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숙인 관련 단체 “서울역 비롯한 서울시, 근본적인 대책 마련해야”

한국철도공사 측이 민원이 계속된다는 이유 등으로 다음 달부터 밤 11시 이후 서울역사 내 노숙인들을 강제 퇴거시키겠다는 방침을 밝힌 것과 관련해, 노숙인인권공동실천단을 비롯한 14개 노숙인 관련 단체는 25일 ‘거리 홈리스 강제 퇴거 조치 서울역 규탄 기자회견’을 서울역 앞에서 열었다.

노숙인 관련 단체는 기자회견문을 통해 “매해 서울지역에서만 300명 이상의 노숙인들이 목숨을 잃고 있으며, 주로 겨울과 여름에 집중되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열악한 생활환경에 의해 건강상태가 악화된 노숙인들은 계절적 변화에도 쉽게 생명의 위협에 처하기 때문.”이라며 “서울역은 지난 해 1월 생명이 위독한 노숙인을 역사 밖으로 끌어내 사망하게 한 바 있다. 2006년 역시 사경을 헤매는 노숙인을 손수레에 실어 역사 밖으로 짐짝처럼 내버려 사망하게 했다.”고 개탄했다.

이어 “민원으로 제기되는 노숙인들의 형사법적 위반행위는 이미 철도특별사법경찰을 통해 대응할 수 있는 체계가 갖춰있다. 악취, 구걸 등 거리 노숙이 장기화되면서 파생하는 민원들은 정부와 지방자치단체의 현실적인 지원이 실시된다면 대폭 감소될 것들.”이라며 “그러나 그동안 정부·지자체의 책임 방기와 정책 실패가 노숙인과 철도 이용객 간의 마찰 구도를 만든 것.”이라고 주장했다.

노숙인 관련 단체는 이번 서울역의 퇴거 조치를 비판하며, 프랑스 국철의 ‘연대위원회(SNCF-Mission Slodarite)’를 긍정적인 예로 들었다.

프랑스 연대위원회가 생겨나게 된 배경은 실업자가 300만 명을 넘어서는 등 빈곤의 문제가 최대 사회문제로 여겨지던 1993년.

국철 역과 그 주변 역시 실업과 빈곤이 미치는 영향을 피할 수 없었다. 일이 없어 배회하는 사람은 현저히 늘어났고, 안전 및 청결 등을 조정할 수 없는 상태에 이르자 기업이 직접적인 대책을 수립해야 할 필요성을 통감해 연대위원회가 만들어졌다.

연대위원회의 재정은 국철의 자기재원과 민간복지를 위한 프랑스 재단 ‘Fondatiojn de France’의 조성에 의한 국철연대기금으로, 행정당국(특히 보건복지국)과 협회(association)와 함께 지원활동을 펼친다.

연대위원회의 공통 활동으로는 ▲‘노상지원팀’에 의한 주간 및 야간 순회활동(약물, 매춘, 비행 예방 특별 팀도 존재) ▲응급숙박시설 및 ‘주간상담소’ 설치 ▲직업 계획 작성을 위한 동반활동(능력 평가, 이력서 작성, 직업 교육 등) 등이 있다.

이날 기자회견에서는 서울역뿐만 아니라, 서울시의 노숙인 지원 및 대책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 또한 높았다.

서울시는 지난 24일 ‘거리노숙인 보호+자활+감소 특별대책’을 발표한 바 있다. 이 대책은 ▲희망 노숙인에게 특별자활(200명) 및 임시 주거(100명) 지원 확대 시행 ▲서울역 인근 응급구호방 10개소 운영 및 정신보건 전문요원 투입 ▲24시간 이용 가능한 ‘노숙인 자유카페’ 운영 등의 내용을 담고 있다.

빈곤사회연대 최예륜 사무국장은 “서울시 대책을 마련하겠다고 했지만, 거기에는 ‘자활의지가 있는’이라는 단서가 달려있다. 사람은 누구나 사람으로서 살아가기 위해 일하고 싶은 자활의지가 있다. 정부가 하는 복지, 서울시가 하는 복지는 이 사람 저 사람 조건을 가르는 것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서울시노숙인복지시설협회 서정화 사무국장은 “서울시노숙인복지시설협회는 서울지역에 43개 시설이 연대하고 있는 조직이다. 서울시는 서울지역 노숙인시설을 통해 노숙인을 보호하겠다고 하지만, 이미 함께하고 있는 시설은 만원이다. 더 이상 거리에 있는 노숙인들이 올 수 있는 환경이 아니다. 서울시는 서울지역 노숙인 문제를 책임지는 주무기관으로써 실천 있는 대안과 예산을 시행해야 한다. (단지 이러한 상황에서) 서울지역 노숙인시설에 노숙인을 보내겠다고 말하는 것은 책임 방기.”라고 꼬집었다.

