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임시국회가 열리고 있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는 13, 14일 양일에 거쳐 법안심사소위원회를 열어 ‘국민기초생활보장법 일부개정법률안’, ‘장애아동복지지원법안’, ‘장애인·노인·임산부 등의 편의 증진 보장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 등 주요 복지 현안 법률을 논의하였거나 예정하고 있다. 그 중 우리사회 최빈곤 상태에 처한 홈리스들을 지원하기 위한 제정법안으로 ‘노숙인․부랑인 복지법안(한나라당 강명순, 유재중의원)’, ‘홈리스복지법안(민주당 이낙연의원)’, ‘홈리스 인권보장 및 지원에 관한 법률안(민주노동당 곽정숙의원)’, ‘홈리스법 제정에 관한 청원안(홈리스 1,531 청원인)’이 오늘(14일) 논의될 예정이다. 이런 움직임은 우리사회에서 ‘노숙인’, ‘부랑인’, ‘쪽방주민’ 등 각기 다른 명칭으로 빈약하고 분절적인 지원이 이뤄졌던 한계를 입법을 통해 체계화하겠다는 점에서 분명 긍정적 시도라 할 수 있다. 그러나 법안심사소위원회의 검토의견 등을 통해 본 국회의 입법 방향은 제정법이 그간의 문제를 해소하기 보다는 ‘법’이라는 외투로 치장하는 데 그칠 공산이 크다는 우려를 갖게 한다. 법률 제명과 개념정의, 그리고 무엇보다 반인권적 조항과 같은 치명적인 문제가 있기 때문이다.

우선, 국회는 법률의 제명을 ‘노숙인등’으로 할 것을 예정하고 있다. 그러나 ‘노숙인’은 그 사전적 의미가 ‘길이나 공원 등지에서 한뎃잠을 자는 사람’으로 범위가 극히 제한적이고, 이미 우리사회에서 빈곤에 대한 비하와 편견의 용어로 자리 잡은 지 오래라는 낙인의 문제가 있다. 실제, 지난 7일 열렸던 ‘홈리스(노숙인․부랑인) 지원법 현장설명회’에 참석한 거리생활자, 쪽방주민, 시설입소자 등 홈리스 당사자들이 제기했던 공통된 요구는 "노숙인과 부랑인이란 용어로 인해 지역사회에서, 일터에서 많은 사람들로부터 손가락질을 당한다. 굳이 그런 용어를 법률명으로 사용해 우리에게 또 다른 절망을 주어야하겠는가"라는 격앙된 호소였다. 또한, 2월에 진행됐던 ‘홈리스 지원법 제정 청원’ 서명운동에 참여한 전국 1,531명의 홈리스 당사자들은 ‘노숙인’이란 용어를 폐지하고, 낙인감 없고 포괄적 개념인 ‘홈리스’로 대체할 것을 요구하기도 하였다. 정책의 당사자들이 원치 않는 용어를 사용하겠다는 고집은 도대체 어디서 기원하는가?

법제처와 법무부, 일부 한글단체가 ‘홈리스’는 외래어라 법명으로 부적합하다는 입장을 제출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현행 법률 중 외래어 표기법들이 이미 상당수 존재하고, ‘홈리스’에 대한 외래어 논란이 한창이었던 작년 역시 외래어 표기 제정법이 통과되었다. 뿐만 아니라 ‘이러닝(전자학습)산업 발전법’과 같이 외래어와 국어를 동시에 표기하는 방식의 제정법 입법례도 있다. 법률 제명에 있어 최우선 고려는 한글 여부가 아니라 정책 대상과의 적합성이 되어야 한다. 법제처에서 그동안 ‘알기 쉬운 법령 만들기 사업’의 일환으로 ‘홈리스’를 대체할 우리말을 찾기 위해 노력했지만 수포로 돌아간 바 있듯, 홈리스 상태는 전통적 빈곤과 달리 현대 사회의 구조적 모순에 따른 현상으로, 순우리말을 통해 적합한 용어를 찾는다는 것은 당초 불가능한 시도였던 것이다. 법명에 쓸 적절한 한글 표현이 없다고 낙인으로 점철된, 쪽방주민과 고시원생활자 등 정책 대상조차 포괄하지 못하는 ‘노숙인등’이란 용어를 쓴다는 것이 과연 합리적인가? 그리고 실제 노숙현장의 소리, 당사자자들의 소리에 귀 기울인 태도인가? 제대로 된 한글 사랑이라면 폭력적, 경쟁적 영어교육이 몰고 온 카이스트 사태가 시사하듯, 교육현장과 일상에서 한글사용이 활성화 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제도권 교육뿐만 아니라 뉴타운, 주민센터, 바우처 등 넘쳐나는 외래 정책용어로 인해 한글이 사장당하는 현실은 방관하고, 법제명만을 한글로 고수하는 것은 한글 사랑의 상징일지언정 실천은 될 수 없다. 우리와 마찬가지로 비영어권 국가인 일본 역시, ‘홈리스’란 용어를 도입한 바 있다. 중요한 것은 단어가 아니라 정책 대상에 대한 적합한 용어의 선택이다. 낙인을 부여하거나 강화하지 않는 용어, 예방적인 차원에서 법적 제도 구축을 위한 용어로서 ‘홈리스’를 사용해야 할 것이다.

