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숨’ 집담회

▲ 영화 ‘숨’ 포스터.
▲ 영화 ‘숨’ 포스터.

장애인생활시설에서 거주하고 있는 장애인을, 그것도 장애인당사자의 시선으로 불편한 현실을 그린 영화 ‘숨’은 영화 ‘도가니’와는 다른 차원에서 한국 장애인영화의 한 획을 그었다.

지난 해 전주국제영화제를 통해 대중들과 만난 ‘숨’은 제9회 서울장애인인권영화제에서 상영되며 큰 주목을 받았으며, 2009년 전북 기독교영광의 집에서 벌어진 사건을 배경으로 한 것이 알려지며 관심이 집중됐다.

상업영화인 ‘도가니’가 장애인생활시설 안에서 벌어지는 장애인 성·폭력 범죄에만 초점을 맞췄다면, 독립영화 ‘숨’은 시설과 시설 밖 장애인이 바라보는 ‘사회적 폭력’을 담고 있다는 데 차이를 둔다.

본지는 영화 ‘숨’ 집담회를 통해 장애인생활시설은 물론, 장애인생활시설과 또 다른 사회적 차별과 폭력까지. 좀 더 다양한 관점에서 탈시설과 자립생활을 바라보고자 한다.

토론자로는 (사진 왼쪽 두 번째부터) 자립생활 중인 장희영 씨, 전북장애인차별철폐연대 김병용 사무국장, 영화 ‘숨’의 함경록 감독, 서울장애인인권영화제 최재호 집행위원장, 함께가는서울장애인부모회 장애인가족지원센터 박문희 소장이 참여했다.

▲ 사진/ 전진호 기자
▲ 사진/ 전진호 기자

먼저, 영화 ‘숨’을 본 소감을 말해 달라.

장희영: 독립영화는 처음 접한 거라, 조금 상식적으로 맞지 않는 내용도 들어있는 것 같고, 확 와 닿지는 않았다.

김병용: 지역에서 문제 있는 시설에 대응하는 활동을 하는 입장에서 해당 시설과 관련된 소재로 영화가 제작돼 관심이 굉장히 많았다. 같이 활동하는 사람들이 영화에 직접 참여해 더 친근했던 것 같고, 한편으로는 다큐멘터리이자 독립영화여서 재미없었다. 흔히 알고 있는 영화와 다른 형식이었던 것 같아 시선이 답답한 것도 있었다.

최재호: 제9회 서울장애인인권영화제 공모를 통해 처음 접하게 됐는데, 전반적으로 심사위원들이 느끼는 감정은 ‘너무 솔직해서 불편하다’였다.

박문희: 이 영화를 보면서 느낀 것은 (장애인에 대한 폭력과 차별은) 비장애인이 장애인에게 ‘무언가를 해줘야 된다’고 생각하는 것부터 출발하지 않았을까……. 이 영화 안에서 주체적이지 못한 삶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영화 ‘숨’의 배경이 된 기독교영광의집 사건이 궁금하다.

김병용: 기독교영광의집 사건은 대표이사가 시설에 거주하고 있는 여성지적장애인을 대상으로 지속적인 성폭력을 저질렀고, 대표이사의 부인인 원장이 보조금을 횡령한 일이 자원봉사자 등을 통해 알려지며 세상에 드러났다. 증거가 미흡해 다뤄지지는 못했으나 재활교사로 있었던 부부 아들에 대한 성폭력 문제 제기도 있었다.

이 사건을 배경으로 하게 된 이유는 뭔가. 시설 내 문제보다 주인공 수희의 삶에 초점을 맞췄는데 어떤 의미인가.

함경록: 전주시 중증장애인 지역생활지원센터에서 영화수업 강의를 하고 있을 때 처음 사건에 대해 듣게 됐다. 예전부터 방송에서 들었던 이야기들과 크게 다르지 않았기 때문에 충격적이거나 신선하진 않았다. 언론은 항상 ‘얼마나 잔인하게 당했는가’, 피해정도에만 집착할뿐 인권의 깊숙한 곳까지 들어가려 하지 않는다. 그러나 수업 듣는 학생과 친해지면서 ‘나와 동떨어진 이야기가 아니라 밀접하다’는 느낌을 받았고, 심지어는 내가 군대에서 느꼈던 감정까지 느껴졌다. ‘장애인에 한한 이야기가 아니라 비장애인도 공감할 수 있는 부분들이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어 대본을 (쓰기로) 결심했다.

장애인생활시설의 구조나 운영방식을 곳곳에 나타내고 있는데, 이러한 것들을 담아내기 위해 감독은 어떠한 노력을 기울였는가. 이를 본 느낌들은 어땠는가.

