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엑세스 리빙센터 마르카 브리스토 대표 인터뷰

미국은 물론 세계적인 장애인권활동가 마르카 브리스토(Marca Bristo, 58) 씨가 방한했다.
지난 19일 열린 2011 RI 코리아 국제컨퍼런스에 RI 북미지역 부회장 자격으로 참가한 것.

그가 대표를 맡고있는 엑세스 리빙(Access Living)센터는 미국 시카고에 있으며, 연방정부의 최초 자립생활센터 지원 예산을 받은 10곳 중 하나로 연간 300만 달러 규모의 조직으로 발전했다.

장애인 자립생활 기술 및 공공교육, 장애인 권익옹호 활동 등 한국의 장애인자립생활센터와 비슷한 역할을 수행해 온 엑세스 리빙센터의 활약 덕분에 대중교통, 공립학교 등 공공서비스 분야에 대한 장애인의 접근성을 향상시키는 제도적 변화를 이끌어냈다.

20여 년간 엑세스 리빙센터를 운영하며 3만5,000여명의 장애인들을 자립생활로 안내해온 마르카 브리스토 대표는 1994~2002년까지 전미장애인평의회(National Council on Disability ; NCD)의 의장을 역임했으며, 미국 장애인법(Americans with disabilities act, ADA) 입안 및 통과를 위해 기여한 공을 인정받아 미국 대통령이 수여하는 ‘The Distinguished Service Award’와 재활·장애 분야의 노벨상이라 불리는 ‘The Henry B. Betts Laureate’를 받았다.

다음은 마르카 브리스토 대표의 인터뷰 내용이다.

 

▲ 엑세스 리빙센터 마르카 브리스토 대표 ⓒ최지희 기자
▲ 엑세스 리빙센터 마르카 브리스토 대표 ⓒ최지희 기자
▲엑세스 리빙 센터를 운영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

1977년 다이빙 사고로 목뼈를 다쳐 시카고의 한 재활병원에 있을 때, 근처에 있는 엑세스 리빙 센터의 관계자가 찾아와 센터 운영 등에 대해서 자문해달라고 부탁했다. 하지만 나는 전문가가 아니었고 오히려 그 사람들이 전문가였기 때문에 가지 않았다.

나는 사고 이후 많은 것을 잃었다. 간호사라는 직업, 계단이 있는 집, 자유로운 외출, 건강보험까지. 독립적으로 생활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잃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자립생활과 관련된 어떠한 도움도 줄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어느 날 내가 간호사로 일했던 곳의 상사가 나를 불러 다시 일하라며 자리를 줬다. 여성치료시설에서 일하면서 그동안은 느끼지 못했던, ‘여성장애인이 이렇게 많은 차별을 받고 있구나’라는 것을 느꼈다. 나는 그것과 관련해 상사에게 문제를 제기했고, 상사는 “그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수 있는지에 대해 잘 생각해보고 나에게 조언을 달라. 그리고 성(性)과 장애라는 주제를 가진 공식적인 회의에 참가해봐라.”라고 말했다.

성과 장애라는 주제는 버클리, 캘리포니아에서 화제가 되고 있었다. 캘리포니아의 한 공식회의에 참가했을 때 굉장히 많은 논의가 이뤄져 많이 배웠다. 다시 시카고로 돌아왔을 때 ‘장애인이 스스로 참여해서 자꾸 도움을 줘야 문제가 해결된다’는 것을 깨달았고, 엑세스 리빙 센터에 가게 됐다.

 

▲한국은 현재 ‘탈시설과 자립생활’ 패러다임으로 뜨겁다. 미국상황은 어떠한가.

미국에서 탈시설은 지금도 뜨거운 화제다. 장애계에서 가장 조직화가 잘 돼 총력을 기울이고 있는 것이 탈시설이다. 아직도 수천 명의 장애인들이 크고 작은 장애인생활시설에서 살고 있다. 장애인이 원하는 것은 지역사회에서 사는 것이고, 정부의 입장에서도 그것이 (시설보다) 훨씬 싸다.

