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신고 생활시설 일제조사 과정서 지적받은 시설 ‘여전히 운영 중’
관할 지자체, 생활인 인원조차 파악 못하고 있어

작년에 진행된 미신고 장애인생활시설 일제 점검 과정서 기초생활수급비를 횡령하고 노동력 착취, 비인간적인 의식주 제공, 과도한 약물투여 등으로 인해 폐쇄조치 명령이 떨어진 시설이 버젓이 운영되고 있어 충격을 던져주고 있다. 특히 이 시설의 관할 감독기관인 평택시 측은 시설생활인 인원조차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돼 관리체계의 허점을 또다시 드러냈다.

경기도 평택에 소재한 S시설에서 생활하던 장애인 11명이 인권침해 등의 이유로 지난 8일 긴급 분리조치 됐다.

장애와인권발바닥행동 활동가와 KBS 2TV ‘호루라기’ 제작팀 등 취재진이 이 시설에 방문했을 당시 6명의 생활인들은 시설 한 켠에서 노역 중이던 모습이 포착됐다. 짧은 머리에 빨간색 반팔 티와 남색 반바지를 입고 곡괭이와 삽, 드릴을 들고 있는 모습은 마치 형무소를 연상케 했다.

▲ ⓒ정두리 기자
▲ ⓒ정두리 기자
장애인생활시설 간섭 벗어나기 위해 기도원으로 전환?

취재결과 교회와 신학원을 함께 운영하고 있는 S시설은 지난해 미신고 장애인생활시설 일제 조사 과정서 폐쇄조치가 결정됐으나 여전히 장애인과 노인 등을 수용해오고 있었으며, 당시 지적됐던 수급비 횡령 의혹과 노동력 착취 문제가 여전히 이어지고 있었다. 특히 화장실 변기 옆에서 식사를 하게 하거나, 단벌로 생활하게 하는 등 비인간적인 의식주를 제공해오고 있었으며, 신고한 인원 이외의 4명이 생활해오고 있었으나 지자체는 이 사실에 대해 전혀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다.

S시설의 문제가 수면위로 불거진 것은 지난해 한나라당 이정선 의원과 보건복지부, 장애인인권침해예방센터 등이 합동으로 시행한 미신고 장애인생활시설 조사과정에서 ▲수급비 횡령 의혹 ▲노동력 착취 ▲비인간적인 의식주 제공 ▲과도한 약물복용 등의 문제점이 지적되면서부터다.

이에 대해 평택시 측은 “당시 S시설은 부지와 건물이 있고, 장애인당사자들이 살고 있기 때문에 규모를 줄어 (개인운영신고시설로) 전환할 수 있도록 계획서를 제출할 것을 요구했으나 제출하지 않았다.”라며 “이에 대해 문제제기를 하자 시설장은 ‘(개인운영신고시설로) 전환할 뜻이 없다. 대신 기도원을 지어 운영할 예정이다’라고 밝혀 자신폐쇄를 결정, 1~2주 안에 모두 전원 조치할 계획이었다.”고 밝혔다. 시설장인 염모 목사 역시 “어디로 보내야 할지 고민하느라 기간이 늦춰졌다.”며 “3, 4월에는 날씨가 추워서 미뤘고, 오랫동안 함께 생활해오다 보니 내보내는 것이 쉽지 않았다. 며칠 전부터 전원조치를 시작했고, 남은 생활인도 모두 내보낼 계획이었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생활인을 내보내는 중이라던 시설장의 말과 달리 지자체에서조차 파악하지 못하는 생활인이 확인됐다.

조사 도중 확인된 한 남성생활인에게 ‘어디있었냐’고 묻자 “이 방 저 방을 돌아다녔다.”고 답했으며, 또 다른 여성생활인은 “여기서 나가면 혹시 자식들이 (나를 찾으러) 왔다가 못 찾게 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불이 꺼진 채 ‘사람이 안 살고 있다’던 방에서 사람의 인기척이 나 확인해보니 얼굴 곳곳에 상처가 나있는 여성생활인이 숨어있었다. 얼굴에 난 상처에 대해 묻자 이 생활인은 (염 목사) 사택에서 일을 해왔으며, 염 목사 아내에게 구타당해 생긴 상처라고 증언했다.