▲ 함경록 감독. 사진/ 전진호 기자
▲ 함경록 감독. 사진/ 전진호 기자
함경록: 재연하기보다 제도가 사람에게 미칠 수 있는 영향들이 어떤 게 있나 참고하는 방식으로 조사를 진행했다. 활동가나 취재진들에게 도움을 받았고, 실제 장애인생활시설에서 생활했던 친구가 짚어준 촬영장소를 바탕으로 했다.

장희영: 내가 있던 장애인생활시설에서도 지적장애인들이 몸이 불편한 장애인들을 도와주긴 하는데, ‘수희’는 과하다 싶을 정도로 인권이라고는 찾아볼 수도 없고 비참한 삶을 살아온 것 같다. 진짜 저런 시설이 있나 싶기도 하고, 수희 주변에 있는 지적장애인들의 억압받는 삶도 영화로 다뤄졌으면 하는 생각이 들었다.

김병용: 효자손(등긁개)이 몸집이 작은 ‘수희’한테는 빨랫감을 끌어올리는 등 굉장한 역할을 하는 것처럼 영화 속 소소한 것들이 인상 깊었다. 감독님이 당사자들과의 관계나 이야기에서 얻은 것들을 영화에 사용했겠구나 싶었다. 또 시설 문제에 대응하고 활동하는 사람으로서 기독교영광의집 문제가 많이 알려졌으면 하는 욕심이 있었다.

최재호: ‘수희’는 시설장과 지적장애인 가운데서 고리 역할을 하는 중간자 입장이다. 그 모습들이 너무 솔직하게 그려져 한편으로는 편치 않았다. 문제와 대안에 대한 내용이 부족해 아쉬운 점이 많았고, 폭넓게 영화 속에서 우리들이 안고 있는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으면 좋았을 것이라는 아쉬움이 남는다.

박문희: 다큐멘터리라고 하기에는 조금 걸리는 부분이 있었다. 장애인생활시설에 가보면 주로 일하는 사람은 지적장애인으로 여자는 부엌일을 도맡아하고, 남자는 농사나 노동현장에 투입된다. 그런 면에서 뇌병변장애인 ‘수희’가 일을 다 하는 것처럼 보이는 부분은 현실과 약간의 괴리가 있다고 생각한다.

제9회 서울장애인인권영화제에서 ‘숨’의 상영을 놓고 이견이 있었다던데.

최재호: ‘너무 솔직해서 불편하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이를테면 ‘수희’가 장애인생활시설 안에서 중간자 입장으로 위아래 눈치 보면서, 자원봉사자에게 어느 정도 붙어가려고 하는 모습 같은 것들이다.
또 한 가지는 ‘선정적인 장면’들이었다. 목욕시켜주는 장면은 굳이 안 나와도 되는데 왜 나왔을까, (수희 뱃속의 아이가) 대표이사의 아이일수도 있고 ‘민수’의 아이일수도 있고, 결론이 석연치 않다는 의견이 솟구쳤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영된 이유 또한 ‘너무 사실적’이었기 때문이었고, 다큐멘터리로 장애인생활시설을 그렸던 것들과 달리, ‘수희’라는 ‘장애인의 입장’에서 그려진 영상은 처음이라는 점에서 높은 평가를 샀다.

수희가 쉼터 사람에 의해서 분리조치될 때 차 안에서 ‘민수’와 마주하는 장면이 인상 깊었다. 제3자의 입장에선 ‘인간답게 살기위해선 당연히 분리조치 돼야 한다’고 생각하겠지만 당사자(수희) 입장에선 사랑하는 사람과 떨어져 살아야 하기 때문에 행복할 수 없을 수도 있다. 특히 발달장애인은 자기 목소리를 내기 어려운 상황인데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 김병용 사무국장. 사진/ 전진호 기자
▲ 김병용 사무국장. 사진/ 전진호 기자
박문희: 지난 해 미신고 장애인생활시설을 조사하다가 당일 전원조치 한 적이 있다. 이 과정에서 가장 안타까웠던 것은 거주인들이 불안해한다는 것이었다. 자신이 어디로 가는지조차 안내받지 못하고 가는 현실에 대해 굉장히 불안해했다. 굉장히 미안했지만 이에 대해 어떻게 설명할 수가 없었다. ‘걱정하지 말라’고 분명히 이야기는 하는데, 땀을 삐질삐질 흘리고 있는 거주인의 모습을 보면서 가보지 못한 곳에 대한 두려움, 알지 못한 것에 대한 두려움이 얼마나 큰 공포로 다가왔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 중 한 사람이 자립생활을 시작했는데, 기분이 어떠냐고 물으니 ‘꿈만 같다’고 답했다. 주체적인 삶을 살리라고 한 번도 생각하지 못했었는데, 나와서 살아보니 (두려워했던 것과 달리) 살만 했던 것이었다. 이렇게 한 사람씩이라도 나오면 희망이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장애인생활시설 거주인의 주류를 이루고 있는 발달장애인에게는 영원히 ‘그림의 떡’일수밖에 없다. 영화에서 볼 수 있듯이 ‘수희’는 방관자의 역할이라도 할 수 있고, 눈치 보면서 무언가를 할 수 있지만, 발달장애인은 원장 아들에게 성폭행을 당하고 병원에 끌려가 수술을 받더라도 아무런 저항을 할 수 없다.

