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위 10주년 기념식서 인권위와 인권단체 마찰
장애인·인권단체가 국가인권위원회(이하 인권위)설립 10주년 행사장에서 쫓겨났다.
인권단체연석회의와 국가인권위원회제자리찾기공동행동(이하 인권위공동행동)은 인권위 설립 10주년 행사가 열린 서울 중구 한국언론진흥재단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이명박 대통령이 임명한 인권위 현병철 위원장은 우리나라 인권현실에 대해 침묵하고, 외면하고, 방조했을뿐만아니라 인권위법을 들먹이며 권력기관의 인권침해에 대해 면죄부를 줬다. 권리옹호기구가 아니라 권력기관에 면죄부를 주는 권력옹호기구가 돼 가고 있다.”고 비판했다.
인권위공동행동 측은 “10년 전 한겨울 풍찬노숙과 3년간 법무부 등 권력기관과 치열한 투쟁을 벌인 끝에 독립적인 인권위를 탄생시켰을 때의 감격과 환희만큼 인권활동가들의 마음은 어느 때보다 무겁고 참담하다.”며 “인권단체는 줄곧 인권위의 민주성과 투명성 제고를 요구했으며, 실정법이 아닌 국제인권기준을 비롯한 인권의 잣대로 인권현안에 적극적으로 임할 것을 요청했다. 다시 한 번 인권위의 목적을 되새기고 스스로 각성할 것을 요구한다. 그 첫발은 현병철 위원장을 비롯한 무자격 인권위원들의 사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이광철 사무차장은 “인권위가 지켜야 할 인권은 서민의 인권임에도 불구하고, 사회적지도층을 지키고 있는 게 초라한 인권위의 자화상이다. 인권이 진주목걸이라면, ‘돼지목에 진주목걸이’를 하고 우아한 인어인마냥 행동하고 있다.”고 강하게 질타했다.
이 사무차장은 “이명박 정부가 출범한 이후 인권위의 독립성은 한없이 망가졌다. 2008년 인권위를 대통령직속기구로 전환하려는 시도는 실패했으나, 그 뜻은 현재 기어이 이뤄지고 있는 상황.”이라고 질타했다.
이어 “현병철 위원장은 다른 인권은 이야기하지 않으면서 북한 인권을 강조하는데, 이미 2006년 인권위는 북한의 인권을 이야기하는 것은 실효성이 없으므로 의사표현을 하지 않는 것을 내부적으로 정한 바 있다. 반대로, 왜 탈북자의 인권에 대해서는 이야기하지 않느냐.”고 지적했다.
인권위공동행동 명숙 활동가는 “인권위 홍보대사를 맡고 있는 김미화 씨가 경찰의 물대포 시위 진압에 대해 인권위가 침묵한다면 홍보대사를 그만두겠다고 말하자, 그제야 겨우 행동을 취하는 듯 했다.”며 “어제 인권지킴이가 나갔고, 경찰은 물대포를 쏘지 않았다. 하지만 인권위는 공식적인 입장은 안 밝히고, 급한 불을 끄기에만 급급했다.”고 비판의 날을 세웠다.
명숙 활동가는 “지난 해 인권위의 예산을 보면 정책권고 예산은 많이 떨어졌다. 대신 인권위는 마치 세계가 한국의 인권위에 엄청난 관심을 쏟는 것처럼 국제행사를 유치하고 있다.”고 말했다.
인권위독립성수호를위한교수모임 홍성수 교수는 인권위의 과제 10가지를 제안했다.
홍 교수는 과제로 ▲인권위원 인선 절차 개선 ▲독립성 확보 ▲법률주의 극복 및 인권의 관점에서의 판단과 활동 ▲투명성 제고 ▲사법부에 대한 적극적인 의견 개진 ▲권고를 넘어 이행까지의 책임 ▲사회적 소수자에 대한 더 많은 관심 ▲사회권 분야에 대한 관심 ▲시민사회와의 협력 강화 ▲지역사무소 확대·강화를 제시했다.
인권단체연석회의와 인권위공동행동은 기자회견을 마친 뒤, 과제 및 요구사항을 전달하기 위해 인권위가 주최하는 ‘인권위 설립 10주년 기념식’으로 자리를 옮겼다.
10시 25분경, 인권단체연석회의와 인권위공동행동은 ‘인권위 설립 10주년 기념식’이 열리는 한국언론진흥재단 국제회의장에 들어가 인권위 현병철 위원장의 사퇴를 촉구했다.
그러자 인권위 직원들은 이들을 밖으로 밀어내는 한편 행사장 한쪽 문을 걸어 잠그고 출입을 통제하려고 하자 마찰이 빚어졌다.
인권단체연석회의와 인권위공동행동 측은 “우리가 만든 인권위에 목소리를 내기 위해 이 자리에 왔다. 진정 인권위가 인권을 위한다면 문을 열고 우리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라.”고 강하게 항의했다.
남대문경찰서장은 ‘행사를 방해하고 있다’며 해산할 것을 요구했고, 인권단체는 ‘어느 쪽에서 무슨 이유로 경찰을 불렀는지는 알아야할 것 아니냐’고 반발했다. 그러나 남대문경찰서장은 ‘신고인은 말해줄 수 없다’는 답변으로 일관했다.
한국언론진흥재단 건물 내 관계자는 “해당 업주가 올라가 ‘소동을 자제해달라’고 말하기까지 했고, 보안요원까지 행사장에 동원돼 있는 상태였기 때문에 건물을 관리하는 측에서 따로 경찰에 신고했을 것 같지 않다.”고 말했다.
인권위의 한 관계자는 “인권위는 절대 신고하지 않았다. 인권단체에서 기자회견을 하니 남대문경찰서에서 지켜보고 올라온 것 같다. 인권위와 인권단체는 서로 도울 땐 돕는 관계다. 신고할 이유가 없다.”고 제기된 의혹에 대해 부인했다.
이날 사회는 성우 양지운과 인권위 홍보대사 김미화가 맡을 것으로 예정돼 있었으나, 성우 강희선이 김 씨의 자리를 대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