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ㅅ초등학교, 수화통역 자격 없는 특수교육실무원 채용… 엉터리 수화에 청각장애학생들 등교 거부

“안녕하세요. 제 이름은 조민아(가명)입니다. 대전 ㅅ초등학교 4학년 4반입니다. 맹영진(가명)이라는 농아인 친구와 함께 공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학교에서 수화통역사가 수화가 안 통해서 답답해 죽겠어요. 때문에 우리들이 공부시간에 집중할 수가 없어요. 수화가 많이 이상해서 그만두면 좋겠는데 수화통역사가 왕고집을 하고 있습니다. 농아인 선배들!! 우리는 아직 어려서 어떻게 해야 할지 잘 몰라요. 우리도 공부하고 싶어요. 도와주세요.”

대전광역시 ㅅ초등학교에 다니는 청각장애학생들이 지난 4일부터 등교를 거부했다. 이 학생의 부모는 “수업을 받아봐야 뭘 하나. 수업이 끝날 때까지 답답함을 안고 제대로 된 수업을 받지 못할 바에는 차라리 쉬는 게 낫겠다.”고 말했다. 수화통역 자격이 없는 사람을 특수교육실무원(특수교육보조인력)으로 채용해서 발생한 일이다.

▲ 조민아 학생이 유튜브에 수화통역사 배치를 요구하며 올린 동영상. ‘우리들도 공부하고 싶어요’라며 청각장애인의 교육권 보장 요구 및 선배들의 조언을 구하고 있다.
▲ 조민아 학생이 유튜브에 수화통역사 배치를 요구하며 올린 동영상. ‘우리들도 공부하고 싶어요’라며 청각장애인의 교육권 보장 요구 및 선배들의 조언을 구하고 있다.
청각장애가 있는 조민아·맹영진 학생은 일반학교에서 통합교육을 받고 있다. 1학년 입학 때부터 4학년 봄 방학 전까지만 하더라도 특수교육실무원이 모든 과목을 통역해줬지만, 해당 특수교육실무원이 유아휴직을 신청하면서 학교 측은 지난 2월 21일 채용 공고를 통해 민 모 씨를 새 특수교육실무원으로 채용했다. 이에 따라 민 씨는 1년간(지난 달 2일~2013년 2월 28일) 청각장애학생의 수업 지원 등을 도맡게 됐다.

문제는 수화통역에서 발생했다.
휴직한 전임자나 민 씨 모두 수화통역사 자격증은 없었다. 하지만 전임자의 경우 오랫동안 수화통역을 하는 등 경험이 풍부했던 반면, 민 씨는 수화 교육을 이수한 경험만 있었을 뿐 실제 수화통역 경험은 거의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때문에 두 학생은 민 씨의 입모양을 보고 잘못된 수화를 고쳐주는 상황까지 벌어졌던 것.

대전에서 농사랑공부방을 운영하는 황용학 원장은 “수업 내내 이해할 수 없는 수화통역을 봐야했기 때문에 두 학생 모두 스트레스가 많이 쌓여있는 상태다. 답답하다 못해 무의식적으로 책상을 치거나 엎드리면 수업 태도가 나쁘다고 지적받으니, 기죽어서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말 그대로 ‘고문 받는 듯한’ 상황이었다.”고 두 학생의 상태를 전했다.

황 원장은 “교실의 주인은 학생이어야 하는데, ‘주는 대로 받아라’는 식으로 주객이 전도됐다. 두 학생이 공부방에 와도 공부보다 감정을 추스르게 하는 데 중점을 두고 있다. 초등학교 4학년은 고학년으로 올라가는 단계로서 중요한 시기다. 특히 이 두 학생의 성적이 중상위권으로 열심히 노력한다면 좋은 결과를 거둘 수 있는데 안타깝다.”고 분개했다.

민 씨를 채용한 ㅅ학교 박 모 교장은 “최대한 학생들의 교육권을 보장하고자 하는 게 교장의 입장이지만, 정당한 절차를 통해 민 씨를 채용했기 때문에 본인이 그만둔다고 하지 않는 이상 방법이 없다.”며 “다른 사람을 뽑기 위해 무작정 해고한다면 이 또한 민 씨에 대한 인권 침해이자 노동법 위반.”이라고 입장을 밝혔다.

대전시교육청 교수학습지원과 특수교육 한 관계자는 “장애인등에대한특수교육법(제21조 제2항)에 따르면 특수교육대상자를 배치 받은 일반학교의 경우 ‘교육과정의 조정, 보조인력의 지원, 학습보조기기의 지원, 교원 연수 등’만 수립·시행을 명시하고 있지, 수화통역사를 배치하라는 내용은 없다. 또한, 보조인력의 자격은 고등학교 졸업 이상의 학력으로만 정해져 있다.”며 수화통역사 배치에 대한 법적 근거가 없다고 주장했다.

이 관계자는 “민 씨가 비록 수화통역사 자격증은 없지만 청각장애인인 언니와 수화를 하면서 자랐고, 수화통역 능력이 부족하다면 더 배우고자 하는 의지가 있는 사람.”이라며 “채용 공고 당시 응시자가 4명밖에 되지 않았고, 그중 1년간 수화통역사로 일한 경력이 있는 민 씨가 가장 낫다고 생각해 뽑았다.”고 설명했다.

