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달장애인 부모 김현숙 씨

“○○이 오빠 집 어디야?”
“○○이 오빠 집 어딘데?”
“까먹었어.”
“××집 어디야?”
“왜 아는 것 자꾸 묻지? 그거 다 아는 것 아니야?”
“응, 토끼는?”
“토끼는 어디에 있어?”
“광주. △△이는? △△이 집 어디야?”
“△△이 집 어딘데?”
“까먹었어.”

지난 18일 수요일 아침, 여느 학생이라면 학교 갈 준비로 가장 바쁜 시간. 그러나 17살 강은주 학생은 서둘러 바쁘게 움직이는 어머니 김현숙(48) 씨를 따라다니며 질문하기를 멈추지 않는다.

은주 학생의 질문 내용은 ‘누가 어디에 사는지’, ‘누가 밤에 잠자는지’, ‘이모는 아픈 곳이 다 나았는지’가 주다. 김 씨가 ‘알면서 자꾸 물어보면 안 된다’고 말해도 은주 학생의 질문은 끝날 줄 모른다.

▲ 어머니 김현숙(왼쪽) 씨와 강은주 학생이 대화를 나누며  활짝 웃고 있다.
▲ 어머니 김현숙(왼쪽) 씨와 강은주 학생이 대화를 나누며 활짝 웃고 있다.
은주 학생은 지적장애 1급의 발달장애인이다. 김 씨는 둘째 딸 은주가 태어난 지 6개월 됐을 때 웃지도 울지도 않으며, 소리를 잘 듣지 못한다는 점을 발견했다. 김 씨는 “당시 첫 검진 때 근위축증이라 두 살 정도밖에 못 산다는 오진을 받았는데, (처음 받은 충격이 너무 커서인지) 오히려 은주의 지적장애를 받아들이는 것도 빨랐다.”고 떠올렸다.

김 씨는 하루가 시작되는 아침부터 ‘전쟁’이라고 말했다. 은주 학생의 쏟아지는 질문에 대답하랴, 본인과 은주 학생의 외출·등교를 준비하랴, 강아지 먹는 물 갈아주랴, 분리수거거리 챙기랴 정신이 없다. 얼마 전 은주 학생이 왼쪽 다리를 다쳐 석고 붕대를 하는 바람에 은주 학생의 양말신기도 김 씨의 몫이 됐다.

김 씨는 원래 아무리 작은 강아지라도 무서워서 먼 길을 돌아갈 정도로 강아지를 싫어했지만, 은주 학생이 강아지를 좋아해 정서에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어 키우기 시작했다. 막상 키우다보니 예쁘다는 김 씨의 마음을 아는지 강아지 또한 김 씨를 무척이나 따른다. 하지만 정작 은주 학생은 예뻐하는 방식이 거칠어, 강아지는 은주 학생과의 1대1 만남을 피한단다.

김 씨는 은주의 다리가 나을 때까지 통학 버스 대신 개인 자동차를 이용하기로 했다. 학교에 데려다주러 가는 길, 따뜻한 햇살과 함께 벚꽃이 제법 흐드러지게 피었지만 김 씨에게는 계절을 만끽할만한 여유가 없다. 진해군항제는 엄두도 못 낸다는 김 씨는 ‘발달장애인부모의 숙명’이라며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아침부터 숨차고 힘들어요. 은주를 키우면서 성격도 급하게 바뀌고……. 삶이 송두리째 바뀌었어요. 지금은 은주가 특수학교를 다녀서 그나마 유도리가 생겼지만, 예전 일반학교 다닐 때는 은주의 시간에 맞추느라 진료 받는 도중에 나오고 그런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에요. 특히 은주하고 돌아다니려면 제 의지대로가 아닌 은주의 뜻에 맞춰서 움직여야 해요. 어렸을 때와 달리 이제는 다 커서 마음에 안 들면 떼쓰고 때리고 그래요. 언어로 소통이 잘 안 되니까 싫다는 표현을 그렇게 하는 것이죠.”

