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좌담 ‘도가니’가 준 의미, 앞으로의 방향은?

영화 ‘도가니’로 시작된 파장이 장애인 복지계를 뒤흔들 만큼 위력적이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치기’나마 정부가 나서 제2의 ‘도가니’를 막겠다고 공언하고 있으며, 2006년 좌절됐던 ‘공익이사제 도입을 골자로 한 사회복지사업법 개정’을 추진 중이다. 심지어 인화학교 사태 당시 미온적인 대응으로 입길에 오른 전 광주 교육감이 사의를 표명하기도 했다.

반면 인화학교 사건의 핵심인 청각장애인 인권과 교육권 등 당사자에 대한 목소리는 찾아보기 힘들어 일각에서는 ‘이러다 마는 것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도 높다.

이에 농아인당사자와 장애계 활동가들과 함께 ‘도가니’가 가져온 사회적 파장과 앞으로의 방향에 대해 모색하는 자리를 마련했다.

참가자: 박김영희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 사무국장, 김철환 장애인정보문화누리 활동가, 민경주 국립중앙도서관 농통역사, 여준민 장애와인권발바닥행동 활동가

영화보다 더 처참했던 인화학교 현실

박김영희 장애계는 물론 온 국민이 영화 ‘도가니’ 열풍에 쌓여 있다. 영화계조차 예상 못했던 흥행 덕분에 동명 소설이 또 다시 베스트셀러가 됐으며, 실제 배경이 된 광주 인화학교에 대한 관심이 쏟아지고 있다.

그 뜨거운 열기덕분에 인화학교 문제가 사회이슈화 되면서 인화학교가 폐쇄되고 가해자 선생님들이 교단에서 쫓겨나는 성과를 거두기는 했지만, 청각장애인당사자를 비롯한 본질에는 별다른 관심이 쏠리지 못하는 것 같다. 우선 영화 중 가장 인상 깊었던 장면이 있다면 이야기해 달라.

김철환 동명 소설 ‘도가니’를 읽은 지는 꽤 오래됐다. 에바다학교 사태 이후 청각장애계 대표적인 사건인 인화학교 문제를 다뤘다기에 관심 있게 읽었지만, 영화는 선뜻 보지 못하다 최근에서야 봤다. 영화 보는 내내 스크린에서 눈을 돌리지 못할 만큼 가슴이 아팠다. 그러나 영화 ‘도가니’가 사회에 충격을 던지며 이슈화 되는 것을 보고 ‘우리 사회가 많이 성숙했다’라는 기쁜 마음을 새삼 느끼기도 했다.

민경주 영화를 본 순간 할 말을 잃었다. 영화를 보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눈물을 흘렸고, 나 또한 눈물이 났다. 숨을 몰아쉬며 참았지만 눈물을 흘리고 말았다.

▲ 기획좌담 ‘도가니’가 준 의미, 앞으로의 방향에 참석한 패널들. (좌로부터) 여준민 장애와인권발바닥행동 활동가, 민경주 국립중앙도서관 농통역사, 김철환 장애인정보문화누리 활동가, 박김영희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 사무국장
▲ 기획좌담 ‘도가니’가 준 의미, 앞으로의 방향에 참석한 패널들. (좌로부터) 여준민 장애와인권발바닥행동 활동가, 민경주 국립중앙도서관 농통역사, 김철환 장애인정보문화누리 활동가, 박김영희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 사무국장
여준민
2006년 당시 국가인권위원회가 인화학교를 직권조사 할 때 민간조사원 자격으로 참여 했었다. 일단 영화를 본 소감은, 공포영화 한편 보고나온 기분이었다. 현장을 직접 봤고, 내용을 알고 있는 사람으로서 영화보다 현실이 훨씬 더 비참하고 참혹하다는 사실 때문에 서글펐다.

아쉬운 점이 있다면 영화에서는 성폭행과 관련해서만 초점이 다뤄지고 그것을 해결하지 못하게 한 지역사회 유착, 기독교계와 경찰·검찰의 문제점, 변호사 등 사회적 지위를 가진 사람들의 문제점, 관련 지자체의 미온적 태도 등 구조적인 문제만 언급됐을 뿐 기본적으로 왜 이런 문제가 발생할 수밖에 없는가라는 원인을 파헤치는 데는 미흡했다. 그래서 왜 이런 문제가 끊임없이 발생되는 것인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해결되지 않는 것인지를 이야기됐으면 한다.