김병용: 전원조치 때 보면 시·군은 우선 보호자에게 연락한다. 하지만 보호자가 데려갈 수 있는 여건이 안 되니 입소한 것 아니겠나. 결국 입소 가능한 다른 장애인생활시설을 알아보는데, 이 과정에서 거주인의 생활이나 욕구 파악 없이 무조건 전원조치한다.
광주 인화원도 마찬가지였다. 광주광역시 입장에서는 파장을 빨리 잠재웠으면 좋겠으니 거주인들의 전원조치를 마무리하고 싶어 했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장애인생활시설에서 살지 않는 사람들의 입장이다.
거주인 당사자의 생활이 달라지는 것이기 때문에 다른 장애인생활시설로 옮겨야 한다면 그 사람에 대한 욕구가 중요하고, 자립생활을 원한다면 자립생활이 가능하도록 지역사회 체제가 만들어져야 한다.
말은 쉽지만 굉장히 어려운 문제다. 장애인생활시설 거주인의 70% 이상이 발달장애인이다. 어떻게 욕구를 파악할 것이며, 장애인생활시설이 아닌 또 다른 삶의 방식이 있다는 것을 어떻게 설명할 것인지, 여러 가지 과제를 안고 있다.

함경록: 영화 전반에 걸쳐 누구의 생각이고 누구의 결정인가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영화를 찍으면서 장애인생활시설이 어떻게 생겨났을까 추측해 보건데, ‘귀찮으니까 모아놓고 놔두면 문제가 안 생기겠지’라는 악의적인 것과 ‘몸이 불편한 사람들을 따뜻한 방에서 밥을 먹고 살 수 있게 해야지’라는 선의적인 것으로 나뉜다. 중요한 것은 선의로 제도를 만든다한들 지금의 현실이 바뀔 것 같진 않다는 점이다.
‘한 명의 사람’이라는 데서 인식이 출발해 개인의 의사를 존중하고 반영하는 제도가 나와야 하는데, ‘어떻게 해줘야 하는 사람’, ‘조치를 취해야 하는 사람’이라고 인식한다. 대다수가 ‘몸이 불편한데 어떻게 (장애인생활시설에서) 나와서 살아’, ‘장애인들을 위해 편하게 있게 해야지’라고 생각한다.
장애인생활시설에서 있었던 사람들에게 가장 많이 들었던 이야기는 ‘노동의 강도보다 힘든 건 새벽에 눈 떠서 아침 예배드리고, 아침밥을 먹고 나면 점심밥 먹을 때까지 아무 것도 안 하고, 점심밥을 먹고 나면 저녁밥 먹을 때까지 아무 것도 안 하고, 그렇게 자고 또 하루가 시작된다는 것’이었다. 남들이 봤을 때는 편해 보이고 잘 돌봐주는 것일지 모르나, 당사자의 입장에서는 아니다.
영화 속 분리조치되는 장면 또한 이와 같은 의미에서 ‘수희’ 당사자에게는 굉장히 폭력적으로 다가올 수도 있다는 의미다.

장희영: 솔직히 장애인생활시설에서 나와 자립생활을 시작했을 때, 어리둥절하기도 하고 좀 두렵기도 했다. (자립생활을 결심하기까지) 5년이라는 시간이 걸렸다. 나가고 싶은데 내 몸을 바라보면 또 주저앉게 됐다. 나는 뇌병변장애도 있고, 근이영양증도 있다. 지금 앉아있는 것조차 진땀 날 정도로 힘들다. 손 하나 까딱 못하고, 목이 앞으로 숙여지면 들기 힘들 때도 많다.
용기를 냈다가 주저앉기를 한 5년 동안 했던 것 같다. 막상 자립생활을 결정하고 도와달라고 했는데, 그때부터 또 걱정이 됐고 두려움에 스트레스를 받았다.
일단 나오니까 너무 좋다. 자유롭고, (자립생활한지) 1년 지나니까 어느 정도 적응됐다. 장애인생활시설에서 많은 사람들과 생활하다가, 10평 남짓한 집에 혼자 누워있으니 처음에는 우울증에 걸릴 것 같았다. 그때마다 텔레비전이나 라디오를 크게 틀어놓고 사람이 많은 것처럼 견뎠다. 은행이나 공공시설 또한 이용해본 적이 없어 어려웠는데, 도움이 필요하면 지나가는 사람에게 부탁해 어려움을 넘겼다. 그렇게 적응하며 하루하루 살다보니 괜찮아졌고, 중증장애인활동지원서비스를 알게 돼 이용하고 있다.
밖으로 나오니 시야가 넓어지고, 내가 머물 집이 있다는 게 너무 좋다. 한 달마다 내 통장으로 수급비가 들어오고, 그 돈으로 한 달을 어떻게 살아가야하는지 계획하는 것 또한 너무 기쁘다.
지금 장애인생활시설에서 살고 있는 사람도 (자립생활을 고민하고 있다면) 어려워하지 말고 용기를 내서, 단 하루를 살아도 자유를 느끼며 살았으면 좋겠다.

