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립생활 중인 정현재 씨의 외출을 위해 이미정 활동보조인이 말려올라간 소매를 내리고 있다. 이씨는 “이용자 옷이 불편한 곳이 있는데도 그냥 다니는 활동보조인이 많다.”며 몇번이고 불편 한 곳이 없는지 확인한다. ⓒ2011 welfarenews
▲ 자립생활 중인 정현재 씨의 외출을 위해 이미정 활동보조인이 말려올라간 소매를 내리고 있다. 이씨는 “이용자 옷이 불편한 곳이 있는데도 그냥 다니는 활동보조인이 많다.”며 몇번이고 불편 한 곳이 없는지 확인한다. ⓒ2011 welfarenews

아침에 일어나 잠자리에 들기까지… 중증장애인의 일상생활은 ‘장애인활동보조인’과 함께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장애인활동보조서비스는 장애등급 1급 장애인 중 일상생활 및 사회활동에 타인의 도움이 필요한 중증장애인을 대상으로 신변처리, 가사지원, 외출이동 등의 서비스를 제공하며, 이에 대한 법적 근거로 ‘장애인활동지원법’이 마련돼 오는 10월부터 시행할 예정이다.

하지만 활동보조서비스를 제공하는 활동보조인에 대한 처우개선은 여전히 외면 받고 있다. 활동보조인의 시급은 동결상태며, 임금인상은 물론 야간 수당도 없다. 또한 이용자의 사정으로 활동보조를 중단하면 활동보조인은 실업자로 전락하게 되는 어려움 외에도 다양한 문제들을 갖고 있다.

중증장애인 활동보조인으로 활동하는 이미정(여·46) 활동보조인은 “비용이 오르거나, 이용자의 부담이 늘어나면 결국 활동보조인의 일자리도 없어진다. 일자리가 없어지는 것이 가장 큰 두려움.”이라며 “활동보조인이 해야 하는 일이 어디까지인지, 그 적정선도 함께 고민하고, 풀어나가야 할 문제.”라고 말했다.

자립생활을 하고 있는 정현재(남·33·지체장애 1급) 씨의 활동보조인 이미정 씨의 하루는 오전 7시, 정씨의 식사준비로 시작된다.

얼큰한 우거지국이 보글보글 끓고 있는 동안 잠자리에서 일어난 정씨의 용변처리를 돕다보면 아침 식사를 할 시간이다. 이후, 컴퓨터를 통해 일을 하는 정씨 옆에서 가사 일을 도우며 가벼운 농담이나 소소한 일상에 대한 대화를 나누는 모습은 흡사 모자(母子) 지간으로 착각할 정도다.

이씨는 “이용인과 많은 대화를 나누며 만족도에 대해 이야기 하는 것이 서로에게 좋다.”고 말한다. 활동보조인이 최선을 다했다고 생각할지라도, 이용인 마음에 덜 차는 부분이 있을 것이라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3명의 자녀를 키우며 4년여 동안 활동보조인으로 일하고 있는 이씨는 배테랑 주부이자 활동보조인답게 우거지를 다듬으며 다양한 일을 동시에 처리한다. 정월대보름에 먹을 나물을 준비하기 위한 우거지라며 웃음 짓는 그는 “중증장애인 움직임 하나로 활동보조인의 역할이 많이 줄어들 수 있다. 이 때문에 몇몇 활동보조인은 일하기 쉬운 대상자와만 일하려 한다.”며 “이는 활동보조인으로서 자격 미달.”이라고 강조한다.

“어떤 대상자를 만나든지 열심히 덤벼들어야 일을 익힌다. 무슨 일이든 ‘어떻게 하면 좀 더 쉽게 할 수 있을까’ 고민하고, 나만의 노하우를 쌓아야 편하게 일할 수 있다. 어차피 시작한 일이면 적극적으로 해야 하는데, 몇몇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것 같다.”고 안타까워했다.
그렇기 때문에 시급도 등급을 둬 나눠야 한다고도 주장했다.

“힘든 일이든, 그렇지 않든 활동보조인의 급여는 같다. 현재 6,500원을 받고 있는데, 500원은 퇴직금으로 정립되고 있다. 솔직히 장애어린이 활동보조는 크게 힘들 일이 없기 때문에 일하는 것에 비례해 급여 차이가 있어야 한다. ‘어차피 똑같은 돈을 받는데 왜 더 힘든 대상자와 일을 해야 하나’라는 생각으로 일하는 것도 문제지만, 그 전에 활동보조인의 급여 문제에 대한 고민도 이뤄져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활동보조인이 이용자를 편견이 담긴 시선으로 바라보는 것도 문제점 중에 하나로 지적했다.