박김영희 사실 이 영화를 관통하고 있는 문제는 장애인의 인권, 특히 청각장애인의 인권과 교육에 관한 문제, (장애인생활)시설에 대한 고질적 병폐 등을 들 수 있다. 하지만 이것들을 영화가 다 담기는 한계가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한계가 있음에도 영화를 본 사람이 분노하고 사회이슈화 되는 것을 보면서 한편으로는 그 오랫동안 시설문제와 청각장애인 인권문제, 소통의 문제, 교육의 문제를 외쳐왔던 활동가로써 무력함을 느끼는 것도 사실이다. 그래도 인화학교 사건이 영화화되고 실질적으로 사회 이슈화되기까지 활동가들의 활동과 문제제기가 바탕에 깔려 있다고 생각한다.

개인적으로 영화의 첫 부분에서 안개가 자욱하게 끼었던 찻길을 달리다 사고가 나는 장면이 가장 인상에 남는다. 아이가 철길에서 죽고, 고라니가 차에 치여 피 흘리며 죽어가는 모습을 보며, 우리 사회에서 장애인들이 받는 인권침해를 생각했다. 장애인의 목숨이 그렇게 한 마리 고라니처럼 무가치 하게 느껴진다는 생각에 영화 시작부터 고통스러웠다.

김철환 영화를 보며 우려스러웠던 부분이 있다면, 청각장애인에 대해 관객들이 오해하지 않을까란 점이다.

법정에서 수화통역을 해주지 않아 여자 주인공이 항의하는 모습이나 마지막 물대포를 맞으며 나아가는 주인공의 모습은 인상적이지만, 청각장애인의 관점에서 보면 청각장애인은 보호를 받아야 하거나 누군가의 대변이 꼭 필요하다는 인상을 남길 수 있어 아쉬웠다.

민경주 영화 속 수화 장면도 많이 아쉬웠다. 수화역시 언어이기 때문에 있는 그대로 통역이 돼야 하는데, 지나치게 과장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준민 법원에서 가해자들이 집행유예로 풀려나고 사람들의 아우성이 가득 차는 모습이 기억에 남는다.

▲ 박김영희 사무국장
▲ 박김영희 사무국장 "장애인이 비장애인처럼 되겠다는 것도 아니고, 세상을 막 바꾸겠다는 것도 아니다. 장애가 있는 그 자체로, 이 모습 이대로 행복하게 인간의 기본적 권리를 가지고 살 수 있는 것을 바라는 것이 우리의 소망이다."
박김영희 영화 속 ‘도가니’보다 현실은 더욱 처참했던 걸로 기억하는데 당시 현장은 어땠나.

여준민 당시 학교에는 20여명의 학생들이 있었고, 시설(인화원)에는 70여명이 남아있었다. 우선 성폭력 부분과 인화원이라는 장애인생활시설, 교육권 문제 등을 나눠 조사를 시작했는데 수화로 접근해야 하고, 수화를 사용하지 않는 이들에 대한 기피반응이 심한 점, 두려움 등으로 인해 인터뷰하기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드러난 성폭행 사건 이외에도 지속적인 성폭행이 있어왔다는 제보가 있었기 때문에 재학생, 인화원 생활인뿐만 아니라 졸업생 등 100여 명에 대한 인터뷰를 1박2일로 진행했었다.

박김영희 인화학교 사건이 터졌을 때 광주 대책위 천막농성에 지지방문 했던 것이 기억난다. 그때 청각장애 학생들의 부모가 농성장에 계셨는데, 수화로 너무 슬픈 눈빛을 보내며 아픔을 호소하고 가슴을 쳤다. 그 상황이 너무 힘들어 이야기를 채 듣지 못하고 밖으로 나와 숨을 몰아쉬었던 고통이 지금도 느껴진다.

여준민 충격적인 것은 교육권 문제에서도 나타났다. 청각장애 학생들의 교육현장을 알아보기 위해 수업에 참관했었다. 10여명의 학생이 앉아있었고, 선생님은 연신 땀을 흘리며 계속 말로만 수업을 하고 있었다. 수화를 못하는 교사다보니 말로 설명 하고, 칠판에 써가며 수업을 진행했는데 학생들은 전혀 알아듣지 못했다. 특히 수업내용이 거의 단어나 문장 중심으로 진행됐는데, 고등학생이 이런 교육을 받고 있다는 데 굉장히 충격적이었다.

인화학교는 학생 수도 적었고, 교육청 지원이 있었기 때문에 건물이나 기자재 모두 거의 새것이었으나 인화원은 달랐다. 시설이 낙후됐으나 보강된 것은 거의 없었고, 문도 떨어져 덜렁거리고 음침했다. 발달장애인들도 상당수 있었고, 청각장애와 발달장애 등 중복장애인도 있었다. 일하는 직원은 22명이 2교대로 돌아가고 있었다. 그러나 발달장애인 중심으로 시설이 운영되고 있어서 청각장애인은 방치되고 있었으며, 문제가 생겨 상담을 하고 싶어도 사람이 없었다.