영화 후반부 ‘수희’의 임신이 축복받지 못하고 입양을 강요받는 장면이 나온다. 세상이 장애인의 성을 바라보는 한 단면 같았다.

최재호: (수희의 뱃속에 있는) 아이가 누구 아이냐에 따라 달라지긴 하겠지만, 입양하기 싫다고 거부하는 ‘수희’의 모습은 당연한 결과라고 생각한다.

함경록: 그 장면에서 제일 중요한 것은 ‘수희’를 피해자로 보고, 성폭력 피해로 인한 임신으로 본다는 점이다. 즉, ‘수희는 사랑할 줄 안다 모른다’를 넘어 의심조차 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개인적으로는 누구의 아이든 무슨 상관이냐고 생각했다. 왜냐면 ‘수희’의 아이니까, 성폭력이든 뭐든 간에 ‘수희’가 소중하게 받아들인다면 무슨 상관일까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수희역을 맡은) 박지원 씨는 끝까지 ‘민수’의 아이라고 주장을 굽히지 않고 있다.

박문희: ‘수희’가 대표이사의 부인을 따라가 드레스를 입는 장면이 있는데, 그것은 어떤 의미인가.

함경록: ‘민수랑 결혼시켜 증거를 없애자’다. 두 명의 피해자가 있다. 한 명은 자궁적출 수술을 시키고, 한 명은 신부 예복을 입히고 결혼시키려고 한다. 많은 사람들이 (성폭력) 증거를 없애기 위해 결혼시킨다고 한다. 방송을 보면 합동결혼식이 굉장히 행복한 모습을 비춰지는데, 웃고 기타치고 노래하는 장면들이 증거를 없애거나 뭔가 위기가 생겼을 때 ‘언론플레이’하기 위해서라니 너무 충격적이었다.
기독교영광의집 대표이사도 재판 받기 이전에는 방송에 많이 나왔다. 장애인들의 아버지, 천사 같이 심상을 잘 구축해 왔던 것이고, 정치권하고도 굉장히 밀접하게 연결돼 있었다.
‘수희’가 시설에 있어서 자립생활을 못하고, 쉼터에 있어서 자립생활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어디에 있든 뭘 하든 자신의 의지가 있다면 자립생활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그 시점이 마지막 장면이 돼야한다고 생각했다.
‘수희’는 어려서부터 장애인생활시설에서 살았고, 그래서 밖에서 사는 사람들과는 다른 행동양식과 사고를 갖고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의사를 뚜렷하게 표출할 수 있는 것은 뭐가 있을까. 여성으로서 건드리면 안 될 부분이 있지 않을까. 그렇게 되면 본능적으로 폭발하지 않을까.
마지막 장면에서 입양 보내자고 할 때 싫다고 강하게 거부하는 순간이 ‘수희’한테는 낯선 것이겠지만 두근두근 거리는 첫 경험이라고 생각했다. 나중에 ‘수희’가 또 다시 자신의 의사를 표현할 기회가 있을 때 그 경험이 되뇌어질 것이고, 그게 자립생활의 시작이라고 생각했다.

박문희: 그 뒤 이야기를 계속 만들었다면 어떻게 만들어갔을지 궁금하다. ‘민수’를 결국은 같이 데리고 나오지 않을까.

함경록: 원래 마지막 이야기 대본이 있었다. 제작비를 지원 받아야하기 때문에 심사를 받아야 하는데, 지금 영화가 완성된 대로는 절대로 심사를 통과할 수 없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일단 마지막 이야기를 만들었는데 굉장히 신파적이다. ‘수희’가 먼저 자립을 했고, (뱃속의) 아이가 나온다. 아이를 잘 키우고 활동보조인과 일상생활을 하면서, 아이의 출생신고를 하러 동사무소에 간다. (출생신고서에) 아이의 아빠 이름을 ‘민수’라고 쓰는 게 원래 대본이었다.

