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 welfare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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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저는 신병치료를 위해 미국에서 생활하고 있습니다. 미국은 장애인이 생활하기에 불편함이 거의 없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이해해주고, 양보하고, 편의를 제공합니다.

제가 장애계에 관여하기 시작한 것은 고등학생 때부터입니다. 청소년적십자 단원에 들어갔는데, 당시 한국전쟁 이후 전후복구사업으로 고아원과 같은 시설들이 굉장히 많았습니다.
이처럼 한국전쟁 동란으로 인해 부수적으로 생긴 곳에 위문을 자주 다녔어요.

일반기능올림픽의 창설일원으로 있었을 때는 기능올림픽을 하다보니까 장애인에게 더 필요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장애인기능올림픽을 창설해서 1981년도 대표 선수를 뽑아 일본으로 갔습니다. 그것이 계기가 돼 한국장애인재활협회 이사로 들어가게 됐고, 서울장애인올림픽 사무총장까지 맡게 됐습니다.

처음에는 ‘장애인이 무슨 스포츠를 하느냐’는 소리를 많이 들었죠.
올림픽을 해도 국민들이 무관심했고, 세계장애인을 모아 대회를 여는 것인데 편의시설 등 한국의 상황을 살펴봤을 때 어려울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람들이 경기장과 숙소를 쓰자고 해도 허락해주지 않았어요. 굉장히 고생했습니다.

화려하고 커야 국민들도 관심을 갖습니다. 선진국이어서, 복지가 잘 돼 있기 때문에 서울장애인올림픽을 개최한 게 아니라 너무 안 돼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이런 것을 계기로 보고 듣고 느끼면 달라질 것이라는 기대감이었죠. 이후 장애인도 자부심을 갖고, 국민들의 장애인에 대한 이해도도 높아졌습니다. 1989년에는 서울장애인올림픽위원회가 구성됐고 집행위원장을 지내게 됐습니다.

지금을 보면 ‘격세지감(隔世之感: 오래 지나지 않았으나 세상이 예전과 크게 달라졌다고 여겨지는 느낌이라는 뜻)’입니다. 옛날에는 장애인선수를 구하러 다녔고, 훈련장도 없어 강당 같은 곳에서 먹고 자고 했습니다.

스포츠는 의지가 약하면 안 되고, 노력을 안 하면 안 되고, 땀을 흘리지 않으면 안 됩니다. 장애인에게는 교육재활과 직업재활과 같은 여러 가지 재활이 있지만, 신체적·정신적 재활이 우선입니다.

장애인 당사자도 자신의 전공을 살려야 됩니다. 서울장애인올림픽이 끝나고 미술과 문학 이 두 가지를 대회에서 검열해보니까 20회가 됐습니다.
비장애인과 견줬을 때 신체적인 불편은 있어도 능력의 차이는 없기 때문에, 자꾸 개발하고 전문화해서 사회에 떳떳하게 참여해야 됩니다. 특혜 받아도 아무 소용없습니다.
그것은 그때뿐이니까요. 이러한 정신이 올림픽 및 스포츠가 주는 정신입니다.

단체들끼리도 티격태격할 필요가 없습니다. 모든 장애인의 바람으로 대한장애인체육회가 문화체육관광부로 가게 됐듯이, 협동하고 합심하면 뭐든지 이룰 수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언론매체의 역할도 절대적으로 중요합니다. 장애인에 대한 이해를 높이고, 장애인이 갈 길과 해야 될 일을 알려야 하죠. 언론매체를 통하지 않고서는 그러한 것들이 널리 보급되기 어렵습니다.

다행히 복지TV WBC가 생겼습니다. 이것 또한 획기적인 변화이자 발전이라고 봅니다. 그만큼 복지TV WBC 역시 사명감이 크다는 생각으로 장애인과 더불어 편하고 즐거운 사회를 만드는 데 많은 역할을 하리라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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