그는 “몇몇 활동보조인은 ‘넬라톤(Nelaton, 방광에 줄을 넣어 소변보는 도구)’을 사용할 줄 모른다고 한다.”며 “활동보조인이 일하기 쉬운 대상자만을 원하면서 일자리가 없다, 활동보조인은 돈을 벌수가 없다고 한다. 물론 많은 돈을 벌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1~2가지 일만 더 하면 되는데 선입견이 짙은 색안경을 끼고 이용자를 바라보는 것이 가장 큰 문제점.”이라고 말했다.

“이용자는 제대로 된 서비스를 받을 권리가 있으며, 활동보조인은 제대로 된 서비스를 제공해야 하는 의무가 있어요. 하지만 용변처리 후 뒤처리를 말끔히 해주지 않는 활동보조인, 용변을 위해 좌약을 넣었지만 퇴근시간이 다 됐다며 퇴근해 버리는 활동보조인 등 최선을 다하지 않는 활동보조인을 보면 같은 활동보조인으로서 너무 화가 나요.”

이씨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 것은 이뿐만이 아니다. 간혹 홀로 사는 중년의 남성장애인이 여성활동보조인을 성희롱하거나, 이용인의 가족이 활동보조인을 파출부 취급 할 때 속상하다.

그는 “홀로 사는 중년의 남성장애인이 간혹 여성활동보조인에게 ‘가슴을 만지고 싶다’ 등 요구를 할 때가 있다.”며 “인간의 본능이지만, 욕구 해소를 할 수 있는 방법이 없는 것은 이해한다. 하지만 여성 활동보조인의 입장에서는 상당히 충격적이고 기분 나쁘지만, 대책이 없다.”고 말했다.

또한 이용인이 가족과 함께 생활하는 경우, 가족들이 집안일에 대한 요구가 있을 때 활동보조를 어디까지 해야 하는지 기준이 없다. 그래서 정작 이용자는 돌봄 서비스를 받지 못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고.

이씨는 “활동보조를 하기 위해 출근을 했지만, 오히려 가족들이 집안일에 대한 요구를 하면 어디까지 내가 해야 하는지 모르겠다. 이용자를 위해 음식을 해두면 가족들이 다 먹어 정작 이용인은 먹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그러고도 당연하다고 생각한다.”며 “한번은 ‘어차피 돈을 주니까 힘든 일은 당신이 해야 한다. 나는 부모인데 내가 왜 힘든 일을 해야 하나’라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상당히 불쾌했다.”고 자신의 속마음을 내비쳤다.

지난해 열린 한 토론회에서 보건복지부는 “활동보조인의 노동권 보장을 위해 ‘일자리의 안정성’이 가장 큰 관심사지만, 쉽게 답하기 어렵다. 앞으로 합리적인 조정을 고려하도록 하겠다.”고 답한 바 있으나 감감무소식이다.

이런 문제는 활동보조인 뿐만 아니라 요양보호사에게도 대두되고 있으나, 근본적인 해결책은 강구되지 않고 있다. 결국 이러한 문제들은 이용인에게 전달되는 서비스의 질에도 영향을 미치게 된다는 것이 활동보조인들의 주장이다.

한참 이야기 하다 보니 점심시간이 훌쩍 넘었다. 이용인 정현재씨가 워낙 규칙적인 생활을 하기에 12시에 점심을 먹어야 하지만, 이야기에 열중하느라 점심시간을 넘긴 것이다.

오후 외출시간도 맞춰야 하기에 급하게 점심식사 준비를 하던 이씨는 “활동보조의 뜻을 잘 모르는 이용자가 있다.”고 운을 띄웠다. 활동보조인이 찾아오지만, 확실히 무슨 일을 하는 사람인지 몰라 불편사항이 있어도 이용인이 그냥 넘어가며, 활동보조인은 이용인이 말을 하지 않았다고 해서 자신의 역할을 다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한번은 활동보조인이 이용인의 용변처리 후 뒤처리를 하지 않아 장애인이 불편함을 느꼈지만 계속 참았다고 한다. 하반신이 마비돼 느낄 수 없다고 대충하는 활동보조인을 보면 답답함을 느낀다. 전문성을 스스로 깎아먹는 행동.”이라고 말했다.

점심을 먹으면서 정월대보름에 친구를 초대하자며 어떤 찌개를 끓일까 물어보는 이씨는 영락없는 어머니의 모습이다. 이씨는 “출근해서 하는 일과 집에 돌아가서 하는 일이 거의 비슷하다보니 집에서 가족들의 이해 없이는 일하기 힘들다.”고 말했다.