학교의 경우도 상담교사가 없는 것은 둘째 치고 수화를 할 줄 아는 선생님이 없어 상담이 불가능했다.

▲ 지난 5일 인화학교성폭력대책위원회는 '인화학교 운영법인 인가취소와 사회복지사업법 개정을 위한 천막농성 돌입' 기자회견을 개최하고 천막농성에 돌입했다 ⓒ인화학교성폭력대책위
▲ 지난 5일 인화학교성폭력대책위원회는 '인화학교 운영법인 인가취소와 사회복지사업법 개정을 위한 천막농성 돌입' 기자회견을 개최하고 천막농성에 돌입했다 ⓒ인화학교성폭력대책위
“소통의 단절, 사회가 청각장애인들을 밀쳐내고 있다”

박김영희 인화학교가 폐쇄적으로 운영된 원인은 어디 있다고 보는가. 다른 청각장애학교도 상당히 폐쇄적이어서 안의 문제가 밖으로 나가지 못하고 고립돼 있다는 생각이 든다.

여준민 인화학교는 지리적으로 고립되고 동떨어져 있다. 생활은 인화원에서 하다 보니 옆 학교 건물과 인화원만을 왔다 갔다 하며 생활했다. 밖에 나가려면 외출 허가를 받아야 했고, 이런 생활을 초등학교 때부터 고등학교 때까지 이어지다보니 자연스럽게 사회와 단절됐다. 누군가 찾아오지 않는 이상 밖에 나가 무엇인가 할 수 있으리라는 생각을 본인 스스로도 하지 못했고, 선택할 수도 없었던 게 당시 인화학교의 현실이었다.

김철환 단절문제를 이야기 했는데, 단절은 물리적 단절도 있지만 심리적 단절, 소통의 단절 등 문제가 있다. 비장애인학생들은 거의 대부분 자신의 집에서 왔다 갔다 한다. 하지만 인근에 청각장애 학교가 없다보니 자연스럽게 기숙사 생활을 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또 인화학교와 인화원의 경우 지역주민과 소통할 수 있는 구조가 아니다.

특히 청각장애인들이 갖고 있는 사고체계와 비장애인 사고체계를 엮어 줄 수 있는 사회․문화가 형성되지 않았고, 심리적 단절 이면에는 의사소통의 단절이 있었다. 여기서 심리적 단절을 부추기는 것은 인식의 문제다.

수화를 하지 못하는 사람과는 의사소통이 어려운 청각장애인의 경우 사회와의 소통의 단절로 부정적인 인식이 덧붙여져 고립되는 것이다. 청각장애인 사회 자체가 비장애인 사회와 벽이 있는 건 아닌가 생각한다. 그래서 폐쇄적인 말보다는 사회가 이들을 밀쳐내고 있다고 표현하고 싶다.

민경주 언론에서는 피해자들의 성격이 대부분 성폭행을 당했거나 목격했기 때문에 폐쇄적이 됐다고 표현한 것을 봤다. 하지만 폐쇄적인 성격 때문에 이야기를 안 하는 게 아니다. 어떤 문제가 발생해 언론에 노출되거나 했을 때, 예를 들어 모자이크를 하더라도 수화하는 모습을 통해 좁은 농사회 속에서는 서로를 금방 알아보고 파악할 수 있기 때문에 자신을 드러내기 어렵다. 또 성폭행을 당했다는 것에 대해 대화를 하지 않고 수화로 소통할 수 있는 한계가 있기 때문에 적극적이지 않고 내성적이 될 수밖에 없었다고 생각한다.

▲ 김철환 활동가
▲ 김철환 활동가 "청각장애인 사회가 폐쇄적이라기 보다 비장애인 사회가 이들을 밀쳐내고 있다고 표현하고 싶다."
“정부의 인화학교 폐쇄 결정, 진정한 답은 무엇인가”

박김영희 인화학교 문제가 불거지자, 지난 7일 정부가 나서서 인화학교와 인화원을 폐교·폐쇄 처리했는데, 일각에선 학교 폐쇄는 결국 학생들의 교육권 박탈로 이어질 것이라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 정부 정책결정 과정서 과연 그곳에 있는 청각장애학생들의 목소리를 들었는지에 대한 우려도 높다.

김철환 학교에 대한 조치는 청각장애 학생당사자와의 충분한 커뮤니케이션이 이뤄져야 하는 것이 기본이다. 학생들을 개별면담 하고 부모들과 상의해야 하며, 문제를 풀어나가기 위해 활동하는 사람들과의 논의가 필요하다.