김 씨는 “은주가 1박 2일 현장학습을 가면 첫째가 꼭 하는 말이 ‘아우, 엄마랑 나랑 이렇게 둘만의 시간 오랜만이야’다. 그날은 첫째와 심야 영화를 보러 가고, 동대문 시장도 가고, 특별한 날.”이라며, 그런 날에 해방감이라는 행복을 느끼면서도 눈물이 난다고 표현했다.

사람의 이름·사는 곳에 관심이 많고 음악 듣는 것을 좋아하는 은주 학생은 장애 특성상 다른 사람과의 의사소통이 원활하지 않으며, 스트레스를 받으면 머리카락을 쥐어뜯거나 손을 물어뜯는다. 원래 나이대로라면 고등학교여야 할 은주 학생은 중학교 3학년이다. 여느 발달장애인부모와 마찬가지로 김 씨 역시 은주 학생의 재활치료 등을 위해 입학을 1년 미뤘다.

▲ 강은주 학생의 아기 때 모습.
▲ 강은주 학생의 아기 때 모습.
김 씨는 은주 학생이 태어난 지 10개월인 무렵 재활치료를, 15개월에는 특수교육을 시작했다. 당시 장애인복지관에서 지적장애 및 어리다는 이유로 받아주지 않아, 매월 150~180만 원이 순수 사설치료실 재활치료비로 나갔다. 맞벌이인 김 씨 부부는 경제적 부담에도 은주 학생의 변화를 보며 포기할 수 없었다.

그러나 현재는 경제 사정이 더 어려워져 방과 후 교실에서 이뤄지는 수업 말고는 따로 재활치료를 받지 못하고 있는 상태다. 김 씨는 “남편은 직장을 다니고 나는 검도장을 운영하는데, 사정상 검도장을 남의 손에 맡겨놓다시피 해서 거의 망했다.”고 털어놨다.

김 씨에 따르면, 은주 학생은 재활치료를 받는 당시 집과 가까운 거리는 혼자 돌아다닐 정도로 좋아졌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은주 학생은 5학년 때 받은 심한 스트레스로 지금은 김 씨의 곁에서 떨어지지 않으려고 한다는 것. 더군다나 매월 70여 시간 주어지는 활동지원서비스는 시간이 턱없이 적으며, 은주의 의사소통 등 ‘사회생활’을 지원하기에는 활동지원서비스만으로는 부족하다.

“가끔 저녁시간에 볼 일이 생겨도 할 수 없을 때 곤란해요. 은주를 데리고 갈 수 없는 모임에 참석한 경우 ‘빨리 가야하는데’하고 안절부절 못하고. 저희가 주말부부인데 주말이나 연말 모임 등이 있을 때도 여유시간을 가질 수 없으니 스트레스 받기도 해요. 의사소통이 돼야 일상생활을 할 수 있는데, 활동지원서비스는 신체적 장애에만 맞춰져 발달장애인의 일상생활을 지원하기는 무리가 있죠. 그런 부분이 좀 해소가 됐으면 좋겠는데, 너무 욕심인가 싶기도 해요. 하하.”

김 씨는 장애등급제에 대한 문제점도 짚고 넘어갔다. 장애인부모들 사이에서 ‘장애등급 재판정을 받을 때 아이에게 코감기 약을 먹여서 가라’는 슬픈 농담이 있을 정도로 효율적이지 못하다고 했다. 김 씨는 “질문에 한두 마디라도 대답하면 1급이 안 나오기 때문에 그런 농담이 생겼다. 사람마다 생활방식에 따라 2·3급이어도 활동지원서비스가 매일 필요한 경우가 있고, 1급이어도 특별한 경우 말고는 거의 필요 없는 경우가 있다. 필요도에 따라 탄력적으로 움직여야지 무조건 급에 따라 서비스를 정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고 지적했다.

김 씨는 “5학년 때 일반학교에서 통학교육을 받을 때인데 담임교사의 무관심 등으로 은주가 상처를 받았다. 굉장히 난폭해져서 가족들을 때리기도 하고, 지금까지도 회복이 안 됐다. 이전에는 혼자 목욕도 하고, 단추는 잘 못 끼워도 옷도 웬만큼 혼자 입고 그랬는데, 지금은 전부 다 해줘야 한다.”고 설명했다.