“다른 활동보조인은 집에서 도와주지 않아 힘들다고 해요. 출근해서 하는 일과 집에 돌아가서 하는 일이 겹치는 부분이 있기 때문에 가족들의 배려가 없으면 너무 힘들죠. 다행히 저는 집에 돌아가면 가족들이 많은 부분을 도와줘서 고맙죠.”

이미정 씨가 정현재 씨를 처음 만난 것은 지난해 이맘때쯤이다. “활동보조인은 이용자와의 특별한 마찰이 없으면 자주 바뀌지 않는 것이 좋은 것 같다. 삼촌을 만난지 벌써 1년이 다 됐다.”며 “나는 삼촌이 너무 좋은데, 삼촌은 나를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겠다.”고 함박웃음을 짓는 이씨 옆에서 정씨는 미소로 답한다.

점심식사 후, 근처에 있는 사무실에서 친구들과 만나기 위해 외출준비를 시작했다. 30여분 걸리는 거리에 있는 사무실까지 운동 삼아 걸어서 이동했다. 보통은 전동휠체어의 속도를 맞추기 위해 이씨는 자전거를 이용한다.

이씨는 “의정부에는 낙후된 시설이 많다.”며 “제2청사가 들어오면서 이 부근은 휠체어가 쉽게 이동할 수 있도록 편의시설이 많이 좋아졌지만, 아직까지도 외출에 있어 많은 제약이 따른다. 그중에서도 주변에서 바라보는 시선이 가장 힘들다.”고 말했다.

“외출하고 식사 때가 되면 식당을 들어가야 하잖아요. 휠체어가 들어갈 수 있는 경사로가 있는 식당은 거의 찾아보기 힘들어요. 게다가 장애인을 기피하는 음식점도 있어요. 장애인주차장도 부족하고, 설사 마련돼 있더라도 비장애인 차가 주차돼 있어 사용할 수 없는 경우가 대다수죠. 이런 경우 장애인 당사자뿐만 아니라 일상생활을 함께 하는 활동보조인의 힘도 쭉 빠지죠.”

이씨는 활동보조인으로 활동하면서 느낀 우리나라의 복지수준은 ‘엉켜있는 실타래’라고 표현했다.

그는 “선진국 장애인 복지가 잘 돼 있다고 하지만, 우리가 겪고 있는 문제처럼 시행착오를 거쳐 지금의 복지수준이 마련됐다.”며 “복지가 줄어서는 안 된다. 요즘은 사고로 중도장애인이 되는 비율도 상당히 높다. 늘어나는 수요에 맞춰 복지정책도 비례해야하는데, 오히려 반비례하는 정책이 펼쳐지고 있는 것 같다.”고 꼬집었다.

이어 “현장에서 발생하고 있는 다양한 문제가 실타래처럼 엉켜 풀리지 않고 있다. 문제해결을 위해 정책을 집행하는 담당자가 직접 현장에 나와 이야기를 들어줬으면 한다.”고 말했다.

매일 오후 10시쯤 정씨가 잠자리에 드는 모습을 보고 퇴근하는 길, 몸은 피곤해도 발걸음은 가볍다. ‘돈도 벌면서 다른 사람의 자립생활을 지원했다는 행복’을 느낄 수 있기에 활동보조인 이미정 씨는 “이 일을 하면서 오히려 나에게 큰 이익이 돌아오고 있다.”고 말한다.

“불과 몇 년 전에도 아프리카의 어린이들을 도와야 한다는 인식이 부족했잖아요. 하지만 언론에서 지속적으로 방송하며 캠페인을 벌여 지금은 너도나도 기부문화에 참여하면서 정착됐어요. 장애인에 대한 편견도 결국은 같지 않을까요? 계속해서 좋은 캠페인이 지속된다면 언젠간 좋은 방향으로 나가고, 함께하는 활동보조인의 근무환경도 더 좋아지겠죠.”

정현재 씨의 외출을 위해 아파트 바로 옆에 마련된 경사로를 이용해 이동하고 있다. 얼마전까지 영하로 떨어졌던 날씨로 얼어있던 길이 날이 풀리면서 외출하는 발걸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2011 welfarenews
▲ 정현재 씨의 외출을 위해 아파트 바로 옆에 마련된 경사로를 이용해 이동하고 있다. 얼마전까지 영하로 떨어졌던 날씨로 얼어있던 길이 날이 풀리면서 외출하는 발걸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2011 welfare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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