청각장애인은 ‘토탈 커뮤니케이션’을?… 농문화·특수교육 이해 없는 대전시교육청

조민아·맹영진 학부모의 반발이 계속되자 ㅅ초등학교, 대전시교육청, 국립특수교육원 등은 지난 3일 회의를 갖고, 특수교육실무원 교체 대신 ▲스마트러닝 기법을 활용한 원격 수화통역 ▲속기를 통한 자막 제공 등을 제안했다.

이날 회의에 참석한 대전시교육청 교수학습지원과 특수교육 관계자는 “수화는 조사도 없고 문맥 순서도 달라 의사소통의 방법은 되지만, 고학년 교육의 고급문장을 번역하기에는 역부족.”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대전 모 특수학교 종합감사를 3일간 다녀온 바 있는데, 전체 학생 317명 중 청각장애학생은 37명밖에 되지 않으며, 절반이 유치원생이었다. 이는 많은 학생들이 어렸을 때부터 구화교육을 받아 통합교육으로 나가기 때문.”이라며 “유치원 때 말하는 구화훈련과 소리를 듣는 청능훈련을 받아 통합교육으로 가는 게 일반적인 우리나라 농학교의 흐름이다. 실제로 37명 중 1명을 제외한 나머지는 구화교육을 요구하고 있으며, 1명은 수화와 구화를 동시에 요구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덧붙였다.

또 “청각장애인이라고 해도 ‘토탈 커뮤니케이션(Total Communication, 종합적인 의사소통)’을 할 줄 알아야 한다. 우리나라 사람이 외국에 나가서 외국말을 모르면 바디 랭귀지(Body Language, 몸짓 언어)라도 해야 하지 않느냐. 이와 마찬가지로 청각장애인도 수화와 함께 구화나 필담을 병행해야 한다.”며 “그러나 농학교 특수교사라면 명분을 위해 수화통역사 자격증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며, 교육청의 연수비 지원 등에 대해서도 적극적인 입장.”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그러나 이번 사태의 해당 학생과 학부모의 뜻을 존중해, 수화통역사 자격증이 있는 특수교육실무원의 추가 배치를 고려하고 있는 중이다. 다만, 수화를 고집하는 이들의 진짜 의도가 무엇인지 의심스럽다. 누군가가 ‘ㅅ초등학교 특수교육실무원에 응시하지 말라’는 문자를 돌려 4명밖에 지원하지 않았는데, 이는 무조건 수화통역사를 배치해 달라고 주장하는 쪽에서 다른 뜻이 있어 꾸민 일이 아닌지 의심스럽다.”고 공격했다.

이에 대해 한국농아인협회 대전협회 윤혜주 실장은 ‘특수교육은커녕 장애에 대한 이해자체가 없다’며 맹비난했다.

윤 실장은 “수화를 언어가 아닌 교육의 수단으로 보고 있다. 원격 수화통역 및 속기를 통한 자막제공은 ‘청각장애인 말살정책’과 다름없다. 청각장애인의 특성과 문화자체를 부정하는 처사이자, 청각장애학생이 묻고 말하고 상대와 의사소통할 기회를 뺏는 것이다. 이것이 어떻게 교육하는 사람의 머리에서 나올 수 있는 생각인가.”라고 분개했다.

황용학 원장 역시 “교육계를 비롯해 많은 사람들이 수화를 하나의 언어가 아닌 의사소통의 ‘보조 수단’ 정도로 생각한다. 하지만 입장을 바꿔놓고 생각한다면 수화는 또 하나의 기본적 언어임이 틀림없다. 구화교육 및 청능교육은 어디까지나 치료의 개념에 불과하다. 이미 언어학계에서는 한국수화사전을 편찬하는 등 언어로 인정하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데, 다른 곳에서는 이해하려는 시도조차 없는 것 같아 씁쓸하다.”고 바라봤다.

윤 실장은 교육청이 제기한 의심에 대해 “특수교육실무원의 급여가 낮은 반면, 수화통역의 업무는 굉장한 고도의 집중력과 육체적 노동을 요하기 때문에 많은 사람이 지원하지 않았을 것.”이라며 “한국농아인협회 대전협회측이 이득을 보기 위해서 수화통역사 자리를 놓고 밥그릇 싸움을 하는 것처럼 몰아가고 있는데, 청각장애인의 교육권 문제를 놓고 이런 식으로 대처하는 것은 기가 막힐 노릇이다. 우리는 정부의 지원을 받기 때문에 실질적으로 이득을 볼 것도 없다.”고 못을 박았다.

그는 “전문적인 지식을 요하는 분야일수록 전문가가 수화통역을 직접 하는 것이 가장 좋다. 그런 의미에서 농학교 교사의 수화통역은 두말할 것 없이 필수다. 말레이시아를 다녀온 적이 있는데 건청인 교사는 언어치료를 위해 일하고, 청각장애인 교사가 청각장애학생들을 가르쳤다. 당연히 수화통역사가 하는 것보다 훨씬 빠르고 정확했으며, 그런 환경에서 배울 수 있다는 게 너무나 부러웠다.”고 강조했다.

