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 유일 청각언어장애인밴드 ‘라온제나’

한파가 맹위를 떨친 지난 2월 19일 오후, 제주시 외도동에 있는 제주도농아복지관(관장 박전해) 입구에 들어서자 드럼과 기타 소리가 귓가에 울렸다.

복지관 5층 대강당에는 5명의 밴드 단원이 악기 연습에 여념이 없었다. 모두 청각장애인이다. 악기를 다루는 이들의 표정은 사뭇 진지했다. 전문 강사인 우종훈씨의 얼굴 표정과 머리 움직임, 손짓 등 동작 하나 하나에 시선을 집중한 채 바쁘게 손을 움직였다.

비록 남들처럼 말하지도, 듣지도 못하는 처지이지만 음악에 대한 열정만큼은 프로 못지 않았다.

이들은 농아인들로 구성된 ‘라온제나’ 밴드의 단원이다. 전국에서 유일한 농아인 밴드다.

‘라온제나’는 ‘기쁜 우리, 즐거운 우리’라는 뜻의 순 우리말이다. 음악을 통해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기쁨과 즐거움을 공유하자는 의미를 담고 있다.

밴드 단원은 모두 8명. 남자 2명, 여자 6명으로 20대 대학생부터 50대 직장인까지 나이도, 직업도 다양하다. 공통점이라면 청각언어장애를 겪고 있다는 점과 악기에 대한 남다른 애착이다. 이날 연습에는 개인 사정으로 부득이 3명의 단원이 빠지는 바람에 5명만 참여했다.

농아인 밴드가 결성된 것은 지난 2007년 11월 무렵. 복지관 측에서 문화예술을 접할 기회가 드문 농아인에게 음악을 향유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 주고자하는 취지에서 ‘손소리빛’ 연주단을 창단했다.

‘손으로 아름다운 소리를 빚어낸다’는 뜻에서 붙여진 이름이다. 처음엔 동아리 형태로 출발했다. 하지만 시작부터 가시밭길이었다. 변변한 악기조차 없었을 뿐 아니라 악기를 다룰 줄 아는 이도 없었다. 어렵사리 지원받은 악기는 낡은 대로 낡았고 연주에 대한 흥미도 떨어졌다. 무엇보다 악기를 다루는 것 자체가 영 어색했다.

의욕적으로 출발한 손소리빛 연주단은 우여곡절 끝에 창단 1년도 채 안 돼 흐지부지되고 말았다.

하지만 기회는 다시 찾아왔다. 2009년 4월 월드비전에서 드럼을 비롯해 기타, 건반 등 밴드에 꼭 필요한 악기는 물론 엠프시설과 차량까지 지원해 준 것이다.

이후 새롭게 의기투합한 단원들은 전문 강사의 지도 아래 본격적으로 악기를 배우기 시작했다. 악기에 재미를 붙인 단원들은 툭하면 새벽까지 남아 개인 연습에 몰두하는 등 손에서 악기를 놓지 않았다.

소리는 듣지 못해도 진동은 느낄 수 있어 드럼을 중심으로 호흡을 맞췄다. 연습은 칠판에 그려진 장단을 보며 숫자를 되내며 자신의 순서가 오면 악기를 연주하는 방식이었다.

그리고 그 해 9월 6일, 드디어 꿈에 그리던 첫 무대에 올랐다.

밴드에서 베이스기타를 맡아 4년째 활동 중인 홍금희씨(40)는 아직도 첫 공연을 잊지 못한다.

“제13회 전도수화경연대회 손짓사랑수화제 때 처음으로 찬조 공연을 펼쳤는데 공연이 끝나자 제주학생문화원 대극장을 가득 메운 관객들이 뜨거운 박수갈채를 보내주셨어요. 그 때 그만 울컥해서 눈물이 났습니다. 영원히 잊지 못할 무대였습니다.”

손소리빛 연주단은 이듬해인 2010년 2월 지금의 라온제나 밴드로 이름을 바꿨다. 현재 연극동아리인 극단 ‘청강’과 함께 ‘가온누리장애인예술단’으로 활동하고 있다.

가온누리는 ‘어떠한 일이 있어도 세상의 중심이 되어라’라는 순 우리말로 장애를 극복하고 세상의 중심에 서자는 의미가 담겨 있다.

라온제나 밴드는 지난 2년간 두 차례 열린 가온누리장애인예술제에서 대중가요인 ‘나는 문제없어’,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워’ 등 주옥같은 곡을 연주하며, 관객들에게 희망의 메시지를 전달하고, ‘할 수 있다’는 자신감과 용기를 심어줬다.

올해 공연은 오는 6월 말이나 7월초께 열릴 예정이다. 전국 무대를 넘어 세계 무대에 서고 싶다는 게 단원들의 바람이다.

농아인은 음악을 할 수 없다는 편견을 깨고 당당히 세상 밖으로 나온 라온제나 밴드. 세상에서 유일한 ‘그들만의 하모니’를 빚어내는 이들의 도전은 그 자체로 아름답고 의미가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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