영화 ‘숨’에서 보면 목욕봉사하는 자원봉사자가 나오는데, 시설 자원봉사자에 대한 논란도 분명 존재한다.

▲ 박문희 소장. 사진/ 전진호 기자
▲ 박문희 소장. 사진/ 전진호 기자
박문희: (목욕봉사 때) 씻김을 당하는 거주인에게 해당 사람에게 씻김을 당해도 괜찮은지 한 번이라도 물어봤을까. 이 사람에게도 발가벗겨지고 저 사람에게도 발가벗겨지는 현상으로, 내가 싫으면 안 해야 하는데 무조건 해야 하는 것 자체로 자존감에 상처받지는 않았을까. 자원봉사자는 장애인생활시설이 좀 더 쉽고 편하게 운영할 수 있도록 키워내는 한 축이 되고 있다. 며칠 전 조사한 곳에서는 생활지도교사 한 명이 거주인 여덟 명을 보조하고 있었다. 당연히 감당할 수 없으니 자원봉사자가 생활지도교사가 해야 될 몫을 하게 되는 행태로 가고 있다. 이는 자원봉사자가 없을 때는 그런 서비스들이 거주인에게 제공되지 않고 있다는 이야기기도 하다.

김병용: 장애인생활시설에 후원하지 말라는 이야기를 많이 한다. 우리가 낸 세금으로 시설이 운영되고 있으니 이미 후원하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며, 굳이 후원한다면 내가 낸 돈이 얼마나 잘 쓰이고 있는지 지속적으로 관심을 가져야 한다.

장희영: 후원금을 주고 싶다면 후원하고 싶은 사람에게 직접 주는 방식이 제일 좋다고 생각한다. 후원금이 들어와도 장애인생활시설 운영자들의 뒷주머니로 들어가지, 절대 거주인에게 가지 않는다.

장애인생활시설 문제를 안 짚고 넘어갈 수 없다. 시설비리가 반복하는 이유는 무엇 때문이라고 생각하는가.

▲ 최재호 집행위원장. 사진/ 전진호 기자
▲ 최재호 집행위원장. 사진/ 전진호 기자
김병용: 운영을 잘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회복지법인이 해당 시설을 투명하게, 민주적으로, 거주인의 자립을 위한 프로그램 및 연습이 이뤄지는 공간으로 운영해야 하는데 우리나라 장애인생활시설은 ‘한번 들어가면 죽어서 나오는’식이다.
석암·성람재단, 우석법인 등이 그나마 크게 부각됐던 것뿐이지, 거의 모든 지역에서 장애인생활시설의 문제는 발생하고 있고, 계속 싸우고 있다.

최재호: 투명하게 운영하는 게 아니라, 가족에 의해서 운영하고 있어 서로에게 분명 잘못이 있는데도 감싸주다 보니 눈덩이처럼 커져나가는 게 아닌가. 개인적으로 그것이 비리의 가장 큰 꼭지점이라고 생각한다.

박문희: 대부분 장애인생활시설에 가보면 남편, 부인, 딸 등 가족이 거기(운영구조)에 다 들어가 있다. 그들은 거주인들과 한가족이라고 포장하지만, 실질적으로는 거주인을 돈으로 본다. 오늘도 한 장애인생활시설 조사를 갔는데, 매달 거주인 수급비 통장에서 만 원 이하만  남겨놓고 나머지 돈을 다 빼간다. 정작 거주인은 자신 앞으로 얼마가 들어오고 나가는지조차 모르고 있었다. 장애인생활시설이 어쩔 수 없이 있어야 한다면, 그룹홈 이상의 시설은 만들지 않았으면 한다. 장애인생활시설에 사람이 많으면 관리를 편하게 하고 통제하기 위해서라도 개인에게 결정권을 줄 수 없다. 그곳은 감옥이다. 죽어야 나오니까 어쩌면 감옥보다 더할 수도 있다.

자립생활, ‘비장애인에게는 너무나 당연한 삶’ 돼야… 문제점 내어놓고 하나씩 해결하는 자세 필요해

▲ 장희영 씨. 사진/ 전진호 기자
▲ 장희영 씨. 사진/ 전진호 기자
장희영 씨가 경험한 장애인생활시설은 어떤 곳이었고, 왜 자립생활을 시작하게 됐는지 말해 달라.