미국 장애인법이 제정됐을 때 사람들의 태도가 바뀌고 자발적인 변화가 일어나 탈시설이 이뤄질 줄 알았지만 그렇지 않았다. 1999년도 대법원으로부터 ‘지역사회에서 살 수 있는 사람을 시설로 보내서 살게 하는 것은 법을 위촉하는 것’이라는 판결이 나왔지만, 그래도 여전했다. 때문에 장애인법을 법적으로 이용하면서 주정부에게 계속 요구하고 투쟁하고 있다.

또 하나 어려운 점은 탈시설이 집단의 이익 문제에 부딪히고 있다는 것이다.
한 가지 예를 들자면 현재 장애인의 권리와 노동자의 권리가 부딪히고 있다. 노동자조합에서는 ‘시설에서 일하는 직원들이 직업을 잃는다’는 이유로 시설이 문을 닫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노동자조합은 옛날 사고를 가진 곳과 새로운 경향을 보이는 두 가지 성향으로 나뉜다. 새로운 경향은 ‘홈 케어(가사방문지원서비스)’를 주장하고 있으며, 장애계는 이쪽과 함께 정치적 협력을 취해 정부로 하여금 예산을 탈시설 방향으로 돌리도록 투쟁하고 있다.

 

▲미국의 자립생활을 위한 정책 및 제도에는 어떤 것들이 있는가.

활동보조서비스와 주거정책이 있으나 문제점을 안고 있다. 먼저 활동보조서비스는 개인이 활동보조인을 고용해서 이용할 수 있는 것인데, 문제는 국가적인 의무가 아니라는 것이다. 때문에 국가적 차원에서 의무적으로 시행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지만 아직까지는 성공적이지 않다.

주정부에 따라 조금씩은 다르나 저소득층 장애인만 활동보조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다. 나와 같이 일하는 장애인은 약간의 활동보조서비스를 신청할 수 있으나, 주정부가 못하도록 막기 때문에 실질적으로 오직 저소득층 장애인만 이용할 수 있다. 그러므로 가난하지 않은 장애인은 정부로부터 활동보조서비스를 이용할 수 없고, 자신의 돈으로 간호·간병서비스를 사야한다.

주거정책은 저소득층 장애인을 위해 월세의 일부를 지원하는 바우처를 주고 있지만 충분하지는 않다.

장애인들은 국가가 주는 수당을 갖고 어렵게나마 살 수 있으나, 만약 일하고자 한다면 수당은 물론 건강보험도 잃게 된다. 건강보험은 상당히 중요한 것임에도 불구하고, 회사에서 보험 상 제약 등으로 건강보험을 안 내주는 경우가 많다. 결국 ‘일하지 않고 가난하게 사느냐’, 아니면 ‘일하면서 건강을 잃고 사느냐’라는 기로에 서게 된다.

사실 장애인이 돈이 많다면 이러한 고민을 하지 않아도 되지만, 장애와 빈곤의 연관관계는 상당히 깊다.

반면, 장애인법으로 인해 대중교통 등 많은 것들에 대한 접근성이 향상된 것은 좋은 변화라고 할 수 있다.

 

▲미국 안에서의 장애인 차별은 어떤 양상을 보이고 있는가.

여성과 남성, 성적 차별을 떠나 장애인이기 때문에 받는 차별이 크다.
많은 회사들이 ‘다양성’이라는 이름 아래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최근까지 고용하는 직원의 다양성에 인종, 나이, 여자 등은 포함돼있지만 장애인은 들어가 있지 않았다. 물론 옹호 운동 등을 통해 장애인도 다양성 중 하나로 인정됐다.

일할 수 있는 나이의 장애인 중 60~70%가 실업을 경험한다. 거기에 인종문제까지 겹치게 되면 실업률은 87%까지 올라간다.

▲ 2011 RI 코리아 국제컨퍼런스에서 발표 중인 마르카 브리스토 대표 ⓒ최지희 기자
▲ 2011 RI 코리아 국제컨퍼런스에서 발표 중인 마르카 브리스토 대표 ⓒ최지희 기자

▲현재 미국에서 가장 뜨거운 화젯거리와 문제점은 무엇인가.

