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큰 명절 설을 맞이해 많은 사람들이 선물을 마련하고 고향에 내려가기 위해 준비하는 등, 본격적인 새해를 맞이한다는 설렘을 안고 바쁘게 움직인다.

특히 최근 기록적인 한파로 온라인 쇼핑몰에서는 보온성 좋은 설빔 매출이 지난해보다 2배 늘었다는 기사가 눈에 띈다.
날씨가 추운만큼 사람들의 오고가는 손길은 두 배 이상 훈훈해졌다지만, 그 속에서도 찬바람을 고스란히 맞으며 홀로 설을 보내야하는 사람들이 있다.

“잠들기 전에는 내일 아침에는 눈을 뜰 수 있을까 걱정해. 갑자기 내가 죽어도 찾아올 사람이 없잖아.” ⓒ2011 welfarenews
▲ “잠들기 전에는 내일 아침에는 눈을 뜰 수 있을까 걱정해. 갑자기 내가 죽어도 찾아올 사람이 없잖아.” ⓒ2011 welfarenews

365일 아무도 모르게 죽을까봐 뛰는 가슴… 명절에는 더 먹먹해

김순이(가명, 여·65·지체장애 4급)씨는 서울시 영등포구에 위치한 조그마한 상가를 개조한 한 집에서 혼자 살고 있다.
상가가 잘 운영되지 않아 대충 벽과 창을 만들어 세를 내놓은 집으로, 얼마 전에는 누군가 돌을 던졌는지 유리창이 깨져 종이를 덧발라 급한 대로 바람을 막았으나 냉기를 막기에는 역부족이라고.

현재 김씨는 기초생활수급자로 정부로부터 월 38만 원과 장애수당 3만 원을 받고 있다. 여기서 월세 20만 원과 공과금을 빼면 김씨에게 남는 돈은 15여만 원, 김씨는 이 돈으로 한 달을 ‘버텨야’ 한다.
그나마 복지기관·단체에서 이뤄지고 있는 무료식사·도시락서비스, 목욕서비스 등이 있었기에 망정이지 이마저도 없으면 도저히 생활할 수가 없다.

“기름보일러를 뗄 엄두가 나지 않아. 어제도 너무 추워서 온몸을 웅크리고 잤더니 여기저기가 쑤셔.”라는 김씨는 2년 전 눈길에 넘어지는 사고로 척추가 내려앉아 고관절(인공관절) 수술과 함께 지체장애 4급 판정을 받았다.

김씨의 건강상 문제는 이것만이 아니었다. 김씨는 치아가 4~5개 밖에 남지 않아 음식물을 혀를 이용해 거의 삼키는 수준이었다.

무료치과진료소에 가 무료틀니를 하려 했더니 남은 치아를 모두 빼야 한다고 해서 뺐지만, 순서가 밀리는 바람에 ‘잇몸’으로 식사를 하고 있었으며, 갑상선에 천식, 고혈압, 건선도 앓고 있어 주기적인 병원치료 및 면역억제제를 먹어야 한다고.

이런 상황에 대해 김씨는 ‘해 뜨는 것도, 해 지는 것도 무섭다’고 털어놨다.

“아침에 눈을 뜨면 오늘 하루는 어떻게 무사하게 넘어갈까 생각하고, 잠들기 전에는 내일 아침에는 눈을 뜰 수 있을까 걱정해. 갑자기 내가 죽어도 찾아올 사람이 없잖아…….”

구청에서 방문관리를 나오는 간호사의 손길도 아쉽기만 하다. “한 달에 한 번, 주기적으로 와줬으면 좋겠어. 1년에 두세 번 와서 혈압을 쟤고 피검사하는 게 끝이야. 아프다고 하면 와서 파스 한 장 던져주고 가면 끝나.”

김씨의 하루는 어떨까. 그는 아침에 일어나 병원을 가고 무료식사로 점심을 해결한 뒤, 근처를 운동 삼아 돌아다닌다. 오후가 되면 저녁끼니가 될 도시락을 받아 집으로 돌아와, 유일한 대화상대인 텔레비전을 보거나 책을 보다가 잠이 드는 게 쳇바퀴 돌듯 똑같은 일상이다.

