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범사업 결과 36.2% 등급하락…시각장애는 무려 77.8%
“욕구조사 영역을 강조하고 장애유형 특성 고려해야”

오는 10월 시행을 앞두고 있는 장애인활동지원제도의 2차 시범사업에 사용된 인정조사표가 자립생활 및 사회참여 활동이 아닌 ‘요양’만이 강조됐다는 지적이 제기되면서 활동지원의 도입취지를 잃었다는 장애계의 비판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지난 4일 한국장애인단체총연맹(이하 장총), 국회의원 윤석용·박은수 의원 공동 주최로 국회도서관에서 열린 ‘활동지원제도 인정조사표, 서비스 이용자 욕구 충족 가능한가?’ 토론회에서 참가자들은 신규 장애인활동지원 인정조사표에 대한 비판을 쏟아냈다.

▲ 지난 4일 국회도서관 소회의실에서 열린 '장애인활동지원제도 인정조사표, 이용자 욕구충족 가능한가?' 토론회에 참석한 이들은
▲ 지난 4일 국회도서관 소회의실에서 열린 '장애인활동지원제도 인정조사표, 이용자 욕구충족 가능한가?' 토론회에 참석한 이들은 "2차 인정조사표가 장애인당사자의 욕구를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정두리 기자
지난 4월 2일 열린 ‘장애인활동지원추진단 평가·판정분과 제1차 회의자료’에 따르면 2차 시범사업 대상자 897명에게 새 인정조사표를 적용한 전체의 36.2%가 등급 하락했다.

이에 대해 장총은 “새 인정조사표 대부분이 현행 노인장기요양보험제도에서 사용하고 있는 인정조사표와 유사해 장애인의 자립생활 지원이라는 장애인활동지원제도의 시행 취지를 못 살릴 것이라는 의견이 지배적.”이라며 “시각장애인의 77.8%가 하락률을 기록한 것은 장애유형에 대한 고려 없는 단일한 판정도구 사용이 얼마나 특성을 반영하지 못하는 것인지 드러내는 사례.”라고 지적했다.

‘요양’만 강조된 인정조사표… ‘활동보조’에 무게중심 둬야

발제를 맡은 협성대학교 사회복지학과 양희택 교수는 “2차 시범사업 인정조사표를 살펴보면 ‘요양과 보호’ 중심, ‘와상 노인’을 대상으로 설계된 노인장기요양보험제도와 ‘장애인의 지역사회 참여와 활동’을 중심으로 하는 장애인지원제도의 특성을 제대로 검토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며 “노인이나 장애인 모두 요보호대상자의 영역에서는 동일하다고 볼 수 있지만 두 제도의 출발점과 강조점, 출발의 유래가 상이하다는 점이 간과됐다.”고 꼬집었다.

2차 시범사업에서 사용된 인정조사 항목을 보면 신체기능(K-ADL) 영역(12항목), 인지기능 영역(7항목), 행동변화 영역(14항목), 간호처치 영역(9항목), 재활 영역(10항목)으로 구성된 요양인정 분야 총 52개 항목과 수단적 일상생활동작(IADL) 분야의 8개 항목, 추가항목 5개(휠체어타기, 보기, 행동, 듣기, 지각)로 이뤄졌다. 이 중 추가항목은 점수에 포함되지 않는다.

양 교수는 “기존의 활동보조서비스보다 훨씬 더 요양과 보호에 초점을 맞추다보니 ▲지역사회 참여 ▲활동을 통한 사회통합 ▲자립생활 실현 등 보다 요양이나 보호의 필요성을 묻는 질문이 더 강화된 것을 볼 수 있다.”며 “(2차 인정조사표대로) 진행하면 신변처리와 의료적 영역에만 머물게 돼 결국 ‘장애인 복지=의료처치’라는 악순환에 빠질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어 “항목은 과거에 비해 넓어졌지만, 요양 영역만이 강조돼 있으며, 특히 욕구조사 영역은 ‘추가항목’이기 때문에 실질적인 점수에는 포함되지 않는다.”라며 “가사활동 지원과 병원가기나 쇼핑, 산책과 같은 사회활동, 직장생활 등 항목에 도움이 필요한 시간과 횟수 등 일상생활과 관련한 질문을 강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양 교수는 “▲장애등급 판정기준과의 중복성 여부 ▲장애 세부영역별 특성을 반영하지 못 한 점 ▲세부 영역별 점수 배점의 타당성 여부 ▲조사인력의 적절성 등의 제반 논의점들이 분명하게 존재하고 있지만 이러한 세부적인 논의보다도 더 시급한 점은 제도의 명칭에 타당한 내용과 시행이 될 수 있도록 장애인의 활동을 지원하는 인정조사표가 구성돼야 할 것.”이라고 제언했다.

장애유형 고려 없는 무자비한 인정조사

장애유형에 대한 고려 없이 단일 도구로 적용한 것에 대한 지적도 이어졌다.
양 교수는 “시각장애인의 등급하락률이 높은 이유는 인지능력이나 기능장애가 덜 발생하는 습관화된 환경만을 측정했기 때문.”이라며 “일반적인 환경에 대해서도 고려해야하는 등 장애유형별 특성을 반드시 반영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에 대해 대구대학교 직업재활학과 조성재 교수는 “장애 특성이 분명히 존재하고, 욕구와 필요가 다르지만 (2차 인정조사표에는) 대부분 반영돼있지 않는 등 논리적으로 납득하기 힘든 내용.”이라며 “특히 시각장애인의 경우 정보접근이나 문서읽기 등의 욕구가 중요하지만 전혀 반영돼지 않고 오로지 생존 측면만을 강조했으며, 지체장애인을 위한 휠체어 관련 조항은 있으나, 시각장애인을 위한 시외보행 조항은 없다.”고 꼬집었다.