여준민 장애계 활동가들의 입장에서는 청각장애인들의 경우 정보가 많이 차단돼 있기 때문에 정보를 제공하고 다양한 선택권을 주는 것이 우리의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김철환 어른들이 포장해놓은 틀에 학생들을 넣는 게 아닌, 그동안 단절돼 있던 부분을 허무는 작업부터 시작해야 한다. 사실 학생들의 거취 문제도 중요하지만 이 학생들을 어떻게 치유하고 자신들의 감성을 표출하게 해 방향을 결정하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에, 충분한 커뮤니케이션이 이뤄져야 한다.

“사회복지사업법 개정, 선언보다 알맹이 있는 내용이 중요”

박김영희 영화 속 여주인공이 교육청을 찾아가 성폭행 사건을 공론화 시키려고 하자 ‘방과 후의 문제는 사회복지과’라고 답변하는 장면이 나온다. 즉 기숙사는 학교시설이나 인화원의 경우 사회복지법인 우석이 운영하는 장애인생활시설이다. 여기서 시설문제에 대한 고민을 할 수밖에 없게 된다.

정부에서는 시설에 공익이사제를 도입한 사회복지사업법을 꼭 개정하겠다고 약속했지만 중요한 것은 내용이다. 즉 공익이사가 1/2이 들어가느냐, 1/3이 포함되느냐가 핵심이다. 이를 위해 사회복지사업법 개정과 인화학교 문제 해결을 위한 ‘도가니 대책위’ 만들어 졌는데 어떻게 준비하고 있는가.

여준민 사회복지사업법 개정은 2006년도에 전면개정을 시도했지만 실패했었다. 당시 여당과 기독교 시설 운영 측에서 집단 항의하는 등 저항에 부딪혀 무산됐었다가 인화학교 문제가 터지면서 다시 개정운동에 들어갔다.

이제야 열풍이 일어나는 것이 씁쓸하지만 사회 변화의 목소리가 높아진 지금 다시 한 번 개정운동을 펼쳐야겠다고 생각해 20여개 이상 노동·시민사회·장애계·인권·여성단체가 모여 대책위를 구성했다.

우선 법안을 개정하는 법률 팀과 대국민 선전전전하는 홍보팀으로 나뉘었다. 도가니가 상영되는 극장 앞에서 대국민 선전전과 서명운동을 진행하고, 문화제도 진행한다. 이명박 대통령은 도가니 열풍을 보며 사회인식이 많이 변화해야 한다고 이야기했는데, 사람들의 인식 변화는 올바른 법 제도에서 시작한다. 이 때문에 법 개정이 시급하다.

민경주 한 가지 덧붙이자면, 인화학교는 청각장애인 학교라는 점을 고려해 공익이사에 청각장애인이거나 청각장애인의 특수성을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이 반드시 포함돼야 한다.

김철환 중요한 이야기다. 공익이사제가 필요하지만, 이는 문제를 풀어가는 과정에서 당사자가 중심이 되고 이들의 목소리가 전달됨이 중요하다. 청각장애인들이 그동안 단절된 정보 환경 때문에 소외됐지만, 그것은 청각장애인들의 잘못이 아니라 사회의 책임이다. 그래서 공익이사를 선정할 때 이들에게 정보를 제공하고 기회를 줄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해야 한다.

여준민 사회복지사업법에 의하면, 시설이라는 곳은 100% 국민 세금으로 운영되기 때문에 민주적이고 투명해야 하며, 공익적 성격을 담보해야 한다. 이 때문에 공익이사제는 당연히 도입돼야 한다. 더불어 시설 내에서 어떠한 일이 벌어지는지, 인권침해가 없는지를 감시하는 체계도 분명히 법에 녹아 있어야 한다.

그러나 이제는 이를 뛰어넘어, 왜 장애가 있고 가난하다고 해서 시설에서 살아야하는지에 대한 인식변화가 필요하다. 법체계 내에 탈시설에 대한 욕구를 조사하고 자립생활을 원하는 이들을 위한 지원까지 포함돼야 한다고 본다. 더 나아가 사회복지서비스 신청권도 개정안에 포함돼야 한다.

내가 받고 싶은 서비스에 대해 국가가 원스톱 체계로 제공하는 것, 이것이 사회복지서비스 신청권의 중심이다. 본인이 찾아다니면서 일일이 정보를 구하는 것이 아니라 국가가 체계적으로 서비스를 제공하게 되면 자립생활과 탈시설이 가능해질 것이다.