‘친구를 만나지 않느냐’는 질문에 김씨는 ‘없다’고 잘라 말했다.
김씨는 “나도 그렇지만 나와 비슷한 환경에 놓인 사람들은 자기 테두리 안에서 살게 돼. 대인관계에서 더 쉽게 상처 받기 때문에 쉽사리 남들과 친해지지 못하는 거지.”라고 고백했다.

특히 설날 같은 명절에는 그나마 시간을 보낼 수 있는 복지기관·단체도 쉬기 때문에 더 외롭고 가슴 먹먹하다고.

김씨는 “어쩌다 밖에서 술이라도 한 잔 마시게 되면, 사람들이 ‘저 사람은 기초생활수급자인 주제에 내가 낸 세금으로 술이나 먹고 논다’며 손가락질 해. 그런 날에는 마음이 아파 밤새 잠을 못 이뤄. 나도 한 때는 세금을 내며 생활했던 사람인데…….”라며 눈시울을 붉혔다.

김순이씨는 복지기관·단체에서 제공하는 무료식사·도시락서비스 등을 이용한다. 명절에는 이마저도 쉬어 더 외롭고 가슴이 먹먹하다고 전했다. ⓒ2011 welfarenews
▲ 김순이씨는 복지기관·단체에서 제공하는 무료식사·도시락서비스 등을 이용한다. 명절에는 이마저도 쉬어 더 외롭고 가슴이 먹먹하다고 전했다. ⓒ2011 welfarenews

최근 김씨의 걱정이 하나 더 늘었다. 1월경 집주인이 건물을 판다며 방을 비어달라고 했기 때문에 한 달 가까이 다른 방을 알아보러 돌아다녔지만 구하지 못했다. 그야말로 언제 쫓겨날지 모르는 상태에 놓이게 된 것.

김씨는 “방을 비우라는데 별 수 있나. 알아보고 있다고는 말했지만, 사실 어디로 가야될 지 막막하지…….”라며 말끝을 흐렸다.

영등포구장애인사랑나눔의집 김금상 원장은 “최근 독거노인이 죽은 지 며칠이 지나서야 발견되는 사건이 늘고 있다. 앞으로 이러한 사건·사고는 더 많아질 것이다. 노인은 신체적·정신적 노화로 돌봄이 필요하나, 독거노인이 아니더라도 자식들의 돌봄을 받지 못한다. 때문에 적어도 이틀에 한 번은 방문하고 이상이 생기면 보고할 수 있게끔 방문관리 서비스를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한 “현재 노인일자리사업은 단기적인데, 고령화시대에 대비해 노인이 안정적으로 일할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져야 할 것.”이라고 제언했다.

“탈시설하고나서 제일 좋은 점을 꼽으라면 누구한테 간섭받지 않고 내 생활을 ‘마음대로 할 수 있다’는 거예요.” ⓒ2011 welfarenews
▲ “탈시설하고나서 제일 좋은 점을 꼽으라면 누구한테 간섭받지 않고 내 생활을 ‘마음대로 할 수 있다’는 거예요.” ⓒ2011 welfarenews

20년 시설생활 벗어난 김진수씨, ‘이번 설에는 손자손녀도 온대요’

20여 년간 장애인생활시설에서 생활하다 지난 2009년 ‘탈시설 권리’를 주장하며 지역사회로 나온 김진수 (남·62·지체장애 1급)씨의 이번 설은 아주 특별하다.

지난해 6월부터 서울시 화곡동에 위치한 서울시 자립생활체험홈에서 생활하고 있는 김씨는 이번 설을 맞아 그동안 ‘가슴에만 묻고’지내던 가족과 함께할 수 있기 때문.

“설을 맞아 두 딸과 큰사위, 그리고 큰딸 뱃속의 5~6개월 된 예비 손자손녀가 올 예정.”이라며 한껏 부풀어 있는 김씨는 예비 손자손녀를 위해 유모차와 옷 한 벌을 첫 선물로 안겨줄 계획이다.

“지난해 추석 때 큰애가 임신해서 못 왔다고, 이번 설에 오겠대요. 오다가 행여나 접촉사고라도 날까봐 겁나서 오지 말라고 했더니만 지난해 추석에도 못 갔는데 이번에도 어떻게 안 가냐고 해요. 작은애는 나를 닮아서 내성적이라 그런지 말을 잘 안 해요. 나는 이제 투쟁도 하고 그러다보니까 성격이 많이 변하기는 했죠. 어쨌거나 내가 먼저 연락하면 잘 지낸다고 하니까 고맙죠.”

