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니메이션 ‘은실이’의 김선아·박세희 감독 인터뷰

여성지적장애인인 은실이는 어느 날 친아빠가 누군지 모르는 아기를 낳고 죽고, 마을사람 어느 누구도 은실이와 아기의 존재를 인정하려고 하지 않는다. 학창시절 은실이의 친구이자 같은 반 반장이었던 인혜는 은실이를 둘러싼 사건들을 파헤치기로 결심한다. 숨겨진 사건들이 하나 둘씩 고개를 들기 시작하면서 영화는 점점 절정으로 치닫는다.

‘2012년 애니메이션판 도가니’로 불리며 눈길을 끌었던 ‘은실이’가 8일 서울 CGV 대학로에서 관객들과의 첫 만남을 가졌다.

애니메이션 ‘은실이’는 한 시골마을에서 벌어진 여성지적장애인 성폭력 사건을 소재로 다루고 있지만, ‘가해자’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는 게 여느 작품들과 남다른 점이다. 더 특이한 것은 성폭력 사건에서 여성가해자의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는 점이다.

▲ 애니메이션 ‘은실이’ 포스터.
▲ 애니메이션 ‘은실이’ 포스터.
공동연출을 맡은 김선아·박세희 감독은 여성장애인 성폭력 상담 관련 센터 사례 및 시사 고발 프로그램 등을 참고하면서, 오히려 가해자인 남자보다 여자가 피해자를 욕하는 경우를 보고 이번 작품의 방향을 결정하게 됐다고 전했다.

김 감독은 “사례들을 보면 가해자의 부인이 남편을 옹호하며 ‘피해자가 먼저 꼬리쳤다’는 등의 태도를 보였고, 심지어는 자신의 딸이 피해자인 데도 딸을 감싸지 않았다. 그런 여자들의 행동을 보면서 ‘같은 여자인데 왜 저럴까’라는 의문을 갖게 됐다.”고 설명했다.

이어 “일상에서 쉽게 말해 ‘싸 보이는’ 여자를 봤을 때, 같은 여자인 우리는 ‘천박하다’고 너무 쉽게 내뱉는다. 방관자는 다른 게 아니라 그러한 부분에서부터 출발한다고 생각했다. 내가 만약 그 상황에 있었다면 여성피해자를 보호해줄 수 있었을까, 아니면 가해자의 부인처럼 방관하고 오히려 피해자를 욕하는 여자가 되지는 않았을까……. 이런 불안감과 죄의식으로부터 시작했다.”고 고백했다.

김 감독은 “어떤 사건이 발생했을 때 선한 입장에 서서 ‘나쁜 놈’이라고 말하는 것은 굉장히 쉬운 일이지만, 막상 자신이 그 상황에 처했을 때 ‘가해자나 방관자가 되지 않을 수 있는가’라는 질문을 던지는 작품이다. 영화 ‘도가니’가 사회적 분노를 끌어 오르게 만들었다면, 애니메이션 ‘은실이’는 스스로를 찝찝하게 만드는 작품인 것 같다.”고 말했다.

박 감독은 “보통 성폭력 사건이 일어나면 ‘법이 바뀌어야 한다’ 등 선한 편에 서는 인터넷 댓글들을 쉽게 볼 수 있다. 하지만 ‘거기까지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작품 속 인혜도 자신이 선한 편이라고 생각했고 당연히 도덕적이라고 생각하는 쪽에 섰었지만, 현실에 부딪혔을 때 그것을 실현하기란 굉장히 어렵다는 것. 그런 부분에 공감하면서 작업했다.”고 설명했다.

▲ (왼쪽부터) 박세희 감독과 김선아 감독.
▲ (왼쪽부터) 박세희 감독과 김선아 감독.

두 명의 여성감독이 만든 작품인 만큼, 중심 인물인 은실이 역시 지적장애인으로 그리기보다 한 명의 여자로 바라보고 있다는 점 또한 인상 깊다.

