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동모금회 지원 주거복지사업 종료 예정...탈시설한 17명 장애인 갈곳없어 시설로 돌아가야할 판

“민간 지원사업이 끝나는 내년이 되면 집을 비워줘야 한다. 우리 능력으로 집을 구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면 다시 장애인생활시설에 들어가야 한다는 말 밖에 되지 않는다. 다시 시설에 들어가는 것은 죽으면 죽었지 생각조차 하기 싫다. 지자체에서 대책을 마련해 달라.”
서울시 박원순 시장에게 보내는 오지우 씨의 편지

자립생활을 하겠다는 일념으로 짧게는 10년, 길게는 20~30여 년간 생활한 장애인생활시설을 박차고 나온 17명의 장애인들이 집을 잃거나 다시 시설로 돌아가야 할 상황에 처했다.

17명 장애인들에게 월세와 보증금 등을 지원해온 사회복지공동모금회 테마기획사업 ‘시설장애인의 지역사회 자립생활을 위한 주거복지사업(이하 주거복지사업)’이 종료됨에 따라 당장 갈 곳이 없어졌기 때문.

이 주거복지사업은 공동모금회 지원으로 2009년 20개 단체가 ‘서울시 시설장애인 자립생활 지원네트워크’를 구성해 지난해부터 시행하고 있다. 서울·여수·광주·경기 4개 지역에서 3년이라는 한시적인 기간을 두고 진행, 2012년 말 종료 될 예정으로 현재 서울지역에서 자립한 17명 장애인에 대한 대책이 시급한 상태다.

▲ 지난 7일 서울시청 앞에서 서울시탈시설장애인주거권대책촉구 기자회견이 열렸다. ⓒ정두리 기자
▲ 지난 7일 서울시청 앞에서 서울시탈시설장애인주거권대책촉구 기자회견이 열렸다. ⓒ정두리 기자

서울시탈시설장애인주거권쟁취대책위원회(이하 서울시탈시설대책위)는 지난 7일 서울시청 앞에서 주거복지사업으로 서울지역에서 자립생활을 하고 있는 17명 장애인에 대한 대책 마련과 탈시설장애인의 주거대책 마련을 위한 체험홈·자립생활가정의 입주 자격 및 물량 확대를 요구하고 나섰다.

장애와인권발바닥행동 이현경 활동가는 “서울시에서는 탈시설 자립생활 정책을 펼치며 체험홈과 자립생활가정을 운영하고 있는데, 입주 자격을 서울시 관할 시설에서 퇴소한 장애인으로만 한정하고 있으며, 특히 체험홈 입주자격을 시설 퇴소 1년 미만으로 기간을 정해놓고 있다.”며 “이 규정 때문에 주거복지사업 대상자 중 9명은 타 지역 시설에서 퇴소했다는 이유 때문에 자격대상이 안되고, 서울시 관할 시설에서 퇴소한 8명 역시 이미 주거복지사업에 참여, 자립생활을 1~2년간 했기 때문에 해당사항이 안된다."고 부당함을 호소했다.

서울시장애인자립생활센터협의회 최용기 대표는 “지역사회에서 자립하고자 서울을 선택했고, 시설에서 어렵게 나온 17명 장애인들이 서울시가 정한 대상에 해당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다시 시설로 가야하는 상황.”이라며 “3년 기간을 정하고 시작했던 공동모금회의 한시적 주거복지사업은 사업을 내년 말 예정대로 종료될 것이고, 이제 서울시민으로 살고 있는 이들에게 지자체가 대책을 마련해 줘야한다. 서울시는 17명에 대해 대책을 마련하고 체험홈과 자립생활가정 입주자격 및 물량 확대하라.”고 촉구했다.

서울시한국뇌병변장애인인권협회 박홍구 지부장은 “사람이 살아가는 데는 의식주가 가장 중요하다고 하지만, 집이 없다면 옷이나 식사는 불가능 한 것이다. 마찬가지로 장애인이 자립하기 위해서는 주거와 소득, 활동보조인 3가지가 필수적인데 이 역시도 주거가 보장되지 않는다면 소득을 보장받거나 활동보조를 받을 수 없다.”며 “현실적으로 생각해보자. 대기업 직원이 10년을 꼬박 모아야 집을 가질 수 있는 것이 우리나라의 현실이건만, 몇 십 년을 시설에서만 살던 장애인들이 3년 만에 집을 마련한다는 것은 말도 안 되는 것.”이라고 질타했다.

이어 “개인적으로 평가해보면 공동모금회는 정부나 지자체가 해야 하는 장애인자립생활 정책과 대책마련을 한시적인 사업으로 보여준 것이고 이제 정부와 지자체의 책임이 필요하다.”며 “물량이 모자라 체험홈과 자립생활가정의 대상을 좁혔다고 하지만 공공주택 또는 주거정책을 할 때 일정 비율 자립하고자하는 장애인을 위해 준비한다면 가능 할 일이다. 장애인이 당당한 권리를 갖고 살 수 있도록, 특히 지금 당장 1년여 후 살 곳이 사라질 위기에서 불안해하고 있는 17명을 위해 하루 빨리 대책을 세워 달라.”고 강조했다.