▲ 영화 '도가니'의 한 장면 ⓒ딜라이트
▲ 영화 '도가니'의 한 장면 ⓒ딜라이트
박김영희 시설이라 하면 장애인이나 중증장애인이 있는 수용시설을 생각하게 마련이다. 그런데 학교에 있는 기숙사가 시설이라는 것을 사람들은 상상하지 못한다. 비장애인이 쓰는 기숙사라는 용어와 장애인이 쓰는 기숙사라는 용어가 다르기 때문이다. 이 ‘다른 기숙사’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일이 벌어진다. 특수학교 기숙사는 집단화 돼 있고, 위계와 권력이 존재한다. 또 누군가 폭력을 당하고 인권침해가 벌어지고 있다. 그리고 규정에 맞춰진 삶을 살아야 한다. 일어나야 하는 시간에 똑같이 일어나, 먹고 싶을 때 먹는 것이 아닌 먹어야 하는 시간에 먹어야 한다. 그리고 자야 하는 시간에 잠들어야 하는 관리당하는 삶을 살고 있다.

김철환 청각장애인 학교의 경우 학교 자체가 시설인 곳도 있다. 공부대신에 노역을 한 경우도 있다. 에바다학교도, 인화학교도 강제노역이 있었다는 것이 밝혀졌다. 어쩌면 기숙사 뿐 아니라 학교자체가 ‘시설화’ 됐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성폭력특별법 상 항거불능 조항 삭제, 장애인 특수성 반영한 공소시효 폐지 절실”

박김영희 사회복지사업법 개정 문제와 함께 나오는 것이 성폭력특별법 개정의 문제다. 이중 성폭력의 항거불능에 대한 조항은 큰 문제로 꼽히고 있으나 여전히 법 개정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 장애여성, 특히 지적장애를 상대로 한 성폭력 범죄가 심각하지만, ‘도가니’에서와 같이 처벌을 받는 경우는 극히 미비하다.

지적장애여성이 성폭력 당했을 때 신체적 불편이 없다는 이유로 본인도 원했던 것이 아니냐는 의심을 받는다. 장애의 개념과 특수성에 대한 이해 없이 피해자가 얼마나 항거했는가를 계속해서 증언하게 한다. 청각장애여성들도 마찬가지로 신체적 기능은 항거 가능한 게 아니냐는 의심을 충분히 받을 수 있다. 장애특성을 반영하지 못하는 성폭력특별법에서의 항거불능 조항은 반드시 삭제돼야 한다.

김철환 청각장애인의 경우 위급한 상황에서 비장애인처럼 소리를 내거나 도움을 구하지 못한다. 또 자신이 처한 상황에 대해 파악하고,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에 대한 정보가 부족하다.

민경주 다른 유형의 장애인은 성폭력을 당한 후 주변인 또는 봉사자들에게 말할 수 있지만, 청각장애인은 대화 문제로 인해 쉽게 도움을 청하지도, 상황을 전달하기도 어렵다.

▲ 여준민 활동가
▲ 여준민 활동가 "도가니에 그려진 인화원을 통해 시설이 과연 무엇을 하는 것인가에 대한 근본적인 논의가 되길 바란다. 또 그 안의 사람들이 지역사회로 나와서 함께 어울려 살 수 있는지에 대해 고민할 수 있는 법 개정까지 가야한다고 다시 강조한다. "
여준민 인화학교 학생들의 경우 성추행이나 성폭행에 대한 개념 자체가 없었다. 성에 대한 정보가 없는 이들에게 교육의 부재와 정보 교류의 문제점은 더욱 심각했다. 가해자들이 ‘예뻐서 그러는 거야’라고 말하면 그 곳의 학생들은 그 말을 믿고, 나쁘다는 생각을 하지 못했다.

민경주 영화를 보고 온 한 청각장애인이 과거 성폭행을 당했다는 말을 했다. 누구에게 말을 하지 못했던 그는 경찰을 찾아갔지만 이미 공소시효가 지났었다고 한다. 성폭행에 대한 인지조차 없었던 것이다.

박김영희 나에게도 영화를 본 청각장애 청년이 연락해 똑같은 경험이 있다며 조사를 원했으나 이 역시 공소시효가 지난 후였다. 자신이 당했던 성폭력에 대한 기억을 성장해서 또는 성폭력에 대한 교육을 통해 문제제기를 하고 해결할 수 있도록 성폭력에 대한 공소시효를 없애야 한다. 힘이 없거나 지원해주는 사람이 없어서 하지 못했던 대응을 할 수 있도록, 또 가해자를 반드시 처벌할 수 있도록 공소시효는 당연히 폐지돼야 한다.

