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의 국토행진 배종훈·배재국 부자

근이영양증이라는 희귀난치병이 있습니다. 재국이가 앓고 있는 이 병은 흔히 근육병이라고 부르는데, 이 병에 걸리면 온몸의 근육이 점차 약해집니다. 그렇게 되면 혼자서는 움직일 수 없게 되고, 최악의 상황에는 호흡곤란까지 일으킵니다.

우리나라에 근육병을 앓고 있는 어린이들이 생각보다 많다고 들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근육병인지 모르는 사람도 많고,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는 사람도 많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 같은 사실을 보다 널리 알리기 위해 매년 국토행진을 진행하고 있으며, 올해로 4번째입니다.
 
처음에 국토행진을 하겠다는 생각은 못했죠. 재국이가 체육대회 때 체육복도 신발도 전부 새것을 입혀놨는데, 그늘아래에서 가방만 지키고 우두커니 앉아있었어요. 그 모습을 보고서 체육대회에는 참여하지 못하지만, 더 큰 세상을 볼 수 있게 해줘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곰곰이 생각해보니까 국토행진을 하면 넓은 세상과 많은 것들을 보여줄 수 있을 것 같아서 국토행진을 하게 됐죠.
 
2007년 첫 국토행진에 앞서 주변사람들에게 행사 준비와 관련해 도움을 요청했습니다. 그때 주변사람들의 반응은 ‘아픈 아이를 데리고 그런 일을 했다가 아이가 더 아프면 어떡할 것이냐’는 걱정과 함께 ‘재국이가 할 수 있다면 불가능을 가능하게 하는 행사가 어떻겠냐’는 응원이었습니다. 그렇게 한 마디 한 마디를 모아 1차 국토행진을 열었습니다.
 
6월이어서 많이 더웠고 비도 자주 왔습니다. 군포 쪽에서 올라오는 아침에 폭우가 왔는데, 국토행진을 인도해줄 경찰이 비가 너무 많이 와서 위험하다며 경찰서로 돌아갔습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경찰이 돌아가고 난 뒤 비가 그쳤어요. 그래서 다시 연락을 취해 경찰이 나왔는데 또 비가 내렸습니다. 경찰은 다시 경찰서로 돌아갔고, 비는 계속오고, 그래도 달성한 목표가 있으니까 ‘힘들어도 가보자’는 생각으로 비옷을 입고 조심스럽게 출발한 적이 있습니다.
 
24일간 600㎞를 걸었습니다. 국토행진 마지막 날 서울을 통과할 때, 목적지에 도착하고 나서 보니 파란물결이 있었습니다. 사람들이 입은 파란 옷, 하늘 위에는 파란색 풍선이 있었죠. 재국이의 완주를 축하해주기 위해 여러 봉사자들이 나왔던 것이었죠.
 
가슴이 뭉클해 재국이 앞에 무릎 꿇고 앉아 ‘감사하다’는 말을 전하고 싶었는데, 그 말까지 잊고 벅찬 가슴에 환영만 받았습니다.
 
2007년 첫 국토행진을 마친 뒤 주저할 시간 없이 2009년과 2010년에 국토행진을 진행했습니다. 재국이에게 처음 약속했듯이, 더 넓은 세상을 보여주기 위해 어디로 가서 어떤 것을 보여줘야 할지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
 
1차 국토행진, 2차 국토행진 때 큰 도움을 받았고, 그로써 근육병이 더 많이 알려졌습니다. 하지만 이로써 다른 어린이들이 더 소외될 수도 있겠다는 염려가 컸습니다. 만약 그렇다면, 재국이가 좋은 취지로 하는 국토행진은 안 좋을 것 같았죠. 그래서 2010년에는 도움을 받지 않고 스스로 진행해보자고 다짐했던 것이었습니다.
 
스스로 진행하는 만큼 걱정도 많았는데, 재국이가 ‘아프다’, ‘힘들다’는 소리를 한 번도 하지 않았는데, 그런 재국이가 정말 대단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번 4번째 국토행진은 제주도에서 이뤄지는데, 당초 올해 미국을 횡단하기로 한 것을 대신해 2012년 미국 횡단을 목표로 훈련할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합니다.
 
이번에는 그동안 도와줬던 봉사자들이 바쁜 관계로 빠지는 등 부족한 부분이 많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참여해 재국이를 비롯한 근육병 어린이에게 희망을 주고, 용기를 줬으면 합니다.
 
미국횡단을 위해 2009년부터 재국이와 속도를 맞춰보는 등 연습해왔는데, 국내에서 국토행진하는 것과 외국에서 하는 것은 천지차이였습니다. 외국에 나갈 때는 기업체 같은 데서 지원 받아야 가능할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좀처럼 참여해주시는 분이 없는 상태입니다. 그래서 계속 미뤄지고 있는데, 그렇다고 포기한 것은 아니며 조금씩 준비하고 있습니다.
 
저는 재국이의 병이 더 이상 진행되지 않고 이 상태로만이라도 머물러줬으면 좋겠습니다. 진행되더라도 재국이가 지금처럼 항상 밝은 얼굴로 씩씩하게 자라줬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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