최종 확인 결과 여성 4명, 남성 7명 등 총 11명이 S시설에서 생활하고 있었으며, 이날 발견된 4명은 지난해 조사 당시에도 이 시설에서 생활해오고 있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이에 대해 염 목사는 당초 “교회에 놀러온 교인들이다.”고 주장했으나 말을 얼버무렸으며, 평택시 측은 “(S시설로 주소지가 된)수급자 6명을 제외한 다른 인원이 이 시설에서 생활하고 있었는지에 대해 몰랐다.”고 답했다.

▲ 생활인 7명이 공동 생활하고 있는 방 내부에 형무소처럼 변기가 있다. ⓒ정두리 기자
▲ 변기가 있는 방 내부에는 생활인들이 식사를 하고 난 탁자가 놓여있다. ⓒ정두리 기자
생활인이 몇 명인지조차 파악 못하고 있는 지자체

그렇다면 이 시설에 어떻게 오게 됐을까, 이에 대해 염 목사는 “시청에서 소개받기도 하고, 아는 사람을 통해 개인적으로 오기도 한다. 부랑인의 경우 다른 시설에서 수용을 거부해 우리 시설로 온 경우도 있다.”고 답했으나 생활인의 이야기는 달랐다. 한 생활인은 “내가 이곳에 어떻게 왔는지 모르겠다. 눈떠보니 이곳에 있었다.”라며 “여기에서 생활할 이유가 없으나 자원봉사자가 와도 딱히 해결해줄 사람이 없어서 멍하니 있었다. 마냥 안에서만 생활하라고 하니 밖에도 못 나간다. 좋은 것이 있으면 가고 싶다.”고 말해 비수급권자의 입소 경위에 대한 추가조사도 필요함을 암시했다.

지난 조사에서도 지적됐던 노동력 착취와 인권침해 등의 문제는 반년가까이 지난 지금도 전혀 바뀐 게 없었다.

취재진과 활동가들이 도착하자 일을 하던 생활인들을 멈추도록 한 염 목사는 “노인잔치를 위한 무대를 만들고 있다.”며 “생활인들의 건강을 위해 함께 일하고 있다. 나도 같이 일하고 있으며, 매일 아침 회의를 해 ‘오늘은 나무를 심자’, ‘나무를 옮기자’는 이야기를 나눈다. 강제노동이 아닌 자발적인 활동.”이라고 해명했다.

군대에서처럼 생활인들의 머리를 짧은 스포츠머리를 하고, 빨간 티와 남색 반바지를 입힌 것에 대해서는 “단체생활을 하기 위해서다. 장애인에게 각각 다른 옷을 입혔더니 싸움이 나더라.”고 변명했으나, 옷은커녕 개인 소지품조차 찾아볼 수 없었다.

숙소 내에 화장실 변기가 설치돼 있고, 이 옆에서 식사를 해온 사실도 드러났다. 이에 대해 염 목사는 “형제들(염 목사가 생활인을 부르는 말)이 들어오면 씻기도 하고, 급하면 밥도 먹는다. 이곳에서 밥을 먹을 때도 있지만 아닐 때도 있고, 자유롭다.”고 밝혔으나 생활인들 대부분은 “거의 이곳에서 밥을 먹으며, 밥 먹는 도중 변기에서 용변 보는 사람들도 있다.”고 주장해 비인간적인 환경에 노출돼 온 의혹이 증폭되고 있다.

가장 큰 문제점으로 꼽힌 것은 생활인 모두에게 약물을 복용하도록 한 행위였다. S시설 생활인 중 정신과 약물이 필요한 이는 2명뿐이었으나 생활인 모두가 정신과 약물을 복용하고 있었다. 이들은 저녁 7시 잠자리에 들기 전 정신과 약물을 복용한 후 취침해 새벽 4시 30분에 일어나 새벽예배를 드리는 걸로 하루 일과를 시작하고 있었다.

이에 대해 정신과 전문의인 진병원 양재진 원장은 “시설관계자는 ‘약을 매일 먹는 것이 아니라 발작의 경우에만 쓴다’고 했으나 매일 먹은 것으로 추정되고, 생활인들과의 면담 결과 하루에 한번 이상 복용한 생활인도 있는 것으로 확인 됐다.”며 “약을 먹고 같은 시간에 잠이 든 것으로 보아 향정신성 의약품일 가능성이 있어 매우 위험하며, 특히 생활인 중 어느 누구도 어떤 증상으로, 어떤 목적 때문에 약을 먹는지 모르고 있는 사실.”이라고 밝혔다.