김철환 사실 법학자 의견은 우리의 생각과 다를 수 있다. 그러나 특수성을 반영해야 한다. 공소시효의 문제를 획일적인 잣대로 봐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뒤늦게 인지할 수밖에 없는 특수성을 감안한 공소시효 폐지에 동감하며, 이와 관련한 연구가 필요하다.

박김영희 다시 인화학교로 돌아 가보면, 그들이 너무 악랄했던 것 중 하나는 성폭력에 대한 인지가 부족하거나 대응이 어려운 약자만을 골라 폭력을 가했다는 것이다. 부모가 없거나 또는 부모가 지적장애인인, 보복을 당하지 않을 것 같은 힘없는 사람만 골라서 폭력을 가했다.

여준민 직접 상담을 하지는 않았지만 전해들은 바에 따르면, 인화학교에는 교사들에 의한 성폭행뿐만 아니라 기숙사 내의 학생들끼리 성폭행 문제도 꽤나 많다는 소문이다. 이런 문제는 지난해에 언론에 보도된 바도 있다. 다른 학교에서의 소문도 있다. 기숙사에 모여 생활하다보니 이들에게 선후배 사이의 위계가 생겨나고, 권력관계가 형성되면서 구타나 성폭력 사건이 벌어지고 있다. 여기에 대한 점검도 필요하다.

민경주 기숙사 생활을 하지 않았으나 다른 친구들 이야기를 들어보면 대부분 기숙사 생활을 했으며, 선후배 관계가 엄격해 아직도 선배들을 만나면 무섭다고 한다.

김철환 교사와 제자 사이, 선후배 사이에서 성폭행이 관행처럼 있었다는 이야기도 있다. 이것을 바로잡는 것이 쉽지는 않겠지만 지금하지 않는다면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아픈 부분은 도려내야 자라나는 세대를 바르게 이끌어 갈 수 있는 지침을 세울 수 있다.

박김영희 성폭력에 대한 이야기가 계속되면서 어떤 사람들은 농아인들의 성문화에 대해 실태조사를 하거나 성폭력 인식에 대한 조사를 실시한 적이 있냐는 질문을 하기도 한다. 사실 성문화와 개념, 성폭력에 대한 개념에 대해 학교에서 교육을 하는 것은 없다. 성폭력이 무엇이고 성에 대해 자기 결정권이 있다는 교육은 이뤄지지 않는다. 여기에 대해서는 어떻게 접근해야 한다고 보는가.

여준민 2006년 당시 광주 교육청을 인권위 조사관과 방문한 적이 있었다. 그런데 교육청 관계자들이 우리에게 장애인들의 ‘성 예방 교육’을 어떻게 해야 하냐고 되물어 당황했었다. 국가가 성교육에 대한 자료를 만들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민간에 의존하려는 태도가 우리의 현실을 대변한다고 본다.

김철환 교과과정 중에 없지는 않을 것이다. 학교에서는 가르치는 곳도 있지만 재대로 가르쳐지지 않는 것이다. 청각장애인에게 어떤 형태로 성에 대해 배웠냐고 물으면 선배를 통해 배웠다고 한다.

민경주 성폭력 교육을 받아본 적이 없으며, 대부분 인터넷을 통해 정보를 얻는다. 지금까지 알고 지내온 청각장애인들도 성에 대한 호기심을 본인이 직접 물어보거나, 찾아서 해결하는 경우가 많았다. 학교에서 교육하는 건 들어본 적이 없다.

▲ 영화 '도가니'의 한 장면 ⓒ딜라이트
▲ 영화 '도가니'의 한 장면 ⓒ딜라이트
전국 청각장애인 학교에 수화통역 자격증 소지 교사, 3.8% 불과

박김영희 특수교사가 수화를 못하는 문제도 심각함에도 불구하고 여태까지 해결 안 되는 문제 중 하나다. 왜 이런 문제가 발생하는가.

민경주 특수교사가 되기 위해 수화통역사 자격증 시험을 봐야 한다는 법적 규정이 없기 때문에 임용고시를 보고 나면 교사로 바로 채용이 된다. 그렇다 보니 학생들은 수화를 하는 선생님이 오면 좋은 것이고 아니면 어쩔 수 없는 상황이다.

김철환 인권위가 전국의 청각장애인 특수학교 교사의 수화통역 실태를 조사했더니 3.8%, 500여 명 중 20여 명만이 수화통역 자격증을 소지해 충격을 던져줬다. 최근에는 인공와우 수술을 통해 청각장애 학생들이 통합학교로 전학가다보니 학생 상당수가 지적장애인이나 중복장애 학생이어서 청각장애 학생에만 중점을 둘 수 있는 상황도 아니다. 게다가 초등학교 저학년까지 수화를 안 쓰는 등 교육의 중점을 수화에 두지 않는 이유도 크다.