둘째, 국회는 ‘노숙인등’의 정의를 일정한 주거가 없거나, 시설, 주거로서 부적절한 곳에서 생활하는 자 중 “18세 이상인 자”로 한정하였다. 18세 이만 아동은 ‘아동복지법’에 따라 시설입소 등 지원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홈리스에서 제외한다는 것이다. 이는 실로 가족해체를 조장하는 아연실색할 만한 규정이다. 현재, 한부모가족시설에서 포괄하지 못하는 가족단위 홈리스가 다수 존재한다. 그에 따라 지원체계 역시 부족하나마 가족쉼터, 모자(母子)쉼터, 부자(父子)쉼터를 갖추고 있다. 그리고 이미 그곳에는 18세 미만의 아동이 부모와 함께 거주하고 있다. 이런 현실에서 18세 미만 아동을 정책에서 제외한다는 것은 그나마 유지하고 있던 홈리스 가족을 찢어놓겠다는 것에 다름 아니다. 극도의 빈곤이라는 고통에 더해, 이산의 고통까지 강제하는 파렴치한 조항은 즉각 삭제해야 할 것이다.

셋째, 국회의 검토의견에는 홈리스에 대한 인권보장과 권리구제방안 등 인권보호조치가 미흡하다. 더군다나 인권침해와 낙인을 부추기는 조항들이 다수 포함되어 있다. 국회 전체회의 검토의견에 따르면, 법률에 “스스로 생활수준을 향상시키기 위하여 성실히 노력하여야한다(4조 1항)”는 조항을 두려하고 있다. 빈곤의 책임을 개인에게 두는 사회적 인식이 강한 마당에 이러한 조항은 ‘홈리스는 게으르고 자활의지가 없다는 편견’을 부추길 수 있으므로 즉각 폐지해야한다. 한발 물러서 법적 권리에 상응하는 성실의무의 원칙을 넣겠다면, 최근 개정된 한부모가족지원법과 같은 수준으로 ‘노숙생활에 처했다고 해서 복지급여신청, 주거확보 등에서의 차별을 규제하는 조항’이 반드시 삽입되어야 한다. 또한 “응급상황 발생 시 경찰 또는 노숙인등 관련 업무 종사자의 응급조치에 응하여야 한다(4조 2항)”는 규정도 포함되어 있다. 응급상황 발생 시 조치는 무엇보다 중요한 응급지원 공급자의 의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홈리스의 책임만 규정하는 이 조항은 부적절하며, 자칫 ‘홈리스가 응하지 않았다’는 책임회피의 방편을 만들게 될 뿐이다. 이와 아울러 국회 검토의견에 따르면 “중대한 질병 또는 동사 등의 위험에 처하였거나 ‘타인에게 중대한 위해를 가하는’ 응급상황 발생 시 경찰 및 업무종사자의 응급조치를 준수하도록 노숙자에게 의무 부과 필요”라고 적시하고 있다. 질서위반행위규제법, 형법 등에서는 타인에게 위해를 줄 경우 적용할 수 있는 법률이 있다. 그럼에도 홈리스를 지원하기 위한 만드는 법률에 굳이 징벌적 조항을 넣어 노숙인을 범죄자로 낙인찍겠다는 것은 어떤 의도인가? 그동안 홈리스를 예비범죄자 취급했던 행정의 입장만을 대변하는 것 아닌가? 또한 국회는 각종 복지서비스(주거, 고용, 의료 등)의 중복을 방지하기 위한 “복지서비스 이력 관리(19조)”조항을 삽입하였다. 해당 센터에서 홈리스들의 정보인권 보호를 위한 아무런 장치도 마련하지 않은 채 복지서비스 이력관리가 시행된다면 복지서비스의 효율적 배분이 아닌, 홈리스에 대한 통제기재로 작용될 것은 너무도 자명하다.

이처럼 편견과 차별을 부추기는 문구와 조항은 철폐되어야 하며, 결코 삽입되어서는 안된다. 우리는 인권보장을 위한 조항이 반드시 삽입되길 바란다. 사회복지법상 개별사회복지법인 ‘한부모가족지원법’, '국민기초생활보장법‘, ‘노인복지법’ 등에서도 이의신청이나 심사청구와 같은 권리구제 조항, 그리고 낙인과 차별금지와 같은 조항은 사회보장기본법에서 권리구제 절차가 언급되었다하더라도 개별법에 이미 삽입되어있다. 사회적 낙인이 크고, 사적 지지망이 해체되었으며, 집단의 이해를 대변하기 어려운 홈리스를 지원하기 위한 법이라면 무엇보다 인권보장을 위한 구체적인 조치들은 반드시 보장되어야 한다.

우리 21개 홈리스 인권 및 지원단체, 그리고 홈리스 당사자들은 오늘 국회 논의 결과를 주목할 것이다. 홈리스를 지원한다는 미명에 기대어, 정작 홈리스를 범죄자로 낙인찍는 조항으로 점철된 이와 같은 법안이 국회 소관위원회를 통과하는 침통한 일만은 없기를 바란다. 만약 홈리스 당사자들에 대한 낙인을 심화하고, 정책 대상을 축소하고, 홈리스 가족들을 해체하는 반인권적인 입법이 강행된다면 그 법은 탄생과 동시에 개정의 요구에 직면하게 될 것임을 엄중히 경과하는 바이다.

 

2011. 4. 14

강릉희망의집, 노숙인인권공동실천단, 동자동사랑방, 부산실직노숙자자활추진위원회, 성수삼일교회내일의집, (사)애빈회, 울산실직노숙인종합지원센터,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햇살보금자리상담보호센터, 행복한우리집, 홈리스행동, 전국쪽방상담소협의회(나사로의집남대문지역상담센터,대구쪽방상담소,대전광역시쪽방상담소,동대문쪽방상담센터,부산동구쪽방상담소희망나눔방,부산진구쪽방상담소,영등포광야쪽방상담소,용산구쪽방상담센터,인천내일을여는집쪽방상담소,종로상담센터돈의동사랑의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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