장희영: 박문희 소장님이 말씀하신 ‘감옥’이라는 말이 확 와 닿는다. (장애인생활시설에서) 밖에 나가고 싶어도 중증장애인이라 누구의 도움 없이는 한 발 내딛기도 힘든 상황이었다. ‘들어가면 죽을 때 돼야 나온다’는 말이 실감날 정도로, 보호자가 빼내기 전에는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결정권이 하나도 없다.
주는 밥 그냥 먹고, 저녁 아홉시가 되면 텔레비전도 불도 다 끄고, 자는 시간까지 모두 정해져있다. 그러다보니까 내 삶이 너무 피폐해져가고, 짜인 틀에 살다보니까 내 존재가 없어지는 것 같았다.
그나마 지체장애인은 1년에 한두 번 관계를 잘 맺어놓은 자원봉사자에게 연락해서 바깥바람도 쐴 수 있고, 장애인생활시설 직원이 나에게 반말하면 항의할 수 있다. 그러나 발달장애인은 무언가를 하고 싶어도 의사표현이 잘 안 되고, (상대방이) 받아주지도 않으니까, 같은 상황에서도 더 차별받고 억압 받았다. 그러한 상황들을 보면서 놀랐다.
‘개만도 못한 생활을 하면서 (삶을) 끝내야 한다’고 생각하니까 너무 서글펐고, ‘내일 당장 죽더라도 세상 밖으로 나가서 죽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탈시설과 자립생활에 대한 각자의 생각은 어떠한가.

박문희: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와 같은 문제라고 생각한다. 지역에서 살 수 있었다면 굳이 시설에 갈 이유가 없었을 것이고, 안 갔다면 자립생활하기 위해 탈시설하지도 않을 것이다. 장애인부모 입장에서는 여건상 같이 살 수 없게끔 돼 있기 때문에, (같이 살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져야 하는 게 먼저다.
발달장애인은 지원 인력이 있으면 충분히 나와서 살 수 있으나, 다른 사람의 도움 없이는 나와서 살 수 없다. 장애인생활시설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어느 65세 된 지적장애노인이 작업장에 나가서 일하고 있는 것을 알게 됐다. 지역사회에 장애인을 위한 다양한 프로그램이 갖춰진다면 굳이 못 살 것도 없다. 오히려 장애인생활시설에 있으면 새벽에 일어나서 기도하고, 밥 먹고, 작업능력이 떨어지는 사람은 나머지 시간을 무료하게 보내고, 작업능력이 있는 사람은 작업장에서 노동착취 당하고 있다.
장애인생활시설 운영비는 결코 적지 않다. (그 예산을) 왜 개인한테 지원하지 않는지 모르겠다. 충분히 질 좋은 삶을 살 수 있다면 개인이 먼저인데, 우리나라 복지제도는 시설이 먼저다. 시설에는 지원해도 개인한테는 거의 지원하지 않는다.
내 아이가 스물 두 살인데 실질적으로 지원받는 돈이 하나도 없다. 장애인연금, 장애수당, 아무 것도 없다. 어떻게 지역사회에서 살 수 있겠는가, 현실은 장애인생활시설로 가라는 것이다. 그런데 장애인생활시설은 못 보낸다. 사람이 사는 데가 아니기 때문이다. 밥 먹고 잠만 자면 즐겁고 행복한 삶인가. 그것은 ‘어쩔 수 없이 사는 삶’이다. 장애인들의 진정 행복한 삶은 무엇인지, 비장애인들은 한 번 더 생각해봐야 한다. 진정한 삶은 자신이 결정할 수 있는 삶을 사는 것 아니겠는가.

함경록: 자립생활은 당연한 것이다. 장애인생활시설이란 것은 현실적으로 필요하다고 생각하지만 그 역할은 자립생활을 돕기 위한 것이어야 한다.
자립생활이란 혼자서 밥을 해먹고 돈을 어떻게 벌 것이라는 개념이 아닌, 점심 때 친구 만나서 밥 한 끼 먹고 차 한 잔 마시고 영화 한 편 보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다시 말해 어떤 권리를 얼마큼 더 행사할 수 있느냐가 중요한 게 아니라, 같이 어울려서 지내야 자립생활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지금은 너무 장애인들은 장애인들끼리 비장애인은 비장애인들끼리 묶인 나머지 하나의 계급처럼 나뉘어버린 느낌도 든다. 그 안에서 장애인의 자립심이 오히려 약해지는 것도 봐 왔다. 너무나 자연스럽게 옆에 있는 사람들처럼, 그런 모습으로 자립생활이 돼야 하지 않을까.