작은딸이 결혼하는 것만 보면 더 이상 바랄 게 없다는 김씨. 그는 5년 전 시설에서 우연한 기회에 어떤 사람을 통해 딸과 연락이 닿았고, 현재까지 만남을 유지하고 있다.

김씨가 가족과 떨어지게 된 계기는 1987년 수영장에서의 사고 때문.
젊은 나이에 내 집을 마련할 만큼 ‘승승장구’하던 김씨는 여름을 맞아 가족들과 수영장에 놀러가 당한 사고로 인해 경추 5·6번을 크게 다쳐 지체장애 1급 판정을 받았다.

그해 겨울, 김씨는 다섯 살이 된 큰딸에게 ‘꽃이 예쁘게 필 때 돌아오겠다’는 말을 남기고 집을 나왔고 부인과는 이혼했다. 이후 김씨의 형이 마련해준 공간에서 지내다가, 혼자 생활하는 것 자체가 힘들어지자 시설에 자진 입소했다고.

“처음 들어간 시설은 산속이라 더 답답했죠. 주말에도 저녁 아홉시만 되면 머리수 세고, 개인 소지품 검사하고, 군대식으로 점호를 해요. 한 20일 지났나, 온몸이 춥고 떨리고 너무 아픈 거예요. 알고 보니까 소변팩 호스 소독을 제대로 하지 않아 방광염은 물론 온몸에까지 염증이 생긴 거예요.”

염증 치료를 위해 시설에서 나와 병원생활을 보내던 김씨는 1989년 경기도 김포시 석암베데스다요양원에 들어가, 20년간 시설에서 생활했다.

‘시설에서는 명절을 어떻게 보냈냐’고 묻자 김씨는 ‘명절이라고 다르지 않다’고 말했다.
김씨는 당시 상황을 “손님과 후원은 많이 오는데, 먹는 것은 거의 똑같아요. 반찬에서 쉰내도 나고, 우유대신 분유를 물에 풀어서 소금으로 간 맞춰 끓여주고……. 설날이나 돼서야 떡국 좀 나오고, 쌀밥이랑 고기반찬 해주는 거지. 손님 오면 손님하고 교회 가고, 오후에 모여서 윷놀이 하고……. 보던 것만 보고, 듣던 것만 듣고, 다람쥐 쳇바퀴 돌듯이 그렇게 보냈지…….”라고 회상했다.

2009년 6월 17일. 시설에서 생활하는 중증장애인이 지역사회에서 살 권리를 주장하며 노숙농성 등을 진행한지 15일째 되던 날. ⓒ2011 welfarenews
▲ 2009년 6월 17일. 시설에서 생활하는 중증장애인이 지역사회에서 살 권리를 주장하며 노숙농성 등을 진행한지 15일째 되던 날. ⓒ2011 welfarenews

“탈시설해서 제일 좋은 것은 누구한테 간섭받지 않고 내 생활을 ‘마음대로 할 수 있다’는 거예요. 아침에 일어나서 먹고 싶을 때 밥 먹고, 제때 병원에 가고, 만나고 싶은 사람 만나고, 가고 싶은 곳에 가고, 인터넷으로 세상 돌아가는 소식도 보고, 고스톱도 하고, 영화도 보고, 일기도 쓰고……. 여기에 있으면 하루가 금방 가요.”

서울시 자립생활체험홈은 최대 5년까지 연장할 수 있다. 이 때문에 김씨도 조만간 다른 곳으로 옮겨야 한다.

현재 국민임대아파트를 알아보고 있는 중이라는 김씨는 “당장은 여유가 없어 장애인 자립생활을 위한 활동을 열심히 하는 것 외에 다른 것은 없어요. 자립생활하기를 원하는 장애인들이 좀 더 원활하게 자립생활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뜻에서죠. 훗날 안정된 보금자리가 생긴다면, 길에서 많은 사람들과 부대낄 수 있는 자그마한 장사를 해보고 싶어요.”라고 소망을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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