제 탈시설하여 자립생활하는 이들도 있다.
그동안 우리에게 자립생활은 비장애인들이 일반적으로 누려왔던, 시민권적 권리가 보장되는 평범한 삶, 바로 그런 생활들로부터 박탈되어 왔기 때문에 그것을 회복하는 것이었다.
자본주의 사회에 순응하며 이 사회의 시스템에 사로잡혀 비장애인들이 지금껏 살아왔던 삶의 형태를 이제야 조금씩 회복하며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그것으로 다 된 것일까. 지금도 이 사회에 살고 있는 누군가들은 개인의 이익추구와 사유재산을 중시하는 자본주의를 넘어 좀더 나은 삶, 대안적인 삶에 대해 고민하고, 용기있게 시도하는 이들이 있다.

공동체? 캠프힐? 준비없이 찾아갔구나. ‘공동체’에 대한 충분한 고민과 준비없이 캠프힐에 갔구나라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 그리고 하루 잠깐 다녀와서 캠프힐이 어떤 곳인지 판단하는 것 역시 무리가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생각한 것보다 훨씬 더 훌륭한 곳일 수도 있다.
개인만이 잘 살면 되는 우리 현실에서 좀더 공동체적 삶에 대한 실험이 필요한 때인지도 모르겠다.

숙소로 돌아가 평가회의를 하는데 역시나 같은 평가들이 맥을 이었다. 너무 짧은 시간에 본 것으로만 캠프힐을 이야기 할 수 없다는 것. 그래서 농담처럼 이번 연수자 중에서 한명을 남겨 캠프힐에 살다오게 하자는 농담 아닌 농담을 하면서, 우리는 이번 연수에서는 ‘공동체’를 다시 이해하자고 했다.

연수자들 대부분은 시설의 각종 비리와 인권유린에 대해 활동한 경력이 있던 사람들이여서 ‘공동체’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가 있다. 왜냐하면 그런 사건이 벌어질 때마다 운영자들이 내세웠던 ‘우린 공동체인데, 니들이 뭔데 우리 일에 간섭하느냐? 공동체니까 장애인들 수급비도 같이 모아서 쓰고 그러는 거다’라는 항변아닌 항변을 늘 들어왔기 때문이다.
우리는 캠프힐을 바라보는데 있어 우리의 과거 경험을 내려놓고 다시 이해하자고 했다. 한국에서 비록 장애인공동체는 아니지만 변산공동체나 풀무학교나 형성되어 있는 경제공동체들을 떠올리며 이제부터 다시 공부하자고 했다.

2008년도에 탈시설을 주제로 한 웍샵에서 고병권씨는 ‘삶의 고립과 배제에 저항하는 탈시설운동은’ 이제 ‘시설안에 있는 사람을 시설 바깥으로 빼내는 일 이상이 되어야 한다’고 했다.
시설안에서의 삶의 대안으로 국가와 자본에 의존하는 삶이 대안이 될 수는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코뮨’ 즉 ‘함께-함’의 공동체(共動體)를 실험해 보자고 제안한 바 있다. 캠프힐이 그런 모습일까? 우리는 끊임없는 질문들을 이후의 활동속에서 해답을 찾자고 위로하면서 아쉬운 캠프힐의 여정을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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