앞서 말했듯이 탈시설이 첫 번째 화제고, 두 번째는 경제적인 침체와 타격이다.
주정부뿐만 아니라 중앙정부도 계속해서 전반적인 사회보장프로그램 예산을 깎아내리고 있는데, 역사상 최악의 수준이다. 여태까지는 장애인 관련 예산은 안전한 편이었는데, 경제사정이 나빠지니 장애인 관련 예산까지 건드리고 있다.

그렇다 보니 장애계는 더욱 강해지고 있다. 4시간 반 가량이 걸리는 지역의 장애인을 만나 주정부 앞에서 함께 캠페인을 펼치는 등 항의했다.

지난 시간을 되돌아보면 힘든 순간이 닥칠 때마다 장애계는 강해졌다. 다만 세계적으로 지난 10년간 장애계를 볼 때 미국의 장애계는 그대로 있는 것 같은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만큼 국제 장애계가 번성했다.

한국에 와서 서울을 돌아다니기 위해 지하철을 탔는데, 한 정거장을 빼놓고 다른 곳은 독립적으로 다닐 수 있도록 편의시설이 갖춰져 있었다. 미국의 경우 모든 버스에 리프트가 설치돼 있어 접근이 가능하지만, 지하철은 그렇지 않다. 물론 미국의 지하철은 상대적으로 오래 전에 만들어졌기 때문에 어려웠다고 할 수도 있지만, 새로 지었다고 해도 편의시설을 잘 못 갖출 수 있는 것이다.

유엔장애인권리협약(Convention on the Rights of Persons with Disabilities, CRPD) 정신을 반영해 한국의 장애인차별금지및권리구제등에관한법률(이하 장애인차별금지법)이 만들어진 것을 보고 유엔장애인권리협약이 갖고 있는 힘도 확인했다.

한국 장애인차별금지법을 보면 가족권에 장애인도 입양할 수 있는 권리가 명시돼 있으나, 미국 장애인법에는 없다. 미국 장애계는 장애인법을 법적도구로 사용하는 데 아직 부족한 면이 있다. 그렇기 때문에 세계의 장애계로부터 배우는 것이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장애계 운동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때로는 격한 행동과 법에 어긋나는 행동이 필요하다. 우리가 큰 목소리로 말하지 않고 외치지 않으면 사회는 하던 대로 진행되기 쉬운 것 같다.

장애인은 큰 힘을 갖고 있지 않고, 많은 돈을 갖고 있지도 않으며, 정치적인 힘도 크지 않다. 장애인이 갖고 있는 것은 ‘나’, 바로 자신이고 이것이 유일한 이용 수단이다. 그리고 그것이 바로 장애인의 힘이다.

어떤 사람은 정책적인 입장에서 그 역할을 해야 되고, 어떤 사람은 시민단체 등 현장에서 그 역할을 해야 한다. 장애인 옹호 운동은 다양한 방식으로 이뤄질 수 있다.

법이 꼭 필요하지만, 법만으로는 장애인의 모든 권리를 보장해줄 수 없다. 법의 한계를 뛰어넘을 수 있는 것은 사람들의 태도다. 법이 갈 수 있는 길을 열어준다면 완성은 사람들의 태도에 달린 것이다.

나라가 다르고 인종이 달라도 우리는 ‘장애인’이라는 공통적인 경험이 있다. 이를 테면 장애인이라는 이유로 존중받지 못하고 내던져진 경험과 같은 것이다. 문화적 차이에 따라 인권이 다르게 취급된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 유엔장애인권리협약은 장애인이 공통적으로 겪고 있는 문제점에 대한 해결책을 담고 있으며, 이를 통해 각 나라들로 하여금 장애인의 권리가 실현될 수 있도록 하는 게 목표다.

나도 처음에는 장애인의 문제와 관련해 관여하지 않았으며, 힘이 없는 존재라고 느꼈고, 그런 곳에 관여할 권리조차 없다고 느꼈다. 하지만 시작하고 진행하다보니 이것이 나의 ‘책임’이라고 느끼게 됐다.

세상을 바꿔나가는 특별한 방법이 있는 것은 아니다. 자기가 무기력하다고 느껴진다면 언제든 가까이에 있는 장애계 단체에 연락을 취하라. 그리고 만나서 같이 움직여라. 전 세계 장애인들 또한 그렇게 같이 움직이고 있으며, 그러면 세상도 바뀌어나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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