“다시 시설에 들어가는 것은 죽으면 죽었지 생각조차 하기 싫다.”

이 자리에는 주거복지사업으로 자립생활을 하고 있는 17명이 모여 조직한 서울시탈시설장애인당사자 모임 ‘보금자리’ 회원들이 참여해 서울시 박원순 시작에게 보내는 편지를 피켓으로 만들어 들고 절박함을 전하기도 했다.

▲ 서울시탈시설장애인당사자 모임 '보금자리' 송용헌 대표 ⓒ정두리 기자
▲ 서울시탈시설장애인당사자 모임 '보금자리' 송용헌 대표 ⓒ정두리 기자
송용헌 공동대표는 '가평에 있는 시설에서 탈시설해 지난해 11월부터 서울에서 살고 있는 전신마비 중증장애인'이라고 자신을 소개한 뒤 “서울시는 우리가 이미 서울시민임에도 불구하고 지방의 시설에서 왔다는 이유로 (체험홈, 자립생활가정) 지원을 해주지 않겠다고 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시설이라는 끔찍한 곳으로 돌아가야 한다. 서울시는 우리를 위해 책임지고 대책을 마려해 달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조수양 공동대표는 “인권과 자유를 찾아 시설을 탈출한 우리들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시설에 돌아가지 않기 위해 집이 시급하다.”며 “17명 중 누구하나 주거복지사업이 끝나 뒤 살아가 집을 마련한 사람은 없다. 서울시에서 주거복지사업을 맡아 연장을 해주는 방법 또는 자립생활가정에 들어갈 수 있도록 해 달라.”고 주장했다.

서울시장에게 보내는 편지를 낭독한 오지우 씨는 “시설에서는 꿈도 꾸지 못했던 학교에 다닌다. 학교에 가기 위해 6시에 일어나 7시까지 등교해야하는 바쁜 일과지만 마냥 즐겁고, 졸업한 뒤 심리학을 전공해 더 큰 무대에서 뛰는 꿈이 생겼다.”며  “그러나 지원 사업이 내년 끝나게 되면 집을 비워줘야 한다. 기초생활수급비와 장애수당을 합한 5~60여 만 원의 돈은 생활비로도 충분하지 않다. 더구나 잦은 콜택시 비용과 대소변을 가릴 수 있게 해주는 기저귀 값까지, 돈을 모으기는 쉽지 않다. 우리 능력으로 집을 구하는 것이 불가능 하다면 다시 시설에 들어가야 한다는 말 밖에 되지 않는다. 다시 시설에 들어가는 것은 죽으면 죽었지 생각조차 하기 싫다.”고 호소했다.

서울시 “대상자만 해도 몇 백 명, 일관성 있는 정책 기준 적용해야” 난색

서울시탈시설대책위 대표단은 기자회견이 끝난 뒤 서울시 장애인복지과 관계자들을 만나 면담을 진행했으나 서울시는 형평성을 이유로 부정적인 태도를 보였다.

이 자리에서 장애인복지과 황인식 과장은 “서울시 역시 장애인의 탈시설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고 체험홈과 자립생활가정을 운영, 수요조사도 하고 있다.”며 “서울시가 관할하고 있는 43개 생활시설 가운데 제도 내로 들어오고자 희망하는 이가 몇 백 명된다. 서울시도 수요를 어떻게 감당해야 할 지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이러한 상황에서 서울시 관할 시설 퇴소자라는 대상 제한을 풀어버린다면 상당한 혼란과 수요를 감당할 수 없을 것이다. 만약 타 지역 시설에서 퇴소한 장애인까지 서울시가 책임지라고 하는 것은 어려우며, 그렇게 된다면 체험홈이나 자립생활가정은 국가사업이 돼야 할 것.”이라며 “장애인들의 요구를 수렴해 내부적으로도 고민 하며, 보건복지부와도 이야기 해보겠다. 또 공동모금회에도 좀 더 점진적인 방안을 찾을 것을 요청해보겠다.”고 밝혔다.

함께 자리했던 장애인생활지원팀 최생인 팀장은 “17명에 대한 사례만을 받아들인다면 긍정적으로 검토해 볼 것이다. 그러나 이것이 선례가 된다면 다른 단체나 개인들의 요구가 이어지며 형평성에 어긋난 정책이 될 것.”이라며 “정책의 기준은 일관성이 있어야 한다.”며 사실상 체험홈 및 자립생활가정을 내줄 계획이 없음을 밝혔다.

▲ 시설에서 나온 장애인들은 서울시에 주거대책 마련을 촉구하며 서울시장에게 보내는 편지를 전달했다. ⓒ정두리 기자
▲ 시설에서 나온 장애인들은 서울시에 주거대책 마련을 촉구하며 서울시장에게 보내는 편지를 전달했다. ⓒ정두리 기자
▲ 서울시탈시설대책위 대표단은 기자회견이 끝난 뒤 서울시 장애인복지과 관계자들을 만나 면담을 진행했다.  ⓒ정두리 기자
▲ 서울시탈시설대책위 대표단은 기자회견이 끝난 뒤 서울시 장애인복지과 관계자들을 만나 면담을 진행했다. ⓒ정두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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