수화를 할 줄 아는 교사의 필요성도 중요하지만 청각장애 교사의 중요성도 매우 크다. 단지 청각장애인당사자의 입장에서 교육한다는 측면을 넘어서, 수화는 보이는 언어이기 때문에 보이는 언어에 대응하는 특성이 있다. 이를 통해 농문화가 형성된다. 보통은 부모들이 쓰는 수화를 통해 전수되지만, 그렇지 않을 경우에는 학교에서 배우게 된다. 단순히 수화를 사용한다는 점 이외에 문화를 전수하는 입장에서 청각장애 교사는 무척 중요하다.

여준민 특수교육 자체가 지적장애인 교육에 치중되다보니 청각장애인들에게 일반교육과정인 국어와 수학, 사회, 음악, 미술 등을 가르치는 것에는 전혀 준비되지 않는 문제도 지적된다.

김철환 아직까지 특수교육에서 수화통역사 자격을 강제하지 못하는 이유는 수화를 법적 언어의 지위를 못 갖고 있고, 서비스 개념으로 바라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활동보조와 수화통역은 똑같은 서비스지만 인권적 차원으로 제공하는 활동보조와 달리 수화통역은 서비스 차원으로 생각한다. 이 밑바탕에는 수화가 법률로써의 지위를 아직 얻지 못한 데 큰 원인이 있다. 사실 법률로써 언어적 지위를 갖게 되면 자연스럽게 수화통역사 자격증 취득이 특수교사의 기본이 될 것이다.

“청각장애인이 볼 수 없는 청각장애인 영화”

박김영희 영화 ‘도가니’는 청각장애인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지만 정작 청각장애인은 보기 힘든 아이러니한 상황에 대한 문제제기가 많다. 10여개 관에서 자막상영을 하고 있으나 하루 1~2편에 불과하고, 이마저도 관람하기 힘든 시간에 배치돼 있어 불만이 높다.

김철환 지금은 많이 늘었다. 9월 말 기준으로 20개 스크린에 하루 1회, 많은 경우는 2회 아침?저녁으로 자막영화가 상영되고 있으나 문제가 많다. 영화 제작당시 청각장애인 위해서 가능한 한 (모든 상영관에서) 자막 영화를 상영하겠다고 했다. 문제는 상영관에서 이를 선뜻 받아들이지 않는 점이다. ‘도가니’뿐만 아니라 청각장애인 야구부를 다룬 영화 ‘글로브’도 마찬가지였다.

이런 문제의 근본은 장애인차별금지법의 맹점에 있다. 장애인차별금지법에는 극장에서의 장애인 차별을 금지하고 있으나 2013년부터의 이야기다. 더 큰 문제는 이 법이 300석 이상 스크린에만 적용되기 때문에 사실상 (장애인차별금지법의) 적용을 받는 상영관은 많지 않다. 인식문제도 심각하다. 비장애인 상당수가 한국영화에 자막 상영하는 것을 꺼려한다. 4~5년 전 처음으로 일반극장에 자막과 화면해설을 넣어 영화를 상영해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 영화를 볼 수 있는 환경을 만들려는 정책 사업을 진행했으나 서울 강남의 한 극장은 자막 표시돼 있는 스크린에만 관객이 하나도 들지 않았다. 너무 충격이었다. 평일이고, 관객이 많지 않은 시간 때문 아닐까 싶어 다른 상영관을 확인했지만 똑같았다. 부정할 수 없는 현실이었다.

비장애인의 인식이 아직 단계적으로 올라가지 못했다면 기술적으로 보완해야 한다. 이를 위해 정부는 반드시 기술적인 해결방안을 논의해야 하며, 정책적 맹점을 보완해야 한다.

박김영희 가장 중요한 것은 인식의 문제인 것 같다. 영화를 보며 분노하고 공감은 하지만, 영화 스크린 하단을 차지한 자막 때문에 흥이 떨어진다는 국민들, 우리의 인식수준은 아직 이 정도다.

김철환 비단 우리나라만의 문제는 아니다. 미국의 자막방송 역사를 보면, 1970년에 자막방송을 시작했고, 초기에는 오픈자막을 실시하다 폐쇄자막으로 바꿨다. 영화도 마찬가지로 청각장애인이 자막을 볼 수 있도록 별도의 패널의 쓰기도 한다.

“‘도가니’의 도가니, 이제는 사회와 우리가 변화해야 할 때”

박김영희 ‘도가니’가 가진 것은 장애아동 그리고 취약한 계층에 대한 폭력과 성폭력의 이야기였고, 이것이 여론화 되면서 사회는 ‘도가니의 도가니’가 된 것 같다. 우리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깊이 생각하고 제시해야 할 대안은 어떤 것이 있을까 고민하게 된다.

