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육상 국가대표 유병훈 선수·성희준 감독

▲ 유병훈(가운데) 선수와 성희준(오른쪽) 감독.
▲ 유병훈(가운데) 선수와 성희준(오른쪽) 감독.
유병훈 선수:
세계육상선수권대회에서 제 목표는 세계 순위 1위 선수와 대등한 경기를 하는 것이었는데, 그날 긴장을 많이 해서 아쉬웠습니다. 그래도 은메달을 땄고, 우리나라에서 가장 좋은 결과여서 기뻤습니다.
 
성희준 감독: 저 또한 큰 경기다보니 긴장을 안 했다고 하면 거짓말인데, 선수 못지않게 긴장을 감추는 것도 지도자의 역할입니다. 사실 이 대회를 위해 준비했다고 하기보다 2012 런던장애인올림픽을 바라보고 연습해 왔으므로, 메달권은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순위권 안에 있는 선수들이 다 모인 대회로, ‘런던올림픽 대비 미니올림픽’이라고 할 만한 자리였기 때문에 내심 금메달을 바라봤습니다.
IAAF 세계육상경기연맹에서 권고사항으로 장애인 종목을 선택하게끔 돼 있는데, 그중 저희가 우승 가능한 T-53·54(Track-53·54, 숫자는 장애정도를 뜻하는 것으로 53등급 선수는 흉부 밑 허리와 복근을 사용할 수 없는, 54등급은 그보다 가벼운 상태)종목이 선택됐습니다. 비록 메달 기록이 공식 기록에 포함되지 않았지만, 세계선수권과 함께하다 보니 국민들한테 관심을 끄는 데 좋은 기회도 있었습니다.
경기에 사용하는 휠체어는 일반 휠체어와 다른데, 속도를 겨루는 경기다보니 동력장치가 없고 사이클에서 약간 변형된 형태로 고안된 휠체어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바퀴 크기는 국제규격에 따라 사용하며, 길이에 대한 규정은 없고 보통 170~180㎝ 안팎으로 선수에 따라 조금씩 다릅니다.
 
유병훈 선수: 저는 만 4살 때 고열로 인한 소아마비로 장애인이 됐습니다. 걷는 모습이 있는 사진이 그때밖에 없는데, 어머니 말씀에 따르면 열이 난 뒤 갑자기 일어서지 못했다고 합니다. 예전에는 의료시설이 좋지 않아 한의원부터 유명하다는 병원까지 다 가봤지만, 끝내 걷지 못했습니다.
재활학교에 들어가면서 장애인체육이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휠체어를 타고 농구공을 던지면서 굉장히 활동적으로 운동한다는 게 신기했고, 운동을 시작하면서 내성적이었던 성격이 외향적으로 변해가는 게 재밌어서 계속하게 됐습니다.
그렇게 농구선수로 활동하고 있던 중, 팀에 후배 선수가 한 명 들어왔습니다. 그 선수는 휠체어마라톤을 먼저 했었는데, 같이 운동하다가 저에게 ‘휠체어마라톤을 해보지 않겠느냐’고 권유했습니다. 그때 휠체어마라톤이라는 것을 동영상으로 처음 봤는데, 농구와는 달라 호기심에 시작하게 됐습니다.
휠체어육상을 하면서는 농구와 달리 ‘개인과의 싸움’이라는 열정을 느꼈고, 그 매력에 이끌려 방향을 바꾸게 됐습니다.
 
