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등 장애계단체 활동가 10여명은 지난 12일 뇌병변 장애등급 판정기준 연구결과 공청회장을 점거하고 장애등급판정 전면 폐지를 요구했다 ⓒ전진호 기자 ⓒ2011 welfarenews
▲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등 장애계단체 활동가 10여명은 지난 12일 뇌병변 장애등급 판정기준 연구결과 공청회장을 점거하고 장애등급판정 전면 폐지를 요구했다 ⓒ전진호 기자 ⓒ2011 welfarenews
뇌병변장애인의 장애등급 판정기준을 놓고 또 다시 논란에 휩싸일 전망이다.

대한재활의학회와 보건복지부는 지난 12일 서울 여의도 이룸센터 누리홀에서 ‘뇌병변 장애등급 판정기준 연구결과 공청회’를 개최할 예정이었으나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등 장애계 단체 활동가들에게 막혀 무산됐다.

이날 공청회는 변화된 장애등급 재판정 기준으로 인해 뇌병변장애인의 상당수가 등급하락하는 문제가 지난해 국회 예산안 심의과정에서 지적되자 복지부는 ‘전면수정’을 약속하며 대한재활의학회 측에 연구 용역을 의뢰했다.

대한재활의학회 장애평가위원회가 발표한 개선안에는 ▲수정바델지수 점수를 등급별로 현행기준보다 2~15점 각각 상향 조정 ▲편마비 등 특정조건에 해당하면 수정바델지수와 관계없이 특정 등급으로 판정할 수 있도록 하는 등의 내용을 담았다.

이에 따라 기존 0~24점을 받아야 했던 1급 장애판정을 0~32점으로 완화하는 안을 내놓았으며, 25~39점인 2급은 33~53점으로, 40~54점인 3급은 54~69점으로 각각 조정했다.

중증장애인 “비합리적 연구 및 결정이기 때문에 공청회 막을 수밖에 없어”
대한재활의학회, ‘공청회 무산 선언’...복지부 ‘별도 공청회 없이 의견수렴만’

이에 대해 공청회장을 점거한 중증장애인은 “뇌병변장애인에게만 적용하는 것이 부당하다고 지적된 수정바델지수는 그대로 둔 채 삭제해야 할 항목인 배변, 배뇨 감각 항목에 높은 점수를 배정하고, 점수를 더 쳐준다는 것은 수정바델지수에 대한 전면수정을 약속했던 것과 거리가 멀다.”며 개선안을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중랑장애인자립생활센터 양영희 소장은 “부모 형제는 없고, 나와 장애 정도가 비슷한 사람이 20년 만에 장애인생활시설에서 나와 자립생활을 하려 했으나, 말을 할 수 있고 숟가락질을 할 수 있다는 이유로 2급 판정을 받았다.”며 “숟가락질 할 수 있고, 혼자 전화를 할 수 있다는 이유로 활동보조서비스를 받지 못한다면 결국 나이 많은 노모나 형제에게 의지하거나 장애인생활시설로 갈 수 밖에 없다. 여기 있는 사람 모두 (복지부 기준으로 보면) 1등급을 못 받는 사람이다. 우리에게 활동보조서비스가 필요 없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 있으면 이야기해보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전국장애인부모연대 구교현 조직실장은 “복지선진국 중 (장애)등급제를 갖고 획일적이고 일률적으로 서비스를 결정하는 국가는 일본과 우리나라밖에 없다. 의학적 등급에 따라 1급이 나오면 활동보조서비스를 받고, 등급이 떨어지면 활동보조서비스는 물론 장애인콜택시 등 일상적인 복지서비스를 받지 못하게 하는 것은 말도 안된다.”라며 “여러분이 학문적인 호기심으로 뇌병변장애인 등급에 대해 연구할 수는 있겠지만 이를 토대로 중증장애인의 삶을 결정하는 것은 말도 안될 만큼 무시무시한 일이고, 비합리적인 연구 및 결정이기 때문에 공청회를 막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어 “뇌병변장애인뿐만 아니라 아이큐(IQ) 점수에 따라 등급을 매기는 지적장애인도 큰 문제.”라며 “34점이 나오면 활동보조서비스를 받을 수 있고, 35점은 받을 수 없다. 또 49점을 받으면 장애인연금을 받을 수 있고, 50점 이상을 받으면 장애인연금을 받을 수 없는데, 이 말도 안되는 기준의 근거는 도대체 무엇인가. 1급 판정을 받았으니 병원에 자주가야 하고, 2급 판정을 받았으니 덜 와도 된다는 결정에는 동의할 수 있겠지만, 지금과 같은 논의는 480만 장애인을 무시하는 처사.”라고 지적했다.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남병준 정책실장 역시 “수정바델지수 몇 점 개선하는 것은 지금 논의할 문제가 아니다.”라며 “1급이면 살고, 2급이면 죽는 게 현실인데 ‘우리는 점수밖에 모른다’고 말하는 것은 기만이고, 이런 공청회를 인정할 수 없기 때문에 이런 방식으로 저지하게 됐다.”며 “우선 장애인서비스 지원체계 개편 기획단에서 구체적인 안이 나올 때까지 장애등급 재심사를 중단한 후 연구와 의견수렴을 거쳐 다시 이야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들 단체의 점거농성이 계속되자 복지부와 대한재활의학회 참가자들은 오전 11시 20분경공청회 무산을 선언했으며, 복지부 측은 별도의 공청회 없이 장애계단체의 의견수렴 등을 거쳐 발표할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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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실 공청회’ 논란...복지부 외압 의혹도 일어
논란 핵심 ‘배변 배뇨’, 11월 4일자 연구안과 12월 30일 연구안 발표자료 달라