전국장애인부모연대 김치훈 정책연구실장은 이번 사태에 대한 학교·대전시교육청의 태도는 명백한 학습권 침해이자 장애인차별금지및권리구제등에관한법률(이하 장애인차별금지법) 위반이라고 주장했다.

김 정책연구실장은 “장애인등에대한특수교육법의 수화통역사 명시 여부를 떠나 기본적으로 장애학생에게 필요한 교육지원 내용 및 구체적인 계획을 교육장 또는 교육감이 짜게 돼 있다. 지금의 태도는 청각장애학생들에 대한 학습권을 어떻게 보장하고 보완할 것인지에 대한 계획도 없이, 그저 학습할 수 없는 구조의 일반학급에 앉혀놓은 꼴.”이라고 비판했다.

이와 함께 “기본적인 학습권을 놓고 ‘보조기기·보조인력’이라는 테두리 속에서 해결하려고 하니까 문제가 되는 것이다. 이것 자체가 장애인차별금지법 위반이 아니고 무엇이겠느냐.”고 질타했다.

▲ 조민아 학생이 수화통역사 배치를 요구하며 교육장에게 쓴 편지와 호소문.
▲ 조민아 학생이 수화통역사 배치를 요구하며 교육장에게 쓴 편지와 호소문.
수화는 청각장애인의 언어, 비장애인 잣대로 결정 말아야

청각장애인계 및 장애계는 이번 사태가 발생한 원인을 ‘수화를 청각장애인의 언어로 인정하지 않았기 때문’으로 보고 인식변화와 대책마련이 시급하다고 입을 모았다.

청각장애인계는 오래전부터 수화를 언어로 인정할 것을 촉구해 왔다. 수화는 청각장애인의 언어이며, ‘언어가 다르면 문화도 다르다’는 말이 있듯이 농문화 또한 같은 맥락에서 존중받아야 한다는 것이 이들의 주장이다.

장애인정보문화누리 김세식 대표는 “수화는 청각장애인에게 있어 모국어라는 사실을 무시하고, 음성언어를 억지로 주입하려는 현재의 교육·언어정책이 청각장애인을 또 다른 사회적 약자로 만들고 있다. 구화교육을 주장하는 사람은 청각장애인 당사자가 아닌 비장애인 또는 학부모.”라고 꼬집었다.

김 대표는 “국제장애인권리협약에도 명시돼 있듯이 수화를 사용함으로써 만들어지는 청각장애인의 독특한 문화를 정부가 장려해야 한다.”며 “청각장애인은 신체적 활동에 어려움이 없어 자립이 필요 없을 것이라고 생각하겠지만, 의사소통·정보의 단절로 스스로 판단하고 결정할 수 없는 상황이 많이 생긴다. 정보접근에 필요한 기기 등 물리적인 자립과 함께 정신적·문화적 자립이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조민아·맹영진 학생의 지인이자 25년간 수화통역사로 일하고 있는 A씨는 “두 학생이 어렵게 일반학교에 입학했기에 이번 사태가 더 가슴 아프다.”고 전했다.

A씨는 “조민아·맹영진 학생의 부모님들은 대전에 있는 농학교 출신으로, 수화를 제대로 할 줄 아는 특수교사가 없는 등 농학교의 열악한 교육환경을 잘 알고 있었다. 때문에 자식만큼은 집에서 가까운 거리에서, 제대로 된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끊임없이 싸워 일반학교로 옮길 수 있었다.”고 사연을 전했다.

당시 ㅅ초등학교 근처에 살고 있던 조민아 학생과 달리, 다른 동네에 살고 있었던 맹영진 학생은 ‘혼자보다 둘이 낫다’는 데 뜻을 모아 이사까지 감행했다.

A씨는 “둘이 같이 학교를 가기 위해 조민아 학생은 1년 늦춘 9살, 맹영진 학생은 1년 앞당긴 7살에 입학하는 등 정말 많은 노력이 있었다. 농학교를 가라는 교육청에게 수화통역사 배치를 요구하고, 교육장의 방에 찾아가기까지 하며 여러 번 설득한 끝에 이뤄진 것.”이라며 “오히려 수수방관하는 교육청 대신 주변사람들이 두 학생의 방과 후 공부를 돕는 등 적극적인 지원을 펼쳤다.”고 토로했다.

A씨는 “두 학생은 태어나서부터 수화로 옹알이하고 수화로 이야기하는, 수화가 모국어고 한국어가 제2외국어인 아이들이다. 공부하기도 빠듯한 데다 제2외국어까지 배워야 하는 상황인데, 모국어조차 엉터리라면 무엇을 할 수 있겠는가. 단지 제대로 된 모국어를 제공하라는 것인데, 왜 당사자 아닌 제3자가 구화교육이니 인공와우수술이니 왈가왈부하는지 모르겠다.”고 한숨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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