성희준 감독: 저는 국가대표선수로 12년 정도 활동했고, 부상으로 인해 2002년 시드니올림픽을 끝으로 은퇴했습니다. 지도자 생활을 한 4년 했는데, 대한장애인체육회가 건립됐고 거기에 전임지도자 육상감독이라는 자리가 있다는 사실을 우연찮게 아는 사람을 통해 들었습니다. 반신반의했으나 큰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 지원했고 여기까지 오게 됐습니다.
처음 오자마자 제일 먼저 공부부터 했습니다. 장애유형뿐만 아니라 특성 또한 다 다르기 때문에, 장애인선수들의 특성을 알기 위해 지금도 배우고 있는 중입니다. 그와 동시에 제가 알고 있는 것들을 접목시켜 훈련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유병훈 선수: 제가 메달을 따기 시작한 것은 2002년 부산 아시안게임부터입니다. 은메달과 동메달은 많은데, 금메달은 2007년도 세계선수권대회 400M에서 처음 땄습니다. 은메달과 동메달만 많이 따다보니까 시상대에 올라가도 애국가를 직접 들은 적은 많지 않았는데, 2007년 세계선수권대회 때 태극기가 올라가면서 애국가가 울려 퍼지는데 표현할 수 없는 감동이 밀려와 울컥했습니다.
개인적으로 목표 세우는 것을 좋아합니다. 목표를 세우고, 그것을 이루기 위해 노력하는 게 좋습니다. 작은 목표든 큰 목표든 하루아침에 이뤄지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긴 시간 선수생활을 해왔는데, 남들보다 조금만 더 할 수 있는 여건 속에서 성실하게만 한다면 언젠가는 조금 늦더라도 목표를 이룰 수 있는 날이 올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지금 제 상황을 보면 생각한 목표에 다가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성희준 감독: 유병훈 선수의 가장 큰 장점은 ‘성실함’입니다. 현재 합숙하는 기간에도 최고참으로 주장을 맡고 있는데, 주장으로서 묵묵히 동료·후배들과 지도진 사이에서 중간역할을 잘 하고 있습니다. 제가 감독으로서 지도하고 있지만, 사실 유병훈 선수가 저보다 두 살 많습니다.
나이를 떠나 유병훈 선수는 자신이 모르는 것에 대해 배우려 하고, 저 역시 사적인 자리에서는 동생 입장에서 질문도 하고 애교도 부는 면이 있습니다.
시합이나 훈련하는 데 있어서는 맺고 끊는 게 확실하기 때문에 운동을 잘한다고 생각합니다.
 
유병훈 선수: 훈련으로는 웨이트 트레이닝, 경기가 많은 기간에는 인터벌 훈련이나 거리주 훈련을 합니다. 일반 육상과 다르게 장비를 사용하다보니까 아무래도 좀 더 많은 양의 훈련을 하고 있습니다. 땀도 흘리고 운동할 때가 제일 즐거운 것 같습니다.
현재로서는 실업팀이라든지 운동만 할 수 있는 여건들이 전무한 상태기 때문에, 저도 일하면서 운동을 병행하고 있습니다. 선수 개인적으로 훈련에만 매진하는 데 있어서 걸림돌이 되는 부분인 것 같습니다.
2012년 런던장애인올림픽대회 이후에 과연 또 일하면서 운동할만한 여건이 될지 자신이 없기도 합니다. 런던장애인올림픽대회 이후 은퇴할 생각인데, ‘과연 운동을 벗어나서 살 수 있을까’라는 생각도 많이 듭니다.
 
성희준 감독: 전문체육 선수가 운동에만 전념하기도 벅찬데, 직장을 다니거나 운동 외에 다른 일을 하면서 운동한다는 게 참 힘듭니다. 감독 입장에서는 안타깝습니다. 실력이 되는데도 불구하고 여건이 따라주지 못해 마음이 아픕니다.
하루빨리 실업팀이 제도화돼서 장애인선수들이 운동에만 전념할 수 있고, 국위 선양하는 데 이바지하고, 안정적인 가정을 꾸릴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유병훈 선수: 대한장애인체육회가 설립되면서 전반적으로 많은 변화가 있었고, 장애인체육 또한 발전하고 있는 시기라고 봅니다. 훈련할 수 있는 장소, 큰 대회를 나갈 때 많은 합숙훈련 일수, 이런 부분들은 좋아졌습니다.
그러나 정작 선수들은 일하면서 운동을 병행해야 하고, 합숙 훈련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회사에 공가를 내는 등 개인적인 희생이 따르는 것은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발전하고 있는 시점에서 실업팀이 구성된다면 좀 더 좋은 결과를 만들어낼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와 염원을 갖고 있습니다.
 
성희준 감독: 장애인선수들이 마음 놓고 훈련할 수 있도록 실업팀 등 제도적인 면이 정착됐으면 합니다. 또한 베이징장애인올림픽이 끝나고 4년간 준비해서 나가는 런던장애인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따 태극기를 휘날릴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유병훈 선수: 저 역시 런던장애인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따는 게 선수로서 가장 크게 이뤄낼 수 있는 꿈이라고 생각합니다.
후배들을 위해 대학원 석사과정을 준비하고 있어서 2012년 상반기에 논문을 씁니다. 논문도 써야하고, 금메달도 따야하고, 할 게 많은데 꼭 그 두 가지를 이뤄낼 수 있도록 많은 격려 부탁드립니다.
또한 장애인체육에 일시적인 관심이 아닌 꾸준한 관심을 가져주시길 당부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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