박 감독은 “표면적으로 지적 능력이 낮고 귀여운, 흔히 영화가 그리는 지적장애인으로 비춰지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페데리코 펠리니 감독의 영화 ‘길’ 속 제소미나에서 영감을 얻어, 순수해서 사람들에게 이용당하기 쉽지만 욕구를 갖고 있는 ‘한 명의 여자’로 표현하고자했다. 그런 의미에서 만들어진 마지막 장면을 보고 여성관객들은 가슴이 짠하다는 반응을 보였다.”고 말했다.

또한, 폭력에 시달리는 베트남 여성이주민의 삶을 그리는 등 다양한 여자의 욕구를 포함하고 있다.

이밖에 비슷한 옷을 입는 것, 생리대 사건, 여성장애인에게는 동정의 눈빛을 보내면서도 다른 여자에게는 ‘남자 없으면 못 살지 않느냐’라고 비꼬는 등 여자의 시각을 세심하게 잡아내고 있다.

반면, 누구나 한번쯤 들어봤을 법한 사건을 소재로 다루고 있어 다소 진부하고 고전적이라는 반응도 있다.

김 감독은 “처음 줄거리를 공개하고 작품을 홍보했을 때 ‘어디 어디에서 벌어진 이야기다’, ‘어떤 시사 고발 프로그램에서 나온 이야기다’라는 반응이 주였다. 하지만 특정 사건을 소재로 한 것은 아니며, 보편적이고 너무 흔해서 그냥 흘려보내는 이야기 중 하나일 것이다. 이를 통해 남의 이야기가 아닌 좀 더 자신의 이야기라고 느끼게 해주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애니메이션 ‘은실이’는 14일까지 CGV 대학로에서, 15일~21일까지 부산광역시 CGV 서면에서 상영된다.

▲ 작품 속 한 장면.
▲ 작품 속 한 장면.
▲ 작품 속 한 장면.
▲ 작품 속 한 장면.

‘작품 뒷이야기’

당초 ‘은실이’는 여성지적장애인의 성 문제가 중심이 아닌 등장인물 각자의 ‘비뚤어진 성’을 담아낸 작품이었다.

아버지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자란 여자, 관음증과 동시에 성에 대해 개방적인 사고를 가졌지만 독실한 기독교인 부모님을 둔 여자와 같이 작품 속 남자들 또한 저마다 성과 관련해 사연을 갖고 있는 인물들이었다.

“베트남 여성이주민의 남편 규진은 순박하고 숫기 없는 동네 청년이자 ‘마마보이’로, 또래 여자에게 쉽게 다가서지 못하자 베트남 여자를 돈으로 사들인다. 하지만 생각과 달리 베트남 여자가 자신이 뜻대로 다뤄지지 않자, 성 기능이 원활하지 않은 인물이었다. 또한 치매를 앓는 할아버지 역시 왕성한 성욕을 가졌지만 아들과 며느리로부터 ‘노인네 취급’을 받는, 자신의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약자인 은실이를 가해하는 역할이었다.”

하지만, 짧은 상영시간과 적은 예산으로 모든 것을 다 담아내기에는 부족했기에 여성지적장애인 성폭력 사건을 둘러싼 여성가해자 중심의 이야기로 정리가 됐다는 것.

박 감독은 “관객들이 보기에 조금 부족하다고 느낄 수 있는 점이 많지만, 분명히 각자 사회적 위치에서 취할 수 있는 입장들을 되돌아볼 수 있는 작품이라고 생각한다.”고 전했다.

김 감독은 “이번 작품을 준비하면서 여성지적장애인 또한 한 명의 여자로서 사랑에 대한 갈구가 컸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었지만, 잘못하면 이를 악용한 범죄를 ‘피해자가 원해서 한 것 아니냐’는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어 다룰 수 없었다. 실력을 좀 더 쌓고 기회가 된다면 꼭 한 번 다루고 싶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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