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420장애인차별철폐투쟁결의대회에서 만난 사람들
2012년 420장애인차별철폐의날 투쟁의 슬로건은 ▲장애등급제 폐지 ▲부양의무제 폐지 ▲발달장애인법 제정이었다. 이 슬로건이 생긴 이유가 이 날 참가한 이들의 삶에 있었다. 목소리 드높여 슬로건을 외치던 현장에서 사람들을 만나 그들의 이야기를 들었다. |
서재철-남궁미-서연지(여·14·지적장애1급) 가족
우리 연지는 지적장애 1급이다.
집회 참석은 처음인데, 마침 오늘 아이가 다니는 특수학교에서 경복궁으로 견학을 와서 시간대가 맞아 이렇게 참석할 수 있었다. 강동장애인부모회 소속인데, 자주 나와서 함께 목소리를 내야 하는데 그러지 못 해서 미안하다.
우리는 장애에 대해서 잘 몰랐다. 어릴 때부터 소아마비나 다른 지체장애인들은 종종 봐오긴 했지만, 연지를 낳아서 키우다보니 ‘발달장애’야말로 진짜 장애라고 느껴지더라. 지체장애인들도 많이 불편한 점이 있겠지만, 그래도 그들은 자기 스스로 사고하고 그것을 표현할 수 있지 않은가. 오늘 현장에 나와 이야기하는 분들도 대부분 지체장애인데, 우리 아이는 자신이 뭘 해야 하는지 알지 못 한다. 아이가 성인이 돼도 자립할 수도 없다.
연지에게는 남동생이 한 명 있다. 그 아이는 너무나 어린 나이부터 나중에 자신이 누나를 책임져야 하는 게 아닐까 라는 생각을 하고 있다. 형제한테 그런 부담을 지어주면 안 되지 않나. 결국 발달장애의 삶은 부모의 숙제로 남는다.
또 딸을 둔 아빠로서 이야기하고 싶은 건, 요즘 성폭력 사건이 끊임없이 일어나는데, 비장애인 여성도 마찬가지지만, 우리 연지 같은 지적장애 여성은 그런 성적 유린에 더 많이 노출될 수밖에 없다는 점이 참 두렵고 걱정된다. 우리 연지가 뉴스에 나오는 험악한 꼴을 당하지 않고 안전하게 살기 위해서는 가족이 지켜주고 울타리가 돼 줘야 하지만, 그것도 한계가 있지 않나.
그래서 발달장애인들이 사회에서 살아갈 수 있는 기본적인 여건들이 마련되려면 법이나 제도적으로 보장돼야 한다는 점에 너무나 공감한다. 그건 복지부 등 정부가 할 수밖에 없는 일이다. 그런데 지금은 그런 게 전혀 돼 있지 않아 불편하다.
우리 연지는 어느 정도의 의사 표현과 신변처리가 가능하다. 그렇지만 발달장애인들은 백이면 백, 각자의 특성이 다 다르고, 1급이든 3급이든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한 것은 마찬가지다. 그런데 의사들은 병원에 앉아서 이론적으로 따져서 한우고기 등급 나누듯 우리 아이들을 1급, 2급 따진다. 만약 그렇게 등급을 나눌 수 있어서, 1급은 아무 능력이 없고, 2급은 그보다 좀 더 낫고, 3급은 어느 정도 할 수 있다고 인정한다면 그에 맞는 적정의 대우를 해줘야 하는데 그것도 아니지 않나.
우리 집의 경우 평소에 부부가 함께 자영업을 하고 있어 아이를 돌봐줄 사람이 절실히 필요하다. 그런데 1급 판정을 받고도 활동보조서비스를 받지 못 한다. 공단에서 연지의 병원 임상기록 등을 살펴보더니 어느 정도 의사소통이 가능하다는 이유로 활동보조서비스 대상자가 될 수 없다고 했다. 병원에서 매긴 등급과 공단에서 요구하는 범위와 그에 따른 서비스가 다르니 우리만 가운데서 어쩔 줄 몰라 하는 거다. 그래서 등급을 나눈다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고 인권유린이라고 생각한다.
“활동보조서비스 신청하고 싶었는데 등급 내려가 자격 상실”
최종훈(남·45·뇌병변 1급→2급 판정)
음성꽃동네 천사의 집에서 살다가 나왔다. 자립을 준비할 때 작은 형이 반대했는데 큰 형과 동생이 작은 형을 설득해주고 도와줘서 수급비와 장애인연금을 받으며 생활하고 있다. 자립을 하고나니 전철이나 장애인콜택시를 타고 외출도 하고 내 의사표현을 할 수 있다는 점은 좋다.
원래 뇌병변 1급이었는데 몇 달 전 등급재심사를 받아 2급으로 떨어졌다. 휠체어 없이 그냥 걷는 건 조금밖에 못 걷는데 손가락을 움직일 수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그런데 나는 밥도 혼자 잘 못 먹겠고, 씻는 것도 혼자 잘 못 한다. 활동보조서비스가 필요했지만, 그 동안 이런저런 이유로 신청을 못 하고 있다가 확대된다는 소식을 듣고 ‘이제 나도 활동보조서비스를 받을 수 있겠구나’ 했는데 2급으로 떨어지는 바람에 아예 신청할 수 없게 돼 버렸다.
주위 장애인친구들도 등급이 떨어지는 걸 지켜보면서 등급재심사를 받기 두려워한다. 등급이 내려가면 장애인연금이나 수급비가 삭감될 수 있어서다. 그래서 나는 최대한 친구들에게 재심사 받지 말고 버티라고 말해준다. 등급과 상관없이 활동보조서비스같은 지원을 제대로 해줬으면 좋겠다.
“부양의무제 때문에 수급권 없어… 언제까지 부모의 짐이 돼야 하나”
이준수(남·32·중복장애 2급)
태어날 때부터 지체장애가 있었는데, 지적장애까지 있다는 걸 얼마 전에 알았다. 정식으로 교육을 받은 적이 없어서 현재 노들장애인야학에서 공부하고 있다.
몇 년 전 한 자립생활센터에서 일한 적이 있는데, 일을 하다가 해고당했다. 센터를 운영할 돈이 없다는 이유였다. 해고당하기 전 월급도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그 때 센터에서는 돈이 없어 다른 곳으로 사무실을 이전해야 한다며 며칠만 쉬라고 했다. 그때 그 말이 잘 이해가 가지 않아서 노동부에 가서 물어봤더니 나는 이미 해고된 후였다. 그 후에는 취업 프로그램에도 참여해봤지만 제대로 직업을 가진 적은 없다. 다들 내 장애 때문에 안 된다고 했다.
그런데 현재 부모님과 같이 살고 있다는 이유로 기초생활수급비를 받지 못 하고 있다. 2010년부터 9만 원의 장애인연금만 받고 있을 뿐이다. 아버지는 이곳저곳 일당을 받으시며 노동을 하시고, 어머니는 과일가게를 운영하여 생계를 이어가고 있어 힘든 상황이라 부모님의 고충을 덜어드리고 싶지만 현실적으로 가능할 것 같지 않다. 한창 일 해야 하는 나이에 장애 때문에 일도 못 하고 부모님한테 짐만 되고 있어서, 계속해서 우리 부모님이 나 때문에 힘들 걸 생각하니 죄송한 마음뿐이다.
나도 돈을 벌어서 연애도 하고, 장가도 가고 싶다. 장애 있다고 취업을 시켜주지 않을 거면 부양의무제를 폐지해서 기초생활수급비라도 줬으면 좋겠다. 하루 빨리 부양의무제가 폐지돼서 다른 사람들도 나처럼 살지 않았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