은주 학생의 심리적 상태가 극도로 안 좋아지자, 김 씨는 정신과 치료를 선택했다. 3년 전부터 지금까지 ‘최고’라는 병원을 찾아다니며 은주 학생의 정신과 치료를 받고 있지만, 언제나 처방은 ‘약물’에 지나지 않는다. 김 씨는 “정신질환은 장애인과 비장애인을 떠나 그 사람의 주변 환경 등을 고려한 치료가 이뤄져야 한다. 더군다나 발달장애인의 경우 공통적으로 다니는 곳 중 하나가 정신과 병원이다. 그만큼 심리적 충격에 더 약하다는 것인데, 이에 대한 접근과 연구가 없는 것 같다.”며 안타까움을 표했다.

당시 은주 학생의 상처는 가족에게 고스란히 전해졌다. 씩씩하고 활발한 편이라고 자부하는 김 씨조차 ‘주변 사람들이 다 떨어져나갈 정도’로 날카롭게 변했고, 그 화살은 지방에서 일하느라 떨어져 지내는 남편에게로 돌아갔다.

김 씨는 나름대로 심리적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해 대학원에 등록하기도 하고, 지역 장애인부모회에서 활동하는 등 노력을 기울였지만, 그 상처는 지금까지도 남아있다며 눈물을 글썽였다. 물론, 은주 학생이 장애인부모회 활동 또한 ‘귀신 같이’ 알고 싫어해 현재는 그만둔 상태다.

하지만, 은주 다음으로 상처를 많이 받은 사람은 김 씨가 ‘너는 멀쩡한데 뭐가 문제냐’고 생각했던 첫째 딸이었다.

“병원에서 첫째가 검사를 받았는데 어이가 없고 너무 놀랐어요. 은주랑 나이차이가 여섯 살이나 나는데, 동생에 대한 열등감이 있다는 결과가 나왔어요. 항상 어디를 가도 자신은 뒷전이고 뭐든지 은주가 우선이다 보니까……. 지금 생각해보면 첫째가 어렸을 때 어린이답지 않았어요. 초등학생 때도 제가 나갔다가 늦게 들어오면, 제 걱정 때문에 아무 것도 못하고 그랬어요. 고등학교 때는 수학여행을 갔는데, 밤마다 ‘문 잘 잠갔느냐’고 밤마다 전화가 오는 거예요. 우리 부부가 주말부부니까 자신이 아빠 역할도 해야 할 것 같고, 은주가 장애가 있으니까 자신이 엄마를 보호해야할 것 같았던 것이죠. 그때는 ‘어머, 얘가 효녀네’ 했는데, 사실은 그런 중압감에 시달리는 ‘착한 아이 콤플렉스’였던 것이죠.”

김 씨는 이 사건을 계기로 발달장애인 가족 지원의 필요성을 절실히 깨달았다. 부모도 사람이기에 ‘꿋꿋하게 혼자 버티는 것’도 한계가 있다는 것. ‘부모는 자녀의 거울’이란 말이 있듯이, 부모가 병들면 이는 다시 자녀에게로 돌아간다. 김 씨가 조금이라도 우울하거나 감정에 변화가 생기면, 은주 학생은 눈빛이 경직되고 머리카락을 쥐어 잡는다고 했다.

“제가 젊었을 때는 감당할 수 있었지만, 은주가 점점 클수록 제가 해줄 수 있는 부분이 점점 사라지는 것을 느껴요. ‘이 아이는 혼자 키울 수 있는 아이가 아니구나, 사회가 같이 지켜야하는구나’라고요. 은주의 행복은 은주의 선택에 의해서 결정되는 게 아니라, 다른 사람에 의해서 결정되거든요. 하지만 국가와 사회는 손을 내밀지 않잖아요. 단순히 등급과 소득에 의해서 몇 가지 지원하는 게 다에요.”