김철환 사실은 인식의 문제다. 대기업에서 인공와우 수술에 대한 공익광고를 많이 한다. 인공와우 수술의 찬반 논란을 떠나 청각장애인에게 소리를 듣게 해주는 작업이고, 선택의 문제다. 그러나 여기에서 우리가 놓치는 것이 있다면, ‘농문화 바로알기’라든지 ‘수화 배우기’ 캠페인은 없다는 것이다. 수화를 언어로 보는지, 보조수단으로 보는지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사례다. 이런 것은 인식개선이 필요한 것이다.

통합학교 다니는 청각장애 학생들을 보면 괜찮다고는 하지만 보조서비스가 없으면 100% 수업에 참가 못하고 집단 토의는 거의 불가능하다. 이 때문에 수화는 청각장애학생에게 반드시 필요한 시각적 언어인 것이다. 국제장애인권리협약에도 수화가 언어의 하나라고 돼 있고, 수화를 증진하고 장려해야한다고 말하고 있다.

▲ 민경주 농통역사
▲ 민경주 농통역사 "‘도가니’는 비장애인뿐만 아니라 청각장애인을 함께 그리고 있다. 그렇다면 청각장애인이 볼 수 있도록, 공감하고 스스로 문제제기 할 수 있도록 환경이 수반돼야 한다."
민경주 영화 ‘도가니’는 비장애인뿐만 아니라 청각장애인을 함께 그리고 있다. 그렇다면 청각장애인이 볼 수 있도록, 공감하고 스스로 문제제기 할 수 있도록 환경이 수반돼야 한다. 영화를 통해 비장애인들이 여론화 한들 청각장애인이 접근하지 못한다면 이 또한 차별이 될 것이다. 장애인도 자유롭게 영화관에 갈 수 있게 인식을 바꾸는 등의 변화가 생기길 바란다.

여준민 도가니에 그려진 인화원을 통해 시설이 과연 무엇을 하는 것인가에 대한 근본적인 논의가 되길 바란다. 또 사회복지사업법 자체가 개정되는 것이 민주적 운영 구조 뿐 아니라 어떻게 하면 그 안의 사람들이 지역사회로 나와서 함께 어울려 살 수 있는지에 대해 고민할 수 있는 법 개정까지 가야한다고 다시 강조한다.

당시 인화학교에는 학생 개인당 1년에 2,000만원이, 인화원에는 1,000만원의 국가예산이 각각 들어갔다. 그러나 예산에 비해 사람들의 삶은 너무나 처참했다. 국가가 보호한다는 명분아래 시설을 만들고, 운영하고, 위탁하고 있지만 운영자들은 과연 그것을 제대로 실현하고 있는지를 살펴야 할 것이다. 그리고 당사자 입장에서 나는 정말 행복하게 인간다운 삶의 권리를 갖고 살고 있는지를 전면적으로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인권위가 조사한 당시 결과에 대해 지자체와 국가, 교육부가 책임 있는 조치를 했다면 이런 문제는 나오지 않았을 것이다. 당시 교육부에 청각장애인교육권 실태조사를 하고 대안을 만들라고 권고했지만 변화는 없었다.

아직도 그 참담했던 수업참관의 충격이 남는다. 당시 그 교사는 ‘오전에 참관을 온다고 해서 오전 수업 수화를 조금 준비했는데 오후에 와서 자기가 수화를 못 했다’고. 그 충격적인 이야기를 자신 있게 했었다. 특수성을 반영한 개별적 교육으로 함께 어우러져 청각장애인들이 자신들의 인권과 존중감을 갖고 힘 있게 살아가길 바란다.

박김영희 영화 마지막 장면에서 ‘세상을 바꾸는 게 아니라 우리가 우리답게 살고 우리가 우리의 모습으로 살 수 있는 것을 바란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이 말처럼 장애인이 비장애인처럼 되겠다는 것도 아니고, 세상을 막 바꾸겠다는 것도 아니다. 장애가 있는 그 자체로, 이 모습 이대로 행복하게 인간의 기본적 권리를 가지고 살 수 있는 것을 바라는 것이 우리의 소망이다.

도가니의 열풍이 거세다. 모두가 분노한다. 그런데 내 집에 내 동네에 장애인 시설이 들어온다고 해서 내 집값 떨어질 까봐 반대하고 있지는 않은가. 가슴에 손을 얹고 도가니에 분노했던 마음이 혹시 우리 동네에 장애인이 와서 살겠다고 했을 때 나는 반대하는 마음은 아닌지 생각해 봤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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