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시설·자립생활한 방상연 씨와 안정란 씨의 이야기

2009년 6월 4일 서울특별시 종로구 동숭동 마로니에공원에서는 장애인생활시설에서 생활하던 8명의 장애인이 ‘지역사회에서 사람들과 함께 더불어 살고 싶다’며 노숙농성을 벌였다.

그로부터 2여년이 지난 2011년 3월 19일, 같은 장소에서는 한 쌍의 남녀가 평생 서로를 아끼고 사랑할 것을 하객과 지나가는 많은 사람들 앞에서 약속했다. 결혼식의 주인공 중 새신랑이 된 남자는 매우 낯이 익었다.
 
그는 바로 2009년 노숙농성을 진행했던 8명 중 한 명이었던 방상연(40, 뇌병변장애 1급) 씨다.
 
방 씨는 열 살 때 버려져 28년이라는 세월을 장애인생활시설에서 보냈다고.
당시 방 씨는  시설생활에 대해 “시설에는 인권이 없다. 밥만 먹고, 잠만 자고, 그게 다다. 외출은 나간다고 적어야 되고, 식사시간은 정해져 있다. 정해진 시간이 지나면 밥을 갖고 가버린다. 외부와 연락할 기회도 없다. 친구들을 만난다고 해도 멀리 못 간다. 시설 근처 주변만 가야 한다.”고 표현했다.
 
62일 동안 길거리 위에서 밥을 먹고, 시끄러운 소리와 찬바람을 맞으며 잠을 자도, 자유가 있고 사람을 만날 수 있기에 시설생활보다 훨씬 좋다며 웃던 방 씨는 지역사회로 나와 야학에 다니며 한글공부를 시작했고, 총학생회장에도 당선됐고, 평생의 반려자가 될 안정란(43, 뇌병변장애 1급) 씨를 만나 서울 종로구 동숭동에 보금자리도 마련했다.

전동휠체어가 움직일 여유도 없고 한 사람이 들어갈 수 있을 정도의 작은 부엌과 화장실, 햇빛도 비치지 않는 지하 셋방이지만 두 부부에게는 새로운 희망과 사랑이 움트는, 둘도 없이 소중한 공간이다.
 

2년 전 노들장애인야간학교에서 만나 ‘한눈에 빠졌다’는 방씨는 “아내는 착하고 배려심이 깊어 좋아요. 난 그거 보고 ‘좋은 사람이다. 결혼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청혼? 내가 했어요. 그런데 솔직히 그건 청혼이 아니에요. 장미 한 송이 주면서 결혼해달라고 했는데, 그래도 이 사람이 받아준 거예요.”라고 말했다.
 

누가 먼저 청혼했냐는 질문에 방 씨는 자신의 소박한 청혼이 미안했던지 어색한 웃음을 지었다. 하지만 안 씨는 이런 방 씨의 청혼이 마음에 들었나보다. 방씨의 어떤 점이 좋아 결혼을 승낙했냐는 질문에 대해 안씨는 “착하고 ‘생활력이 강해 보여서’ 결혼했다.”란다.

결혼 뒤 서로에게 실망한 점은 없을까. 안 씨는 “없다.”며 오히려 “나한테 많이 실망했을 거야.”라고 방 씨의 마음을 떠보자 “물론 조금은 있지.”라며 장난기 가득한 미소를 짓는다. 
 
하지만 “내가 몸이 안 좋거나 그러면 말을 좀 심하게 할 때도 있죠. 그러면 마음이 아파요. 솔직히 이 사람한테 더 잘해주고 싶어도 능력이 없으니까……. 더 좋은 집에서 살게 해주고 싶은데…….”라고 말꼬리를 흐리는 그를 보면서 가장이라는 중압감을 느낄 수 있었다.
 
“시설을 나와 자립생활을 막 하기 시작했을 때, ‘내 행동에 대한 모든 책임은 나의 몫’이라는 것과 ‘세상에는 공짜가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어요. 어떻게 보면 당연한 것이지만 시설에서만 생활하던 나에게는 너무나도 낯설기만 했죠.”
 
이들 부부의 한 달 생활비는 장애수당 등을 포함해 100여만 원. 월세 20만 원을 제외한 80여만 원으로 한 달을 살아야 한다. 여느 부부와 마찬가지로 2세에 대한 계획을 갖고는 있지만, 경제적인 이유 때문에 미루고 있다고.
 
상연 씨는 “아이 문제에 대한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아내는 ‘내 나이가 몇인데…’라던가, ‘아이 안 갖고 싶냐’고 말하곤 해요. (나도) 당연히 갖고 싶죠. 하지만 물가가 너무 올라 김치도 제대로 못 사먹을때도 있는데, 아이가 생기면 분유를 비롯해 기저귀 값, 옷 값 등 지금보다 더 부족할 텐데……. 그래서 돈을 모아놓고 아이를 갖자고 이야기했어요.”라고 말했다.

이어 “국가가 양육 등 정책을 펼치겠다고 하지만, 아직 우리나라에서 중증장애인이 지역사회의 일원으로 살기는 너무 어려워요. 국민으로 취급하는가라는 생각도 들고요. 그런데 까지 생각이 미치면 그냥 ‘(아이 없이) 우리 둘만 잘 살자’는 생각도 들곤 하죠.”라고 속마음을 털어놨다.
 
 
하지만 이들이 안고 있는 더욱 시급한 문제는 장애인활동지보조서비스다.
부부가 활동보조서비스를 받아야 하는 중증장애인이다 보니 현재 받고 있는 시간으로는 일상적인 생활을 하기 어렵다고.
 
방 씨는 “나는 월 170시간, 아내는 월 80시간의 활동보조를 받고 있지만, 부족한 시간 때문에 낮에는 활동보조가 없어요. 밖에 나가있을 때가 많은데, 활동보조인이 없어서 밥을 못 먹고 커피 한 잔으로 주린 배를 채우곤 해요.”고 말했다. 

방 씨가 세상 속으로 나와 알게 된 것 중 하나가 ‘선입견’이란다. 상연 씨는 “많은 이들이 자기와 다른 외형과 말투를 보고 (나보다 못한 사람으로) 지레짐작해 버리지만 똑같은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을 뿐이지 장애인 중에서도 머리 좋은 사람도 많은데요.”라며 자신의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기반만 제대로 마련된다면 장애인도 비장애인에 못지않은 멋진 삶을 살아갈 수 있다고 강조했다.
 
중증의 장애가 있다는 이유만으로 여느 부부들이 갖고 있는 금전, 아이, 집 문제 등에 대한 고민 이외에도 더 많은 어려움과 해야 할 고민이 있다는 사실을 이들 부부는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서로가 곁에 있기에 고난의 바다를 잘 해쳐나가리라는 자신감을 이들 부부에게 느낄 수 있었다.

“그래도 이겨내겠다는 용기를 갖고 살고 있어요. 주위에서 도와주는 사람들도 많고요. 아내에게 하고 싶은 말이요? (안 씨의 얼굴을 바라보며) 내가 부족한 게 있어도 잘 이해해주고 잘 좀 봐줘.”
 
방 씨의 말에 안 씨가 “나도 부족한 거 많아, 알지?”라고 되묻자, 방 씨는 “응, 알아.”라며 끝까지 장난치며 해맑은 미소를 짓는다.
깨소금 냄새가 물씬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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