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도가니’ 열풍으로 사각지대에 놓인 장애인 인권이 재조명 받는 가운데 한 인터넷 커뮤니티 사이트에 한 영화관 알바생이 겪은 도가니 한글자막 상영 문의에 대한 에피소드가 올라와 주목을 받았다.

지난 3일 네이트판 게시판에는 ‘영화관ARS 알바 도중 고운 목소리의 그녀와의 통화내역’이란 제목의 글이 올라왔다. 설레는 로맨스를 기대하며 글을 읽은 사람들이 놀란 것은 그 고운 목소리를 가진 그녀가 ‘청각장애인을 위한 문자서비스 센터’ 직원이었고, 영화관에서 ARS상담을 하고 있던 글쓴이에게 한글자막이 지원되는 ‘도가니’에 대해 문의한 한 농인의 메시지 내용을 전했기 때문. 메시지의 내용은 “저는 청각장애인입니다. 도가니를 보고싶은데, 혹시 한글자막이 가능합니까?”였다.

글쓴이는 “그 순간 할말을 잃었다. 가슴이 먹먹해지고 뒷골이 쭈뼛쭈뼛 서는 기분이었다. 부랴부랴 다른 직원에게 물어봤지만, 그 영화관은 한글자막을 지원하지 않고있었다.”며 “우리는 도가니라는 영화를 보며 분노할 줄만 알았다. 그저 화가 난다고만 말했지, 그 누가 도가니의 주인공인 청각장애인들이 이 영화를 보고싶어 하는지는 아무도 관심이 없었다.”라고 고백했다.

이 글은 조횟수를 17만 건을 훌쩍 넘기며 주목을 받았고, 누리꾼들은 “청각장애인이신 우리 부모님이 도가니에 관심 보이시는데 영화보러 가자고 말할 수 없었다. 정말 속상하다.”, “며칠 전 영화관에서 도가니 볼 때 앞줄 맨끝에 누군가가 수화하는 게 보였는데 옆에 청각장애인이 함께 와서 수화로 열심히 통역해주고 있었다. 남에게 피해주지 않으려고 끝에 앉은 것 같았는데 이 글을 보니 생각난다.”라며 공감하기도 하고 “도가니 속 법정에서 청각장애인에 관한 재판인데 수화할 수 있는 사람이 왜 없냐고 막 따졌을 때 함께 욕했는데 한글 자막을 아예 생각도 못하고 있었던 나는 똑같은 인간인 것인가.”, “장애인들이 이렇게 당한 일에는 슬퍼하고 분노하면서 왜 내 집 뒷마당에 들어오는 장애인 관련시설은 반대하는지 생각해 봐야 한다.”라는 자성의 목소리를 내기도 했다.

▲ ⓒ다음 아고라 캡쳐
▲ ⓒ다음 아고라 캡쳐
이런 가운데 지난 4일에는 ‘시ㆍ청각 장애인의 영화 관람권’을 호소하는 청원이 다음 아고라에 올라왔다.

장애인정보문화누리의 김철환 활동가는 청원글에서 “되돌아보면 장애인의 인권유린이나 차별은 ‘도가니’에서만 있는 것이 아니다. 제2, 제3의 도가니가 우리 주변에는 많다.”며 “장애인들이 받고 있는 인권침해 가운데 하나가 영화관람권리다. ‘도가니’가 장애인들의 가슴 아픈 이야기를 영화로 만들어진 것임에도 불구하고 정작 장애인들은 영화를 보지 못하고 있다.”며 취지를 밝혔다.

김 활동가는 “청각 장애인들을 위해 자막을 올리는 상영관은 (영화 ‘도가니’의 경우) 전국 509개 스크린 중 20곳(9월 말 기준) 밖에 안 된다.”면서 “그마저도 상영 횟수가 하루 1회 정도라 자유롭게 볼 수 없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김 활동가는 이어 “휠체어를 이용하는 장애인들은 건물에 들어가기 불편하거나 휠체어용 좌석이 없어서 영화를 보는 데 어려움이 있고, 시각 장애인의 경우 영상은 잘 볼 수 없지만 영화 장면을 읽어주는 ‘화면해설’을 해주면 감상하는 데 문제가 없는데 화면해설을 해주는 영화관도 거의 없다.”고 말했다.

김 활동가에 따르면 지난해 개봉한 한국영화 168편 중 한글자막이나 화면해설을 제공한 영화는 15편 정도. 즉 지난해 상영한 한국영화의 90% 이상을 장애인들이 제대로 관람을 할 수 없었고, 일반 한국영화는 물론 ‘글러브’ 등 장애인을 소재로 한 영화가 개봉돼도 장애인들은 관람하지 못했다.

그는 이 같은 일이 벌어지는 이유에 대해 “장애인차별금지법이 개정됐지만 적용되는 극장이 제한적이고 그마저도 의무사항이 아닌 임의사항에 그쳤기 때문.”이라며 취약한 정책을 원인으로 꼽았다. 그러다보니 ‘도가니’의 경우 제작업체에서 자막 상영에 적극적이었는데도 상영 스크린의 4%인 20여 곳만이 자막 서비스 실시를 고려할 정도로 상영관들이 적극적으로 나서주지 않았다는 것.

▲ ⓒ장애인정보문화누리
▲ ⓒ장애인정보문화누리
실제로 ‘도가니’가 개봉했을 당시 한글자막이 지원되는 영화관은 전국에 10곳밖에 없었다. 당시 하루에 오전 오후 두 편씩 상영됐으나, 취재 결과 한글자막이 있으면 불편하다는 관객들의 항의가 있었고 비장애인들이 한글자막 ‘도가니’를 보지 않으려 한다는 이유로 하루 한 편으로 줄인 것으로 드러났다. 그러다 한국농아인협회와 장애인정보문화누리, 장애인 당사자 등의 건의가 쇄도하자 10월 초를 기준으로 몇 곳을 더 확대해 20여 곳으로 늘어난 것.

김 활동가는 외국의 장애인 영화 관람 서비스를 소개하며 아쉬움을 드러내기도 했다. 김 씨는 “외국의 경우 안경에 자막 디스플레이 장치를 달아 청각장애인만이 자막을 볼 수 있게 하는 장치 등 다양한 장비를 사용하고 있다.”고 설명하고 “국내에서도 이런 논의가 오래전부터 있어왔고, 이러한 기술을 보유한 업체도 있지만 이 업체가 개발에 대한 지원처를 찾지 못해 양산하지 못하고 있다.”며 안타까움을 드러냈다.

김 활동가는 “장애인들이 자유롭게 영화를 볼 수 있도록 법률과 정책을 개선할 것을 국회와 관련 기관에 요구하고자 한다.”며 “이에 제2, 제3의 도가니 같은 세상이 아닌, 장애인도 사람답게 살 수 있는 세상이 만들어지도록 많은 분들의 지지와 응원 부탁한다.”고 호소했다.

장애인 영화 관람권을 지지하는 청원은 다음 아고라 게시판(http://bit.ly/nTsO6l)에서 참여할 수 있다. 11월 4일을 마감으로 10,000명을 목표로 하고 있으며, 현재 7%만이 서명을 한 상태다.

참고로 7일 현재 한글자막 도가니를 상영하고 있는 곳은 전국 21개관이다. 이 중  CGV인천점, 청주·서귀포 롯데시네마, 원주 프리머스가 하루에 2편씩 상영 중이며, 시너스 이채점과 천안점은 각각 5편, 3편씩이나 이채점은 주말동안에는 하루 한 편만 상영하며 천안점도 매일 일정이 다르기 때문에 필히 시간을 확인한 후 관람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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