홈리스행동 이동현 집행위원장은 “상담보호센터까지도 이미 만원인 상황이다. 얼마 전 서울시는 임시 주거지를 제공하겠다고 이야기했다. 편성된 예산은 100명이나, 아직까지 지원하지 않고 있을뿐더러 지난 해 200명에 비해 100명이나 감소한 수치다. 이러한 ‘임시’가 과연 대책이 될 수 있는가.”라고 비판했다.

인권운동사랑방 미류 활동가는 “누구는 화장실에서 오줌 싸는 소리 듣고 똥 냄새 맡으면서 자야 하는데, 누구는 땀 냄새 맡는 게 불편해서 사람들을 길바닥으로 내몰고 있다. 편의·미화가 인권과 비교될 수 있는 것인가.”라며 “노숙인이 흉기를 휘두르며 이용객의 안전을 위협한다고 하는데, 설령 그 사람이 노숙인일지라도 나이나 피부색 등 같은 조건을 가진 사람들을 출입 금지시킬 수도 있는 것 아닌가. 왜 꼭 ‘노숙인’인가. 철도공사는 노숙인을 위협적인 존재, 예비 범죄자로 몰고 있다.”고 질타했다.

이어 “최근 서울시는 서울역의 노숙인 퇴거 조치가 문제화되자 노숙인들을 상대로 설문조사를 실시했는데, 그제야 쉼터는 규칙이 엄격하고 사생활이 보호되지 않아 가고 싶지 않다는 사실을 알았다고 했다. 우리는 10년 전부터 왜 노숙인들이 쉼터에 가지 않으려고 하는지 누누이 말해왔다. 잠자리 하루 제공해준다고 선택권 등 인권을 침해하고 있는 게 서울시의 쉼터 정책이다. 아무튼 서울시가 설문조사 이후 다른 대책을 세워보겠다고 했으니 지켜볼 것.”이라고 전했다.

서울시가 지난 21일부터 22일까지 노숙인 20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쉼터 등 시설입소를 꺼리는 이유로 ‘단체생활 및 엄격한 생활규칙’이 51%로 가장 높았고 ‘사생활 보장이 어렵다’는 대답이 24%였다. 노숙생활을 벗어나기 위해 가장 필요한 사항으로는 ‘독립주거공간’과 ‘안정적인 일자리’가 각각 38%, 28%였다.

한 노숙인은 “쉼터에 가면 새벽 5시에 일어나고, 밤 10시 전에는 들어갈 수 없다. 그 시간 동안 ‘알아서 일자리를 찾아 일하라’는 식인데, 일자리도 못 구하고 갈 곳도 없기 때문에 서울역에 머물게 된다.”고 토로했다.

또 다른 노숙인은 “쉼터에 가면 군대처럼 ‘이거해라 저거해라’ 간섭한다. 아무리 갈 곳 없는 노숙인이라고는 하지만, 우리도 사람이다. 그런 곳에서는 살 수 없다.”고 단호하게 말했다.

인터뷰를 해달라며 다가온 한 노숙인에게 ‘무엇이 가장 걱정되느냐’고 묻자, ‘건강’이라고 대답했다. 장마와 폭염이 오가는 날씨, 잠잘 때마나 서울역사 안에서 비와 더위를 피할 수 있었지만 이제는 그마저도 허락되지 않았다.

그 노숙인은 “서울역 안에서 쫓겨나서 나오면, 서울역 옆에 있는 백화점·마트 직원들이 와서 쫓아낸다. 막 잡고 끌어내면서 ‘나가’라고 하고, 심지어는 발로 차면서 ‘일어나’라고 한다. 이 사람들이 다 어디로 가겠는가. 뿔뿔이 흩어져도 다 이 근처에 있고, 밤 되면 저 아래쪽에 가서 천막치고 자고 그런다.”고 설명했다.

이날 기자회견에서 서울역에서 한 달 전부터 노숙을 하고 있다고 밝힌 한 노숙인은 “우리도 6·25 전쟁을 겪으며 고생한 대한민국 국민.”이라며 “무조건 내쫓지 말고 일자리 제공 등 먹고 살 수 있도록 길을 열어줬으면 좋겠다.”고 목소리를 냈다.

저작권자 © 웰페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