김병용: 장애인생활시설에서 나온 장애인들을 보면 돈 걱정도 많이 하고 ‘왜 나왔지’라는 이야기도 하지만, ‘그래도 다시 시설에는 안 들어간다’고 말하는걸 보면서 자립생활이 정답이고, 내가 하고 있는 활동 역시 맞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탈시설과 자립생활을 저해하는 요인이 무엇인지 연구하고 조사한 결과, 가장 큰 문제는 ‘부모님’이라는 것이다. 부모님이나 가족(이 장애인생활시설에서 나오는 것을 반대하기) 때문에 자립생활이 어렵다는 것이고, 이는 우리나라 구조가 전적으로 장애가 있는 본인의 문제로 치부하거나, 장애인이 있는 가족이 온전히 책임지도록 하고 있기 때문이다.
박문희 소장님의 말씀대로 가족에 대한 지원과 개인에 대한 지원이 기본이 돼야, ‘장애인생활시설이 아닌 지역사회에서 살아볼까’라고 생각할 수 있다.

(김병용 사무국장에게) 장애인생활시설 실태조사를 하면서 어려웠던 점은 없었는가.

김병용: 몇 년 전부터 각 지역마다 장애인생활시설을 조사하는 게 유행 아닌 유행이 됐다. 각 시·군에서 하는 지도점검 외에 민간단체와 공동으로 실태조사를 하기도 하고, 여러 형태로 장애인생활시설에 공식적으로 들어가는 길이 생긴 것이다.
전라북도에서도 2009년부터 해마다 민·관 합동 실태조사를 하고 있고, 특히 이번에는 도가니 분위기와 맞아 더 철저하게 이뤄졌는데, 끝나고 나서 생각해보면 조사 때문에 피해보는 것은 언제나 장애인생활시설 거주인이다.
도에서 실태조사하고, 보건복지부에서 인권감시단이 나와 조사하고, 경찰청에서 조사하라고 계획을 발표해서 각 시·군 여성·청소년계에 근무하고 있는 경찰들이 조사하고, 거주인은 4~5번 조사당한다.
거주인의 입장에서는 ‘지금 우리가 무엇 때문에 여기 살고 있고, 누가 잘못해서 도가니와 같은 사태가 생겼는가’다. 실제로 조사한다고 해서 큰 건들을 발견하지도 못한다. 하면서도 한계를 느끼는 게 실태조사고, 그럼에도 해야 하므로 어떻게 이끌어가야 하는 가에 대해 고민하고 있다. 각 시·군에서도 민간단체와 어떻게 연계해서 어떤 방식으로 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을 계속해야 한다.
어쨌거나 장애인생활시설이 폐쇄적이지 않고, 민주적이고, 개방적이기 위해서는 실태조사가 지속적이어야 하고, 사전에 통보하는 방식이 아닌 1년 365일 자유롭게 시설을 드나들 수 있어야 한다.

만약에 관리감독이 제대로 이뤄져서 반인권적인 행태가 벌어지지 않는다면, 장애인생활시설을 다르게 바라볼 수 있는가.

김병용: 장애인생활시설을 옹호하거나 찬성하는 측에서는 ‘그럼 이 사람들 다 나오면 누가 어떻게 책임질 거냐’라는 이야기를 가장 많이 한다.
장애인생활시설이란 자체가 인권적일 수 없는 구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장 장애인생활시설이 없어질 수 없다면, 적어도 본인들이 선택할 수 있도록 사회복지사업법 안에 있는 사회복지서비스 신청권을 활발하게 가동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거주인들에게 여러 가지 방식이 있다는 것을 알려줘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강고한 장애인생활시설 건물들은 무너질 수 없다.

장희영: 내가 있던 곳은 바깥 사람들하고 어울릴 수 없는 외곽이었다. 그러다보니 사고방식도 많이 흐려지고, 나와서 다른 사람들이 생활하는 것을 보면 많이 다르다는 것을 느낀다. 자립생활을 안 해봤기 때문에 어려운 문제들을 많이 겪게 된다.
일단 나오고 싶어도 정보가 하나도 없다. 밖에 나와서 살고 싶은데, 어떤 절차를 밟아서 어떤 사람한테 도움을 청해야 하는지 나도 몰랐다. 정보들을 좀 자세하게 알려서 본인이 선택할 수 있게끔 했으면 좋겠다.

박문희: 소규모 그룹홈의 형태로 지역사회에서 누구나 드나들 수 있고, 언제든지 왔다 갔다 할 수 있는, 누군가가 그곳을 지나치면서도 감시할 수 있는 곳으로 만들어진다면 어느 정도는 생각해볼 여지가 있다. 그러나 지금의 ‘성역화’돼 있는 현실은 절대 반대한다.

최재호: 좀 더 인권적으로 바라보기 위해서는 사람과의 관계 속에서, 지역사회 안에서 살 수 있게끔 제도화시켜야 한다. 그리고 그것을 현실적으로 반영하고 정치적으로 사람들에게 알리는 게 필요하다. ‘너희들끼리 인권적으로 잘해라’는 식으로 이야기하다보면 10년, 20년, 30년이 지나도 똑같은 현실에 부딪힐 수밖에 없다.