조 교수는 “장애유형별 단체 등의 의견을 취합해 장애특성을 감안한 문항을 넣고 각 유형별로 선택해 답하는 방법도 방안이 될 것.”이라고 제언했다.

국민연금공단 장애인지원실 김정학 부장 역시 “시각장애인의 경우 집 밖에서의 생활이 고려되지 않아 집이 아닌 다른 장소에서의 일상생활부분이 인정조사표에 반영될 수 있도록 사회생활기능 역역 비중 확대가 필요하다.”며 “지적장애와 정신장애의 경우에도 일상생활동작에서는 신체기능상으로 수행을 할 수는 있으므로 지체장애에 비해 상대적으로 낮은 등급으로 판정될 가능성이 있다. 추가항목에서 지각장애, 행동장애에 대한 각 항목의 점수 배점을 각각 상향 조정하는 안도 검토가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인정조사표 자체가 문제

인정조사표가 제2의 장애등급심사가 될 수 있다며 인정조사표 자체를 지적하고 반대하는 목소리도 나왔다.

한국장애인단체총연합회 서인환 사무총장은 “장애판정을 받기위해 장애등급심사를 받고 활동지원을 받기 위해 인정조사까지 거쳐야 하니 장애인들이 얼마나 많은 노력을 해야 하는 것이냐.”며 “노인장기요양제도의 판정 기준을 장애인에게 그대로 적용하면서 노인와상 환자의 발을 닦던 제도로 활동을 하기 위한 장애인의 얼굴을 닦는 꼴이 됐다.”고 비난했다.

서 사무총장은 “조사항목의 점수 배점에도 문제가 있다.”며 “옷 입기, 앉기 식사하기 등에 대한 1~5번까지의 배점표 중 ‘할 수 있다’와 ‘할 수 없다’는 0점이다. 중증의 장애로 인해 스스로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다고 답하면 ‘자립정신이 없기 때문에 0점으로 처리’하는 게 얼마나 말이 안 되는가.”라고 비판했다.

이어 “(2차 인정조사표는) 중증장애 때문에 항상 누워서 생활한다고 답하면, 옮겨 앉는 서비스가 필요 없으니 점수를 깎아 서비스 시간을 줄이는 방식으로 설계돼 있기 때문에 결국 전국을 장애인생활시설화 하는 정책.”이라며 “이것(장애인활동지원)은 점수로 흥정할 게 아니다.”고 말했다.

한국장애인자립생활센터 협의회 박홍구 정책위원장은 인정조사표 자체를 반대하고 나섰다.

박 정책위원장은 “장애인활동지원제도 인정조사표의 의도 자체가 문제.”라며 “예산을 정해 놓고 지원 대상을 맞추다 보니 예산 배분표가 되고 있다. 인정조사표 자체를 폐기하지 않으면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이어 “(2차 인정조사표는) 최고시간을 산정해놓고 감산하는 방식이기 때문에 근본적으로 부정적인 평가를 전제로 하며, 매우 주관적이고 자의적.”이라며 “인정조사표에는 욕구조사를 하면서 이를 반영하지 않는 것은 장애인당사자를 우롱하는 것이며 자립생활을 포기하는 정책.”이라고 지적했다.

박 정책위원장은 이를 위한 대안으로 ▲욕구조사 항목을 반드시 반영 ▲면접이나 청문, 동료상담 등의 다양한 조사방식 도입 등을 주장했다.

보건복지부 “내용 보완해 6월 중 고시할 예정”

이에 대해 토론회에 참석한 보건복지부 장애인활동지원TF 김일열 팀장은 “1차 시범사업에서는 노인장기요양제도와 활동보조서비스의 조사표를 각각 적용했고, 2차에서는 이 두 가지를 통합해 적용했다.”며 “시범사업은 인정조사에서 어떠한 판정도구가 적절한가를 검토하기 위해 실시된 것으로 각각의 장단점과 보완이 필요한 부분이 있을 것이다. 10월 제도 시행을 앞두고 추진단이 결정을 해야 할 내용.”이라고 해명했다.

이어 “이미 ‘요양이냐 자립생활이냐’라는 지적과 함께 ‘노인을 판정하기 위해 쓰인 조사표를 장애인에게 적용하는 것이 불합리 하다’, ‘장애유형에 대한 특성이 반영되지 않았다’는 지적이 있었다.”며 “그러나 장애인활동지원서비스가 ‘요양은 절대 아닌 것이냐’라는 질문이 생긴다. 또 장애인과 노인의 욕구가 완전히 분리 가능한 것인가라는 부분도 있다. 이에 대해서는 답을 구해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또 “장애유형별 특성이 반영돼야 한다는 부분에서 특히 시각장애와 발달장애에 대해서는 보완이 필요하다는 점을 느낀다. 토론회 논의 내용을 포함해 장애인 욕구가 충분이 반영될 수 있는 인정조사표를 만들겠다.”며 “시범사업 결과와 장애계 의견을 취합한 후 이번 달 중 방안을 제시한 후, 6월 중 고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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