한편 토론자로 참석할 예정이었던 뇌병변장애인 인권협회 유흥주 회장은 “공청회 관련 소식을 전혀 알지 못하고 있다가 지난 7일 모 일간지 기자로부터 연락받은 뒤 이에 대해 복지부 측에 항의하자 8일 담당자가 협회사무실에 와서 이와 관련한 내용을 설명해줬으며, 공청회 패널 참석은 9일 메일로 통보받았다.”고 밝혀 ‘부실 공청회’라는 논란도 불거지고 있다.

광진장애인자립생활센터 박홍구 소장를 비롯한 중증장애인 참가자들이 “뇌병변장애인의 생존을 좌우할 중요한 공청회가 장애계에 제대로 홍보조차 하지 않은 채 활동보조서비스가 부족한 토요일 오전에 연 것은 단순한 요식행위로 진행하기 위함 아니냐.”고 의혹을 제기하자 재활의학회 측은 “복지부와 관계없다. 참가자들의 일정을 고려하다보니 주말에 잡힌 것.”이라고 해명했다.

같은 기관에서 발표한 연구 보고서의 내용이 한달 사이에 바뀐 것에 대한 의혹도 도마위에 올랐다.

뇌병변장애인 장애등급 판정기준 중 가장 논란을 빚고 있는 ‘배변 배뇨’에 관한 보고내용이 지난해 11월 4일 대한재활의학회 장애평가위원회가 발표한 연구 보고 내용과 복지부가 뇌병변 장애등급 판정기준으로 삼을 것으로 알려진 12월 30일자 연구 보고서의 내용이 달라진 것.

민주당 박은수 의원실에 따르면 “11월 당시 연구보고서에는 배변 배뇨지표를 삭제하는 안을 내놓았으나 최근 연구안(12월 30일자)에는 ‘배변 배뇨를 제외한 판정안의 경우 과상향의 우려가 있다’며 배변 배뇨지표를 존치하는 것으로 수정됐다.”며 “이 같은 결과는 연구과정에서 복지부의 입김이 있었을 것으로 추측된다.”고 주장했다.

실제로 11월 4일자로 발표된 연구보고서에 따르면 “배변 배뇨를 제외한 20점 정도의 수정바델지수 상향을 기본으로 하고, 스펙트럼의 균열을 이용해 적당한 등급 간 균형을 찾도록 하며, 현행 장애등급의 정의에 합당하면서도 2003년도 뇌병변 장애등급과 크게 차이나지 않는 점수분포를 만들도록 한다.”고 기술돼 있다.

반면 지난 12일 공청회에서 발표한 2010년 12월 30일자 연구보고서에는 “배변 배뇨를 제외한 판정안의 경우, 과상향의 우려가 있으며 실제 뇌병변 환자들에게 다소의 실금이 있는 것을 감안할 때 10점에서 20점 정도의 수정바델지수 상향을 기본으로 한다. 스펙트럼의 균열을 이용하여 적당한 등급 간 균형을 찾도록 하였으며, 현행 장애등급의 정의에 합당하면서도 2003년도 뇌병변 장애 등급과 크게 차이나지 않는 점수분포를 만들도록 한다.”고 내용이 바뀌었다.

이에 대해 장애계단체 한 관계자는 “뇌병변 중증장애인의 생사가 달린 중요한 연구보고서가 (복지부가) 연구용역을 맡긴지 한 달여 만에 만들어져 나온 것부터 납득하기 어렵다. 특히 논란의 핵심이 된 배변 배뇨와 관련한 해석이 뒤바뀐 것은 복지부의 입맛에 맞게 연구보고서 내용이 수정된 것으로밖에 해석할 수 없다.”며 “이에 대한 복지부의 납득가능한 해명이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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