▲ 강은 주 학생의 어린 시절 모습.
▲ 강은 주 학생의 어린 시절 모습.
무엇보다 발달장애인부모의 가장 큰 걱정은 자녀의 성인기다. ‘요람에서 무덤까지’, 발달장애인 부모들이 발달장애인 제도 및 지원의 방향으로 내걸고 있는 말이다. 그나마 전공과 과정과 보호 작업장 등이 있지만, 중증장애일 경우 이마저도 접근이 쉽지 않다. 김 씨 역시 곧 고등학생이 될 은주 학생의 앞날을 위해 이리저리 알아봤지만, ‘어느 정도의 의사소통과 신변처리를 할 수 있어야 한다’는 조건이 발목을 붙잡는다.

김 씨는 “중증발달장애인은 고등학교를 졸업하면 정말 갈 데가 없다. 주간보호소나 갔다가 집에서 빈둥빈둥하다보면, 혈기 왕성한 때 힘은 남아도는데 할 건 없으니까 부적응 행동이 나올 수밖에 없다. 부적응 행동이 나오면 정신과 치료가 따르게 되는데, 이는 발달장애인의 삶의 질은 고려하지 않은 채 약물로 방치하는 꼴.”이라고 비판했다.

이어 “비장애인에게 평생교육은 기본적인 삶이 보장된 상태에서 삶의 질을 더 높이고자 필요한 것이지만, 발달장애인에게는 기본적인 삶을 살기 위한 필수 조건이다. 발달장애인도 이 세상에 태어난 사람들이다. 당사자가 어떤 삶을 원하는지 파악해서 한 가지라도 이뤄질 수 있게끔 뒷받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바뀌지 않고 계속 이 상태로 간다면, 살아있는 목숨 끊을 수 없으니까 정말 안 좋은 줄 알면서도 장애인생활시설에 보낼 수밖에 없는 상황이 올까봐 두려워요. 그래도 아직 시간이 좀 있기 때문에, 제가 힘 있을 때 열심히 투쟁도 하고 요구도 해서 은주를 그 지경까지는 안 만들고 싶어요.”

김 씨는 지역사회의 인식 변화 또한 당부했다. 장애 영역 안에서도 발달장애는 소외계층이라는 말을 대변이라도 하듯, 제도를 시행하는 관공서조차 ‘발달장애인 관련 프로그램을 하고 싶다’고 요청하자 ‘우리 주민센터에는 승강기도 없다’고 대답했단다.

그는 “통합교육이냐 특수교육이냐 말이 많은데, 근본적으로 장애에 대한 인식이 바뀌어야한다. 특수학교에서 ‘왕자님·공주님 대접’ 받으면 뭐하나, 밖에 나오면 찬밥 신세다. 통합교육하면 뭐하나, 장애이해교육 대상에 정작 학생을 가르치는 선생님은 없고 학생들만 있다.”고 꼬집었다.

김 씨는 다시 한 번 ‘은주의 행복은 은주 스스로 만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에 의해서 결정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첫째가 한참 사춘기일 때 은주 학생을 구박한 적이 있는데, 그 후 3~4년 동안 은주 학생은 첫째의 방에 들어가지도 않고 멀리했다며, 5학년 때 받은 상처 역시 지금까지 진행 중이라고 말했다.

“안 좋은 모습이라고 지적만 하면 점점 위축되고 작아져서 발붙일 곳이 없어져요. 누군가와 친해지면 그 사람의 단점을 보고도 ‘쟤는 원래 저래’하고 넘어가는 것처럼, 발달장애인의 모습도 그렇게 봐줬으면 좋겠어요. 예전에 은주가 혼자 학교가면서 횡단보도를 건너는 도중에 멈춰 선적이 있어요. 누구는 ‘애가 저 모양이면 부모가 데리고 다녀야지 뭐하는 거야’라고 말하는 반면, 누구는 ‘그래도 은주 오늘 학교 잘 갔다’고 말했어요.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발달장애인의 모습도 달라지거든요. 부모가 따라다니면서 일일이 다 짚어주면, 아이는 평생 홀로서기를 할 수 없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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