함경록: 장애인생활시설의 문제는 예전부터 제기돼 왔고 화제가 됐다고 하지만, 비관적인 사건은 또 벌어질 것이다. 화제가 됐을 때 엄청나게 바뀌길 기대하고 응원했지만 시간이 지나고 나면 몇 가지 문제점만 해결되고 말았다.
나 역시 장애인을 직접 만나기 전까지 장애인에 대한 인식은 ‘피해자’ 또는 ‘약자’였다. 텔레비전만 보더라도 모자이크처리 돼 있었고, 한 번도 멀쩡하게 마주친 적이 없었기에 멀어지는 게 당연했다.
내가 사는 곳 옆에, 어디서든 쉽게 마주치는 것부터가 가장 큰 변화지 않을까.

일상적이라고 느끼는 당연한 것들이 장애인에게는 복잡하고 어려워진다는 것 자체가 차별이고 해결해야 할 시급한 문제라고 생각한다. 탈시설과 자립생활을 위해 가장 먼저 마련해야 할 것들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김병용: 어려운 말로 ‘침묵의 카르텔을 깨자’는 이야기를 많이 한다. 더 이상 침묵하지 말고 다 드러내자는 것이다. 자립생활이 무엇인지, 자립생활을 원하는 사람은 진짜 있는지, 어떤 장애유형이 자립생활하기 더 쉽고 어려운지, 그에 대한 지원방안은 어떻게 마련돼야 하는지 등. (문제점과 과제를) 모두 내어놓고 하나씩 하나씩 (해결책을) 만들어가자는 것이다. 지금은 그 시점에 왔다고 생각한다.

최재호: 탈시설하고 자립생활이 이제는 보편화가 되고 있는 시점이다. 현재는 장애인생활시설에서 나온 사람이 살 수 있는 주거 공간을 마련 중인 것으로 알고 있는데, 2012년에는 그런 정책들이 많이 생겨야할 것 같다.
장애인생활시설에 있는 사람을 지역사회에서 살 수 있게 하는 토대는 각 지역구에 있는 자립생활센터일 것이다. 자립생활센터에는 체험홈이 있는데, 체험홈에 탈시설한 사람이 전반적으로 사회에 적응할 수 있도록 하는 체제가 갖춰져야 한다. 계속해서 정책적으로 개선할 수 있도록 해야 하고, 이를 통해 완벽하지는 않지만 폭넓은 탈시설이 이뤄질 것 같다.

함경록: 지금이 치열한 경쟁사회라면, 경쟁에서 도태되기 좋은 장애인은 한곳에 몰아넣고, 그렇지 않은 사람은 그들대로 가고 있다고 보인다.
물소가 떼를 지어 이동하면, 사자는 무리에 달려들어 사냥하는 것이 아니라 그중에 도태되는 한 마리가 낙오될 때까지 기다린다고 한다. 그런데 우두머리 물소나 힘이 센 물소는 부상이 있거나 늙은 물소가 뒤처지면 전체적으로 속도를 늦춰 열을 맞추는데, 그러면 사자가 달려들지 못한다고 한다.
따로 격리시키는 게 아니라 차이가 있다는 것을 인식하고 같이 옆에 있고 이웃하는 것, 그래야 된다고 생각한다.

박문희: (탈시설하기 위한 정책이 아닌) 장애인생활시설에 들어가지 않게 하기 위한 정책이 나와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것이 기반이 돼야 시설이 점차적으로 줄어들 것이고, 지역사회에서 살 수 있게 될 것이다.
이를 위해 우선적으로 진행돼야 하는 것은 (국민기초생활보장) 부양의무제 기준을 없애는 일이다. 일할 능력이 없는 장애인의 경우, 수급자로 지정되면 충분히 살아갈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부모의 부담이 죽을 때까지 가중되고 있다. 이 또한 장애인생활시설을 선택하는 핑계거리가 되고 있지 않은가.

장희영: 우리나라는 옛날부터 장애인을 ‘병신’으로 취급하고, 드러내지 않기 위해 부모가 방안에 가둬놓고 생활했다고 한다. 그게 지금까지 이어져 장애인생활시설을 만들었고, 일단 가정에서는 많이 힘들기 때문에 장애인생활시설에 데려다 놓는다.
(탈시설과 자립생활은) 시설이 없어져야만 가능한데, 또 그렇게 되면 부모들의 부담이 정말 클 것 같다. 그래서 부양의무제가 빨리 없어져야하고, 장애인도 자립해서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을 방송매체에서 더 많이 보여주고 드러냈으면 좋겠다.

저작권자 © 웰페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