이어 “지난해 말까지는 한 달에 한 번씩 의사가 방문해 약을 처방한 것으로 보이지만, 올해 초부터는 원장 부부가 약을 임의로 타오는 등 환자 상태를 확인하지 않고 반복 처방하는 것으로 보인다.”라며 “현재 생활인들은 폐쇄된 공간에서 오는 압박으로 인한 극도의 불안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다른 시설로 가더라도 이곳으로 돌아오고자 할 수도 있고, 시설 문 밖에 나가더라도 다른 곳에 가지 못할 것.”이라고 우려를 나타냈다.

시설 내 잔존해있는 문제점들이 하나 둘씩 드러나기 시작하자 평택시 등 지자체 관계자는 회의 끝에 분리 조치를 결정해 장애인과 노인, 여성 등은 각각 전문 시설로 전원조치 됐고, 거동이 불편했던 생활인과 얼굴에 상처 입은 생활인은 병원으로 이송됐다.

▲ 생활인 통장. 기초생활수급비 및 장애수당은 시설장 염모 목사가 인출해 관리하고 있었다. 염 목사는
▲ 생활인 통장. 기초생활수급비 등은 시설장 염모 목사가 인출해 관리하고 있었다. 염 목사는 "이곳 생활인은 많이 먹기 때문에 수급비 대부분을 부식비로 지출한다."고 주장했다. ⓒ정두리 기자
미신고 장애인생활시설 문제, 해결할 의지 있나

분리조치가 진행되자 염 목사는 “내 청춘과 재산을 다바쳐 매진했다. 목회자니까 세상이 버린 형제들과 살겠다는 꿈을 키워왔는데 뭐가 문제인가.”라던 당초 모습과 달리 “더 잘해줬어야 하는데 부족했다. 미안하다.”며 본인이 보관해오던 생활인들의 신분증과 도장 등을 돌려줬다.

이 모습을 지켜보던 한 활동가는 “뒤늦게나마 사과했으나 자신이 무엇을 잘못했는지 알지 못하는 것 같다. 문제에 대해 (잘못을) 시인했다기보다 안 좋은 상황에 대처한 것으로 보여 씁쓸하다.”며 “한국사회가 사회복지시설을 운영하는 사람에 대해서는 ‘천사’운운하며 칭송하고, 인정하는 반면 그 시설에서 살고 있는 생활인들을 (동등한) 인격체로 보고 이들을 위해 어떻게 하겠다는 논의는 전혀 이뤄지지 않고 있다. 이번 사건은 지자체와 복지부가 시설 속에서 살고 있는 사람을 중심으로 정책을 설정하지 않은 단적인 예다. 이와 유사한 미신고 시설은 얼마든지 나타날 것이며, (시설비리 문제는) 해결되지 않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시설에서 나온 분들이 지역사회에서 어떤 서비스를 제공받으며 살아갈 수 있을지에 대해 논의돼야 하지만 다른 시설로의 전원조치가 전제되는 현 상황이 안타까울 뿐.”이라며 “조사과정서 가족에게 인계된다 하더라도 형편상 (미신고)시설을 선택했기 때문에, 결국 또 다시 비슷한 시설을 알아보게 될 것이고, 어디선가 알음알음 모이면 다시 시설이 생겨나게 된다. 정부가 아무리 시설 양성화 정책을 펼쳐봤자 음성화 된 미신고 시설은 확대될 수밖에 없는 악순환의 구조이고, 이것이 지금 우리 사회의 한계이자 현실.”이라고 꼬집었다.

법무법인 한길의 문정구 변호사는 “은폐된 공간에서의 상습적인 폭행을 비롯해 강제노동, (염 목사) 가족들의 개인적인 일로 생활인을 부린 일 등이 확인됐다.”며 “적법한 시설이 아니라는 이유로 폐쇄와 (생활인) 전원조치가 논의됐음에도 불구하고 행정기관이 기관장 말만 듣고 방치하는 등 안일한 태도도 큰 문제.”라고 지적했다.

문 변호사는 평택시청 등을 방문해 관련 자료와 염 목사, 생활인들의 증언 등을 대조해 증거를 확보한 뒤 수급비 횡령, 부당이득에 대한 손해배상, 강제노역 등에 대한 형사 고소 등을 진행할 예정인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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